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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는 것은
경실련의 존엄사 법안이 간과하고 있는 점②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이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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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는 국회에 제출된 존엄사 법안을 통해 존엄사 논의의 핵심쟁점 중 하나인 ‘의료집착적 행위’의 문제에 대해 짚어보는 한편,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진정성을 둘러싼 다양한 쟁점들을 살펴보고, 나아가 호스피스와 적극적 안락사에 이르는 논의를 지피고자 한다. 필자 이경신님은 현대의학의 발달에 따라 변화하고 있는 죽음의 개념과 양상을 연구하며, ‘죽음’의 문제를 통해 삶을 바라보는 철학연구를 지속해오고 있다. -편집자 주
 
연명치료거부권만으로는 ‘자기결정권’ 충족 못해
 
이번 경실련의 존엄사 법안은 그 동안 우리 의료현실 속에서 의사나 환자가족에 의해 무시되어 온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취지문에서 밝히고 있다. 이때 환자의 자기결정권이란 환자의 ‘치료거부권’, 즉 ‘말기 및 임종환자의 연명치료 보류·중단의 권리’를 의미한다. 또 법안 적용범위를 ‘회복이 불가능하고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환자 내지 장기간의 식물인간상태의 환자’로 제한하고 있다.
 
그런데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사실 ‘인간 자율의 원리’에서 파생된 가치로 볼 수 있다. 이 원리는 ‘우리 인간이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 따라서 ‘타인은 그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한다. 환자 역시도 인간인 한에서 자율적인 존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존재이며, 말기환자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무엇보다 현대의학의 의료집착적 행위의 희생양이 되어 온 말기환자의 경우, 자기결정권 존중의 주장은 광범위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소생술로 무장한, 발전된 현대의학이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말기 불치병환자에게 삶의 질이 보장되지 않은 무의미한 생명연장에만 집착해 온 현실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존엄사 법안도 이러한 현실 속에서 등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말기환자의 참을 수 없는 육체적·정신적 고통’에 주목해 보더라도, 존엄사 법안은 명백한 한계가 있다. 말기환자의 ‘치료거부권’으로서의 자기결정권의 내용이 너무나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말기환자가 생명연장장치가 동원되는 연명치료를 거부할 수 있으려면, 치료거부권을 현실적으로 행사할 수 있으려면, 고통 없는 빠른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암환자의 경우는 ‘치료거부권’만으로 부족하며, 고통을 완화시키기 위해 생명단축의 부작용을 예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르핀’ 같은 약물주사를 투여 받을 권리도 함께 존중될 때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만족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실제 말기 암환자의 경우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 약물투여가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존엄사 법안의 말기환자 자기결정권에 있어 이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환자의 인생계획 속에서의 죽음 통제권까지 존중돼야
 
게다가 환자가 자기 인생의 계획 속에서 죽음의 시간과 방법을 결정함으로 자신의 죽음을 통제하려고 한다면, 고통을 줄이기 위해 ‘진통제를 투여 받을 권리’ 이상을 요구하는 것이 된다. 여기서 의사조력자살, 의사조력타살에 대한 고민이 생겨난다. 암환자인 카알라와 루게릭 환자인 수 로드리게스의 경우가 그러한데, 그와 관련된 사례는 피터 싱어의 <삶과 죽음>(철학과 현실사, 2004) 7장에 소개되어 있다.
 
1988년 카알라는 47세로 암 수술과 화학요법을 통해 암 치료를 하다가 1990년 암이 재발했다. 다시 화학요법을 써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늘어난 고통을 줄이기 위해 모르핀을 맞았고 고통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후 상태가 더 악화되어 영양튜브를 통해서만 음식을 공급받게 되었다.
 
종양이 자라나서 고통이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을 때, 카알라는 모르핀을 맞으며 여러 날 의식이 몽롱한 채로 죽길 원하지 않았고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앞에서 의사의 도움을 받아 죽기를 원했다. 그녀의 의사, 간호사, 카톨릭 신부의 합의 아래 죽음의 주사를 맞고 죽었다.
 
또 루게릭 환자인 수 로드리게스는 1994년 42세 때 생존가능기간이 2개월에서 4개월뿐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녀는 자신이 음식을 삼킬 수도, 말할 수도, 걸을 수도 없게 되어 급기야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인공호흡기와 영양튜브에 의존해서 살아야 할 것이라는 알게 되었다. 하지만 삶을 즐길 수 있는 한 즐기고, 더 이상 삶을 즐길 수도 없고 스스로 자살할 수 없을 때 타인의 도움을 받아 죽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의사의 도움을 받아 사망했다.
 
두 사람의 사례를 통해서 결국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제대로 존중되려면, 환자가 숙고해서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가치평가하고 스스로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결정할 수 있어야 하며, 환자가 선택한 대로의 죽음이 실현될 수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점에서 볼 때, 존엄사법은 ‘환자의 자기결정권 존중’의 측면에서 명백히 부족한 법안이다. 법안에서 보호하려고 하는 의식불명 환자의 삶에 대한 통제력 이상으로, 의식 있는 환자의 삶과 죽음에 대한 통제력을 존중할 때만이 환자의 ‘신체에 대한 자기통제권과 인격적 존엄성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진정으로 존중 받을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비록 의사의 의무가 환자의 생명유지라고 할지라도, 그 의무는 환자의 자기결정권 내에서만 완수되는 것이 맞다. 의사의 존재이유는 환자의 최대 이익, 최선의 이익 실현에 있으니 말이다. ‘일정 시간이 되면, 의사는 치료사이기를 그만두고 환자의 죽음을 돕는 자로 변하게 된다’는 말은 기억해야 할 대목이다.
 
그리고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한층 더 존중한다면, 말기환자의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대한 판단도 의학적 판단에 의존하기보다는 환자 자신에게 맡겨야 한다는 주장도 주의 깊게 경청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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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2/04 [11:05]  최종편집: ⓒ 일다
 
대동아공영권 09/02/04 [19:58] 수정 삭제  
  그러니까 "죽음"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 아니오? 어떻게든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는 더 낫다는 생각을 고쳐야 할 때란 말이지. 이제 죽음을 무조건 나쁘거나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의미없는 생물학적인 "살아있음"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좀 더 인간의 "삶"의 개념을 "죽음"까지 포함해서..크게 생각하자..뭐 이러면 되는거 아니오?! 죽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버리고, 그렇다고 죽음을 기쁘게 여기자는 의미는 아니지만..여튼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하리라 봅니다. "죽음"은 삶의"완성" 어떻게 죽느냐도 어떻게 사느냐만큼 중요하다는 말씀..참조로..저도 저의 죽음을 선택하고 싶기에..이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일다와 의견일치를 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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