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이 본 한국과 일본사회

[특별기획] 재일조선인 여성 림혜영 인터뷰

박희정 | 기사입력 2008/07/23 [16:24]

경계인이 본 한국과 일본사회

[특별기획] 재일조선인 여성 림혜영 인터뷰

박희정 | 입력 : 2008/07/23 [16:24]
림혜영씨의 칼럼은 “나는 경계인이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소수자인 재일조선인의 위치를 드러내는 말이다.
 
▲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재일조선인 림혜영씨
일본에서 태어나 '본명'으로 일본학교에 다니며 일본사람들 속에서 생활하면서 혜영씨는 ‘조선인’임을 부정하고 싶은 10대를 거쳤다. 조총련계 민족학교에서 민족교육을 받고 자란 이들과 달리, 쭉 일본학교만 다닌 재일조선인들은 정체성에 대한 불안을 더 크게 느낀다. ‘본명’을 쓰는 사람은 10%정도, 나머지는 일본사람 속에 섞여 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재미교포의 경우 미국식 이름을 써도 얼굴을 보면 ‘아시아’라는 정체성이 드러나지만,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이 일본이름을 쓰고 살면 정말 (조선인이라는 걸) 몰라요. 겉으로 보기에는 (일본인과) 차이가 없으니까. 하지만 안에는 늘 ‘언제 들킬까’ 하는 불안감이 있어서 움츠리고 살아가죠. 연애할 때도 그렇고. <GO>라는 영화에 나온 것처럼.”
 
십대시절 부모님의 의지로, 잠시 오게 되었던 첫 한국방문의 기억은 림혜영씨에게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한국이니까 당연히 한국사람들이 가득하잖아요. 그런데 조선말을 쓰는 조선인들이 당당하게 걷고 있는 게 저에겐 충격이었어요. ‘조선사람도 당당하게 살아도 되는구나!’하는 생각에.”
 
림혜영씨의 칼럼은 구체적인 경험의 언어로 재일조선인들이 겪는 차별의 문제를 전달해주었다. 1세들이 겪었던 것과 같은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차별은 어느 정도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차별은 그 양상을 달리했을 뿐이다. 드러내놓고 ‘조선사람 싫다’고 말하지 않아도 ‘다른 대접’은 존재했다.
 
“가장 친한 친구의 집에 가끔 놀러 갔는데 어머님이 다른 아이들에게는 ‘○○짱’ 이라고 친근하게 불렀지만 나에게는 꼬박꼬박 ‘림상’이라고 불렀어요. 그 차가운 태도 때문에 나중에 그 친구가 ‘혜영아, 진짜 우리 엄마 너무 미안하다’고 할 정도였지요.”
 
최근 한류열풍 때문에 배용준 같은 한국스타들의 이름을 자연스레 입에 올리는 일본사람들을 보면 그 생경한 풍경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발음 되잖아! 왜 20년 전에는 못했어!’라고 따지고 싶은 심정이 들죠. 지금은 병원에 전화 걸어도 ‘림혜영’이라는 이름을 바로 받아 적어요. 그런 변화가 동포에게 좋은 영향을 주면 좋겠지만 아직까지 잘 모르겠어요.”
 
외형적 변화 크지만, 실질적 차별 여전해
 
▲ 림혜영씨는 역사교육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지금은 일본사회에서도 식민지 지배의 결과로 일본땅에 정주하게 된 특별영주자에 대해 법률적, 정책적 측면에서 차별을 시정하려는 변화가 있다. 건강보험의 경우 1세들은 가입이 안돼서 아파도 병원에 못 가고 참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지만, 지금은 가입할 수 있다. 주택도시공단에서 제공하는 주택에 들어갈 수 있는 입주자격도 주어졌다. 특별영주자에게 취업차별을 해선 안 된다는 내용도 법률에 규정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일부’일 뿐이다. 특별영주자라고 해도 10년마다 갱신절차를 거쳐야 한다. 일본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경우, 돈을 내고 발급받아야 하는 재입국 허가서가 있어야 입국할 수 있다.
 
법적으로 ‘차별’을 금했다고 해도 ‘현실’의 벽은 여전하다. 현장의 고용주들이 법에 대한 지식이 없고 ‘불법체류’ 외국인과 같이 생각해 고용을 꺼리는 것이다. 그래서 소수의 ‘광고탑’을 제외하고는, 취업을 위해 일본이름을 사용하고 ‘조선인’임을 숨기고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림혜영씨의 칼럼에서도 이러한 취업차별의 현실이 다뤄졌다.
 
재일조선인의 존재를 상상하지 못하는 한국사회
 
일다에 칼럼 연재를 시작하면서 혜영씨는 ‘한국어’의 벽에 부딪혔다고 한다. 한국어를 매우 잘 하지만, 혜영씨의 모어(母語)는 일본어다. 한국말을 잘한다고 해도, ‘외국어’처럼 배운 언어로 생각을 표현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일본어로 쓰고 다시 스스로 한국어로 번역해서 글을 보내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여타의 ‘외국어를 배우는’ 과정들이 그렇듯이, 3세로서 한국어를 배우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재일동포가 한국말 하는 것을 열심히 노력한 결과로 보지 않고 ‘역시 피가 한국인이니까’ 라고 당연하게 여기는 시선은 상처로 다가온다고 했다.
 
“나도 3세이고 외국어처럼 배우는 건데, 나보다 한국말을 못하는 일본인은 칭찬받고, 내가 못 알아 듣거나 자연스런 표현을 구사하지 못하면 ‘혜영씨는 그 정도도 못하냐’는 식의 지적을 받을 때가 있어요. 일본사람들이 한국 관련 일을 하는 건 기특한 거고, 나는 당연한 거고. 그런 모습을 보면 미묘한 감정을 느끼지요.”
 
재일조선인에 대한 몰이해, 존재 자체를 상상하지 못하는 한국사람들은 분명히 “일본에서 왔다”고 하면 ‘림혜영’이라는 이름을 말했는데도 “일본 분이시죠?”라고 되물어 혜영씨를 당황하게 만든다. 그래서 어떨 때는 일부러 “림혜영이라는 일본인은 없어요!” 라고 까칠한 대답을 되돌려주기도 한다.
 
때로 한국인들은 일본사람에 대한 감정을 재일조선인에게 투영한다. ‘반쪽발이’라는 조롱 섞인 말. 한일 양국의 스포츠 대결부터 독도문제에 이르기까지 ‘너는 어느 쪽이냐’ 말할 것을 요구하는 한국사람들의 모습에서, 식민지 지배의 피해자로 지금도 그로 인한 차별 속에서 살고 있는 재일조선인에 대해 한국 사회가 얼마나 무지하고 책임을 방기해왔는지 드러난다.
 
‘재일동포도 열심히 해야지’ 말할 자격 있나
 
▲ 직장 사무실에서 림혜영씨 모습
림혜영씨는 시민사회에도 쓴 소리를 던졌다. 일본사회의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재일조선인의 문제를 쉽게 ‘개인의 노력’ 문제로 치환시켜 버리는 일부에 대한 비판이다.

 
“‘재일동포도 열심히 해야지’ 라는 배려 없는 말을 던질 자격은 한국에 없다고 봐요. 우리의 현장을 보고 함께 활동하는 활동가도 있고, 그런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맥락이 있으니 받아들일 수 있어요. 하지만 ‘이제 차별도 없어졌는데 왜 그래?’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식으로 함께 지내야 할 지 고민되죠. 어떤 해결모델을 제시해 줄 존재가 없다는 게 더 어려운 것 같아요.”
 
2세들은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자유롭게 한국에 올 수 없었다. 보고 싶어도 만나지 못했던 존재가 조국이었다. 3세들은 한국에 활발하게 오게 되었고, 한국인과 접촉면이 넓어졌다. 그러나 한국인과 만날 때 부딪히는 상황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해결책을 선배들의 경험에서 찾을 수 있는 모델이 별로 없다.
 
“2세들은 일본인이 되도록 키워졌고, 정치적인 상황 또한 좋지 않았어요. ‘재일’이라는 것 때문에 택하지 못한 상황에 대한 미련이 크게 보일 때가 많지요. 특히 한국의 정치적 상황이 좋아지면서 한국에 오게 된 재일조선인 2세 여성분들을 몇 분 만나게 되었는데, 우리(3세)에게 응원보다는 부러움을 던지세요. 꼬인 감정이 다가오죠. 하지만 누가 탓할 수 있겠어요. 당시에는 대학을 나왔어도 취업도 할 수 없었고. 만약 3세로 태어났다면 무엇이 되든 크게 했을 거다 싶은 분들인데.”
 
일본인 납치문제가 불거질 때, 독도문제 등으로 한일 양국의 민족주의적 대립의 기운이 커지면 가장 큰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재일조선인들이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도 재일조선인들이 느끼는 공포와 불안감에 주목하지 않는다. 최근 일본의 노골적인 우경화는 이를 더욱 우려하게 만든다.
 
“그래서 여기(한국의 시민단체)서 일하고 있는 것이죠. 천황제를 지지하는 자민당 정권이 장악하는 한, 일본에 제대로 된 민주주의는 없을 겁니다. 헌법9조 개악 움직임에 대한 문제제기도 국제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정작 일본 내에서는 관심이 없어요.”
 
앞서 조경희씨의 제언처럼 림혜영씨도 한국사람들이 “우리나라 역사를 제대로 살펴봤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영화 <화려한 휴가>도 좀더 진지하게 다뤄도 좋았을 텐데. 한국사람들 한국역사를 잘 몰라요.”

[이 기사는 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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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현재 2008/07/23 [21:00] 수정 | 삭제
  • 안믿는게 나아요 이명박같은 인물이 나오는건 어찌보면 당연 어리석은 민족이니까 교육과 가치관을 다시 심어줘야해요 자라나는 어린이부터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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