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룩시장 통해 ‘좋은 소비’를 고민한다

알뜰구매와 여가를 함께즐기는 주말 벼룩시장 나들이

이경신 | 기사입력 2009/07/06 [01:38]

벼룩시장 통해 ‘좋은 소비’를 고민한다

알뜰구매와 여가를 함께즐기는 주말 벼룩시장 나들이

이경신 | 입력 : 2009/07/06 [01:38]
토요일 오후, 오랜만에 친구와 벼룩시장을 찾았다. 우리 동네는 한겨울만 제외하고 매주 토요일, 차량을 통제한 공원 주변도로에서 벼룩시장이 열린다.

토요일에 일을 하다 보니 한동안 벼룩시장 찾을 짬을 내지 못했는데, 마침 시간이 비기도 했고, 잠시 다녀오자는 친구의 제안에 좀 주저하면서 따라 나섰다. 
내가 흔쾌히 나서지 못한 이유는, 여름 한낮의 더위도 더위지만 벼룩시장의 붐비는 인파와 오래된 물건들의 먼지로 인해 알레르기가 다시 유발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벼룩시장은 주말 오후를 보내기에 재미난 공간이다.

▲ 지역주민들에게 알뜰한 소비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주말 벼룩시장의 활발한 풍경.  © 이경신

파리에서 처음 맺은 벼룩시장과의 인연
 
벼룩시장과 인연을 맺은 것은 유학시절에서였다. 처음 파리 벼룩시장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외국인인 내게 남의 나라 벼룩시장은 알뜰소비를 위한 공간이라기보다는 그야말로 색다른 구경거리였을 뿐이었다.
 
진기한 골동품에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줘도 가져가지 않을 쓰레기처럼 보이는 물건들-목이 부러져 몸통은 달아나고 없는 인형머리, 먼지투성이인 지저분한 책, 낡아빠진 신발, 입던 속옷 등-까지 펼쳐놓고 팔고 있는 벼룩시장의 풍경은 낯설기만 했고,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 <녹색시민 구보씨의 하루> 외서 표지
비록 처음 벼룩시장 방문은 소매치기 당한 지갑에 대한 불쾌한 기억으로 끝이 났지만, 그때 이후 유학시절 동안 벼룩시장은 옷, 책과 같은 생활 필수품, CD, 비디오테이프와 같은 오락거리, 친구나 친지에게 선물할 기념품 등을 마련할 수 있는, 넉넉지 못한 유학생에게 꼭 필요한 공간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따분한 일상에 활기를 더해 주는, 기분전환의 주말 나들이 장소로 안성맞춤이었다.
 
특히 프랑스 북부지방에서 몇 년간 생활하는 동안, 벼룩시장을 방문하는 것은 완전히 내 일상이 되었다. 그곳 벼룩시장이 3월부터 12월까지 주말과 공휴일마다 동네를 돌며 다양한 내용으로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기한 가구 등을 파는 골동품 시장, 집안의 헌 물건 및 창고에 틀어박혀 있던 잡동사니를 꺼내와 파는 전형적인 벼룩시장, 동전, 우표, 엽서, 전화카드, 인형 등을 사고파는 수집가를 위한 콜렉션 장, 고물상의 온갖 고물 및 싸구려 물건을 파는 시장, 지방 특산물을 파는 특산물 장, 12월의 크리스마스 장.
 
그러다 보니 휴대하기 좋은 벼룩시장 관련책자도 판매하고 있다. 그 속에는 벼룩시장이 열리는 장소와 날짜, 시간, 그리고 벼룩시장의 특성이 기록되어 있어 무척 편리하다. 지금도 그 책을 펼쳐 들면 벼룩시장 방문계획을 잡으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우리 집 에는 당시에 구입했던 촛대, 액자, 책, 인형 등이 과거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아직도 그대로 있다.
 
알뜰장터 벼룩시장, 서민문화공간으로 거듭나
 
가난한 유학생인 나뿐만 아니라, 북불 주민들에게도 벼룩시장은 생활필수품을 마련하는 알뜰장터이면서, 값싼 나들이 공간, 축제의 장이기도 했다. 이같은 벼룩시장이 처음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은, 전후 생계가 어려워진 주민들이 벼룩시장을 생존을 위한 방편으로 이용하면서였다고 한다.  

▲ 벼룩시장에 펼쳐져 있는 물건들 ©이경신
우리나라도 IMF, 카드대란을 포함한 최근의 경제불황까지 몇 차례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벼룩시장이 차츰 자리잡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우리 시(市)만 해도 초창기에는 몇몇 시민들이 사용하던 물건들을 챙겨 나와 파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그런 시민들도 넘쳐나고, 그들 사이에서 고물과 싸구려 물건을 파는 장사꾼들까지 부쩍 늘어났다.
 
지금도 벼룩시장은 여전히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자리 세 없이 제공되고 장사꾼은 단속의 대상이지만, 점점 자리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어 언젠가는 북불의 동네 벼룩시장처럼 자리 세를 받는 날이 올 것도 같다.

 
물론 아직까지는 각 동네마다 벼룩시장이 생겨나거나 골동품, 수집품을 판매하는 특별 장이 형성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시(市) 벼룩시장도 시민의 알뜰장터로, 또 주말 나들이 공간으로 나름의 제 몫을 해내고 있다. 바로 옆의 공원에서는 행사나 축제가 벌어지기도 해서 시민들은 그냥 주변 이곳 저곳을 어슬렁거리며 주말의 여유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다. 이번에는 남편들의 김치경연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적게, 오래 사용하고 나누는 것이 ‘좋은 소비’
 
이처럼 어려운 살림살이 속에서 물자를 아껴 쓰기 위해 생겨난 벼룩시장이 오늘날처럼 지구가 심각하게 고갈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좋은 소비’의 의미 있는 대안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오늘날 소비는 세계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활동일 수밖에 없다. 내가 구매해서 사용하는 물건은 여러 나라를 거쳐 생산되기에, 그 생산경로를 세세하게 따져 들기도 어려울 만큼 복잡하다. 그래서 우리는 물건을 소비하는 일이 이웃나라의 노동자를 착취하고, 땅과 물을 오염시키고, 동식물에게 심각한 해를 끼칠 수 있고, 기후변화를 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오직 소비된 물건이 내 몸에 직접 피해를 줄 때에만 문제 삼을 따름이다. 
 

▲ 동네 벼룩시장은 알뜰소비뿐 아니라, 여가소비에 있어서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 이경신

게다가 우리나라는 값싼 새 물건들이 넘쳐나고 있어, 굳이 낡은 물건을 오래도록 사용하거나 헌 것을 구매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값싼 물건은 이웃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쉽고, 값싸기에 그만큼 쉽게 쓰레기로 버려지니 그 쓰레기 처리비용과 환경에 미치는 해악은 엄청나다.

 
가장 좋은 소비란 당연히 최소로 소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최대한 오래 사용하고 쓰레기를 적게 만드는 쪽으로 소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물건을 구매하는 즐거움을 포기하기도 어렵고, 지겨워서 또는 더 이상 필요치 않아 소유하고 있던 물건을 처분하고 싶다면, 자신의 물건을 다른 이의 물건과 물물교환하거나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서로 공짜로 주고 받거나, 아니면 벼룩시장과 같은 오프공간이나 인터넷 온라인 공간을 이용해 싼 값에 판매하고 구매하여 물건이 재사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은 소비의 방법일 수 있다.
 
무엇보다 동네 벼룩시장은 물질적 소비뿐만 아니라 여가소비에 있어서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주목하자. 원거리를 이동하는 과도한 에너지 소모 없이도 즐거운 시간을 도모할 수 있는 놀이공간의 역할도 해줄 수 있으니 말이다.
 
북새통의 벼룩시장을 천천히 걷다가 친구는 스웨터와 머리핀을, 난 할머니께서 손수 짠 수세미 두 개를 샀다. ‘또 뭐 없을까?’ 하고 다시 두리번거리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다들 비닐을 덮거나 짐을 다시 꾸리거나 하며 정신 없이 분주해졌다. 한 차례 소나기가 지나가고 벼룩시장도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우리도 우산을 접고 다시 산더미 같은 잡동사니를 헤치며 보물찾기를 계속했다.
 
*함께 읽자. 존 라이언& 앨런 테인 더닝 <녹색시민 구보씨의 하루> (그물코,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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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코 2009/07/06 [18:01] 수정 | 삭제
  • 물물교환이란 참 좋은 것이죠.
    절약이라는 점도 좋지만..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다는 점에서도요..
  • 이경신 2009/07/06 [15:09] 수정 | 삭제
  • 안양시 중앙공원근처의 벼룩시장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후 12시에서 5시까지 열립니다. 구경오세요.
  • 2009/07/06 [14:14] 수정 | 삭제
  • 여기 혹시 평촌?범계 쪽인가요? 한 번 가봤는데 굉장히 판이 커서 놀랐어요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 매주 토요일에 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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