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하는 집에서 생산하는 집으로

[기획연재] 착한 에너지를 만드는 사람 최복인, 허윤석씨

조이여울 | 기사입력 2008/09/16 [11:19]

소비하는 집에서 생산하는 집으로

[기획연재] 착한 에너지를 만드는 사람 최복인, 허윤석씨

조이여울 | 입력 : 2008/09/16 [11:19]
▲  최복인, 허윤석 부부와 성학, 란, 경이 살고 있는 '재활용 집'  © 일다
제주 조천읍 선흘리, 에너지 자립을 위해 다양한 방식의 실험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가족이 있다. 찾아가보았더니 여러 작물을 심어놓은 밭 사이에 허름한 집 한 채가 놓여있고 그 앞에는 창고가 있었다. 제주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창고건물이지만, 그 안에서는 창조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주위엔 합판과 기자재들이 널려있어서, 공사를 끝내지 못한 현장 같다는 느낌이 드는 이곳. 바로 최복인(38)씨, 허윤석(44)씨 부부와 세 아이들 성학, 란, 경의 삶의 터전이다.
 
먹고 없애기만 할 게 아니라, 만들어내며 살아보자
 
다섯 사람은 2월, 아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집”이라고 부르는 원래 살던 집을 떠나 이곳으로 이사했다. 농사 일을 하며 ‘재활용 집’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 두 사람 다 오래 전부터 꿈꿔오던 일이다.
 
▲ 최복인씨는 생산적인 삶을 살고 싶어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 일다
“집이라는 공간이 소비만 하고 생산을 안 되는 공간이었어요. 생산적인 집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아이들도, 나도,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지속가능 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이에요. 그래서 내린 결단이 ‘집과 밭을 바꾸자’는 것이었어요. 밭은 생산의 공간이 되겠구나 싶었거든요. 먹고 없애는 것만이 아니라, 무언가 만들어내며 살아보자 했죠.”

 
최복인씨는 생산하는 공간에서 살고 싶어서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작년까지 집에서 밭 사이를 오가며 농사를 지었지만, 올해부턴 본격적으로 귀농생활을 시작했다.
 
전에 살던 집을 전세 내어주고, 큰 아이 학교 보낼 돈을 보태어 땅을 샀다고 한다. 세 자녀들은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지내고 있다. ‘필요하면 스스로 공부할 것’이라며, 아이들도 부모도 걱정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약도 치지 않고 기계도 사용하지 않은 채 손으로만 가꾸는 농작물이다. “아직 초보”라서 “주식을 생산하기는 어렵고, 판매할 만큼의 기량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우리 먹을 것만 이것저것 재배해요. 농사를 지으면서 성숙해지는 느낌이에요. 인간의 힘만으론 안 되는구나, 자기 잘난 줄 알고 살지만 다 주변 자연환경이 받쳐주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죠.”
 
당분간은 수입이 필요하기 때문에 남편 허윤석씨가 건축 일에 종사하고 있지만, 일을 줄여나가려고 한다. 이들 가족은 돈을 많이 벌어서 소비를 충족하는 대신, 소비를 최대한 줄여서 돈을 적게 벌고도 살아갈 수 있는 방식을 택했다. 그것은 “자연에 맞게 살아가는 방식”이자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삶의 방식”이다.
 
‘재활용 집’에서 자연에너지 만들기 실험을 하다
 
▲  마루 아래 파이프를 연결해 땅의 바람이 올라오도록 했다.  © 일다
허윤석씨가 짬이 날 때마다 만들어온 ‘재활용 집’은 말 그대로 남이 버린 자재들을 주워와서 재활용한 것이다. 과수원 폐원할 때 나무들, 아파트확장공사 할 때 버린 문들. 여기 저기 널려 있는 판넬들까지…. 집 주위에는 아직도 이런 쓰레기들이 많지만, 다 재활용 될 수 있는 물건들이다.

 
다섯 사람이 기거하는 ‘재활용 집’은 겉보기에 어딘지 엉성하고 볼품 없어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다르다. 여름에도 시원한 공기가 통해서 기분이 좋아지는 데다가, 직접 하나하나 나무판자를 곱게 사포질 한 마루바닥과 천정을 보며 그 아름다움에 감탄을 하게 된다.
 
특히, 에너지 줄이는 방식으로 살아보자 하는 허윤석씨의 실험이 눈에 띈다. 마룻바닥을 뜯어보면 파이프가 있는데, 땅의 바람이 올라오도록 만들었다. 천정도 역시 마찬가지다. 지하의 신선한 공기가 집안 전체에 통하니까 여름에 선풍기가 필요 없을 정도다.
 
다가올 겨울을 대비해 벽을 은박과 스티로폼을 이용해 3중으로 보온처리 했다. 허씨의 표현에 따르면 “각자 36.5도의 보일러를 가지고 있으니, 다른 난방은 안 해도 된다”고 한다. 겨울은 춥게, 여름은 덥게 살아야 건강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 집에서 가장 재미있는 건, 딸들이 쓰는 방과 아들이 쓰는 방이 지하통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큰 딸 란(13)이가 제안했어요. 거실에 손님이 오면, 이쪽 방과 저쪽 방이 통하는 땅굴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러자고 했어요.” 이렇게 해서 관을 이어, 거실을 가로지르는 땅굴이 생겨났다. 아이들에겐 동화 같은 집이 아닐 수 없다.
 
“땅굴만 팔 게 아니라, 기왕이면 밑의 차가운 공기를 위로 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초여름에 뚜껑을 보니까 물방울이 맺혀있더라고요. 결로현상이죠. 밖의 공기가 따뜻해서 관 밑에 맺힌 겁니다. 하지만 미미한 정도라서 우리는 잘 못 느끼는 수준이에요. 이 정도면 절반의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실패한 시도도 있었다. 지열을 이용해보려고 포크레인을 이용해 땅을 팠는데, 결국 30만원만 날린 것 같다고 한다. “열 교환이 이뤄지려면 면적이 더 넓어야 하는 것 같아요. 2m 정도 파서 지하공간의 공기를 빨아들이게 하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요, 3.5m까지 팠는데 미미한 정도에요. 여긴 암반지대라서 파기 어렵고, 안 되는 것 같아요.”
 
이 일로 인해 아내로부터 ‘하려면 제대로 하라’는 핀잔도 들었다는데, 허윤석씨는 “잔소리는 저의 영양분이에요” 라고 말하며 웃는다.
 
바람과 태양열 이용해 ‘전기 끊고 살아갈 것’
 
▲  지열을 이용해보고자 한 시도는, 암반지대라서 실패했다.  © 일다
‘재활용 집’은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전기를 아예 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 자립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과 더불어, 바람과 태양열 같은 자연에너지를 이용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자동차 제네레이터로 바람개비를 돌려 풍력발전을 하려고 지금 기어를 찾는 중이에요. 옛날자전거는 바퀴를 굴리면 앞에 불이 켜졌잖아요? 그 원리와 똑같습니다.”
허윤석씨는 이렇게 간단한 방식으로 풍력을 이용해 자체적으로 전기를 만들고, 태양열을 통해 온수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금은 온수기를 들여놓았지만, 앞으론 태양열을 사용하면 될 것 같아요. 갈색맥주병이 태양을 잘 흡수하니까, 몇 개씩 묶고 호스로 연결을 해서 벽에 두게 되면 태양 복사열에 의해 병 속의 물이 덥혀집니다. 사람들이 물을 너무 쉽게 막 써대서 그렇지, 아껴 쓰면 세면하고 샤워하는 정도로는 될 것 같아요.”
 
병에 비닐을 치면 겨울에도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태양열이 들어오기만 하고 나가지는 못하는 비닐하우스와 같은 원리다. 페트병을 모아서 호스를 연결하는데 드는 재료비는 1만원이 채 안 된다. 허씨는 사용을 해보고 효과가 있으면 주위에 소박하게 사는 분들에게, 자체 제작한 온수기를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도시의 소비적인 삶 안타까워
 
▲  태양열조리기에 계란을 삶고 있는 최복인, 허성학 모자   © 일다
한편, “태양열조리기에 계란을 삶아먹자”고 제안하며 손님 접대를 톡톡히 한 허성학(15)씨는 ‘재활용 집’을 만드는 데에도 한 몫을 했다고 한다. 자신의 학비로 땅을 사고, 학교에 다니지 않은 채 농가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그는 “만족한다”고 말했다.

 
“내 시간을 내가 스스로 조종하게 되니까,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책도 많이 읽게 되고요. 집에서 특별한 교육을 받는 건 아니지만, 학교에 다니는 것보다는 시간 여유가 있으니 뭐든 맘만 먹으면 할 수 있어요.”
 
사람도 자연이고 동물이라는 점을 잊지 않고, 억지로 공부하거나 억지로 일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살아가고자 하는 다섯 식구들은 하루하루를 소박하게 그리고 친밀하게 보내고 있었다.
 
최복인, 허윤석씨 부부는 값비싼 웰빙 상품이나 여행상품들이 나오는 걸 보면 “다른 사람들도 이런 삶을 꿈꾸는 것 같다”며, “너무 문명세계에 있으니 반대급부로 자연을 갈구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부는 ‘사람들이 품위유지비로 많은 낭비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다양한 사고를 해야 할 아이들을 가만 놔두지 않고 뺑뺑이를 돌려 정신을 빼놓고 있는 건 아닌지, 도시의 삶이 사람들을 막연히 불안한 상태로 몰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물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좀더 다양하게 살아가면 좋겠다”라는 말로, 도시의 소비적인 삶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에너지정치센터(blog.naver.com/good_energy)와 일다는 ‘기후변화와 에너지 전환’에 관련한 기사를 공동으로 기획해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 기획취재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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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변인 2008/09/27 [16:43] 수정 | 삭제
  • 교육도 공교육보다 더 잘 시키고 있고 아이들이 직접 ngo활동도 하고 있어요
    아주 산골짜기로 생각하시나 본데 전혀 그렇지는 않아요
    저도 하고 싶지만 여건상 못하면서 아주 부러워하는 가족인걸요
    기사에 보여지는 모습만으로 판단하지 마시길....
    삼형제 모두 사회에 잘 적응할만큼 훌륭하게 키우고 있답니다^^*
    확대해석하지 마시고 노파심도 거두세요~
  • 허윤석 2008/09/25 [18:32] 수정 | 삭제
  • 다른 부모들 처럼 저희도 교육의 문제는 크게 다가옵니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지 않은지 3년째가 됩니다, 처음 1년 동안은 많이 힘들어 하죠,

    전에는 하루 24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그대로 따라하기만 하면 큰 문제가 없지요,
    근데 24시간을 스스로 관리하기가 쉽지 않은지 힘들어 하다가 이제는 자신의 하루를 자유롭게 살고 있습니다.
    물론 나이가 들고 스스로 자신의 세상을 향해 날개짓할 날이 오면 떠나겠지요,
    스스로 하루 하루를 책임지고 사는 우리는 날아갈 때도 혼자 날아야한다는 것을 알고있겠지요, 우리 부모들이 너무 아이들을 걱정해서 앞서나가고 있는것은아닐까 싶습니다.
    중요한것은 가족 구성원 모두가 오늘하루가 나의 것이고 행복한 하루였다고 느껴지면
    미래가 두렵지는 않을겁니다. 아들이 15살,,,,학교울타리를 벗어나, 3년째 사회속에서의 삶은 오늘이라도 힘찬 날개짓을 하며 스스로 먹이감을 찾는 매같은 느낌이죠,
    세상을 기쁘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마음 -가끔 저의 일을 같이 다니는데 힘든일도 즐겁게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힙이 아닐까 싶습니다. 딸들도 마찬가지고요,,,,,,아이들을 믿으세요.
  • 김영해 2008/09/25 [02:58] 수정 | 삭제
  • 내가 좋아 그리 산다지만 아이가 세상에 나가고자 한다면 그 아이에게 어떻게 준비시켜야할까.. 작금의 교육도 문제지만 아이들 모두 숲속에 묻어 두지는 않을진데 ...
  • 이석수 2008/09/22 [18:31] 수정 | 삭제
  • 방어할 능력은 일단 없다고 보아야 겠지요
    하지만 보험도 들고 연금도 들고 일정 적금도 붙고 하여 유사시 대비할수 있는 약간의 준비는 하고 있다고 보는데요.
    저도 님처럼 아무 걱정없이 지리산 골짜기에서 소리없이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럴려면 내 소유의 땅과 일정 힘을 소유하여야 합니다.
    세상에는 아무 이유없이 자기배만 채우기위해 남의것을 뺏는이가 넘 많습니다.

    님도 넘 어렵게 읽지 마세여
    기냥 저렇게 생각하는 놈도 있구나 하고 읽기 바랍니다.
    여튼 고맙습니다.
  • 김동주 2008/09/22 [13:39] 수정 | 삭제
  • 도대체 뭘 물어보고 싶은신지..미안한줄 알면서 물어보시는 것 같군요. 읽은이로 하여금 별로 기분을 안 좋게 만드는 댓글이군요. 다음과 같이 당신의 질문을 역으로 당신에게 해보는 게 더 좋을 듯 합니다. 이석수님, 당신이 살아가면서 병이 나거나, 누군가 당신의 것을 뺏는다고 하면 당신은 방어할 능력이 있습니까?
  • 리타 2008/09/21 [00:18] 수정 | 삭제
  •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 것일까요. 무엇을 위해 아이들까지 무작정 달려가게 하고 있는 것일까요.

    저도 귀농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도시에서 일해야 하지만, 차근차근 준비해가려고 해요.

    <위에 글 읽고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 건강은 잃고 고치는 것보다 예방하는 것이 더 중요하겠죠. 무농약 농사 작물을 먹고 태양과 바람의 에너지로 살아간다면,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조건인 것 같은 걸요.>
  • 이석수 2008/09/19 [13:37] 수정 | 삭제
  • 정말 대단하십니다.
    최복인, 허윤석씨 이런질문은 어떨까요?

    당신들이 살아가는데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여
    아이들이나 당신들이 병이나거나 사고가 난다면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또한 당신들은 살아갈 방도는 가지고 있지만 이세상에 젤 무서운게 사람입니다.
    누군가 당신이 가진것을 뺏는다고 하면 당신은 방어할 능력이 있습니까?
    미안합니다.
  • 보영 2008/09/19 [11:08] 수정 | 삭제
  • 원리를 이해할수 있게 사진이 좀 풍부하면 좋겠어요. 천장도 보여주고...
  • 쑥쑥이 2008/09/17 [10:49] 수정 | 삭제
  • 요즘은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합니다.
    아이들에게 가르쳐주어야 할 것은 따로 있는데.......하고 말이지요.
  • 고재봉 2008/09/16 [17:53] 수정 | 삭제
  • 누구나 꿈을 꾸는 삶을 살아가는 가족이네요.
    그런 꿈을 직접 실험하는 겁없는 가족이지요.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맑고 밝게 자라는 아이들은
    이 시대를 이끌어갈 새싹들이네요.
    소비하는 집에서 생산하는 집이라.....
    늘 자연처럼 행복한 우르르가족이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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