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조선인들의 정치참여 가능성

[특별기획] 재일조선인 여성 조경희로부터 듣다⑨

조경희 | 기사입력 2008/05/30 [18:35]

재일조선인들의 정치참여 가능성

[특별기획] 재일조선인 여성 조경희로부터 듣다⑨

조경희 | 입력 : 2008/05/30 [18:35]
작년 6월, 헌법재판소는 재외국민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본국의 참정권을 바라오던 재외동포들에게 예상치 못했던 기쁜 소식이었다.
 
평생 선거에 참여해보지 못한 재일조선인
 
한국/조선적을 가진 재일조선인들은 지금까지 어느 나라에서도 선거에 참여해 본 적이 없다. 물론 우리는 식민지 지배의 결과 오랫동안 ‘정주외국인’으로 살아온 일본사회에 대해, 정당한 권리로서 참정권을 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하여 왔다. 그러나 고전적인 ‘국민주권’의 원리가 여전히 강하게 작동되는 사회에서, 재일동포‘주민’들의 지방참정권 부여 논란은 ‘귀화여건을 완화한다’는 논리에 의해 덧없이 사라졌다.
 
일본에서 60년 이상을 살아온 1세, 2세 재일조선인들은 결국 한번도 자신의 정당한 정치적 권리를 행사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생애를 마감하고 있다. 재일조선인 개개인이 일본 정치에 어느 정도 참여할 의사가 있는지, 과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사람이 평생에 한번도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반영할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비길 데 없는 반인권적인 상황임에 틀림없다.
 
마땅한 권리를 보장 받지 못한 채 반세기를 살아온 재일조선인들은 정치적 무력상태에 길들여지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작년의 한국 헌법재판소가 내린 판결은 한국적을 가진 재일조선인들에게 처음으로 정치참여의 길이 열린다는 것을 뜻한다. 그 기회를 정주국인 일본이 아니라 출신 본국인 한국이 제공한 것도 아주 의미 깊다.
 
‘정치’보다 ‘인권’이 앞선 판결
 
사실 한국사회는 작년의 판결에 앞서 2005년에는 국내에 장기 거주하는 외국인에 대해 지방선거 투표권을 부여하였다. 정치ㆍ사회적인 변화 속에서 일본 사회가 몇 십 년을 걸쳐서도 하지 못했던 일들을 먼저 해낸 셈이다.
 
그 당시만 해도 재외국민들의 권리가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것은, 300만 명에 달하는 해외 한국적자들을 바라보는 한국사회에 ‘인권’보다는 ‘정치’의 논리가 앞섰기 때문이었다. 정치권의 논란은 여전히 지금도 법개정을 막고 있다. 그러나 “의무는 다하지 않고 권리만 행사한다”는 식의 반대여론에 대해서, 헌법재판소는 확실히 “국민의 기본권은 납세나 국방의무의 반대급부가 아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어떤 이유도 기본적 인권을 제한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 재외국민 참정권을 둘러싼 논란의 결말은 이 단순한 논리에 집약되었다. 선거의 공정성 여부, 선거기술상의 문제, 병역의무 등의 모든 문제들은 이 기본적 인권을 인정한 뒤에 논해야 할 사항들이다.
 
“우리의 특수한 상황”에 따라 조총련계는 제외?
 
그런데 한가지만 제외되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판결문에도 나와 있는 “우리의 특수한 상황”, 즉 분단체제에서 비롯되는 문제이다. 판결문은 “북한주민이나 조총련계 재일동포의 선거권행사에 대한 제한은 허용될 수 있으며… 이들이 선거권을 행사할 위험성을 예방하는 것이 선거기술상 불가능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재외국민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문제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해온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위험성을 과도하게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참정권 문제를 다룬 어떤 심포지엄에서도 “지금 한국적자들 중에 ‘조총련’ 출신자들이 꽤 많은데, 그들을 포함시켜도 되는가?” 라는 질문이 나왔다. 또 어떤 사람은 재외동포들이 ‘국익’에 맞는 ‘책임 있는 구성원’인지를 좀더 살펴봐야 한다고 하였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조총련’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조선적’을 가진 현직 활동가들만이 아니라, 조선학교 출신자나 그 주변의 관계자들까지 광범위하게 포함한다면, 심포지엄에서 한 질문자가 말한 것처럼 한국국적을 가진 자들의 수는 꽤 많을 것이다.
 
그런데 법적으로 ‘한국적’이 된 사람들에게 ‘조총련’ 여부를 검증할 방법과 그 근거는 과연 무엇인가. 이것은 일종의 사상검증이 아닌가?
 
역사적으로 보면 모든 재일동포들이 원래 ‘조선’적을 가지고 있었다. ‘조총련’ 출신자들을 추적하는 것은 잠재적 ‘불순분자’를 찾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그 자리에서 간신히 반론을 하면서도 왠지 모르는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다.
 
‘순수한’ 국민이란 누구일까
 
물론 지금 한국사회에서 냉전시대의 사고가 큰 영향을 발휘할 것 같지는 않다. 헌법재판소 판결문에서도 분명히 “추상적 위험성만으로 재외국민 선거권 행사를 부정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문제는 오히려 재일조선인들의 현실이 이 판결문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권’으로서의 참정권도 결국은 국적에 따른 권리인 이상, 참정권을 갖느냐 갖지 못하느냐의 문제가 동포사회에 또다시 선을 긋게 된다. 이를 두려워하는 것은 그야말로 정치적 無권리 상태에 길들여 온 탓일까.
 
나 또한 몇 년 전까지 ‘조선’적이었던 자신이 이제 대한민국 참정권을 행사하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머리 속이 복잡해진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함께 고민을 했던 그 친구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권리를 내가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이러한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는 않다. 그러나 요즘 나 스스로가 참정권을 너무 정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나’ 개인의 정치감각이 참정권을 부여 받는 것을 유보할만한 아무런 이유가 되지 않을뿐더러, 내가 제도적 권리를 행사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고민과 결정 역시 참정권이 주어졌을 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참정권을 행사하게 되는 재외국민들이 ‘순수한 국민’이나 국익에 맞는 ‘책임 있는 구성원’인지는 모르는 일이다. 과연 그런 사람들이 존재할지도 의문이다. 어쨌든 재외동포들의 정치참여 그 자체가 본국을 열리게 만들고 분단체제를 조금이라도 흔드는 계기가 된다면, 나는 이에 기꺼이 참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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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uam 2008/06/01 [14:30] 수정 | 삭제
  • 선거는 정치적 행위이지만, 개인의 권리라는 차원에서도 큰 의미인데, 워낙 정치적인 의미가 크고 결과에 따라 바로 좌우되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개인적인 차원의 의미는 희석되기 쉬운 것 같습니다.

    선거권의 의미를, 선거권을 갖지 못한 이의 입장에서 인권의 차원으로 이야기를 해준 글을 보니 많이 와닿습니다.

    그리고 귀찮다고 투표 안 하는 20대들이 새길만한 내용도 있는 것 같네요. 이명박 100일 치하로 이미 어느 정도는 경각심이 생겼겠지만 말입니다.
  • 시민 2008/05/31 [08:25] 수정 | 삭제
  • 정치적 무력감에 빠질 만도 한 것 같네요.
    일본도 참 대단한 국가네요. 전범재판도 안 받고..
    요즘같은 세상에서...
    선거권이 보장된 민주주의 사회라는 말도 제한적으로 사용되어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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