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속에서 세상을 다시 배운다

‘교육일기’ 칼럼을 시작하며

정인진 | 기사입력 2009/01/04 [12:14]

아이들 속에서 세상을 다시 배운다

‘교육일기’ 칼럼을 시작하며

정인진 | 입력 : 2009/01/04 [12:14]
[일다는 무한경쟁시대의 획일적인 사고와 줄 서기를 강요하는 교육의 위기 속에서, 아이들에게 입시위주의 교육이 아닌 자율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고 내면의 성장을 돕는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필자 정인진님은 프랑스에서 교육학과 여성학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돌아와, ‘어린이 창의성.철학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 6년째 아이들을 가르쳐오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프랑스에서 5년 반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무엇을 할까 고민하면서, 어린이 창의성.철학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르칠 것을 구상했다. 그동안 탐색해 온 것들을 교육 속에 적용시켜보고 싶어서였다. 이론적이고 학술적인 작업에서 끝날 수도 있었을 ‘교육 속에 담았으면 하는 가치관’에 대한 탐색을 직접 시도해 보고 싶었고, 정말 그것이 실현 가능한 것이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이렇게 결심하고 초등학생 대상의 ‘창의성.철학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고, 동시에 주변 아이들을 모아 가르쳐 나갔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한지도 벌써 6년째에 접어든다. 그동안 탐색해온 것들이 결코 헛된 공상만은 아니었다는 걸 확인하는 일은 즐겁다.
 
나는 이 일을 하는 6년 동안 두 가지 암 수술을 받았고 항암치료도 했다. 힘든 항암치료 과정을 거치면서 내가 암환자라는 사실을 잊게 해준 존재도 바로 아이들이었다.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서 웃을 일이 있고, 희망이 있고, 무엇보다 즐겁다. 그들이 나와 함께하는 공부 속에서 삶의 중요한 점들을 배우고 깨우쳤다면, 나 역시도 그들 속에서 인생의 중요한 점들을 배웠다.
 
그것을 말하고 싶다. 그들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이 무엇인지, 그들이 내게 무엇을 가르쳤는지….
 
미로에 갇혔다고 생각되는 인생의 지점을 만날 때
 
내가 가르친 학생 중 효은이라는 3학년 어린이가 있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고정관념’을 벗어나야 한다는 공부를 한지 며칠 안돼, 학교에서 놀이동산으로 소풍을 갔다. 효은이는 거기서 ‘미로 게임장’에 들어갔다가 막다른 길에 접어들었는데, 지난 번 배운 걸 생각해 ‘막다른 길에 출구가 없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그 길로 계속 갔더니 바로 거기에 출구가 있더란다. 그 말을 내게 전할 때까지도 미로에서 출구를 발견할 당시의 흥분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듯했다.
 
나는 상담을 청하는 학부모들에게 이 공부는 아이들의 성적을 몇 점 올리기 위한 것도, 실패를 모르는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로 키우기 위한 것도 아니라는 말씀과 함께, 효은이의 ‘미로 이야기’를 자주한다.
 
아이들이 자라서 혹시 출구도 없는 미로 속에 갇혔다고 생각되는 인생의 지점을 만나게 될 때, 그때 용감하게 다시 일어나 인생의 출구를 찾아 나올 수 있는 그런 창의적이고 문제해결력을 지닌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지혜롭고, 무엇보다도 용감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는 말로 내 교육목표를 대신 설명하곤 한다.
 
물론, 이 공부를 통해 아이들의 가치관이 엄청나게 달라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민하고 진지한 삶의 문제들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아이와, 한번이라도 고민해본 아이는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조금이나마 다른 출발점에서 고민을 시작하지 않을까 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이 공부를 거쳐갈 수백 혹은 수천 명의 아이들 중 세상의 가치관을 바꾸는 사람이 단 한 명만이라도 있다면, 정말 대단한 일을 했다고 혼자 즐거워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칼럼을 통해 그동안 내가 어린이들을 만나면서 깨달은 것들이 지금 아이들의 교육을 고민하는 많은 이들에게 함께 감동이 되고 지혜가 될 수 있길 바란다.
 
(※ 교육일기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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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oqhr 2009/06/12 [14:33] 수정 | 삭제
  • 잘 읽었습니다.
  • 다정 2009/03/03 [12:28] 수정 | 삭제
  • 아무래도 교육은 가르친다기보다 배우는 일이겠지요. 교육이라는 말이 갖는 풍성한 의미보다 교육이라는 말이 갖는 대상화의 폭력성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사회에선 교육을 오히려 정반대로 배우는 것으로 돌려 놓아야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교육은 오히려 토론이라는 말로 바꾸면 어떨까요? 공부라는 주체성과 토론이라는 공동체성으로 바뀌는 교육문화를 꿈꿔 봅니다.
  • 강위 2009/02/19 [13:02] 수정 | 삭제
  • 한동안 일다에 들어오지 않는 동안 이렇게 흥미로운 칼럼이 시작되었네요.
    간간히 들러서 잘 읽을게요. 몸도 마음도 건강, 평화 기원.
  • 2009/01/05 [14:19] 수정 | 삭제
  • 아이들을 대상으로 가르치는 일은 아이들에게서 배우는 일이기도 하지요.
    저도 칼럼 내용 많이 기대해보겠습니다.
  • 루루 2009/01/05 [13:52] 수정 | 삭제
  • 지금 건강은 어떠신지요?
    아무튼 정말 기대됩니다. 많이 배울 것 같습니다.
  • 국화 2009/01/04 [19:22] 수정 | 삭제
  •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순 없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어째 더 안좋은 환경인 것 같아 안쓰럽네요.

    학교는 무엇을 가르치는 곳이었을까...
    십대시절을 생각하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삶이란 이토록 힘겨우며, 많은 문제를 해결하도록 요구받는데...
    우린 대체 그 긴 시간동안 무엇을 배워온 걸까요?
    20대가 되어서도 아직 알을 깨고 나오지도 못한 새처럼 근시안적이고 여린 존재란 걸 깨닫게 되면서..
    배워야 했지만 배우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더 생각이 많아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