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아래 유리문을 지나면 금지표시의 발판이 나오고 그것을 밟으면 밝은 조명이 터진다. 순간 눈앞에 감시카메라를 인식하게 되는데, 그 아래에 있는 모니터를 통해 나보다 먼저 발판을 밟아 카메라에 찍힌 관객의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규율.장치"/모니터링 팀/인터랙티브설치/2009) 군복을 입은 사람들의 손목과 발목에 긴 나무막대가 연결되어 있고, 이들은 또 다른 군복 입은 사람의 호령에 의해 행진을 하기도 하고 일률적으로 담배를 피우기도 하며 심지어 화장실에서 소변까지 함께 본다. 대한민국의 군대문화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이 작업의 제목은 “일심동체”(You go, we go/옥정호/단채널 비디오 4’ 05“/2008)이다. 모자를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끼고, 어두운 색의 옷을 입은 사람이 아파트단지 안 놀이터 근처를 서성이고 있다. 곧 경비가 다가와 신분증을 제시하라고 요구한다. 왜 그러냐는 ‘수상한 사람’의 질문에, 경비들은 주민신고가 들어왔다고 답한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경찰이 출동하고, 경찰 역시 신분증을 요구한다.
많은 사람의 인터뷰와 퍼포먼스, 몰래카메라를 통해 만들어진 “Pretty Good Look”(모니터링 팀/단채널 비디오 22’ 22“/2009)는 안전한(?) 사회를 위한 ‘필터링’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현저동 0번지”(박용석/단채널 비디오 4‘ 28“/2008)는 철거된 공터에서 골프를 치거나 축구를 하는, 우습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풍경이 펼쳐진다. 서울 중심부의 산동네 현저동 철거현장에서 버려진 집기들을 모아 청테이프로 대강 이어 붙여 한 사람이 간신히 누울 정도의 집을 만들고, 거기에 군복무늬의 깃발을 달고는 페인트를 칠해 집을 지워버리고, 그 안에 누워 몸을 숨기는 영상작업. 무분별한 철거와 건설을 통해 풍경을 ‘관리’하며 이익을 취했던 이들의 속성에 대해 간결하고 명확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전시장 문을 들어서기 전부터 작업이 시작되고, 네모난 전시장을 비정형으로 구획해 놓은 것이 단지 이색적이라는 느낌을 넘어 전시장이라는 공간(제도 혹은 물리적 영역), 작업의 시작과 끝이라는 경계에 대한 고민을 느낄 수 있는 전시다. 현대의 감시체제와 ‘본다는 것’과 ‘보여진다는 것’의 불균형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감시와 통제가 일상화되어 있는 우리의 현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전시 제목에 대해 질문을 하게 된다. “유토피아 관리(Managing Utopia)” 누구를 위한 유토피아일까?
이 파놉티콘의 일망 감시장치는 감시의 민주주의 장치가 되어 전근대적 사회에서 군주의 강요적으로 권위를 내세우면서 처벌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게 권력의 시스템이 자동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장치다. 특히 이 장치가 가지고 있는 가시성의 불균형(봄-보여짐) 구조는 개인들로 하여금 무의식적으로 권력의 체제에 순응하게 만든다. <전시 서문에서 일부 옮김> 전시 제목: “유토피아 관리(Managing Utopia)” 전시 장소: 서울 안국동 175 갤러리 (안국역 1번 출구 안국빌딩 지하) 전시 일시: 2009년 6월 2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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