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조선인 일상에 그어져있는 38선

재일조선인 여성 림혜영으로부터 듣다⑩

림혜영 | 기사입력 2008/06/19 [13:56]

재일조선인 일상에 그어져있는 38선

재일조선인 여성 림혜영으로부터 듣다⑩

림혜영 | 입력 : 2008/06/19 [13:56]
2년 전인 2006년 5월, 퇴근길 버스 안에서 졸고 있던 나는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뉴스를 듣고 깜짝 놀라 깨어났다. 하루 근무를 마치고 피곤한 상태였지만, 피곤이 확 달아났다.
 
뉴스는 재일동포사회의 “민단과 조총련이 화해”한다는 내용이었다. 들으면서 ‘설마’ 하는 생각이 자리잡았지만, 초조해진 마음으로 집에 가서 다시 뉴스를 봤다. 역시 사실이었다. 그 동안 서로 대립해왔던 역사 끝에 이루어진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또 하나의 남북통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역사적 화해는 한달 뒤에 백지로 돌아갔다. 그 소식을 전해 들었던 나 역시 낙심천만이었다. 민단의 지방 조직들이 북한인권 문제 미해결을 이유로, 민단 중앙본부의 결정에 반대하며 들고 일어난 것이 두 조직의 화해를 백지상태로 철회시켰던 것이다. 화해문서에 서명한 민단 단장이 해임되기도 했다.
 
민단과 조총련으로 ‘분단’된 재일동포 사회
 
재일조선인은 일상생활 속에서 ‘38선’을 느끼며 살고 있다. 일본 내 재일동포 사회는 민단과 조총련으로 나뉘어 긴 시간동안 대립과 반목의 길을 걸어왔다.
 
한국에서 살게 되어서야 그런 재일조선인 사회의 ‘특징’이 훨씬 더 눈에 잘보이기도 한다. 어떨 때는 오히려 실제로 분단선상에 있는 한국사회가 재일조선인 사회에 비해 훨씬 더 밝게 보이기도 한다. 재일조선인 사회에선 일상에서 끊임없이 분단을 느끼게 되지만, 오히려 분단의 한가운데 있는 한국 땅에서는 분단을 망각하고 사는 것 같기 때문이다.
 
‘재일조선인’이라고 스스로 표현할 수 있는 범위 내에는 한국적, 조선적(분단되기 전 조선을 뜻하며 현재 무국적으로 취급되는 법적 지위), 일본국적 소유자, 이렇게 세 가지가 포함된다.
 
▲ 림혜영씨의 어린 시절 모습과 어머니
외가에 가면 법적으로 3가지 입장을 가지고 사는 친척을 모두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일본인과 결혼해 원래 한국국적이었으나 일본국적을 취득한 사촌언니, 조총련 활동을 했던 이모할머니(외할머니의 여동생)는 당연히 조선적이고, 한국적을 유지하면서 일본기업에서 일하는 이모 등이 있다. 일본 재일조선인 사회에서는 이런 일이 그리 특이한 현상도 아니다.

 
내게 민족심이 싹조차 트지 않았던 어린 시절, 명절에 외가에 놀러 갈 때면 설레임과 동시에 다소 불안함도 스며들어 항상 가슴이 두근거렸다.
 
요코하마에 사는 외숙모 가족들은 모두 조총련 소속이었고,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우리말”로 이야기를 했다. 못 알아듣는 말을 하는데다 또 그 집 삼촌은 박력이 있어, 그의 낮은 목소리가 크게 울릴 때면 어린 내게는 마냥 “공포”의 대상이다.
 
그 삼촌하고 또 다른 친척 누군가가 큰소리로 “의논”(내가 놀라면 어른들은 항상 이렇게 설명했다)하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때는 무서워 도망가고 싶은 마음으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러한 분위기가 조성되는 주된 원인은 꼭 정치 이야기였다.
 
그 집 아들과 딸이 북송사업으로 이북에 “귀국”했고, 외할머니는 북에 갔던 조카들을 늘 걱정하셨다.
 
일본학교에 다닌 어머니, 조선학교에 다닌 이모
 
소속되어 있는 조직이나 국적 혹은 사상 때문에 대립과 분열이 잦은 탓에, 그렇지 않아도 총 인구가 많지 않은 재일조선인들로선 어떤 목적을 위해 함께 연대한다는 것은 어려운 숙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실제로 만나지도 못하는 국경선 너머에 사는 것도 아니고, 바로 친척이나 가족 내에 섞여 있다는 점은, 차마 말할 수 없는 비극과 갈등을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대학교 내의 동포 동아리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민단계, 조총련계가 있고 ‘민족심’이나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신입생들 중에는 몰래 두 동아리를 모두 다니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새 학기가 되면 동아리간에 신입생을 모집하기 위한 쟁탈전도 벌어지곤 했다. 그래서 신입생들은 두 곳을 다니는 것에 대해 양쪽에 미안해서 말하지 못한 채 양다리를 걸치곤 했다. 그런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것이 대학생들으로선 하지 않아도 될 마음 고생일 수밖에 없었다.
 
한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에 부쳐야 할 사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생활에서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 정치구조 때문에 개인이 짊어져야만 하는 정신적 부담이 너무나 크고,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기 힘든 복잡한 이유들이 있으니, 그 사실로 인해 스스로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어머니 6 남매 중 세 사람은 일본학교를, 나머지 세 사람은 조총련계 민족학교를 다녔다. 둘째였던 어머니는 첫째 이모와 막내 이모하고 어린이집부터 대학교까지 일본학교를 다녔다.
 
그 당시는 현재에 비해 더더욱 차별이 심해서, 일본학교에 본명(민족명)으로 다니기는 상상도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어머니도 일본이름으로 살고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본인이 조선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때도 그 사실이 잘 믿어지지 않았다고 얘기하셨다.
 
반대로 민족학교인 조선학교를 다닌 이모들은 교복부터가 치마저고리이고 학교 교사, 친구, 선후배 등 주변에는 조선인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랐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우리말”을 사용하고 민족역사을 배웠고, 그 당시는 특히 일본에 대한 반감이 현재보다 더 많은 상황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일본학교 다닌 사람들과 조선학교 다닌 사람들과는 분위기나 삶의 방식, 한반도 정치에 대한 가치관 등이 상당히 달라서,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서로 잘 맞지 않는 부분들이 확실히 존재한다.
 
자기 삶과 직결된 분단과 갈등의 문제
 
그래서 언제 들었던 “밥상 위의 38선”이라는 말을 절실하게 통감한다. 재일조선인 사회에서 그토록 한 가족끼리 다른 정치적 이념으로 나뉘어서 갈등하는 모습을 그린 말이다.
 
정치적 사상 차이나 방향성이 맞지 않아 워낙 크게 싸워서 인연을 아예 끊고 사는 어른들 이야기는 주변에서 싫증나도록 여러 번 들었다. 어떤 모임에서 우연히 한자리에 모였는데 서로 꼴도 보기 싫다는 식으로 말도 안 하는 경우도 많다. 오랜 시간 서로를 적대시해왔던 남북한의 관계처럼 말이다.
 
재일조선인 사회는 다른 어떤 동포사회보다 남북한의 관계에 의해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 다시 말해, 재일조선인들은 조국의 분단으로 일상에서 분단을 직접적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조국의 분단을 지금도 아파하며, 분단이 하루 빨리 종식되기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재일조선인들 중에 지금도 조선적을 유지하며 남북한 체제 중 어느 한쪽으로 속하는 것을 거부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존재는, 온몸으로 이러한 현실을 말하고 있다. 때문에 재일조선인들에게 남북한의 통일문제는 자기 삶과 직결이 되어 있는 절실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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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 2008/06/28 [06:38] 수정 | 삭제
  • 대동아 공영권님... 민족 운운하는게 시대에 맞지 않다고요?? 조선 반도가 매우 미개하다고요?? 제가 보기에는 님이 민족과 민족주의를 구별하지 못하는 매우 편협한 세계관-인간관을 갖고 계신걸로 생각됩니다. 또한 지금 계시는 곳을 조금만이라도 벗어나서, 세계를 여행해보신다면, '조선 반도가 매우 미개하다' 라는 따위의 근거도 없고, 편협한 말씀은 하실 수 없을 걸로 생각합니다.
  • 대동아공영권 2008/06/22 [11:58] 수정 | 삭제
  • 하야시상의 모친께서는 매우 미인이시군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야시상..사실 자이니치들은 더 이상 한국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혐한의 니혼진들과 함께..남한이든 북한이든 싫어하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귀화도 굉장히 많이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역사적으로나..현재의 국가수준이나..모든 걸 토탈해봤을 때..일본에 비해서..조선반도가 매우 미개하기때문이라고 사료됩니다만..

    한국은 이제 다민족국가입니다. 더이상 남한의 구성원은 韓민족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민족 운운하는 이야기자체가 이미..시대에 맞지 않는 이야기로 통합니다. 특히..불법체류자들도..미등록이주노동자라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용어로..옹호되고 있습니다. 미친 나라이지요.

    하여튼 너무 괴로워하지 마시고, 한국에서든 일본에서든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 2008/06/21 [15:02] 수정 | 삭제
  • 양국가, 특히 남한사회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겠지요.
  • 이현 2008/06/20 [04:14] 수정 | 삭제
  • 얼마 전 추성훈씨 관련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리고 이 분 글을 읽으면서,
    마음 속에 빚으로 남아있는 기억에 괴로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 10 여년 전에 뉴욕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같은 기숙사에 살던
    조총련계 재일교포학생을 알게 되었는데,, 참, 착하고 순한 사람이었는데..
    이 사람을 가까이 했다가, 잘못해서 엉뚱한 오해를 받는 일이 생기면 어떻하나, 하는
    염려로 멀리한 적이 있었습니다.
    재일 교포들이 어떤 입장에서 살고 있는지, 알지 못했던 때였고,
    북한과 연결되는 일이면, 안기부로 아무도 모르게 끌려가던 기억이
    아직 생생히 남아있던 때여서 그랬지만, 돌이켜 생각할수록
    마음 아프고, 참 잘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정부의 재일교포에대한 정책도 바뀌어야 하겠고,
    그러기 위해서는 남한, 북한이 재일교포에 대해 보다 책임있는 태도를 갖고
    대처해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듭니다..
    저같이 소심하게 행동하는 사람들도 바뀌어야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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