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너무 예쁜 토끼

아이들의 즐거움을 위해 제물로 바쳐지는 동물들

정인진 | 기사입력 2009/03/02 [09:44]

그때, 그 너무 예쁜 토끼

아이들의 즐거움을 위해 제물로 바쳐지는 동물들

정인진 | 입력 : 2009/03/02 [09:44]
며칠 전 ‘애완동물의 사육’과 관련해 아이들과 토론을 했다. 어린이들이 스스로 키우겠다며, 학교 앞에서 흔히들 사는 병아리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의 손에 조심성 없게 키워지다 채 며칠 살지 못하고 죽게 되는 병아리를 통해, 동물을 키우는 것을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선택하길 바래서였다.
 
이 공부를 하는 아이들의 태도는 대부분 진지하다. 그리고 공부가 끝날 즈음에는 스스로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다면 잘 생각해보고 사야겠다고 결심을 밝히는 이들이 많다. 적어도 나는 ‘이 동물을 건강하게 잘 키울 수 있을까’에 대해서만이라도 아이들이 고민하고 애완동물을 사길 바란다. 왜냐하면 누구보다 ‘애완동물’의 뜨거운 맛(!)을 본 사람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내 부끄러운 경험을 빼놓지 않고 예로 들려주곤 한다.
 
초등학교 6학년이 막 시작된 봄의 일이다. 그때 마침, 학교에선 토끼를 키우기 시작했는데 토끼들이 어찌나 예쁜지 난 참을 수가 없었다. 너무 예뻐 틈이 날 때마다 토끼장 앞에 붙어 풀도 주며 토끼들을 구경했다.
 
그런데 왜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저렇게 예쁜 토끼가 바로 내 토끼였으면 좋겠다’는 엄청난 생각이 들었던 걸까? 그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점점 더 내 마음을 사로잡았고, 결국 엄마에게 토끼를 키우자고 조르기에 이르렀다. 어머니의 태도는 단호했다. 토끼는 절대 살 수도, 키울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토끼를 원하면 네 돈으로는 살 수 있고, 키우는 것도 모두 스스로 하라고 하셨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셨으면, 뒤로 물러섰어도 좋았을 걸….

그러나 난 그 말에 용기를 얻어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별달리 용돈이란 걸 받지 않았던 나는 그날부터 엄마를 도우면 돈을 요구하고, 심부름을 하다가 거스름돈이라도 몇 푼 남으면 그것을 달라고 해가며, 정말 최선을 다해 돈을 모았다. 그렇게 그때 돈으로 천사백 원을 모았고, 학교에서 토끼를 어디서 사 왔는지도 알아냈다. 그리고 그 토끼농장에서 새끼토끼 두 마리를 사왔다.
 
이제 더 이상 학교 토끼장에는 가지 않았다.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은 방과 후에 토끼풀 뜯는 것이 되었고, 일요일에는 토끼장을 청소하는 것이 되었다. 그날 이후, 모든 내 일상은 토끼를 중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두 즐거운 일이었고, 그 즐거움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그러다 그 해 여름 장마철에 토끼 한 마리가 죽었다.
 
“네 엄마가 죽어도 그렇게 울겠냐?”는 엄마의 핀잔을 들어가며, 난 대성통곡을 하며 울었다.
 
그렇게 가을이 되었다. 엄마가 어느 날,
“이젠 겨울준비를 해야 한다. 될 수 있는 대로 부지런히 토끼가 겨울에 먹을 것들을 뜯어와 햇볕에 바짝 말리거라. 학교에 있을 때, 말리는 건 엄마가 도와줄게.”

 
난 조금은 놀랐다. 그런 준비를 해야 되는지는 정말 모르고 있었다. 약속하신 대로 어머니는 토끼 먹이 말리는 걸 도와주셨다. 어머니의 도움이 없었다면 잘 말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날씨가 점점 서늘해지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서둘러 매일매일 들로 산으로 아카시아 잎이며, 칡잎이며, 토끼 먹이를 부지런히 따다가 말리고 걷고를 반복했다. 그 일은 정말 힘들었다. 그렇게 여러 자루를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한겨울 날씨가 너무 추운 어느 날, 나머지 한 마리조차 죽고 말았다. 가족들은 “얼마나 슬프냐?”며 모두 나를 위로했다. 그러나 그런 위로에도 불구하고, 우선은 눈물이 나지 않았다. 슬픔은커녕, 가슴 한 구석이 시원해지는 감정을 느꼈다. 세상에 이런 감정이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된 건 그때였다.
 
그 경험을 끝으로 난 동물을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는 하지 않았다. 그 일로 동물을 키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깨닫게 된 건 다행이지만, 그걸 깨닫는 데 꼬박 6학년, 1년이 바쳐졌다.

 
냉정하게 나를 들여다보면, 당시 토끼를 키우고 싶다는 마음은 결국 ‘욕심’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예쁜 인형이나 물건을 갖고 싶은 마음과 별로 다르지 않은. 그래서 요즘 아이들이 병아리를 키우고 싶어하는 마음도 이와 비슷할 거라는 걸 잘 안다.
 
아무리 애완동물을 키우는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하더라도, 결국 무수히 많은 동물들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는 걸 감수해야 한다. 그러니 이렇듯 인간에 의해 동물들의 목숨이 소홀히 취급되는 것은 한번 고민해 볼 일이지 않을까.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은 물론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한 생명체를 반려동물로서 책임감 있게 돌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자라지 않은 아이들이 동물을 키우는 것에는 반대다. 그들의 중요한 생명이 서툴고 조심성 없는 아이들에게서 절대 보장받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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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윤 2009/07/09 [17:05] 수정 | 삭제
  • 글을 읽는 동안 25살에 병아리를 선물 받은 기억이 납니다.
    옥상에서 키우는 동안 녀석들은 너무나도 크게 자랐고,
    차마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날아갔으면 하는 바램만이 가득했지요.
    그리고 휴가를 다녀온 사이 녀석들은 사라졌습니다.
    닭을 보내게 되서 미안하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지만 차라리 고마웠습니다.
    더 이상 녀석들과의 동거는 전쟁과 다름없었기 때문입니다.
    닭장 없이 닭을 키우기란 쉽지 않았고,
    첫 마음과 달리 애정은 금세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일본 영화 ['돼지가 있는 교실']을 보았습니다.
    졸업을 압둔 친구들이 돼지를 키우며 겪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혹여,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보세요.
    저는 보는 내내 어쩜 하나 같이 내 마음인지.
    저도 눈물이 뚝뚝
  • day 2009/03/03 [17:58] 수정 | 삭제
  • 사실 어린아이들이 동물을 키운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죠. 부모가 동물을 키우는 집에 아이들이 같이 사는 것이죠. 부모 입장에서 키울 의사가 없었다면 애들이 사달라고 해도 반대할 수밖에 없는 건데, 키울 환경도 안 되는 아이들이 집에 동물을 데리고 들어오면 결국 죽이는 꼴이 되죠. 동물들을 예뻐하면서 생명존중을 배운다기보다 오히려 생명경시를 배우게 되는 일도 많은 것 같습니다.
  • 단추 2009/03/02 [13:24] 수정 | 삭제
  • 친구가 버린(부모님이 버리라고 한) 메추리 새끼들을 굳이 사서 우리 집에 데려와서는, 부모님의 우려 속에 불과 하루만에 다 죽어버렸을 때, 사체를 치울 때의 기분이란..

    학교앞에 잡상인이 노란병아리들을 박스째 데려다놓으면 여지없이 그 귀여운 유혹에 걸려드는 아이들이 많이 있었죠.
    닭이 될 때까지 키우는 경우는, 부모가 닭키워본 경험이 있고 이 병아리들에게 그만큼의 정성을 쏟는 대단한 분이 아니고선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
    결국 아이들은 병아리가 닭이 되기 전에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샀던 것 같아요.

    얘기를 꺼내놓고 보니, 학교앞 동물판매는 금지되어야 할 것 같단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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