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상황을 용기 있게 대면하기

‘교육자인 나도, 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다’

정인진 | 기사입력 2009/04/06 [08:46]

아이의 상황을 용기 있게 대면하기

‘교육자인 나도, 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다’

정인진 | 입력 : 2009/04/06 [08:46]
지현이 어머니께 지현이와 공부도, 도서관에 가는 것도 그만 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린 것이 지난 1월의 일이고, 그로부터 세 달이 지났다.
 
나는 준영이의 발전에 고무되어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도 가르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내 교육프로그램이 그들에게도 충분히 효과적이라는 사실에 흥분해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래서 지현이를 가르치겠다고 덥석 손을 내민 것이 사실이다.
 
내가 지현이를 처음 만났을 때, 지현이는 당시 2학년이었다. 그녀는 지적 능력이나 자기 생각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능력은 여느 아이와 비교해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사회성은 많이 떨어졌다. 의사소통이 전혀 안 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그것은 감정의 교류와 관계된다. 내 마음이 지현이에게 전혀 전달되지 않는, 마치 벽을 대하는 느낌이랄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현이를 가르치는 것이 너무 힘든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더 가르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지현이 어머니의 태도였다. 나는 처음 지현이와 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전문가의 진단을 받아보길 권했다. 종합적인 진단을 통해 지현이가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한 후에야 그녀에게 필요한 치료나 교육이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겠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진단 받는 걸 주저하셨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지현이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내 수업이나 도서관에 보내는 걸로 그 아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듯 했다. 이건 아니다 싶어, 그녀에게 더 이상 지현이를 가르치지 못하겠다고 말씀 드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병원의 진단을 받길 권했다.
 
그러다 오늘 함께 공부하고 있는 언니, 서현이가 마침 많이 발전하고 있어 그것을 핑계 삼아 전화를 드렸다. 집에는 지현이 어머니는 안 계셨고 아버지가 전화를 받으셨다. 몇 번 뵌 적이 있었고, 아버지와도 기회가 된다면 지현이에 대해 말씀을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어, 지현이의 안부 묻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아버지와의 통화에서 몇 번이나 예약과 취소를 거듭해가며, 아직도 진단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과 많이 망설이고 있다는 솔직한 마음도 들을 수 있었다. 지현이 어머니가 혹시 지현이가 약을 먹게 될까봐 두려워한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 아버지의 말을 듣고 더 잘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무 안타까웠다. 주저할 일이 아니라는 말씀과 함께 내가 왜 지현이 공부를 중단해야겠다고 결심했는지, 어머니께도 말하지 않은 그 이유를 솔직하게 얘기했다.
 
한참 지현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아버지는 어머니가 귀가했다며 전화를 바꿔주셨다. 나는 진단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고, 또 치료를 할지 방치할지조차 진단 후, 부모님이 선택할 수 있는 일 아니냐고. 좀 더 강하게 진단을 받길 권유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어머님께서는 일전에 제게 ‘지현이가 문제 있는 아이로 태어난 것은 제 책임이 아니더라도, 문제를 너무 늦게 발견한 것은 제 책임’이라고 자책하시는 말을 하셨죠? 하지만 어머님은 두 번째 자책을 하시게 될지 몰라요. 이렇게 망설이다 시간만 흘러, 정말 중요한 치료시기를 놓칠 수 있다는 걸 기억하셔야 합니다.”
 
어머니는 진단을 받으러 꼭 가겠다고, 선생님 얘기를 듣고 그렇게 할 마음의 결심이 섰다고 대답하셨지만, 정말 그렇게 할지는 모르겠다. 나는 남의 일에 호기심도 없고 참견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지만, 아이들과 관련해서는 왜 이렇게 오지랖 넓게 행동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없다는 걸, 지현이는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느끼게 해주는 아이다. 진단에 따라 내가 지현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나는 기꺼이 나눌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한 느낌 속에서 ‘그저 좋아지겠지’ 하는 믿음만으로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는 건 아니다. 지현이 부모님이 용기 있게 아이의 문제를 정면으로 대하려 노력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 교육일기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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