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창안한 ‘셀프 퍼포머’의 의미처럼, 그녀는 현재 ‘보이스 씨어터 몸MOM 소리’의 대표이자 공연자이며 연출가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목소리(Voice)를 통해 삶을 바라보고 자신과 타인을 치유하고자 한다. 소리를 통해 자신을 버리고, 자신을 만나다 김진영씨가 자신의 ‘소리’를 예술적 재료로 사용하는 공연자가 된 것은 본래 인생계획에는 없던 일이었다. “저는 오랜 기간 동안 불문학을 공부했었어요. 불문학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고, 학계에서는 나름 촉망 받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불문학 박사가 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어요. 학부 때 불어 연극 반에서 활동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취미였죠. 그런데 박사과정에 진학 후 공연예술 분야의 연출공부를 하던 지금의 남편을 만난 것이 저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어요. 결국 수료 후 남편과 함께 공연예술을 공부하러 이스라엘로 유학을 떠났지요.” 무엇보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 타인들 앞에서 자신을 거리낌없이 표현해야 하는 작업이 익숙하지 않아 많은 고민과 갈등을 했다고 한다.
그녀가 말하는 소리(Voice)는 ‘단지 대사를 전달하고 노래를 부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창작의 씨앗을 품고 창작의 전 과정을 이끄는 주된 예술 재료이자 치유의 수단’이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소리 수업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소리와 접했을 때 느꼈던 충격에서 비롯되었다. “내 몸의 중심을 여기 저기로 옮겨서 다양한 소리를 내던 중 자신이 빠져나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제 나는 다른 그 누구도 될 수 있다는 그런 느낌이요. 그 과정을 통해서 내 자신이 타인이 되어 다시 나를 바라보게 되었어요. 마치 내가 넓어진 느낌이랄까. 이 때 느꼈던 해방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요. 아마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과 비슷한 느낌일 거에요.” 아내로서가 아닌, 여성의 목소리 낼 수 있도록 김진영씨의 작품을 살펴 보면 소리(Voice)라는 재료를 사용하여 여성의 삶이라는 항아리를 빚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스라엘 유학시절부터 공연해온 <꿈70-18>과 <나의 배꼽이야기>는 그녀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여성의 삶을 목소리와 다양한 시각적 재료를 활용해 풀어나간다. “작품 <꿈70-18>을 통해 늙음과 죽음을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는 여성들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이스라엘에 있을 때 아주 진하고 두껍게 화장을 하고 머리에 빨간 꽃을 꽂고 다니는 할머니들을 종종 봤거든요. 그들은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였어요. 사실 우리 주위에서도 대부분의 여성들은 생명과 젊음을 그러잡고 놓지 않으려 하잖아요. 그것이 너무 강해서 가끔은 무섭고 섬뜩하죠.”
“제가 어렸을 적에 저희 엄마는 배꼽은 절대 만지지 말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배꼽은 저에게 일종의 봉인된 장소였죠 그런데 어느 날 샤워를 하다 문득 배꼽을 한참 동안 들여다 보니 그 안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몽환적인 상태에 빠졌어요. 그 안에 들어가면 무언가 나에게 금기되었던 세계가 존재할 것 같다는 느낌이요. 그리고 그 세계는 곧 여성의 억압된 ‘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작품 안에서 저는 김진영이라는 제 자신으로 연기를 하고 있어요. 나에게 금기를 주었던 엄마를 딛고 일어서서 스스로 엄마가 될 만큼 성숙해지는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지요.” 한국에 돌아온 후 그녀는 남편 이철성씨와 함께 ‘비주얼씨어터컴퍼니 꽃’을 창단하고 함께 활동했다. 그러나 남성중심주의적인 한국사회에서 남편과 함께 활동하는 여성예술가는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기 쉽지 않았다. “당시 몇몇 미디어가 ‘비주얼씨어터컴퍼니 꽃’과 관련한 기사를 실었는데, 기사에 ‘이철성씨와 그의 아내’로 표현하더군요. 아무래도 전체적인 극단의 운영이나 작품의 내용이 남편 중심으로 흘러가게 되다 보니, 여성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저만의 독립적인 극단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2007년 겨울에 창단한 ‘보이스시어터 몸MOM 소리’를 통해, 그녀는 자신의 영역인 소리(Voice)와 여성의 삶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소리의 치유능력을 살린 보이스 세라피(Voice Therapy)
하지만 수업을 통해 수강생들과 소통하면서, 본인 스스로도 계속 치유를 받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종종 수강생들이 소리를 내는 작업을 통해 막혀 있던 무언가가 뻥 뚫린 느낌이 든다고 말하곤 해요. 심지어 어떤 수강생들은 이스라엘에서 저를 지도해 주신 선생님께 직접 배우고 싶다며, 연락처를 알려 달라고도 하더라구요. 저 역시 수업시간에 수강생들과 함께 소리를 내면서 계속해서 그들로부터 힘을 얻고 새로운 예술적 재료를 찾아가고 있어요.” 의도한 건 아니지만 지난 일년 반 동안 보이스 세라피에 참여한 50~60명의 수강생들 중에서 남성은 단 세 명뿐이었다. 그녀는 소리가 여성적 재료이기 때문인 것 같다고 설명한다. “소리는 형태가 없고, 언어와는 달리 비사회화 된 재료이지요. 그것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감각하고 소통하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에요. 아무래도 이성과 논리의 영역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에게는 생소한 영역으로 느껴질 거에요.” 현재 김진영씨는 둘째 출산을 앞두고 있어 당분간 그녀의 공연을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출산 이후 그녀에게는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보이스 세라피를 진행하게 된 것. “시각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보다 훨씬 더 민감한 청각을 가지고 있지요. 그래서 수업을 진행하기가 조금 더 어려울 듯해요. 하지만 그들이 대상에 대해 가지는 느낌을 소리와 연결시켜 표현할 수 있다면,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조금도 풍요롭고 수월해 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특별한 태교 없이 시간이 나는 대로 아이에게 소리를 계속 들려주며 교감하고 있다는 김진영씨. 앞으로 그녀가 작품을 통해 더욱 더 성숙하고 싶은 여성의 목소리(Voice)를 내기를 기대해 본다.
이 기사 좋아요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많이 본 기사
일다의 방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