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도 쉽지 않은 인생이라면

연극인 강학

박희정 | 기사입력 2008/08/04 [13:56]

어떻게 살아도 쉽지 않은 인생이라면

연극인 강학

박희정 | 입력 : 2008/08/04 [13:56]
강. 학. 한번 들으면 쉽게 잊기 힘든 이름이다. 이름에 얽힌 에피소드가 많았겠다고 말을 건네니 아니나 다를까, ‘남자이름’이라고 오인 받아 수련회 같은 데서 남자숙소에 배정된 적도 있다며 웃는다.
 
“전부터 특이해서 제 이름을 좋아했는데 연극을 하고 나서는 더 좋아졌어요. 폼~나잖아요. 하하하.”
 
처음 만난 사람을 앞에 두고 카페소파 위에 천연덕스럽게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넉살을 부린다. 그 편안하고 넉넉한 분위기 앞에서 긴장된 내 마음은 무장해제되고 말았다. 낙천성으로 휘감긴 올곧은 심지, 연극인 강학(27)과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아야지
 
▲ 연극인 강학    © 일다
강학(27)씨는 올해부터 극단에 소속된 연극인이 되었다. 이전까지 공식적인 연극활동 경험은 없다. 어렸을 때 교회에서 연극을 하면 늘 빠지지 않았고 잘 한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직업으로 할 생각까지는 없었다. 대학에서 연극동아리 활동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부모님은 늘 강학씨가 연극을 한다고 할까 봐 걱정하셨다고 한다. 그 자신은 의아하다는 듯 말했지만, 잠시만 그와 대화를 나누면 부모님이 자식에게서 느꼈을 그 끼를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다. 대화의 내용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이어지는 표정과 몸짓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어렸을 때부터 연극적 표정연기를 잘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시를 읽을 때조차도 말과 행동으로 구절의 느낌을 표현해주고 싶어하는 게 있어요.”
 
대학교 3학년 때쯤 연극이 하고 싶어져서 잠시 이리저리 알아본 적이 있다. 오디션을 보기 위해 노래와 재즈댄스 등을 배우며 혼자서 준비했는데 한계를 느끼고 접어버렸다. 졸업 후 임용교사를 준비하다 기간제 국어교사가 되었다. “연극배우가 되는 건 안되나 보다” 싶었다.
 
극장무대에 서는 배우가 못 되어도 연극은 평생 가지고 가는 꿈이라 생각했다. 다른 일을 하면서도, 이를테면 선생님을 한다면 연극 반을 만들어 아이들과 함께 연극활동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나중에는 학문적으로 연극을 공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1년 간의) 기간제 교사 계약 만료 후 원서를 넣은 20여 군데에서 모조리 떨어졌어요. 사회가 나를 안 받아주는구나 하는 절망도 있었고, 내가 있을 곳이 여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지요.”
 
연극에 대한 생각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갈등과 고민의 나날이 이어졌다.
 
“내가 꾸준히 끈기 있게 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어떻게 살아도 사는 게 쉬운 게 아니구나. 그렇다면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아야지 라고 마음 먹게 되었죠.”
 
어렵게 시작한 극단 생활
 
▲ 늘 연극을 하고 싶어했던 강학씨
혼자 오디션 준비를 시작했다. 겨울에 강좌를 들으면서 지금 소속된 극단의 대표를 만났고 “지금 연극을 시작한다면 어떤 방법을 취하는 게 좋을지” 조언을 구했다.

 
두 가지를 말씀해주셨다고 한다. 하나는 개인적으로 실력을 키워 오디션을 보는 방법, 다른 하나는 극단에 들어가 여러 가지를 배우면서 연극인이 되어가는 방법.
 
“1안은 이미 해봤었고, 나에게는 극단에 들어가는 방법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극단에 들어가 맞이한 첫 번째 작품 <오빠가 돌아왔다>(극단 신명 나게)에서 강학씨는 조연출을 맡았다. 공연 중 조명 오퍼레이터 역할도 겸하고 있다.
 
“처음부터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나의 캐릭터와 맞는 작품이 언제나 있는 것도 아니고. 배우로서 오르지 않을 때도 단원들은 여러 가지 일을 합니다. 게시물을 만들기도 하고 연출 부에서 일을 하기도 해요.”
 
6월부터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되자 매일 10시간이 넘는 연습이 이어졌다. 신림동에서 수유까지 지하철로 출퇴근했다. 에어컨도 없는 연습실에서 창문도 못 열고 찜통 더위 속에 연습을 하다 결국 더위를 먹고 쓰러졌다.
 
“연극 판이 거칠고, 기도 세고, 강하다는 생각이 있잖아요. ‘저런 약체…’ 이렇게 볼까 봐 걱정했었죠. 나 혼자 자주 지치고, 게다가 하루는 아파서 못 나오고…. 근성 있게 보이지 않을까 봐 걱정되었죠. 제가 술도 약하거든요.”
 
NGO에서 일하는 친한 언니의 조언으로, 이런 고민은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운동하는 사람들도 세고, 술도 잘해야 할 것처럼 생각하는데 중요한 건 진짜로 열정이 있는가라는 것이라고요.” ‘그런지 안 그런지는 나중에 드러날 거니 걱정하거나 스트레스 받지 말라’는 말은 큰 힘이 되어주었다.
 
죽을 것 같은 밤이 지나고 나면
 
▲ <오빠가 돌아왔다> 극장 앞에서   © 일다
대한민국에서 연극은 대표적으로 ‘배고픈’ 장르 중 하나다. 강학씨도 극단에서 월급을 받고 있지만 액수는 ‘비밀’이다.

 
“잘 안 쓰고 살면 뭐…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죠. 생활에 맞추면 부족하지만, 돈에 맞추면 생활이 되요.”
 
경제적인 곤란에 대해 묻는 질문이 무색해질 만큼 강학씨는 그 특유의 즐거운 표정으로 “다 살아져요. 사람 다 살더라”며 손을 내젓는다. “걱정에 빠질 때도 있지만 부정적으로 생각해서 거기에 눌려버리는 건 싫다”는 강학씨의 낙천성은 타고난 기질이기도 하지만, 불면의 밤을 견디고 얻어낸 성찰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스물 다섯, 스물 여섯? 졸업 즈음에 한참 암울할 때는 사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결혼하면 결혼 한대로, 안 하면 안 한대로, 30대는 30대대로, 40대는 40대대로, 미래를 생각하면 할수록 넘어야 할 산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죽을 것 같은 밤이 있는데 ‘정말 죽으면 좋겠다’ 싶고, ‘절대 잠들 수 없을 것 같은 밤’이요. 그런데 다음 날 일어나보면 어느 새 나는 자고 일어나 있고. 어제 감정은 오늘과는 상관없을 때가 있잖아요. 그래도 살아지는 거구나. 사람 쉽게 죽지 않는구나 라고 깨달았죠.”
 
연극 판에 들어가기 전에는 오히려 걱정과 두려움이 많고 못할 것 같아 망설였지만, 막상 들어가면 ‘살아지는 게 있다’고 한다. “이미 그 안에서 사는 사람이 있고, 배우는 게 있고,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강학씨는 앞으로 다가올 어려움을 견디게 해줄 힘도 “사람을 잘 사귀어 두는 것”에서 해답을 찾는다고 한다. 서로 격려해서 같이 함께 갈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웃음 속에 슬픔이, 슬픔 속에 웃음이
 
▲ 처음 시작한 극단생활이 힘들어도 재밌다고 한다.   © 일다
“저는 배우로서 아예 딴 사람이 되려는 것보다, 배우가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매력이 캐릭터의 매력과 맞물려 드러날 수 있을 때 멋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제 성품상 비련의 여주인공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하하. 제가 좋아하는 건 웃다가 슬프고, 슬프다가 웃긴, 일상적이고 소소한 것들 속에서 삶의 진실을 딱 잡아내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그런 연극을 만들고 그런 연기를 하고 싶어요.”

 
지금 극단을 택하게 된 것도 ‘사회의 주변 소외된 이웃의 이야기를 담되, 신명 나게 담는다’는 관점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강학씨는 극단 활동을 “연극이라는 영역을 넓고 깊게 배우는 기회인 것 같다”고 말한다. 연출 팀으로서 가까이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지켜보는 것이 배우로서의 연기를 공부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장기적으로 연출을 배우고 싶은 마음도 있다.
 
“지금은 연극이 재미있어요. 대학로에 매일 나온다는 것도 재미있고, 공연이... 조명실에서 매일매일 다른 호흡을 느끼거든요. 관객의 반응이 재미있을 때 조명을 맞추는 일도 더 재미있어요. 매일 조금씩 다른 재미를 느끼죠.”
 
일상적이고 소소한 것들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람답게 강학씨는 스스로의 일상에서도 작은 아름다움을 포착한다. 그 시선이 강학씨를 성장시켜 나갈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아직은) 처음이라서 재미있는 것 같아요. 정말 피눈물을 쏟을 때가 올 건데 그때 잘 버텨야지…. 잘 버티고 싶어요. 어렵사리 내가 원해서 왔는데 잘 버텨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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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수영 2009/02/26 [17:35] 수정 | 삭제
  • 어릴 적 부터 넌 소질이 있었는데,,, 덕이도 물론 잘했지만 너도 잘했지
    상상도 못하고 있었는데 연극에 발을 들이다니 대단한 용기네
    난 성악하고 싶은것 접고 계속 초등학교선생이다,. 학아 화이팅!
  • 베이스걸 2008/08/30 [12:29] 수정 | 삭제
  • 저도 사범대나오긴했는데, 학원강사하다가, 지금은 갈팡질팡중, 저는 음악이하고 싶어서요, 베이스기타를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교회에서 처음 접하고 잘 하지도 못했는데 지금은 찬양팀에서 베이스 반주를 하면서 다른 생활도 겸하고 있죠-저와 비슷한 사람이면서 이미 하고 싶은 일을 결정하고 살아가시는 모습이 도전이 되네요,^ㅡ^
  • 알탈이 2008/08/18 [21:16] 수정 | 삭제
  • 학이 비상하며 날 날들을 기대하면서..ㅎㅎ
  • 스나 2008/08/14 [11:39] 수정 | 삭제
  • 딱 죽으면 좋겠다 싶은 밤,
    잠이 안오는 밤.
    그런 밤을 지나온 웃음이
    그래서인지 더 빛나는 거 같아요
    그대 연극판에서 신난 모습이 나도 참 좋소
    시작의 그 맘으로 언제나 힘내시오 ^-^
  • 시은 2008/08/12 [14:54] 수정 | 삭제
  • 하고 싶은 일 하며 사는 사람이 드물더라구요. 그런 점에서 언니는 복받은 사람이어요.
    언니가 힘있게 살아가는 모습이 제게도 많은 도전이 된답니다. 나중에 또 이야기 나누어요.^^
  • CarpeDiem 2008/08/12 [12:11] 수정 | 삭제
  • 드디어 연극인 강학을 보는구나.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거, 그걸 깨닫지 못하고 이제 그만 살고 싶지만 죽지 못해 사는 누군가, 어떻게든 그 누군가를 살아지게 만드는 이야기를 풀어 주길 바라. 화이또.
  • 디카프리오 2008/08/12 [10:37] 수정 | 삭제
  • 파이팅이야
    힘내삼~
  • 나이스천 2008/08/11 [19:18] 수정 | 삭제
  • 한창 네가 연극을 할지 말지 고민하며 무기력할 때
    "너 이러다 죽겠다. 그냥 연극 해라"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 변화무쌍한 연극판에 뛰어들고 그 속에서 재미를 느끼는
    네 모습보니 살아있는 것 같아 참 좋아.
    학아, 언젠가 서른 넘어 너의 연기의 가장 절정을 맛보고 싶다고 했지?
    그 때쯤이면 지금의 평범하고 여린 모습 속에
    강단있고 옹골찬 배우가 되어있을 거야.
    난 참 기대된다^^
  • 맞아요 2008/08/09 [13:08] 수정 | 삭제
  • 살아간다는 것보다..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것. 공감이가요.. 끝없이 힘듦이 밀려들지만. 어떻게든 살아지겠죠...^^;
  • 연극 2008/08/09 [00:32] 수정 | 삭제
  • 강학씨 보고 나니 힘이 나고 제 마음도 튼튼해지는 것 같아요. 건강한 연극인으로 언젠가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 축하를 2008/08/08 [12:58] 수정 | 삭제
  • 인생은 활동의 연속이라지요.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고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한 것, 그 자체로 축하드리고 싶어요~
  • baR 2008/08/05 [10:06] 수정 | 삭제
  • 술 못하는 연극인이라... 하핫. 강학님 이름만큼이나 마음에 드는 면모네요. ^^;

    경험상으로 보았을 때,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인생에서 보상을 바라면 안되는 것 같아요. 이를 테면, 가난하게 산 것에 대해 다른 반대 급부를 바라면 안 된다는...

    강학님의 몇년 후 모습이 기대가 되네요.. 즐거움도 힘겨움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계신 것 같아서 더욱..
    배움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을 만날 때 기분이 좋아요. 앞으로 많이 성장할 모습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따뜻한 느낌을 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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