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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집착적 행위’에 대한 경고
경실련의 존엄사 법안청원을 지켜보며①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이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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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식물인간 상태에 있는 어머니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달라며 자식들이 병원 측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법원이 원고 승소판결을 내리며 존엄사를 처음으로 인정했다. 우리나라는 사실상 의료계에서 의식이 없는 환자에 대한 존엄사가 공공연히 이루어져왔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는 마련되어 있지 않으며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다.

일다는 국회에 제출된 존엄사 법안을 통해 존엄사와 안락사 논의의 핵심쟁점 중 하나인 ‘의료집착적 행위’의 문제에 대해 짚어보는 한편,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진정성을 둘러싼 다양한 쟁점들을 살펴보고, 나아가 호스피스와 적극적 안락사에 이르는 논의를 지펴보고자 한다.

필자 이경신님은 현대의학의 발달에 따라 변화하고 있는 죽음의 개념과 양상을 연구하며, ‘죽음’의 문제를 통해 삶을 바라보는 철학연구를 지속해오고 있다. -편집자 주

지난 12일 경실련은 ‘존엄사 입법 청원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지난 해 말, 회복불가능한 환자의 의사를 추정하여 인공호흡기 제거를 허용한 제1심 법원판결에 이어, 공론화된 존엄사 법제화 요구에 부응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존엄사’란 인공심폐기나 인공영양튜브와 같은 의료기계에 의존해서만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의식 없는 식물인간인 환자가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도록 무의미한 생명연장을 중단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같은 존엄사 정의에 입각하여, 현대의학으로 회복불가능하다고 판단된 환자가 스스로 인위적인 생명유지장치를 보류하거나 중단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로서 뒷받침하려는 것이 이번 존엄사 입법 청원안의 취지다.
 
‘살아있는 시체’ 양산은 의료자원낭비, 불공정분배

청원된 존엄사 법안과 관련해서 주목해보아야 할 것은 무엇보다도 ‘의료집착적 행위’의 근절이다. ‘의료집착적 행위’란, 현대의학의 발전으로 인한 소생술의 등장이 치료불가능한 환자의 생명을 의학적 수단을 동원해 환자의 삶의 질에 대한 고려 없이, 무의미하게 생명만을 연장시키려는 행위로 볼 수 있다.
 
이 법안에서는 먼저 ‘존엄사법’이란 명칭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의식 없는 환자에 대한 의료집착적 행위에 관심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존엄사를 지지하는 이들은 정신활동이 가능한 인간만이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하는 것으로 보고, 정신활동이 중지된 식물인간의 경우는 생존의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의식 없는 환자가 비인격적 삶을 지속하기보다는, 즉 무의미하게 생명을 연장하기보다는 존엄하게 죽을 수 있도록 허용하자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현대의학의 한계를 인정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머리외상, 뇌혈관성 장애, 뇌종양, 척추손상, 일산화탄소 중독 등과 같은 사고나 질환으로 인해 중증의식장애자-대뇌 기능은 상실한 채 뇌간 척수계의 기능만 남아 반사운동과 조절작용만 보이는 식물인간-가 된 환자들은 현대의학이 회복시킬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존엄사 법안의 취지에서는-말기의료의 한계를 거론하고 있긴 해도-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지는 않지만, 정신능력이 없는 ‘살아있는 시체’를 양산하는 것은 의료자원의 낭비를 야기하고, 이는 의료자원의 공정하고 효율적인 분배에 위배된다는 것이 존엄사 지지자들의 주요 논거다.
 
여기서 정신능력이 없는 자란, 스스로 의사결정이 불가능한 자로 ①정신능력이 애초부터 없었던 신생아와 중증정신장애자 ②이전에는 정신능력이 있었지만 치매와 같은 질병이나 노쇠로 정신 무능력자가 된 자 ③혼수상태에 빠져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자가 해당된다. 정신능력이 없거나 상실했기에 인간의 존엄성을 가질 수 없으므로,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 존엄사의 기본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존엄사에 대해서는 특정 종교인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말기의료의 한계: ‘플러그를 뽑아라’ 

▲  의료집착적 행위의 문제를 고발한 책

그런데 우리가 보다 더 주목해야 할 대목은 사고(교통사고나 의료사고 등)나 질병(암과 같은 중증 질환)으로 말기상태에 있는 ‘의식 있는 환자’에 대한 의료집착적 행위를 근절하는 것이다. 이 의료집착적 행위야말로 환자의 고통을 가중시켜 환자로 하여금 의사조력타살이나 의사조력자살을 선택하도록 부추기고, 사람들로 하여금 안락사 문제에 주목하게끔 한 주요한 동기가 되어 왔다.
 
프랑스 청년 벵상 욍베르(Vincent Humbert)의 경우가 그 대표적 사례인데, 그의 이야기는 <나는 죽을 권리를 소망한다>(빗살무늬, 2003)라는 책으로 엮여 국내에도 소개가 되었다.
 

벵상은 지난 2000년 자가용으로 귀가하던 중 대형트럭과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후 병원에서 9개월 동안 혼수상태로 있다가 시각, 미각, 후각을 모두 상실하고 말도 할 수 없는 채로 머리와 오른손만을 겨우 움직이는 전신마비 상태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결국 사고일 3년째 되던 날, 어머니와 의사의 협조로 안락사를 선택했다. 어머니가 다량의 신경안정제를 링거에 투여하고 의사가 산소호흡기를 떼어내어 그는 사망했다.
 
고백을 통해서, 그는 자신이 의료집착적 행위의 희생양이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소생술로 인해 육체적.정신적 고통에 시달려야 하는 무의미한 생명연장을 강요 받았기 때문에, 안락사라는 선택 이외의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안락사를 반대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의료집착행위만 없어지면 벵상과 같은 환자, 다시 말해서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해 안락사를 원하는 환자는 상당수 줄어들어 들 것이라고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목적 없이 생명만 연장하는 것보다는 치료중단을 통해서 환자의 고통을 최소화시켜야 하며, 이러한 행위는 정당화될 수 있고 적극적으로 권장되어야 할 사안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생명유지를 위한 인공장치의 ‘플러그를 뽑아라’ 하고 충고하고 있다.
 
이번 존엄사법 입법 취지문을 보면 우리나라도 서구와 마찬가지로 ‘의료집착행위’가 환자에게 심각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환자 가족에게는 정신적.경제적 부담을 유발시켜왔으며, ‘말기의료의 한계’에 대한 사회적 성찰이 필요한 때임을 강조하고 있다.
 

비록 법안 취지문이나 설명글에서는 분명하게 거론하고 있지는 않지만, 법안 자체는 의식 있는 말기환자가 ‘죽을 권리’, 즉 자신의 생명과 죽음에 대해 결정할 권리, 의료집착적 행위의 희생양이 되길 거부하는 ‘치료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보호막의 역할을 아우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환자의 말기상태에 대한 판단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의식 없는 환자의 존엄사가 공공연히 시행되어 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법이 현실을 따라와주지 못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존엄사 법안청원이 늦은 감은 있지만, 의료집착적 행위를 없애고 환자가 품위있게 죽을 수 있도록 법과 제도로서 뒷받침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환영할 만하다. 환자의 존엄사를 돕고자 하는 의료진에게 법적 책임을 면제해주는 조항도, 존엄사를 현실적으로 정착시키고 의료집착적 행위를 없애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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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1/28 [12:11]  최종편집: ⓒ 일다
 
nya 09/01/30 [18:50] 수정 삭제  
  법적으로 안락사가 인정되기를 바라는 입장입니다.

이번 존엄사 소송을 보면서, 의아하게 생각했었습니다.
병원에서 식물인간 상태에 있는 환자에 대해선, 가족들과 상의해서 인공호흡기를 떼는 걸 몇번이나 지켜본 적이 있어서 말이지요.
실제로 법적으로는 허용이 안 되고, 세브란스 병원측이 거부해서, 가족들이 소송까지 가게됐다는 것이 놀랍더라고요..
정신이 육체를 떠난 상황에서 인공호흡장치에 의존해서만 숨을 내쉴 수 있는 상황이라면 존엄사는 법적으로 지금이라도 인정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조선인 09/02/11 [08:41] 수정 삭제  
  나이가 들수록 중요한 건 건강관리뿐 아니라 각종 생명연장시술에 대한 입장 정리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생명에 대한 유언'을 작성하자가 첫 꼭지로 와야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 09/02/14 [17:23] 수정 삭제  
  ‘살아있는 시체’ 양산은 의료자원낭비, 불공정분배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을 더 소개해주셨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의학의 발달이 ‘살아있는 시체’를 양산하는 것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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