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을 유별나게 다루는 솜씨

페미니스트의 음악 블로그② 허민과 오지은의 첫 앨범

성지혜 | 기사입력 2008/07/10 [01:07]

익숙한 것을 유별나게 다루는 솜씨

페미니스트의 음악 블로그② 허민과 오지은의 첫 앨범

성지혜 | 입력 : 2008/07/10 [01:07]
허민의 발라드 

▲ 2007년 Muzic Concert 허민   © www.VanillaShake.cyworld.com
2년 전 쯤인가 하이서울락페스티벌에서 허민이라는 싱어송라이터를 알게 되었어요. 밴드로 나왔고, 키보디스트이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밴드음악으로 꾸몄지만 재미있게도 멜로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발라드’였는데, 어떤 발라드였냐면 다름 아닌 1990년대 ‘가요 매니아’들에게 익숙한, 바로 그런 스타일이었습니다.

 
저도 1990년대의 ‘가요’ 앨범들을 사랑했던 팬인 만큼, 무척 반가우면서도 새삼스러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 015B나 토이(유희열), 전람회 같은 음반들에서 눈물의 자양분을 얻었던 때가 있었어’ 하면서 말이죠. 그들은 공통적으로 엘리트 이미지에(실제로 엘리트이기도 하고), 기존의 거친 남성상과는 구별되는 섬세함을 갖고 있었죠.
 
허민은 가사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발음하다가도 감정에 맞게 강조하거나 부드럽게 흘려 보내는 식으로 자신만의 창법을 구사하는데, 그 느낌은 굉장히 ‘여성스러운’ 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고정된 성적 이미지를 갖는 ‘여성스러움’보다는 풋풋하면서도 아직 완전히 코드화되지 않은 감수성을 가진, ‘여고생’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편에 가깝습니다.
 
실용음악을 전공하고 건반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답게, 피아노 컴핑을 위주로 틀을 잡은 멜로디에는 정말 예쁘고 설레는 무드가 가득 차 있습니다. 그녀의 첫 앨범인 [Vanilla Shake](2006)-Vanilla Shake는 그녀가 몸담은 밴드의 이름이기도 합니다-를 들어보면, 그녀 자신이 홈페이지에서 언급했다시피 전람회, 자화상, 이승환 등에게서 받은 영향을 엿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 제게 그녀 음악의 전체적인 느낌을 단순화시켜 설명해달라고 한다면, 아마도 자화상의 [나원주와 정지찬](1997)이라는 앨범을 추천할 것 같아요.
 
하지만 그녀의 음악에는 여린 정서 외에도 조규찬의 1990년대 음반들에서 들어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도회적인 세련미도 있습니다. 특히 1집은 그렇죠.(2집은 소소하고 따뜻해졌습니다. 담백해졌다고 할 수 있겠죠.) 아마도 이 점은 실용음악과 출신다운 편곡법에서 기인하는 것이지 않을까 하고 짐짓 생각해봅니다.
 
그 음악에 비친 그녀

 
▲ 허민의 라이브    © cafe.naver.com/pupumin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분열을 처음 경험했던 10대 시절이 유독 기억에 남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제 경우도 역시 그러한데요. 그런 생각이 듭니다. 10대 후반은 표면적으로는 ‘유사어른’ 취급을 받는 시기인 것 같지만, 그들이 어른사회 일반의 규제를 거부할 때에는 통제를 받아야 할 ‘어린애(미숙한 존재)’로 쉽게 무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춘기의 분열은 분명한 동인을 가지고 있다고요. 자신을 어엿한 한 인간으로 볼 수 있는 것도, 그렇다고 어리니까 책임을 지지 않겠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책임은 있지만, 권리는 없는 상태죠.

 
어찌됐든 저와 비슷한 세대인 허민이 향수하는 그 음악들은 해야 할 것은 많지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던 진지한 분열의 첫 시기가 가져온 사랑, 아니 가슴저린 로맨스에 대한 환상과 맞닿아있기도 합니다. 물론 꼭 그런 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허민의 음악이 특히 역설적이면서도 묘하게 느껴지는 건, 일차적으로는 허민의 음악성이 1990년대에 급부상한 남성뮤지션들의 새로움과 겹쳐진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으로는 그녀가 단지 자신이 좋아하던 음악을 재생하기보다는, 그 음악에 비치던 자기 자신을 주제로 삼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위에서 표현했듯 ‘완전히 코드화되지 않은 (소녀의) 감수성’으로 풀어져 나와 있다는 점에 독특한 묘미가 있습니다.

 
너무 대놓고 ‘사랑타령’ 하는 유행노래들과는 다르게, 무엇을 노래하느냐 보다 어떻게 노래하느냐가 중요했던 옛 ‘발라드’들은 허민의 음악에서 장점 그대로 자취를 남깁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이 여성뮤지션 한 사람의 세계 안에서 재해석되고, 재탄생합니다. 슬픈 사랑노래의 자기만족적인 우울보다는, 자기의 감정을 소중히 다룰 줄 아는 로맨틱한 감수성으로 말이죠.
 
오지은의 ‘카리스마’ 

▲ 오지은 1집 [지은] 3rd edition
어떤 면에서는 오지은 음악과의 첫 대면도 허민과 비슷한 데가 있었습니다. ‘어!? 어딘지 예전 락발라드 같다.’ 물론 허민이 첫 인상과 실제 음악이 이어지는 부분이 많은 것에 비해, 오지은은 첫 인상과 꽤 거리가 있기는 합니다.

 
오지은씨의 팬들이 이 말을 들으면 몹시 웃겠지만, 사실 솔직히 말하면 그녀의 <華(화)>라는 곡을 처음 듣고선 B612의 <나만의 그대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그 곡이랑 음악적으로 엄청난 유사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하자면 분위기가 비슷했다는 겁니다. 일단 멜로디가 그런 풍의 히트 곡들처럼 대중적이면서도 감정호소에 있어서는 격렬함이 있었고요. 또 그녀의 노래 부르는 방식이 그랬습니다.
 
제가 받은 첫 인상이 영 잘못된 것만은 아닌 것이, 그녀의 바이오그래피를 살펴보면 어린 시절부터 파워풀한 락이나 메탈음악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아왔던 것 같습니다. 물론 오지은은 악기 편성과 반주 면에서는 전혀 ‘빡센’ 계열에 속하지 않습니다.


일례로 그녀는 앞서 소개됐던 허민처럼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출신입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 대회 수상자들은 주로 잔잔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싱어송라이터들(연주도 본인이 직접 해야 합니다)입니다. 하지만 오지은의 음악은 잔잔하지만은 않고요. 오히려 영혼의 폭풍을 담은 듯이 느껴집니다.
 
주로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가 곡의 반주를 담당하지만, 곡 구조에 약간 변화를 줘서 상상해보면 락음악의 몰아치듯 하는 스타일로 편곡해도 매우 잘 어울릴만한 곡이 많죠. 하지만 역시 1집처럼, 그녀의 짙은 여운을 가진 목소리는 (그와는 대조적으로) 한두 가지 악기가 물자국처럼 조금씩 들어오는 패턴에 최고 잘 어울립니다.
 
고정관념에 색다른 목소리가 흩뿌려질 때

▲1월 라이브클럽쌤   © club.cyworld.com/ohjieun
그녀의 음색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개성이 있습니다. 처음 오지은의 목소리를 접했을 때 예전에 들었던 락발라드가 떠올랐던 건, 그런 장르를 부르는 사람들에게 쉽게 따라붙는 수식어인 ‘폭발적인 가창력’ 때문이었죠.

 
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힘차게 높고 낮은 음을 넘나드는 가창력의 자극보다는 어딘지 기괴하고 압도하는 듯한 목소리 톤의 소름 돋는 표현력이 도드라집니다.(일면 데카당스하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 내지르는 보컬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녀의 노래법은 마음껏 소리를 뿜어내는 것 같으면서도 몰입감이 풍부합니다. 그녀의 데뷔앨범은 팬들에게 선주문을 받아 마련한 후원금으로 음반제작비를 충당한 작품인데요, [지은](2007)에 대해 그녀는 ‘캄캄한 밤에 등이 하나 켜져 있는 것과 같은 사운드로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녀의 목소리가 딱 그래요.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것, 강렬한 보컬리스트의 역량이라는 것은 성량보다는 그 강렬함을 자아내는 색채들의 조화에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어느 땐 일본의 개성 넘치는 여성 락 보컬-가령 시이나 링고와 오지은의 목소리는 어떤 면에서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어요-같았다가, 또 다른 땐 카리스마가 휘도는 무게감과 나른한 호흡소리가 순간순간 교차되는 그녀의 다면적인 보이스 칼라는 사람들을 잡아 끕니다. 이런 연유로 저는 좌중을 압도하는 보컬리스트의 가창력이라는 것을 다시, 새롭게 이미지화하게 되었죠.
 
오늘 이 두 뮤지션의 음악을 들으면서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 굳어있는 듯 보이는 세계에 다른 목소리를 덧붙이고자 할 때 모든 걸 뒤집어엎고 새로 시작하는 방법도 좋겠지만, 이미 존재하는 것들 속에서 다른 원을 그리는 것도 멋지다고.
 
익숙한 것 속에서 찾는 새로운 최초와 그것의 행위들은 어떤 장르, 스타일, 이미지가 하나일 필요도 없고, 하나일 수도 없다는 생각에 설득력을 보태는 것 같습니다. 한 단어에 다양한 뜻이 달라붙는 것처럼 말이죠.
 


*허민 팬페이지: cafe.naver.com/pupumin
*오지은 홈페이지: www.ji-eun.com *곡 들을 수 있는 곳: club.cyworld.com/ohjieun
 
<추천곡>
허민: "어처구니가 없네", "까만 하늘 너의 눈동자는", "I'm Lost"
오지은: "華(화)", "당신이 필요해요(Heart-Beat Mix)", "그냥 그런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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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08/07/10 [17:02] 수정 | 삭제
  • 노래하는 지은의 네이버 별관에 다녀왔습니다. ^^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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