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여성축제’서 만난 시와&말없는 라디오

페미니스트의 음악 블로그①

성지혜 | 기사입력 2008/06/09 [15:17]

‘비혼여성축제’서 만난 시와&말없는 라디오

페미니스트의 음악 블로그①

성지혜 | 입력 : 2008/06/09 [15:17]
여성뮤지션에 대한 페미니즘 음악비평을 실어온 성지혜님이 조금 더 편하고, 넓게 음악을 이야기할 수 있는 에세이로 ‘음악 블로그’ 연재를 새롭게 시작합니다. -편집자 주

‘비혼여성축제’에서 만난 그들
 
▲ 시와    ©클럽 빵 (cafe.daum.net/cafebbang)
지난 5월 25일, 일요일 늦은 오후 게으른 몸을 일으켜 밥을 해먹고 오래간만에 청소기, 세탁기 돌리기(?) 등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뒤늦게 ‘비혼여성축제’가 그 시각 홍대의 모 라이브 클럽에서 열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홍대 부근에 사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면 바로 이럴 때 일겁니다.

 
2부의 음악공연이 시작될 즈음 도착. 낯선 사람들 사이에 어색하게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둘러보니 웃고 있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사랑스러운 춤을 보여줬던 스윙 시스터즈와, 시원시원한 보이스의 보컬리스트가 매력적인 밴드 제니스 트레일(Zenith Trail)외에 나머지 두 팀은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작년에 ‘여성주의 액션박람회’(전시와 공연을 함께 했던 행사)에서도 함께 게스트로 섰던 ‘시와’와 ‘말없는 라디오’입니다.
 
시와씨와 말없는 라디오의 멤버인 이주영씨는 홍대 라이브 까페에서도 종종 보아왔더랬죠. 제 편견인지 몰라도, 역시나 그들은 문화적 의미를 지닌 현장에서 노래할 때 가장 멋이 있습니다.
 
고요한 숲 속 공간으로 안내하는 시와의 음악
 
시와의 음악은 언제나 숲 속에 있습니다.
 
“저 하늘 저 나무 저 그늘 저 계단
여기서도 저기서도 똑같아 보일까”

 
시와의 음악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인 <랄랄라>의 가사 중 일부입니다. 저 부분을 가장 좋아합니다. 통기타 한 대와 차분한 목소리, 그 두 가지 뿐이지만 그녀의 음악은 너무나 진솔해서 사람들을 쉽게 집중하게 만듭니다.
 
작년 그녀의 공연에서 이 곡을 듣다가 갑자기 주위의 잡음들이 사라지면서 귀 안에서 조그맣게 시냇물 소리가 들리고, 양 볼을 쓰다듬는 듯한 바람결을 느끼는 기이한(!) 경험을 해서 그런지 저는 이 노래가 참 좋습니다. 과장으로 들리겠지만 정말 그랬습니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에서 제목을 따왔다는 <화양연화>도 몹시 좋습니다.
 
“달리는 자전거
  시원한 바람
  이제 알아요
  그렇게 눈부신
  인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한때가
  사라집니다.”

 
어릴 때 텅 빈 집에 홀로 있을 때면 제 몫으로 있는 딱 한 장의 엘피판을 틀어놓고 몇 시간을 반복해서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 음반도 시와처럼 포크음악을 담은 것이었습니다. 그 엘피판이 하릴없이 홀로 긴 시간을 떠돌던 제게 마치 동화 속의 작은 동물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면, 시와의 음악은 삶에 지쳐버려 허무와 냉소에 길들여진 제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 빛나고 조용한 공간으로 데려가 줍니다.
 
포크적 정서로 내면을 가다듬는 ‘말없는 라디오
 
▲ 말없는 라디오     ©사진-용군 (blog.libro.co.kr/whity79)
“웃으며 희망도 팔고, 울며 칼과 방패도 팔았죠.” 라는 가사가 들어있는 말없는 라디오의 <꿈 파는 가게>가 정말 멋진 곡이라는 생각도 다시금 들었습니다. 마치 깨어나기 힘든 꿈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더불어 <정말 좋아해>를 들려줄 땐 애타고 답답한 마음이 노래 부르는 분의 목소리와 가사에서 생생하게 표현되어 웃어버렸습니다.

 
정치적인 집회에서도 아주 잘 어울릴 법한 곡인 <거기로>를 들으면서는 조금은 희망적인 환상 속에 놓이면서, 동시에 그 희망이 과연 실현 가능할지를 생각하며 잠시 슬픔에 물들기도 했습니다. 무표정한 듯 하지만 조심스러운 두 사람의 표정은, 내면의 결들을 하나하나 가다듬는 듯한 그들의 음악과 어딘지 닮아있습니다.
 
예전에 그들의 공연을 보았을 땐 멤버 둘이 기타 연주만으로 곡을 소화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밴드 체제로 선보여 새로웠습니다. 이들의 음악은 포크적인 정서를 기본으로, 단출한 사운드와 복잡하지 않고 누구나 편안하게 몸을 맡길 수 있는 그루브를 구사하는 것이 주된 스타일인 것 같습니다. 로큰롤적이기도 하고, 멜로디에서는 15~20여 년 전의 ‘가요’와 비슷한 감성미가 물씬 풍깁니다.
 
음악에서 곡과 가사는 양분될 수 없고 가사에 너무 치중하는 건 무리가 따르는 감상법일 테지만, 그래도 시와와 말없는 라디오는 눈물 나게 좋은 가사를 쓰는 ‘페미니스트 뮤지션’들입니다. 물론 그들의 가사는 그 음악에서 녹아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당신과 내가 이곳에 함께 있는 것처럼
 
여러 예술 중에서도 (대중)음악을 특히 가까이 두고 있는 제게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으로 음악을 만나는 이 같은 순간들은 정말로 소중한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곳에서 그 사람들과 그 음악을 들으니, 제 안에 억지로 묻어둔 후회와 상처들이 되살아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 위안을 받았습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자연스레 서로가 서로에게 건네는 위로 같은 것.
 
이처럼 페미니즘 이벤트에서 저는 스스로의 살아가는 모습을 생각하게 되고, 사람들과 공존하는 삶에 온몸으로 부딪혀 볼 용기를 얻습니다.
 
굳이 음악이 아니어도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연결된 글이나 영화, 혹은 존재들을 만나며 외롭고 겁 많은 자신과 마주하거나 새로이 에너지를 얻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인 입장이나 가치관이 문화적 체험으로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비혼’운동은 단지 결혼 제도에 반대하며 홀로 살아가려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가족관계와는 다른) 새로운 관계나 공동체를 지지하고 모색하는 행위이겠죠. 마찬가지로 여성주의 행사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거기에서 일어나는 상황들도 단지 각자의 개인적인 ‘대의’를 위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의견을 문화로 교류할 때 감정적으로 ‘나는 혼자가 아니야’라는 심적인 힘을 갖게 되니까요.

시와 www.withsiwa.com
말없는 라디오 club.cyworld.com/silentra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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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lda 2009/04/07 [14:23] 수정 | 삭제
  • 출처만 정확하게 밝혀주세요~
  • 최선영 2009/04/07 [14:02] 수정 | 삭제
  • 말없는 라디오의 음악에 흠뻑 빠졌는데 ...물론 시와도 너무 좋구요.
    그들의 클럽주소를 알수있어 감사드려요^^
    글 퍼가도 될까요? 제 홈피에 올리고 싶어서요.
  • 시와 2008/08/24 [12:21] 수정 | 삭제
  • 이 기사를 제 홈페이지로 스크랩했었어요. 아무 인사없이 가져갔다는 걸 이제사 깨닫고 뒤늦게 말씀드려요 죄송하고 고맙습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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