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엔 합판과 기자재들이 널려있어서, 공사를 끝내지 못한 현장 같다는 느낌이 드는 이곳. 바로 최복인(38)씨, 허윤석(44)씨 부부와 세 아이들 성학, 란, 경의 삶의 터전이다. 먹고 없애기만 할 게 아니라, 만들어내며 살아보자 다섯 사람은 2월, 아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집”이라고 부르는 원래 살던 집을 떠나 이곳으로 이사했다. 농사 일을 하며 ‘재활용 집’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 두 사람 다 오래 전부터 꿈꿔오던 일이다.
최복인씨는 생산하는 공간에서 살고 싶어서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작년까지 집에서 밭 사이를 오가며 농사를 지었지만, 올해부턴 본격적으로 귀농생활을 시작했다. 전에 살던 집을 전세 내어주고, 큰 아이 학교 보낼 돈을 보태어 땅을 샀다고 한다. 세 자녀들은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지내고 있다. ‘필요하면 스스로 공부할 것’이라며, 아이들도 부모도 걱정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약도 치지 않고 기계도 사용하지 않은 채 손으로만 가꾸는 농작물이다. “아직 초보”라서 “주식을 생산하기는 어렵고, 판매할 만큼의 기량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우리 먹을 것만 이것저것 재배해요. 농사를 지으면서 성숙해지는 느낌이에요. 인간의 힘만으론 안 되는구나, 자기 잘난 줄 알고 살지만 다 주변 자연환경이 받쳐주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죠.” 당분간은 수입이 필요하기 때문에 남편 허윤석씨가 건축 일에 종사하고 있지만, 일을 줄여나가려고 한다. 이들 가족은 돈을 많이 벌어서 소비를 충족하는 대신, 소비를 최대한 줄여서 돈을 적게 벌고도 살아갈 수 있는 방식을 택했다. 그것은 “자연에 맞게 살아가는 방식”이자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삶의 방식”이다. ‘재활용 집’에서 자연에너지 만들기 실험을 하다
다섯 사람이 기거하는 ‘재활용 집’은 겉보기에 어딘지 엉성하고 볼품 없어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다르다. 여름에도 시원한 공기가 통해서 기분이 좋아지는 데다가, 직접 하나하나 나무판자를 곱게 사포질 한 마루바닥과 천정을 보며 그 아름다움에 감탄을 하게 된다. 특히, 에너지 줄이는 방식으로 살아보자 하는 허윤석씨의 실험이 눈에 띈다. 마룻바닥을 뜯어보면 파이프가 있는데, 땅의 바람이 올라오도록 만들었다. 천정도 역시 마찬가지다. 지하의 신선한 공기가 집안 전체에 통하니까 여름에 선풍기가 필요 없을 정도다. 다가올 겨울을 대비해 벽을 은박과 스티로폼을 이용해 3중으로 보온처리 했다. 허씨의 표현에 따르면 “각자 36.5도의 보일러를 가지고 있으니, 다른 난방은 안 해도 된다”고 한다. 겨울은 춥게, 여름은 덥게 살아야 건강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 집에서 가장 재미있는 건, 딸들이 쓰는 방과 아들이 쓰는 방이 지하통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큰 딸 란(13)이가 제안했어요. 거실에 손님이 오면, 이쪽 방과 저쪽 방이 통하는 땅굴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러자고 했어요.” 이렇게 해서 관을 이어, 거실을 가로지르는 땅굴이 생겨났다. 아이들에겐 동화 같은 집이 아닐 수 없다. “땅굴만 팔 게 아니라, 기왕이면 밑의 차가운 공기를 위로 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초여름에 뚜껑을 보니까 물방울이 맺혀있더라고요. 결로현상이죠. 밖의 공기가 따뜻해서 관 밑에 맺힌 겁니다. 하지만 미미한 정도라서 우리는 잘 못 느끼는 수준이에요. 이 정도면 절반의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실패한 시도도 있었다. 지열을 이용해보려고 포크레인을 이용해 땅을 팠는데, 결국 30만원만 날린 것 같다고 한다. “열 교환이 이뤄지려면 면적이 더 넓어야 하는 것 같아요. 2m 정도 파서 지하공간의 공기를 빨아들이게 하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요, 3.5m까지 팠는데 미미한 정도에요. 여긴 암반지대라서 파기 어렵고, 안 되는 것 같아요.” 이 일로 인해 아내로부터 ‘하려면 제대로 하라’는 핀잔도 들었다는데, 허윤석씨는 “잔소리는 저의 영양분이에요” 라고 말하며 웃는다. 바람과 태양열 이용해 ‘전기 끊고 살아갈 것’
“자동차 제네레이터로 바람개비를 돌려 풍력발전을 하려고 지금 기어를 찾는 중이에요. 옛날자전거는 바퀴를 굴리면 앞에 불이 켜졌잖아요? 그 원리와 똑같습니다.” 허윤석씨는 이렇게 간단한 방식으로 풍력을 이용해 자체적으로 전기를 만들고, 태양열을 통해 온수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금은 온수기를 들여놓았지만, 앞으론 태양열을 사용하면 될 것 같아요. 갈색맥주병이 태양을 잘 흡수하니까, 몇 개씩 묶고 호스로 연결을 해서 벽에 두게 되면 태양 복사열에 의해 병 속의 물이 덥혀집니다. 사람들이 물을 너무 쉽게 막 써대서 그렇지, 아껴 쓰면 세면하고 샤워하는 정도로는 될 것 같아요.” 병에 비닐을 치면 겨울에도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태양열이 들어오기만 하고 나가지는 못하는 비닐하우스와 같은 원리다. 페트병을 모아서 호스를 연결하는데 드는 재료비는 1만원이 채 안 된다. 허씨는 사용을 해보고 효과가 있으면 주위에 소박하게 사는 분들에게, 자체 제작한 온수기를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도시의 소비적인 삶 안타까워
“내 시간을 내가 스스로 조종하게 되니까,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책도 많이 읽게 되고요. 집에서 특별한 교육을 받는 건 아니지만, 학교에 다니는 것보다는 시간 여유가 있으니 뭐든 맘만 먹으면 할 수 있어요.” 사람도 자연이고 동물이라는 점을 잊지 않고, 억지로 공부하거나 억지로 일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살아가고자 하는 다섯 식구들은 하루하루를 소박하게 그리고 친밀하게 보내고 있었다. 최복인, 허윤석씨 부부는 값비싼 웰빙 상품이나 여행상품들이 나오는 걸 보면 “다른 사람들도 이런 삶을 꿈꾸는 것 같다”며, “너무 문명세계에 있으니 반대급부로 자연을 갈구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부는 ‘사람들이 품위유지비로 많은 낭비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다양한 사고를 해야 할 아이들을 가만 놔두지 않고 뺑뺑이를 돌려 정신을 빼놓고 있는 건 아닌지, 도시의 삶이 사람들을 막연히 불안한 상태로 몰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물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좀더 다양하게 살아가면 좋겠다”라는 말로, 도시의 소비적인 삶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에너지정치센터(blog.naver.com/good_energy)와 일다는 ‘기후변화와 에너지 전환’에 관련한 기사를 공동으로 기획해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 기획취재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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