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먹거리, 철 있는 음식을 먹자

나의 건강, 지역경제, 지구환경까지 지키는 방법

이경신 | 기사입력 2009/05/25 [09:28]

가까운 먹거리, 철 있는 음식을 먹자

나의 건강, 지역경제, 지구환경까지 지키는 방법

이경신 | 입력 : 2009/05/25 [09:28]
가족 중 암환자가 있어 생협에서 유기농 식재료를 구입하기 시작한 지도 벌써 수년이 되어간다. 생협에서는 얼마 전부터 내가 구입한 물품이 줄인 이동거리와 이산화탄소 량을 물품공급장에 기입하여 알려주기 시작했다. 이번에 살펴보니 두부, 통밀국수, 잡곡식빵을 구매하면서 78,870km의 수송거리와 1,066g의 이산화탄소를 줄였단다. 실감은 나지 않지만, 놀라운 일이다.
 
지구온난화 막으려면 ‘푸드 마일리지’ 줄여야
 
사실, 푸드 마일리지(food milage)를 진지하게 신경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비록 10여 년 전, 싱싱하다고 생각한 생선이 먼 곳에서 오랜 시간 걸려 우리 밥상에 도달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푸드 마일리지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적도 있었지만 말이다. 내가 식재료의 이동거리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구온난화 때문이다.
 
우리가 의식하건 안 하건, 도시인의 식재료(곡물, 채소, 과일, 육류, 생선, 달걀, 유제품 등)는 생산지에서 마트, 슈퍼, 근처 식품점을 거쳐 우리 집까지 도달하기 위해 비행기, 선박, 트럭 등으로 운송된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화석연료를 소모하고 있다.
 
그런데 음식이 나날이 더 멀리서 운반되어 오는 실정이다 보니 화석연료 소모량도 늘어나고, 그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도 증가하고 있으며, 지구온난화도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운반과정에서 생성되는 온실가스만이 아니라 비료와 농약사용, 포장용 종이나 플라스틱의 생산, 유통, 폐기 즉, 생산과 포장과정에서의 온실가스 배출도 무시할 수 없다.
 
식재료의 원거리 수송은 사실 대규모 식량생산방식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생산량 증대가 목적인 생산중심주의 농경방식은 전통적인 방식과 달리 대규모 단일재배를 지향하며, 기계적 수확 및 화학물질에 의존한다. 비료와 농약에의 의존은 토양의 유기물질을 유실시키고 농작물이 병충해에 취약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더욱더 화학비료와 농약살포에 기대야 하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토양의 사막화 우려가 날로 높아가고 있다.
 
가축사육이나 어패류 양식에 있어서도 다양성은 무시되고 단일 품종 위주의 규모화, 기계화, 화학화의 생산중심적 농경방식이 그대로 적용된다. 대규모 식량생산은 그것이 곡물재배이건, 가축사육이건, 화석연료 의존도를 높이고 토양을 고갈시키고 수질을 오염시키는 등 환경오염을 부추기는 데 있어 차이가 없다.
 
대량생산된 식품, 지역농부와 소비자에게 악영향
 
환경오염 이외에도 이같은 생산방식은 지역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값싼 수입농산물은 지역 농부의 살 길을 막을 뿐만 아니라 지역 일자리를 줄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식량자급도를 떨어뜨리게 하는 것이다.
 
또 소비자에게 미치는 악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국내 농산물의 경우 농약 살포는 재배과정에 그치지만, 수입농산물은 장기저장을 위해 수확 후 저장창고에서, 또 운송과정 중에도 농약을 살포한다. 장기살충 효과를 노리는 수확 후 농약 살포로 인해 수입 농산물의 농약잔류는 심각할 수밖에 없다. 장거리 수송 식재료의 농약 위험뿐만 아니라 병균오염 위험, 영양소 손실은 불기피하다. 따라서 소비자의 건강에 위협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신선하지도 못하고 맛이 없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결과적으로 대량생산된 식품은 비싼 식량에 지나지 않는다. 당장 식품 값 자체만 보더라도, 대량생산품은 식품 자체의 값 이외에도 수송비용, 포장비용, 광고비용, 발색비용 등이 부과되어 농부에게 큰 이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손실까지 야기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는 식품 값 이외의 부대비용까지 감당해야 한다. 게다가 환경, 지역경제, 소비자 건강을 담보로 하는 식품이니 그 비싼 가격이야 말해서 무엇하겠나.
 
철없는 식단에 제철 찾아주기
 
▲ 장영란 <자연달력 제철밥상> (들녁, 2004)
우리의 식단이 공간적 제약만 던져버린 것은 아니다. 시간적 제약 역시도 던져버린 지 오래다. 원거리 식단에다 철없는 식단, 그것이 현재 우리 밥상의 꼴이다.

 
소만이 막 지난 요즘이 예전엔 보릿고개에 해당된다고 한다. 나물도 잡초가 되고 과일은 아직 여물지 않고 여름 작물은 자라고 있고 곡물은 새 순이 올라오는 때라 먹을 것이 없어 배고파 고통 받는 시절 말이다. 하지만 요즘 우리에게는 비닐 하우스 덕분에 사시사철 온갖 나물과 야채를 맛볼 수 있고, 저온저장, 조기 재배된 과일들이 시장에 넘쳐난다. 돈이 없어 굶지, 먹을 것이 없어 굶지는 않는다.
 
먹을 것이 없어 굶는 것보다야 먹을 것이 넘치는 것이 좋은 일이겠지만, 언젠가부터 우리가 철 자체를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는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식단이 철을 잃어가는 동안, 우리는 자연적 시간리듬도 상실하고, 자연을 돌아볼 여유도 없어졌으며, 저도 모르게 자연훼손에 동참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제철 음식은 맛도 좋고, 영양도 풍부하고 값도 싸다. 비닐하우스 생산물은 제철 음식에 비해 필수 영양소가 3분의 1에서 절반이나 부족하다고 한다. 제철 음식을 찾게 되면 자연스레 지역 농산물을 이용하게 되고, 안전한 먹거리를 얻게 되고, 그러다 보면 국내 농산물, 우리 농업을 살리게 되고, 지구환경까지 지키는 데까지 나갈 수 있으니, 여러모로 좋다.
 
비록 지구 온난화로 인해 더 이상 예전의 철을 되찾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자연리듬을 따라 살려는 노력은 중요하다. 우리집 식단도 서서히 철이 들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원거리 식품을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하고 있다. 소위 올리브유와 같은 원거리 유기농 식품에 아직도 집착하고 있으니….
 
요즘엔 자기지역 생산품만 먹는, 다시 말해서 적어도 160km 이상 떨어진 곳의 음식은 먹지 않는 ‘로커보어’(locavore)가 생겨나는 추세란다. 로커보어가 되기는 쉽지 않다. 수련이 필요하다.
 
원거리 유기농과 관행농업 지역농산물 중 무엇을 선택할지는 여전히 어려운 과제다. 현재로는 ‘둘 다 최소로 이용하자’고 타협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적어도 ‘원거리 관행농업 식품은 절대 먹지 말자’며 적극 실천 중이다. 그래서 바나나를 포함해,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먹음직스러운 열대과일에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씩씩하게 비껴가고 있다.
 
*함께 읽자. 장영란 <자연달력 제철밥상> (들녁,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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