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 성내동의 반지하 방에 거주하는 김지영(가명, 32)씨는 햇빛이 들지 않아 집에 있을 때 하루 종일 전등을 켜놓고 생활한다. 전기료가 많이 나오는 것도 문제지만, 습기 때문에 빨래가 잘 마르지 않고 벽이나 장판 밑에 물기와 곰팡이가 생겨 불편이 크다.
환기가 잘 안 된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길 쪽으로 나 있는 창의 아랫면이 길바닥과 일치해서, 창문을 열어놓으면 먼지와 배기가스가 그대로 들어오는 구조다. 실내공기가 안 좋은 탓인지, 지하 방에 이사온 이후로 김지영씨는 비염 증상이 심해졌다. 게다가 밖에서 집안이 쉽게 들여다보이기 때문에, 창을 마음 놓고 열기도 어렵다고 한다.
최저주거기준은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주거조건을 말한다. 국내에선 2000년이 되어서야 건설교통부 고시로 인해 최초로 등장했다. 이후 2003년 주택법 개정으로 법적 근거를 갖추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의 최저주거기준은 설비와 면적 등에 대해선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고 있지만 채광, 환기와 같은 질적인 면에 대해선 세부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주거문제 전문가들은 주거의 질적인 측면을 보장하기 위해 최저주거기준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채광, 환기 등 질적 측면의 최저주거기준 보완해야 21일, 국가인권위원회가 개최한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 인권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도 이 문제가 다뤄졌다. 홍인옥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최저주거기준 중 총 주거면적은 1인 가구 12㎡, 4인 가구 37㎡로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홍인옥씨는 이 면적기준이 1976년에 일본에서 설정한 수준보다도 “더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인체공학과 생활양식 등을 고려한 최저주거기준”을 현실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한국은 환기, 채광 등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지하 및 반지하층 거주 가구가 59만 가구, 약 15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홍 연구원은 이들에 대해 “아직까지 최소한의 환경기준조차 설정하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한편, 남철관 ‘나눔과미래’ 사무국장은 “시설, 침실, 면적 기준을 근거로 추산한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 수가 지난 10년간 비교적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는 추세지만, 이것이 “착시현상”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재건축과 재개발이 많이 이루어져 노후한 주택이 감소한 것을 사실이지만, 여전히 주거의 질적 측면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주거문제 관련 연구자들과 전문가들은 한국정부가 최저주거조건의 “질적 기준”을 하루빨리 보완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으고 있다. 남철관 사무국장은 “국제적인 기준과 선진국의 예를 참고하면” 질적 기준을 만드는 일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덧붙이면서, “무엇보다 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이 기사는 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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