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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부가 되다, 경작본능을 깨우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활발해지는 ‘도시농업’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이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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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난 대구녹색소비자연대에서 진행하는 도시농부학교 2기 수강생이 되어 초보 도시농부의 길로 발을 내디뎠다.
 
베란다에 만든 텃밭
 
▲ 도시농부학교에 입학해 초보 도시농부의 길로 발을 내디뎠다. 
어릴 적 방학 때면 과수원을 하던 시골 할아버지댁에 내려가 개학할 때까지 보냈던 기억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수십 년간 마당에 온갖 채소들을 심어 밥상에 올리셨던 부모님의 영향 때문일까. 어쨌든 내게도 경작본능이 잠재하고 있었는지 도시농부학교를 시작하기 전 두 번의 농사(?) 경험이 있다.
 
결혼 후 주택에 살기 시작한 그 이듬해 봄, 베란다에 스티로폼 상자로 텃밭을 만들었는데, 그것도 처음부터 욕심만 많아 큰 상자를 8개나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사전 지식도 없이 그저 심고 싶었던 열무, 토마토, 오이 등 여러 가지를 심었었는데, 몇 달이 지나면서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아지고, 땅심이 없어서인지 생각만큼 자라주지 않아서 무심해지고 게으름을 피워 결국 그 해 토마토 몇 개 따먹은 게 전부였었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는 근교의 주말농장을 8평 분양 받아 봄에 씨를 뿌렸었는데, 그때도 역시 책을 찾아본다거나 공부를 하지 않고 상추, 쑥갓 등 잎채소들만 잔뜩 심었었다. 집에서 차로 30-40분이 걸리는 거리인데다 대중교통으로는 가기 힘들다 보니 밭에 가는 일이 점점 드문드문해지고, 어쩌다 한번 들르면 솎아내기에 바빴고 무성하게 올라온 잡초들과 씨름하다 지쳐갔다. 그렇게 어설프게 시작한 두 번의 농사(?) 경험은 끝을 보지 못한, 성과물 없이 실패로 끝났지만 언젠가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만큼은 간직하고 있었다.
 
동네를 산책하다 자투리땅에 심겨진 파, 상추 등을 보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고, 화분, 스티로폼 상자에 심어놓은 채소들을 만날 때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혹여 자투리땅 남는 게 없나 유심히 보며 다녀보았지만, 어르신들이 많이 살아서인지 그들의 부지런함에 내가 돌볼 땅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도시농부학교에 입학하다 

▲ 세계 곳곳에서 도시농업이 활성화되고 있다.  ©이명희
그렇게 몇 년을 마음만 있고, 몸은 움직이지 않고 보내던 지난해 여름 대구녹색소비자연대에서 1기 도시농부학교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신청을 했었다. 기존의 주말농장과 달리 개인이 몇 평을 분양 받아 농작물을 키우는 게 아니라 10여 가족이 공동으로 밭을 돌보고, 농사에 대한 지식뿐 아니라 생태적인 삶에 대해서 강의도 듣는 방식이었다. 밭에는 김장용 배추와 무를 심어 몇 달간 돌본 후 초겨울 수확해서 다같이 모여 김장을 하면서 그 해 농사를 마무리하였다.
 

가을농사만 경험을 한지라 봄부터 시작하기를 손꼽아 기다리다가 올 봄 드디어 2기 도시농부학교가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지난해보다 밭 규모도 커지고 대중교통으로도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의 밭을 얻어서 시작하게 되었다. 스무 가족이 도시농부학교 수강생이 되었고, 한 달에 한두 번 씨뿌리기, 거름만들기 등의 농사짓는데 필요한 실질적인 강의와 친환경농업 및 생태적인 삶 등에 대해서도 강의를 듣고, 주말이면 밭에 모여 작물을 돌보고 있다.
 
주변에서 '도시농부학교'라고 하면 주말농장이랑 다른 건지, 다르다면 뭐가 다른지 물어보곤 한다. 기존의 주말농장이 아주 소액을 지불하고 밭을 10평정도 분양 받아 각자 심고 싶은 작물을 심고 몇 가지 농사기술을 배우고 개인이 한해 농사를 짓는 방식이라면, 도시농부학교는 참여하는 사람들이 농사에 대한 철학을 함께 배우고 땅을 살리는 친환경농법을 시도함으로써 생명의 근원인 흙, 자연, 작물과 교감하고 생태적 가치와 자급적인 삶을 위한 도시농업을 활성화하고 이를 위한 도시농부를 길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도시농업은 말 그대로 도시에서 일어나는 모든 농업활동을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농지가 없는 시민들이 도시의 소규모 땅을 이용하여 자신이 먹을 농산물을 직접 재배하는 것으로, 베란다, 옥상, 동네 자투리땅 등에서 짓는 모든 농사를 포함한다.
 
이미 도시농업으로 잘 알려진 쿠바의 아바나뿐 아니라 일본, 북미, 유럽 등 세계 곳곳에서 도시농업이 확산되고 있다. 경작하는 것을 조건으로 국유지를 무상으로 시민에게 대여해주기도 하고, 아파트 단지 내 도시텃밭, 대학건물 옥상의 텃밭, 도시 근교의 시민농장, 도심 한가운데 시민공원을 텃밭화하기도 하는 등 도시농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벌어지고 있다.
 
도시농부가 되면서 달라진 점들 

▲  도시농부로 살면서 내게 많은 변화가 생겼다.   © 이명희
도시 내 텃밭은 콘크리트 건물과 아스팔트로 덮인 도시공간에 토양공간을 확보함으로써 도시생태계를 유지해주고, 지역을 활성화시키며, 흙으로부터 멀어진 시민들에게 흙, 자연과 교감할 수 있게 해주며, 가족의 여가활동의 장이 되기도 하고 생산과 노동, 수확의 기쁨을 안겨줄 뿐 아니라 도시녹지 기능의 장점도 가진다.
 
도시농부학교를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난 지금 내게 있어 가장 큰 변화는 하늘에 관심이 많아졌다는 거다. 물론 나뿐 아니라 함께 농사를 짓는 이들 모두가 그렇다. 그 어느 때보다도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이고, 언제 비가 오려나 싶어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이 잦다. 조금이라도 구름이 낀다 싶으면 비가 오겠지 하고 내심 기대하고, 가뭄에 작물이 타들어가는 걸 보면 가슴이 타들어가는 아픔을 느끼기도 한다. 그야말로 하늘 무서운 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지구온난화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도 막상 직접적으로 와 닿지 않던 그 위험이, 절기에 비해 높아진 기온과 극심한 가뭄, 그리고 호우성 비 등에 텃밭의 농작물이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면서야 깨닫기도 한다.
 
또한 주말이면 하루 종일 뒹굴거나 TV, 컴퓨터, 책이 있어야 시간을 보낼 수 있었는데, 이젠 텃밭으로 간다. 어떤 날은 아침 일찍 일어나 텃밭에 들렀다 출근하기도 한다. 맑은 공기를 마시고, 흙을 만지며, 밭에서 만나는 몇몇 벌레들을 유심히 관찰하기도 하고, 혹여 늦되는 녀석들이 있으면 혼자 중얼중얼 말 걸기도 하고, 잘 자라라고 주문도 걸어본다.
 
그렇게 밭에서 보내는 시간은 내게 명상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이른 아침 홀로 밭에 앉아 훌쩍 자란 작물들 들여다보고, 물주고, 새소리를 듣노라면 자연의 품에 폭 안겨있는 느낌으로 편안해지는 거다. 밭에서 보게 되는 작은 벌레, 생명체에게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 이 또한 도시농부가 되면서 달라진 점이다.
 
그리고 가장 좋은 건 우리 집 밥상에 올릴 싱싱한 채소를 길러먹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도시농부학교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과 자급적인 삶, 생태적인 가치를 나누고 농사짓는 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공동체적 삶을 작게나마 경험한다는 것이다. 혹여 바빠서 돌보지 못해 잡초가 무성한 밭이 있다면 굳이 자기 밭이 아니더라도 호미를 들고 김을 매고, 가뭄에 이웃밭 작물이 타들어가는 것을 보면 힘들어도 물 길어다 준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 나누고 돕는 삶을 자연스럽게 몸으로 배워가고 있다.

-필자 이명희님은 대구사회연구소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도시에서 생태적으로 살아가기> 블로그(blog.naver.com/pado1425)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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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6/15 [10:18]  최종편집: ⓒ 일다
 
. 09/06/15 [16:55] 수정 삭제  
  경작본능이라는 말이 참 좋네요..
저도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에겐 생산본능이란 게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해왔는데... ^^
sejong0514 09/08/18 [15:11] 수정 삭제  
  저는 모든 식물 자체를 좋아합니다. 씨를 뿌려서 어린 싹이 자라는 것만 봐도 신기하고, 마냥 즐거움을 느낍니다. 저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도시농부학교" 학생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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