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맡긴 노인복지’ 질 저하 우려돼

노인장기요양보험 시행 3개월, 요양보호사 노동조건 악화

박희정 | 기사입력 2008/11/05 [10:35]

‘시장에 맡긴 노인복지’ 질 저하 우려돼

노인장기요양보험 시행 3개월, 요양보호사 노동조건 악화

박희정 | 입력 : 2008/11/05 [10:35]
치매 등 노인성 질환으로 장기요양이 필요한 노인들에게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행된 지 3개월이 지났다. 장기요양보험은 저소득층 노인에 대해 극히 선별적으로 이루어지던 장기요양서비스에서, 소득계층에 상관없이 노인들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기대를 받고 있다.
 
석재은 한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2008년 9월말 현재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요양인정자 수는 65세 이상 인구의 3.62%인 18만3천명에 이른다. 이중 여성이 남성의 1.7배 수준이다.
 
그러나 비영리사회복지법인을 통한 공적인 ‘사회복지서비스’가 영리법인 참여를 허용하는 ‘사회보험서비스’로 대체되면서, 장기요양서비스 ‘시장화’에 따른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사회보험을 통해 재원을 조달하되, 서비스 이용자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다수 서비스 제공자의 경쟁을 통해 서비스의 질을 높이겠다는 가정하에 시도된 것이다. 하지만 제공자의 수를 통제하지 않아 과다경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고, 이용자의 본인 부담이 커지면서 오히려 서비스의 질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시장경쟁원리에 맡겨지면서, 고용불안정 심화
 
특히 서비스 공급이 시장경쟁원리에 의해 이루어지면서, 최대의 피해자라 할 수 있는 것은 요양보호사들이다.
 
“달라진 게 많죠. 왜 그러냐면 자활만 했을 때는 월급은 조금 작아요. 그래도 주급도 있고 월차도 있고, 하다못해 휴가도 한 이틀 주구요. 그런 게 있어요. 4대 보험도 되고 또 퇴직금도 나옵니다. 그렇게 되었는데 여기 와서는 그런 게 전혀 없어요. 4대 보험도 임시적으로 3개월만 주고, 퇴직금도 지금 내주겠다고 해요. 여태까지 일했던 것. 그러니까 이제 완전히 내가 자활을 하는 거죠.” (비영리방문 요양보호사)

 
한국여성민우회가 지난 달 29일 주최한 “장기요양보험 시행 3개월, 문제점과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전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박기남 연구원은 서비스 대상자와 제공자를 심층 모니터링한 결과를 발표했다. 요양보호사들의 처우가 악화된 것은 우선 ‘임금’에서 드러난다.
 
박기남 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요양보험제도가 도입된 이후로 재가방문 요양보호사들의 임금은 점차 시급제로 전환되고 있다. 일한 시간만큼만 임금을 받기 때문에 교통비나 점심값 등을 보전해 줄 장치가 없으며, 이동시간이나 대기시간에 대해서도 임금이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일부 요양보호사들은 주말에 병원간병 등의 아르바이틀 통해 소득을 보전하고 있으며, 휴식 없는 노동으로 인해 정신적, 육체적 질병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박 연구원은 보고했다.
 
요양시설에 소속된 요양보호사의 경우, 시설규모가 큰 곳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요양보호사의 지위가 정규직에서 계약직이나 파견직으로 바뀌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요양보호사의 임금차이는 평균 40~50만원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박기남 연구원은 요양보호사들이 “자비를 들여서 요양보호사 교육을 받았음에도 오히려 임금은 더 삭감된 것에 대해 매우 분개”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요양보호 업무는 현장에서의 경력이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은 호봉을 인정해주지 않아 신규자와 경력자가 동일한 임금을 받고 있다. 일당을 받는 파견직은 더욱 큰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근로조건, 서비스 지침 등 국가의 개입 필요
 
특히 재가서비스를 하는 요양보호사의 처우문제는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보고됐다.
 
처음에는 이렇게 엎드려서 이렇게 다 물걸레질을. 50평짜리를 어떻게 닦냐고, 대걸레 없어요? 그랬다니까요. 없대요. 그래서 내가 대걸레를 사왔다니까. 조그마한 집도 다 대걸레로 닦는데, 여기를 어떻게 무릎 꿇고 다 닦냐고 그러니까, 젊은 사람이 몸을 너무 사리는 거 아니냐고. 막 그렇게 말씀하시잖아. 그래서 내가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중략) 밥하기도 바쁜데, 장보고 밥하면. 청소까지 하면, 처음엔 죽는 줄 알았어. 시간이 너무 타이트해서.” (영리방문 요양보호사)
 
박기남 연구원은 서비스 공급업체의 난립으로 요양보호사의 고용안정성은 더욱 위협받고 있으며, 때로는 “잘리지 않기 위해” 수급자의 부당한 요구를 들어주게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는 노인에 대한 돌봄과 가사일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재정과 관리운영의 책임을 진 국민건강보험공단과 보건복지가족부에서 방문요양 서비스의 내용에 대해 공식적인 지침이나 수급자들을 대상으로 한 안내가 없는 점이 근본적인 이유라는 지적이다.
 
박 연구원은 “요양보호사의 입장을 대변해주고 보호해 줄만한 안전장치가 없이 내몰리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진단했다.
 
박기남씨는 “재가요양서비스의 질이 높아지기 위해서는 서비스공급기관들 간의 경쟁 또는 기관 내에서 시급제로 이루어지는 인력운용방식으로는 힘들다”며, “무엇보다도 일정한 부분공공성의 확보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회복지 서비스는 단순히 시장논리에 맡겨서는 안” 되며, “행정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 이 기사는 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편집자 주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