최근 몇 년 동안 한국사회에서는 재일조선인 문제에 대한 관심에 있어서 상당한 변화가 이뤄졌다. 영화 <Go>, <박치기>, <우리 학교>, <디어 평양> 등이 연이어 상영되었고 방송에서도 종종 재일조선인의 민족교육이나 정체성에 관한 특집 프로그램을 방영하였다. 일본 교토에 있는 조선인 마을 ‘우토로’는 검색어순위에 오를 정도로 대중적인 관심사가 되었고 ‘에다가와 조선학교’에 대한 지원모금액은 6억원을 넘었다.
이 놀랄 만한 변화의 배경에는 2000년의 6.15남북정상회담 이후에 이뤄진 ‘탈냉전’ ‘탈분단’으로 불리는 시대상황이 있다. 그동안 ‘북한학교’ ‘조총련학교’로 기피되어온 조선학교는 민주화된 한국사회가 손을 잡을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또한 통계를 잡을 수는 없지만 현재 꽤 많은 재일조선인들이 민주화된 ‘조국’으로의 ‘귀환’을 선택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조총련계 사람’들도 한국사회에서 편하게 살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한다. “한국사회가 정말 변했다.” 과거 한국정부의 태도를 생각해보면 그럴만하다. 지금은 나의 경험과 정체성을 당당히 밝힐 수 있고 경청해주는 사람들까지 있으니까 말이다. 한국에 자유롭게 입국하기 위해 국적을 바꿔야 했다 그러나 분명히 변하지 않는 것들도 있다. 가끔씩 사회문화적인 변화가 정치제도적으로 ‘변하지 않은 현실’을 가려버리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과연 나는 자유로운 선택으로 한국으로 들어온 것일까. 내 선택의 뒤에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나 자신도, 한국 사회도 아직은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들이 있다. 분명한 것은 나는 한국으로 자유롭게 입국하기 위해서 국적을 바꿔야 했다는 사실이다. 그 전까지 특정국가의 여권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정확하게는 국적 ‘취득’이라고 해야겠다. 여권이 없는 일본의 ‘조선적’자들은(朝鮮籍: 일본에 거주하면서 대한민국이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적을 갖지 않고, 일본에 귀화하지도 않은 이들이 갖는 행정상의 적) 일본출국 시 출입국관리사무소가 발행하는 ‘재입국허가서’를 가지고 제3국으로의 여행을 떠난다. 이 상황을 두고 ‘조선적’자들을 ‘무국적자’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일본이나 한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여권을 인정하지 않을 뿐이지, 북한여권을 간직하고 자신을 ‘공화국의 해외공민’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조선적자’들을 한국이나 일본 국내의 시각에서만 접근할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한국입국을 체념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조선적’자들이 한국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외교통상부가 발행하는 ‘임시여권’ 즉 ‘여행증명서’를 발급 받아야 한다. 임시적으로 한국국민이 됨으로써 입국이 허가되는 것이다. 한류 붐으로 일본사람들이 자유롭게 한국을 오고 가고 있지만, ‘조선’적 재일조선인들은 남쪽 ‘조국’으로의 입국이 실질적으로 제한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 여행증명서는 인도적 차원에서 단 한 번 발급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두 번 이상 신청 시 주일한국 영사관 직원한테서 예외 없이 한국적으로 국적을 전환할 것을 강요 받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협박에 가까운 관행들이 계속되어 왔다. 많은 ‘조선적’자들이 전화로 문의하는 첫 단계에서 한국 입국을 체념하던가, 아니면 영사관 직원이 요구하는 대로 조선적을 포기해왔다. 나의 경우 세 번째 한국입국 신청 시부터는 아예 신청을 거부당했다. “통일된 것도 아닌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지 말라”. 5년 전에 임시여권을 발급해달라고 부탁하는 나에게 한국영사관 직원이 한 말이다.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정부는 ‘조선적’자들을 ‘북한국적자’로 보고 있었다. ‘조선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법이나 제도가 얼마나 불확실하고 자의적인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 사실 조선적자들은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법적 차원에서 ‘북한국적’을 인정 받아 본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권리를 거부당할 때만 ‘북한국적자’ 취급을 받는다. 또한 이 불투명성은 각 영사관마다 직원마다 자의적인 해석을 남용하는 일관성 없는 관행을 허용하고 있다. ‘조선적자’들 중에서도 변호사나 교수와 같은 사람, 한국의 국회의원들과 연계가 있는 사람들은 영사관에서 바로 알아서 처리해준다고 하니 말이다. ‘조선적’자들을 없애는 일에만 열심인 한국 어쨌든 겉보기에는 애매하면서도 나 자신에게는 확실했던 ‘조선적’이라는 정체성을 나는 포기했다. 한국으로 들어오기 위해서, 이동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한국사회는 정말 변한 것일까. 그뿐만이 아니다. 나에게 그토록 한국국적 취득을 권유하던 한국영사관은 막상 국적 취득하는 단계에서는 아무런 도움도, 조언도 주지 않았다. 조선적 재일조선인들의 경우, 고향에 있는 호적과 떨어진 채 오랫동안을 이국에서 살아왔다. 국적 취득을 위해서는 우선 이 호적을 정리하고 가족들의 이름을 올려야 한다. 드디어 ‘한국국민’이 되겠다고 하는 우리에게 영사관에서는 아무런 정보도 제공해주지 않았을 뿐더러 무관심으로 일관하였다. 한국정부는 ‘조선적’자들을 없애는 일에 열심일 뿐이지, 재일동포 그 자체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과연 한국어도 잘 못하는 수많은 재일동포들이 어떻게 이 힘겨운 과정을 거쳐서 ‘한국국민’으로 되었단 말인가? 어떤 아주머니는 고생 끝에 호적에 자신의 이름이 적혔을 때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고 하였다. 나는 그 느낌에 도저히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이것이 조국과 떨어져 살다가 끝까지 ‘짝사랑’을 지키는 재일조선인들의 현실이다. 많은 재일동포들이 그랬듯 이렇게 우리 가족들도 많은 돈과 시간을 바쳐야 한국의 여권을 손에 쥘 수가 있었다. ‘국민’이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 ‘어느 한쪽을 택하라’는 국민국가의 폭력 재일조선인 1세 작가인 김석범이 오랫동안 주장해온 것처럼, 북쪽을 배제한 채 한일간 국교를 맺은 1960년대 이후 분단체제하 재일조선인의 국적 문제는 그들이 놓여진 정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재일조선인들의 적극적인 조국왕래를 비롯해 최근 한국 사회와의 새로운 관계형성의 배경에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정치적 현실이 있다. 더 냉철하게 말한다면, 한반도가 분단체제를 유지하고 한국사회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않는 현실이 있는 한 재일조선인과 한국 사회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지금 일본에서 ‘조선적’을 유지하는 사람들의 수는 급격히 줄어가고 있다. 가까운 시간에 북일수교가 맺어진다고 하면 이 ‘조선적’은 공식적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적으로 이행될 전망이 크다고 한다. 그러나 때는 너무 늦었다. 어느 한쪽을 택하지 않고 평생을 여권없이 살아온 사람들에게 이제와서 어느 한쪽을 택하라고 하는 것 자체가 국민국가의 폭력일 수도 있다. 체제의 사각지대에 놓여진 사람들이 결과적으로 가장 가혹한 선택을 해야만 하는 역사적 현실에 대해, 또 다른 대안을 모색해야 할 단계에 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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