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우울증 앓는 비율이 높은 이유

여성 우울의 생물학적 측면: 호르몬 변화

최현정 | 기사입력 2008/10/03 [10:33]

여성이 우울증 앓는 비율이 높은 이유

여성 우울의 생물학적 측면: 호르몬 변화

최현정 | 입력 : 2008/10/03 [10:33]
살면서 ‘우울하다’고 느낀 적이 있지요? 바로 지금 마음이 슬프고 침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고 불행하게만 느껴질 때, 그리고 그런 상태가 영 지속될 것만 같은 낙담에 지배 받을 때가 가끔씩 생기지요. 누구나 일시적으로 우울한 감정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기분이 저조한 상태를 우울이라고 한다면 말입니다.
 
이를 우울한 ‘감정’이라고 한다면, ‘우울증’은 더 넓은 범위의 마음상태를 포함합니다. 슬프고 암울한 감정도 우울증에 속합니다. 실패했다는 느낌, 실망감, 좌절감, 공허함, 죄책감, 짜증스러움, 분노, 그리고 기쁨이나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마음도 우울증에서 보일 수 있습니다.
 
자신감이 사라지고 무가치한 사람이라는 느낌, 어떤 일도 예전만큼 할 수 없을 듯한 마음도 우울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패는 모두 내 탓이고,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더 이상 찾지 못한 채 탈출구가 없다고 느껴지는 상태가 이어지면서, 자꾸만 죽고 싶은 생각이 들다가 자살을 실제로 준비하고 행하는 안타까운 결과가 초래되기도 합니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활동도 우울증을 확인하는데 매우 중요한 측면입니다. 우울증에 휩싸일 때에는 밥을 전혀 못 먹어 체중이 줄기도 하고, 반대로 너무 많이 먹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잠을 전혀 못 자는 우울증이 있는가 하면, 잠을 너무 많이 자는 우울증도 있습니다. 집중도 잘 되지 않고 자꾸만 깜빡깜빡하는 모습, 판단을 잘 내리지 못하는 모습도 우울증에서 나타납니다. 피로해지고 몸동작이 둔해지는 모습을 보일 수 있고, 반대로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주요우울장애’ 가지는 비율, 여성이 남성의 1.7배
 
▲ 호르몬 변화도 여성 우울과 관련이 있다 © 정은
이렇게 다양한 우울증상이 지속될 경우에 ‘우울장애’라고 이름 붙입니다. 특정한 다수의 증상이 상당 기간 지속되는 경우에 정신건강 체계에서는 이를 ‘주요우울장애’라고 부릅니다.

 
2006년 국내에서 실시한 정신건강 역학조사에서는, 여성이 주요우울장애를 가지는 비율이 남성의 1.7배에 이른다고 보고하였습니다. 1년 동안 주요우울장애를 앓은 남성은 1.7%인데 비하여, 여성은 3.2%였다고 합니다.
 
우울증 발생에 있어서 성별 차이는 대체로 사춘기가 지나고 나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어린아이들의 경우에는 우울증을 앓는 비율에 성별 차이가 없고, 일부 연구에서는 남아가 여아보다 더 우울하다고 보고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춘기가 되면 우울한 여성의 비율이 보다 높아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노년기가 되면 다시 유병률의 성별 차이가 사라집니다.
 
여성이 우울증을 앓는 비율이 높은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터입니다. 사춘기를 기점으로 하여 유병률의 격차가 발생하는 데에도 다양한 요소들이 원인을 제공할 테지요. 어떤 임상가들은 남성과 여성에게 나타나는 우울증의 양상이 다르기 때문에, 남성의 우울증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또 다른 임상가들은 남성과 여성에게 달리 부과되는 사회적 영향력의 차이에 대해서 논의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부 연구자들은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인 차이, 즉 호르몬 차이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임상가의 입장에 따라서 주로 연구하는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여러 가설이 논의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한가지 입장만 듣기보다는 두루두루 알고 지내는 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이번에는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차이, 즉 호르몬 차이와 관련된 논의를 전해드리려 합니다.
 
호르몬과 관련된 월경증후군, 산후우울증, 갱년기증후군
 
호르몬 연구에서는 여성에게서 우울이 일생에 걸쳐 독특한 오르내림을 보이는 점에 주목합니다. 사춘기를 시작으로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우울증이 발생하는 비율이 더 높아진다는 점도, 이때부터 여성에게 호르몬 변화가 시작되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월경증후군, 산후우울증, 그리고 완경기로 전환되는 시기의 갱년기증후군은 호르몬과 관련해 논의되는 여성의 우울증입니다.
 
월경증후군: 월경증후군으로 이름 붙여진 상태는, 생리가 시작될 무렵 나타나는 우울하고 불안정한 감정상태, 에너지 저하, 짜증스러움이 포함됩니다. 신체적인 고통도 극심할 수 있는데, 유방의 불편감, 복부 팽만감, 두통, 골반통, 그리고 배변 및 배뇨할 때 통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는 자궁의 신체적 상태와 관련성이 높기 때문에, 단순히 심리학적 관심뿐만이 아니라 부인과적 관심과 돌봄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월경증후군에서 보이는 증상들은 부인과적 질환 상태와 관련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섭식이나 환경오염이 호르몬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월경증후군을 유발시킬 수 있다는 점도 반드시 점검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최근의 연구들은 생리주기에 따라 에스트라디올이라는 주요 호르몬 수준이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암울한 감정, 긴장감, 짜증을 불러일으킨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호르몬에 변화 혹은 기복이 생기면 일부 여성들이 우울증에 보다 취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산후우울증: 산후우울증은 미국의 통계에 따르면 출산한 여성의 10~15%가 보인다고 하는데, 이들 중 40% 정도는 1년 이상 우울증이 지속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산후우울증의 일부 증상은 아이를 낳은 뒤에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모습과 닮아있기도 합니다. 아이를 낳고 난 뒤에는 여러 가지 스트레스 상황이 닥쳐와서 힘들어지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아이를 낳고 6개월이 지나서까지 우울증상이 지속되면 산후우울증이라고 부릅니다.
 
▲ 몸의 주기에 관심을... © 불턱
산후우울증이 있는 여성들은 우울감이 커지고, 에너지가 감소하고, 안절부절 못하거나, 수면 및 섭식 문제가 생기고, 무가치감 혹은 죄책감, 부모역할을 할 수 없다는 생각, 자살하려는 생각을 보일 수 있습니다. 아기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고, 아기를 해치는 통제할 수 없는 생각에 괴롭힘을 당하기도 합니다.

 
산후우울증 이전에 산후우울감(postpartum blues)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아기를 낳고 3~5일이 지날 즈음에 두드러지는 우울감으로, 수유하면서 시작되기도 하고, 며칠에서 몇 주 동안 지속될 수 있습니다. 대체로는 행복을 느끼더라도 감정기복이 심해지고, 짜증이 잘 나고, 자주 울게 됩니다. 산후우울감은 출산 이후 급격한 호르몬 변화에서 기인하는 일시적 현상이라는 가설이 있습니다.
 
호르몬의 변화가 산후우울증을 발생시키는가는 불분명합니다. 산후우울감을 유발하는 데는 호르몬의 변동의 영향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산후우울감에 이어 일상생활에 스트레스가 더해지고 주변에서 얻는 지지와 지원이 부족한 경우 산후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논의가 보다 우세합니다. 즉, 호르몬이라는 생물학적인 요소보다는 주변환경이 얼마나 산모를 보살필 수 있는가가 산후우울증 지속에 보다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와일이라는 학자는 새로 엄마가 된 여성들에게 아이의 양육을 도와주거나, 아이를 목욕시켜주는 특별한 의례가 있거나, 산모에게 특별한 음식을 마련하거나 친정의 도움을 받도록 하는 등 지지 환경이 갖추어진 문화에서는 산후우울증 발생비율이 낮다고 보고하였습니다.
 
또한 밀러라는 정신의학자는 산후우울증을 겪게 되는 위험요인으로 사회적 스트레스가 크거나 사회적 지지자원이 부족했는지를 꼽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뱃속에서 잃거나, 낳다가 잃는 경우에도 유사한 강도의 심각한 우울증을 보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산후우울증을 잘 다루어주지 않으면 훗날 다시 우울증이 발생할 위험이 높으므로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또한 이전에 산후우울증을 겪었다면 다음 임신 시에도 이를 대비해야 합니다. 스트레스가 유발되는 시기에는 출산을 피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우는 것도 좋고, 예방을 위해서 주변의 다양한 정신건강 관련 자원을 모색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완경전환기: 완경(월경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는 시기)에 이르기 2~3년 전 무렵인 ‘완경전환기’에도 우울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완경전환기에는 호르몬 변동으로 인하여 우울증상이 심화되고, 완경에 이르면 우울증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렇듯 호르몬의 변동과 갱년기 우울증상의 관련성을 추론하는 연구들도 무척 많습니다.
 
한편으로 임상 현장에서 중년여성들을 뵙고 느낀 바로는, 월경이나 임신가능성에 대해 사회가 여성에게 부여하는 의미가 갱년기 우울감을 지속시키는 한 요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출산할 수 있는 여성의 몸과 보다 전형적인 여성상에 가까운 여성의 신체를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중년기에 찾아온 신체변화를 부드럽게 소화하고 넘겨 보내기 어렵게 만들고 우울증을 가중시킬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넘겨내고 조절하는 역량이 줄어들어
 
여성호르몬이 정서적 고통에 직접적인 영향을 가한다는 가설들은 실제로 지속적으로 검증되지는 못했습니다. 월경증후군, 산후우울증, 완경전환기와 관련하여 우울감이 증폭될 수는 있지만, 이것이 전적으로 호르몬 변화의 직접적 요인에 따른 결과인지는 미지수입니다.
 
현재로서는 여성호르몬이 우울증상을 간접적으로 조절한다는 방향으로 결론 나고 있습니다. 에스트로겐이라는 난소호르몬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발생하는 글루코코르티코이드라는 물질의 효과를 중화시킬 수 있는데, 에스트로겐이 불안정한 경우에는 이러한 기능이 저하되므로 스트레스에 더 취약해진다고 합니다.
 
즉, 호르몬 변화는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을 잘 조절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불러일으키고, 이 때문에 우울할 가능성이 커질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넘겨내는 역량이 줄어들게 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의 정답과 해결책이 있다면 참으로 좋으련만, 고통이란 워낙 다양하고 복잡한 산물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더 잘 알고 더 잘 대비할 수 있다면 마음이 조금 더 여유로워지겠지요. 여성의 일생에 따라 변동하는 호르몬의 영향력이 스트레스를 감내하는 능력을 약화시킨다면, 스트레스를 줄이려는 노력과 사회적 지지가 필요하고, 몸의 변화를 미리 예측하면서 마음의 자원을 마련하는 심리적 지지가 필요한 것입니다.
 
다음 번에는 여성 우울의 사회적인 측면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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