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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환자 위한 호스피스 제도 보장돼야
존엄사 법안을 둘러싼 쟁점④ 적극적 안락사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이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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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 제출된 존엄사 법안을 통해 존엄사 논의의 핵심쟁점 중 하나인 ‘의료집착적 행위’의 문제에 대해 짚어보는 한편,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진정성을 둘러싼 다양한 쟁점들을 살펴보고, 나아가 호스피스와 적극적 안락사에 이르는 논의를 지피고자 한다. 필자 이경신님은 현대의학의 발달에 따라 변화하고 있는 죽음의 개념과 양상을 연구하며, ‘죽음’의 문제를 통해 삶을 바라보는 철학연구를 지속해오고 있다. -편집자 주
 
존엄사 법안, ‘적극적 안락사’ 금지하고 있어
 
말기환자의 경우엔 의료집착적 행위를 거부한다 했을 때, 그로 야기되는 무의미한 생명연장에서는 해방될 수 있지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말기환자가 겪어야 하는 이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환자의 고통을 줄여나가거나 없애는 어떤 방법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그 방법으로, 목숨을 단축시켜 고통을 제거하는 ‘적극적 안락사’나 환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 고통을 가능한 한 줄여나가는 ‘완화의료’(또는 호스피스)가 주장되어 왔다. 비록 환자의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대해서는 똑같이 공감하고 동정하더라도, 그 고통을 완화하거나 제거하는 방법에 있어선 분명한 입장의 차이가 있다.
 
경실련이 제출한 존엄사 법안은 “말기환자의 의사표시를 존중하여 자기결정권에 따른 의료처치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말기환자의 권익을 보장”하고자 한다고, 목적에서 언급하고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 법안 내용에 말기환자의 참을 수 없는 고통과 관련한 의료처치에 대해선,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말기환자의 권익보장으로 충분치 않다.
 
“말기상태나 사기가 임박한 회복불능의 환자에 대한 연명치료를 계속함으로써 죽음의 과정을 고통스럽게 연장해나가는 것보다, 치료를 중단하고 완화의료 내지는 호스피스 등의 의료를 통해 삶의 질을 유지할 때가 더 나을 수 있다는 물음이 제기”된다고 입법취지에서 밝히고 있을 뿐이다. 사실상 호스피스 의료조항에 대한 부분은 법규정에 빠져 있다.
 
게다가 적극적 안락사와 의사조력 자살행위의 경우는 금지하고 처벌하도록 하여, 적극적인 고통제거 방법을 법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의사의 투약처방 내지 약물주입의 방법을 법적으로 허용할 수 없는 근거로, 적극적 안락사를 살인으로 보고 허용하지 않는 우리 형법의 다수 해석을 들고 있다. 우리 형법에 의하면 “환자의 부탁이나 승낙을 받아 살해한 경우는 촉탁.승낙 살인죄(제 252조)에 해당하고, 말기 환자의 자살을 도운 경우에도 자살방조죄(제 252조 제 2항)를 적용”한다는 것이다.
 
죽음을 앞둔 환자의 고통을 완화시키는 ‘호스피스’
 
그동안 환자의 참을 수 없는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적극적 안락사를 반대해 온 이들은, 의료집착적 행위의 중단과 더불어 호스피스를 연속선상에서 다루어야 환자의 고통 완화의 최선책이 될 수 있다고 말해 왔다.
 
여기서 ‘호스피스’란, 환자가 사망하기 전까지 견뎌내야 하는 참을 수 없는 육체적 고통을 감소시키고 환자의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을 의미한다. 환자들이 간병을 받아 죽음을 편안히 맞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호스피스의 등장은, 현대의학이 환자가 신체와 정신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망각하고 신체를 고치는 기술로 전락해왔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현대의학은 환자의 육체적 통증에 무관심했던 적도 있었고, 이후 환자의 통증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을 때조차 육체적 고통에만 집중해왔다는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환자를 돌봄에 있어서 육체와 정신 모두에 관심에 가지면서 환자의 고통을 완화시키고자 하는 것이 ‘완화의료’다.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까지 아우르는 제도 필요 

호스피스 기관 의사 베르트 케이제르의 책
지금에 와서는 호스피스, 완화의료와 적극적 안락사, 의사조력자살을 서로 대립시키기보다는 둘 다 병행될 수 있고, 병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지극히 현실적으로 보인다.

 
네덜란드 호스피스 기관 의사인 베르트 케이제르의 경험을 보더라도 그렇다. 그의 저서 <죽음과 함께 춤을>(마고북스, 2006)에서 보면, 환자를 죽음에 이를 때까지 돌봐주는 요양기관에서조차 소극적 안락사와 적극적 안락사, 의사조력자살이 병행 실시되는 것이 현실이다. 환자의 고통완화 및 제거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의사는 환자를 돕기 위해 존재하는 자다.
 
오늘날 의사가 환자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모르핀과 같은 진통제를 투여하는 것은 엄연한 의료현실이다. 적극적 안락사를 반대하고 호스피스 제도를 찬성하는 이들조차 소극적 안락사로 볼 수 있는 ‘이중 결과’를 용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중 결과’란 환자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서, 환자가 죽을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환자를 죽일 의도는 없이 진통제를 점차 늘여가거나, 또는 인공적인 생명연장장치를 제거해 환자의 죽음을 유발하는 경우를 뜻한다.
 
그런데 이 ‘이중 결과’가 ‘적극적 안락사’와 도덕적 차이가 없다는 사실에 대다수가 동의하고 있다는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적극적 안락사’는 환자가 죽여달라고 도움을 청했기 때문에 환자를 죽일 의도를 가지고 진통제를 주사하거나, 인공적인 생명연장장치를 제거하는 경우다.
 
그렇다면 ‘이중 결과’나 ‘적극적 안락사’나 두 경우 모두, 환자가 죽는다는 것을 아는 상태에서 의사가 환자의 고통을 줄이거나 제거하기 위해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환자에게 최선의 도움을 주기 위한 행위라는 점에서는 도덕적 차이가 없다는 주장이다. 두 경우의 차이란, 환자의 죽음을 의도했느냐 아니면 환자의 죽음을 예상했지만 의도하지는 않았느냐의 차이일 따름이다.
 
게다가 의료집착적 행위가 100% 근절되지 않아서 그에 따른 희생자가 존재하고, 비용 차원에서 호스피스를 누구나 이용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면, 호스피스와 더불어 적극적 안락사도 현실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진정으로 보장하려 한다면, 적극적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도 환자의 고통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허용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감안해 볼 때, 환자의 고통과 관련한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규정들, 즉 호스피스나 의사조력자살, 의사조력타살에 대한 규정이 없거나 금지하고 있는 이번 존업사 법안은 너무나 제한적이다. 환자의 고통을 완화하거나 제거하거나,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측면에서 불만족스러운 법안이다.
 
적어도 ‘이중 결과’와 관련된 의사의 처벌을 면제하는 조항을 포함한 ‘호스피스’ 관련 의료조항이 별도 조항으로 더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존엄사법에서 그치지 않고 적극적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이 허용되는 안락사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우리 형법도 그에 맞는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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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2/17 [01:48]  최종편집: ⓒ 일다
 
위드 09/02/18 [09:03] 수정 삭제  
 
테레사 수녀 개인에 대한 얘기였다기보다, 거리의 가난한 죽음을 보살피는 일을 하는 수녀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죠.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간병해주는 분들이었죠.
보통의 사람들로선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겠지만, 어쩌면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도 배워야 할 소중한 역할이라는 생각도 들었죠.

그곳에는 고통과 죽음이 있었지만, 사랑과 존엄도 있어서 아름다워보이더군요. 그곳에는 과잉 의료행위나 생명연장 장치같은 건 없어보이더군요.
silver 09/02/28 [11:41] 수정 삭제  
  안녕하세요,
중요한 의제에 대해 논의를 시작하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미국에서 여러 학자들이 적극적 안락사 (의사 보조 자살) 가 허용되는 주의 경우, 다른사람의 보살핌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여성이 남성들보다 이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여러 사람의 자살을 도와 감옥에 간 커볼키안 의사의 경우에도 죽은 사람들 중에 여성들이 많았고, 이 여성들 중에는 치명적인 질병이 아니지만 다른 사람의 보조를 받는 장애인인 경우도 많았습니다.
여성주의적으로, 또 장애, 노인인권의 면에서 적극적 안락사와 의사보조자살에 대해 서구에서 많은 논쟁과 의견차이가 있고, 한국에서도 많은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적극적 안락사는 죽음에 가까운 질병을 가진 사람에 대한 고통완화 치료와 함께 아우러지기 힘든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인용하신 의사의 관점은 환자들의 관점이나 의학의 도움으로 살고 있는 환자나 장애인들의 삶이 가치절하되는 것에 대한 비판을 고려하지 않은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 영화 밀리어 달러 베이비에서 장애를 가지게 된 여성의 자살을 보조한 것에 관해 미국 장애인들이 많은 항의 집회를 하여 자신들의 삶을 존엄하지 않은 것으로 보는 것에 대해 반대하였습니다. 혹 다른 자료나 논의에 관해 질문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이츠 09/02/28 [12:32] 수정 삭제  
  위에 의견글 쓰신 걸 보고 저도 한 마디 끼려고요.

밀리언달러베이비가 한국에서 안락사에 대한 논쟁을 가져오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워했었는데, 미국에선 많은 논란이 있었겠죠.
비단 장애인들만이 아니었으리라 생각합니다.(장애인들이 항의했다고 쓰셨지만, 장애인들이 모두 안락사 허용에 반대하는 건 아닐 것입니다. 물론, 비장애인들 중에서도 영화의 논조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겠지요.)
저는 영화의 주인공이 적극적 안락사를 원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개인적으로는 동조가 되지 않았습니다. 나라면 저 상황에서 죽음을 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거죠. 하지만 그녀는 내가 아니기에(실제로 내가 그런 상황이 되어본 적도 없고), 그녀의 소원이 옳지 않다고 판단할 순 없습니다. 그녀의 특수한 상황과 그녀가 스스로 내린 결정에 대해서, 관객들이 '나도 그녀처럼 되어야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조장한다는 견해에 대해선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장애를 가지고 긍정적으로 살아나가는 방법에 대한 영화나 드라마들도 많이 나와있습니다. 감동적이고, 생에 대한 존엄성을 다시 생각해보게 해주는 작품들이죠.
이츠 09/02/28 [12:38] 수정 삭제  
  저는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안락사를 원치 않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죽음의 과정에서 선택권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안락사가 원천봉쇄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안락사를 허용하는 것이, 죽음을 원치 않는 사람에게까지 자살을 하도록 하려는 것은 아니니까요.

의사보조자살이 허용될 경우 여성들이 남성보다 더 많이 택한다고 했을 때, 그것이 꼭 여성들에게 나쁜 일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입장은, 안락사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겠지요.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보살핌에 대해 부담을 더 느끼기 때문에 안락사를 선택한다는 학자들의 이야기가, 그렇기 때문에 여성주의자들은 안락사를 반대해야 한다로 이어져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자기결정권과 관련된 선택의 권한, 사회적인 보살핌서비스와 윤리의식, 성차별의 문제이기 때문이죠.

성차별이 있는 사회에선 어떤 제도도 성차별적으로 운영이 됩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의 방법은, 제도가 성평등하게 운영이 되도록 평가를 통해 좀더 구체적인 보완장치를 해가는 방법이 있겠고요. 또하나는 성평등의식 자체를 고취시키는 교육이라든지 제도적인 대책마련의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도 자체를 무력화하는 것은 성차별 해소에 별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적극적 안락사를 원하는 여성들의 존재는 어쩌고요.

오히려 의사보조자살에 대해선 종교계가 크게 개입해있지요. 신의 뜻이냐 그에 반하느냐를 두고 말입니다. (역사적으로 종교계가 여성의 입장을 고려해서 무언가를 주장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안락사와 낙태 문제가 함께 거론이 되지요.
.. 09/03/19 [14:38] 수정 삭제  
  호스피스에 대해서, 기사 읽으면서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정보를 찾다가 발견한 건데, 국립국어원이 호스피스를 우리 말로 어떻게 바꿀까 고심해서 임종봉사자라는 용어를 선정한 적이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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