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여준민님은 ‘장애와 인권 발바닥행동’ 활동가이며, 잠시 활동을 쉬고 현재 풀무학교 전공부에 2학년으로 재학 중입니다. –편집자 주]
그때는 대추리 투쟁으로 마음이 많이 갈라져 있었다. 그 투쟁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주 많이 아프고 상처를 받았다. 우리들의 투쟁이란 것이 늘상 지는 싸움이고 늘상 있는 과정이라 위안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없이 무력감만 밀려올 때였다. 설명할 수 없고 아무에게도 내색하지 못했지만 그 고통이 나를 흙으로 안내했다. ‘흙은 정말 나의 운명인 것일까?’ 요즘은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엄마가 나를 낳기 전에 꾼 태몽이 골목길에서 호미 세 자루를 주운 것이라고 했고, 1974년 2월 생인데 사주에 土(흙)이 있다는 것도 자꾸 흙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고민 끝에 지난 해 홍성에 위치한 풀무환경농업전문학교 전공부 과정에 입학해 2년째, 그러니까 창업(풀무학교에서는 졸업을 창업이라 한다. 교육의 끝이 아니라 배운 것을 사회에서 써먹는 시작점이기 때문이다)을 앞두고 있는데, 논과 밭에서 기고 쪼그려 앉아 흙과 작물을 매만지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쏙 빠져드니, 내가 자꾸 ‘운명’을 생각하는 것은 나름 이유가 될 것 같기는 하다. 말이 길어졌지만, 요즘은 이런 나에게 ‘진심으로 흙을 나의 운명으로 받아들일 자격이 있는가’ 싶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녀석이 있다. 그 녀석 이름, 들
이름도 멋진 그 녀석은, 얼굴도 이쁘고 생각도 이쁘고 하는 모든 태도들이 이쁘다. 아니 부끄럽기도 하고 부럽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흙을, 땅을 아주 자연스럽게 지 몸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이명박 정부의 횡포에 대해 이 땅의 미래가 될 우리 10대 여학생들이 먼저 저항하기 시작한 것을 두고, ‘희망’이란 단어를 입에 오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 또한 다음 세대를 이어갈 그 친구들의 모습에서 ‘절망에서 희망’이란 말을 떠올리게 된다. 근거 없는 희망보다 현실을 깊게 인식하는 절망이 이 시대에 더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확실히 자각하고 반성하는 인간의 모습에서 희망의 싹이 트는 것 같다. “작년엔가 가족들이랑 무를 캐서 생협에 출하하려고 잘 생긴 놈들을 골라 무게를 재고 포장을 하는데, 갑자기 못생겼지만 튼튼한 놈들이 ‘상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배제되고 가치를 인정 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드니까 화가 나는 거예요. 그 밭에서 고개만 들면 ‘풀무생협’이 바로 보이는데, 도대체 이 무들이 심사를 받아야 하는 저곳은 어떤 곳일까? 생협이라 하면 상품의 가치보다는 농부들이 땀 흘려 정성스럽게 가꾼 모든 작물들이 그대로 가치를 인정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면서 직접 농사를 짓고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당시 풀무고등학교 3학년생이었던 들은 그냥 많이 울었다고 한다. 과연 시장에서의 상품가치란 것이 무엇인지, 어리지만 전혀 어린 사람답지 않게, 물질이 중심이 되어 돌아가는 세상을 몸으로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들은 고등학교 학교선생님들 대부분이 반대함에도 불구하고(난 지금도 이 점을 이해할 수 없다. 풀무학교는 더불어 사는 평민을 길러냄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새 대안학교로 유명해지면서 지역의 학생들을 입학심사에서 떨어뜨리고, 농사짓고 살겠다는 학생에게 대학에 갈 것을 권유하고 있다.) 대학 대신 2년제 과정인 전공부를 선택했다. “대학에 가지 않은 거 후회하지 않아요”
머리가 크면 부모로부터 벗어나 독립도 하고 싶고 다른 지역에도 가보고 싶고 호기심이 많아질 텐데, 들이는 전공부를 선택해 인문학을 배우고 농사실습 하는 것이 마냥 좋다고 한다. “대학에 가지 않은 거 후회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학력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건 기분 나빠요. 지난 해 무 포장을 하면서, 그리고 얼마 안됐지만 전공부에 들어와 생활하면서 농사를 기준으로 사회를 보는 시각은 더 확고해진 것 같아요. 전 그 입장에서 세상을 볼 거예요. 그런데 전공부에 들어온 언니, 오빠, 아저씨들을 보면 사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다 온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이 다 농촌에 필요한 사람들이거든요. 농사만 짓는 것이 아니라 농업 관련 활동은 다양하고 농촌은 다양한 사람들을 필요로 하고 있어요. 자기 분야를 적용하면 돼요. 요즘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내가 너무 무식하구나 싶어 자극을 좀 받고 있는데, 그래도 제 중심은 농사가 될 거예요.” 기숙사 방에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다음 질문을 잊고 잠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앳된 소녀의 얼굴을 하고서 열정과 패기로 똘똘 뭉친 이 친구한테 부끄럽기도 했고 한편으론 너무 감사했기 때문이다. 농사는 낭만, 마을은 공동체
“음…전 아직 농사를 몰라요. 그런데 예전에 동네 아주머니가 농사는 ‘낭만’이어야 한다고 얘기하신 걸 들은 적이 있어요. 그건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 해야 한다는 뜻인 거 같아요. 돈을 벌기 위해 작물재배를 상품으로만 생각하고 농약을 치고 제초제를 치면, 사람이 해를 당하고 생물들과 땅 모두가 죽는 거죠. 기계를 이용해 대규모로 농사짓는 것도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은 절대 못해요.” 모든 일이 그렇듯이 진심으로 소통되지 않으면 막다른 곳으로 통하고 아무 것도 얻을 것이 없듯이, 농사가 무엇인지 아직 모른다고 계면쩍게 말하지만 들은 몸으로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했다. “풀무학교가 지역과 학교를 강조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다 따로따로 제 각각이에요. 끼리끼리만 좋아라 하죠. 문화만을 향유하려는 사람들은 이 지역이 아름다운 공동체 정신이 살아있다고 하고 풀무학교 학생들이 예의 바르다고 말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아니에요. 마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지만 은근히 원주민과는 상대하지 않으려 하고 어떤 프로그램으로만 해결하려고 해요. 지역사람들 모두가 이웃이라는 마을 공동체성을 갖기 위한 일상에서의 노력과 인식의 전환은 하지 않으려고 하죠.” 일년을 지내고 보니 어렴풋이 마을을 터부시하는 고등부의 어떤 묘한 분위기가 있는데, 들은 마을의 주인으로, 일원으로, 이미 고등부 사람들의 속내를 파악하고 있는 듯 했다. 푸른 들은 울지 않는다
들과 그의 친구 소망이가 풀무학교 고등부를 졸업한 후 전공부에 오자, 후배들도 전공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주 찾아오기도 하고 전공부에 대한 질문도 많이 한다고 한다. 그건 농사짓고 산다는 것, 소농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들이를 처음 만났을 때 어쩐 일인지 난 다시 평택 대추리, 도두리를 생각했다. 아마 당시 자주 썼던 ‘들이 운다’는 표현 때문이었을 게다. 들이와 방구석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다시 생각한다. 들이 울게 하는 일은 다시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들이 운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삶이 파괴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기사 좋아요 1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농업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일다의 방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