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친구란 어떤 존재인가?

우정에 대한 여러 생각들

이경신 | 기사입력 2009/04/27 [03:54]

내게 친구란 어떤 존재인가?

우정에 대한 여러 생각들

이경신 | 입력 : 2009/04/27 [03:54]
마침내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그 친구의 생일이 지난 지도 벌써 두 달이 넘었지만, 그동안 서로 만날 약속잡기가 쉽지 않았다. 난 미리 준비해 둔 생일선물, 삼백초로 염색해서 손수 공구르기를 한 명주스카프를 잊지 않고 챙겨 나갔다. 친구는 스카프를 걸쳐 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이 친구를 안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공간이 달라지면 친구도 달라져
 
▲  [친구2]   © 일러스트-정은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내게는 참 다양한 친구들이 있었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같은 책상 앞에 나란히 앉았던 짝, 집과 학교를 같이 오갔던 길동무, 서점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함께 책을 읽던 책친구, 쉬는 시간이나 방과후 운동장에서 어울려 뛰어 놀던 놀이친구가 있었다. 또 대학생이 되자, 기숙사에서 만난 룸메이트, 정치적 입장을 공유했던 동지, 같은 과 동기나 동아리친구, 밤새도록 술잔을 앞에 놓고 수다를 떨던 술친구 등이 생겼다. 대학을 떠난 후에도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다.

 
아무튼 내게 친구란, 공간을 공유했던 이들 가운데 마음이 통하고 시간과 흥미를 나누었던 이들이었다. 거리가 멀어지면 자연스레 마음도 멀어지고 새로운 공간 속에서 알게 된 새 친구들과 어울리곤 했다. 이처럼 공간의 변화에 따라 친구가 달라지게 된 것은, 함께 시간을 많이 나누면 나눌수록 우정이 돈독해지는 경험과 관련되었던 것 같다.
 
실제로, 초중고등학교 생활을 같이했거나 기숙사에서 일상을 공유했던 친구들이 그 어떤 친구들보다 스스럼없이 가까울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 일상을 자주 공유할 기회가 없어 그처럼 친구 사귀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비록 같은 공간에서 지낸다 할지라도 과도한 경쟁이나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는 경우라면, 우정을 쌓기는 어렵다. 주변사람들 가운데 경쟁적인 직장생활이나 학교생활 속에서 소통할 친구를 얻지 못해 힘들어 하는 경우를 종종 만난다. 게다가 많은 시간을 나누었다고 해도 실제로 대면할 기회가 없는 경우에도 좋은 친구가 되기 어려운 것 같다.
 
내 경우 수년 동안 서신을 교환하면서 사귀었던 친구들도 있었지만, 공간적 거리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요즘 인터넷 공간을 통해서 친구를 사귀는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메일을 주고 받거나 채팅을 하거나 블로깅을 하면서 친구를 사귀는 이도 있지만,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나누는 것이 없다면 공허한 관계가 아니겠는가. 게다가 일방적으로 서신을 끊거나 블로그를 폐쇄하는 등, 그 관계 끊기도 너무나 손쉽다.
 
친구는 다양한 층이 있다
 
사람에 따라 ‘친구’에 대해 생각하는 바는 천차만별이다. 언젠가 외국인 친구와 ‘친구’의 개념을 놓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에게 친구란 ‘그냥 알고 지내는 사람 모두’였던 반면, 내게 친구는 ‘호감을 가지고 있는, 특별히 친한 사람’으로,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이처럼 친구에 대한 생각이 사람에 따라 다른 것만이 아니라, 내 속에서도 다양한 층을 형성하고 있다. 친한 정도의 차이뿐 아니라, 그 친구를 규정하는 내용도 다채롭다. 시간을 나눈 정도, 취미에 따른 차이, 정치적 입장의 공유 정도, 거리상의 차이 등. 게다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공간의 변화에 따라 내 생활과 가치관과 흥미거리가 변하기 때문에, 나의 변화에 따라 친구가 달라지는 것도 지극히 당연하다.
 
어쨌거나 친구들이 누구건 전면적으로 만나고 있지 못하며, 서로 내보이거나 바라보는 지점도 각기 다르다. 어차피 친구란 서로 어떤 면에 호감을 가지고 만나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친구는 내 욕망과 내 결핍을, 즉 내 단면들을 충실히 비춰주는 거울이다. 그리고 그 각각의 친구는 내가 내 속에 갇히지 않고 세상을 접하도록 허용하는 상이한 통로로서 모두 의미가 있다.
 
‘참된 우정’에 대한 고민
 
▲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
‘비록 친구의 층이 다양하다고 해도, 최고의 친구는 가치관이 같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친구를 만나면서, ‘참된 우정’에 대해 나의 진지한 고민이 시작된 것 같다.

 
내 친구들은 대부분 나랑 가치관이 같은 사람이기보다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이었다. 아니, 내가 흉내 낼 수 없는 면을 가지고 있어 존경스러운 사람이기도 했다. 남에 대한 배려심이 깊은 친구, 사회정의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친구, 특별히 글을 잘 쓰는 친구, 재미나게 이야기를 잘 하는 친구, 자기 일에 성실한 친구, 예술적 재능이 돋보이는 친구 등.
 
몇 년 전, 소중하게 생각하던 이십년지기 친구를 잃었다. 정의로운 사람이라 호감을 느껴 친구로 삼았던 그가 부정의한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 순간, 더이상 그를 친구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내가 친구라서 자신의 어떤 모습을 보여도 이해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고 했다. 우리는 친구에 대한 생각이 그렇게 달랐다.
 
‘진정한 친구’라면 적어도 세계를 바라보는 방향이 같아야 할 것이다. 인종차별주의자와 인종차별 반대자가 좋은 친구일 수는 없을 테니까. 오랜 친구가 꼭 최고의 친구일 수는 없는 까닭도 가치관과 관련된다. 오랜 친구는 나의 변화를 오래도록 지켜본 만큼 그 누구보다 나를 잘 이해해 줄 것도 같지만, 채 가치관이 형성되기 전에 알게 된 친구라면 이후 가치관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가는 길이 달라져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게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만남이 과거의 회상에서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만남을 통해 서로가 성장해 나가지 못한다면 진정한 친구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 상대에 대한 배려와 이해도 친구들 사이에서 필수적이지만, 서로의 잘못을 덮어주고 공모하는 관계여서는 안되고, 서로의 잘못된 필요에 부응하거나 손익계산 속에서 유지되는 관계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조직폭력배의 의리가 참된 우정일 수 없는 이유가 그것이다.
 
아무튼 좌절된 우정의 경험은 지금도 내게 상처로 남아 있다. 평생 단 한 명의 친구라도 얻는다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하는 것도, 수많은 친구 가운데 진정한 친구 얻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나 자신부터 성숙해야 하고, 또 그 관계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만큼 진정한 친구는 평생 여럿 얻기 어려울 법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 진정성이 어떠하건, 친구라는 사람들을 여럿 두면서 우정을 나누는 건지도 모른다. 생일선물을 건네고 같이 식사를 하면서 근황을 묻는 것에 그치는 친구처럼 말이다.
 
*함께 읽자.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기원전 106~43년)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숲,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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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09/05/20 [16:59] 수정 | 삭제
  • 나이가 들면서 사람의 정치적 성향을 보게 되더군요.
    그게 꼭 인격적인 면과 상응하진 않더라도 대체로 들어맞는 부분이 있습니다.
    부당한것에 무심하고 편을 들면, 그 자신도 꼭 그런 면이 있어서 같이 있으면 언젠간 뒤통수랄까? 그런 걸 맞기도 하고, 서로 의견이 달라 충돌하기도 하고... 사람이 죽어가는데 뭐 그럴 수도 있지, 라거나 뭐 어때? 라고 하는 사람과 같이 한다는게 참;;;;

    그런데 정의란 것도 절대적 개념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뭐든 딱 단정하긴 어려운 면은 있습니다. 저도 여성이지만, 현실에서 여성이 소수약자여서 여성에 대해 소리를 내는 것이지, 그게 남성이었다면 남성의 편을 들어주고 싶었을 겁니다.
    사람도 변하기 마련이라, 알던 사람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꽤 봅니다.
    그게 또 씁쓸하고, 다시금 어렵다고 생각되는 이유이지요.
  • 수페사라 2009/05/14 [15:08] 수정 | 삭제
  • 우정, 참 좋죠. 그런데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좋은 글귀 새겨두고서 행으로 옮겨둘거라고 한자 한자 써가면서 읽었지요. 법정스님이 친구란 시공간을 초월한 친구라고도 일렀고, 둘 사이의 침묵도 편안하고 좋다고 한다면 친구라고 했었지요. 그리고 친구의 얼굴은 곧 저의 얼굴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서로의 맘을 맑고 곱게 가꿀 수 있도록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우선 선행하는 것은 좋은 친구가 되도록 이것 또한 노력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 사이 2009/04/30 [01:52] 수정 | 삭제
  • 매번 책을 소개해주시는 게 좋아요.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기원전 작성된 글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궁금해서, 책을 꼭 읽어보고 싶네요.
  • voice 2009/04/28 [00:28] 수정 | 삭제
  • 우정에 대해 저도 생각이 많은 편이라서 함께 고민하면서 읽었습니다.
    어린 시절 어떤 기간을 함께했던 친구들과 멀어지는 것이, 연인과 헤어진 것보다도 더 어떤 면에선 받아들이기가 어렵더라구요. 그도 그럴 것이 특별한 갈등이 있는 것도 아닌데, 공간을 달리하고 관심사가 달라지고 인생의 길이 달라지면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멀어져가는 관계라는 것을 미처 예상치못했기 때문인가봐요.
    그리고 저에게 우정이란 큰 의미였나봅니다.
    우정이란, 참으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에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요. 인생에 커다란 선물같아요. 그런데 우정이란 게 어린 시절과는 다르게 찾아오고,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는 사실이 어른이 된 저를 당황스럽게 만들 때가 있지요.
    가치관을 같이 할 수 있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인지, 가치관이란 인생의 행로에 따라서 변하고 생겨나고 없어질 수밖에 없는 것인지, 곰곰 더 생각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