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다는 라오스의 문화, 생태, 정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여행기를 연재합니다. 필자 이영란님은 라오스를 고향처럼 생각할 정도로 특별한 인연이 있는 분으로, <싸바이디 라오스>의 저자입니다. –편집자 주]
들과 산, 강에 지천인 먹을거리
라오스에서 주식인 찹쌀은 자기 논밭(라오스는 화전으로 일군 비탈이 심한 산밭에서도 우기에는 벼를 많이 재배한다)에서 나는 것으로 충분히 먹는다. 도시에 살고 전업이 있어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도 쌀을 대주는 친척이 있어 사먹는 경우는 많지 않다. 고기를 잘 안 먹기도 하지만, (딱히 불교의 영향 때문인 것 같지는 않다) 단백질을 섭취하는데 돈이 많이 들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세계 최빈국이라는 고정관련에 따라 생각하기 쉬운, 없어서 못 먹는 그런 것은 아니다. 물고기라면 대하(大河) 매컹부터 작은 실개천까지 그냥 잡을 수 있는 곳이 지천이고, 강기슭은 물론 논, 울타리 안까지 연못을 만들어 양식하는 집도 많다. 집집마다 오리나 거위, 칠면조, 염소, 돼지, (물)소 중 보통 한 두 종류는 직접 키우고 닭이라면 없는 집이 없다. 제철이 아니어서 또는 잡을 만한 게 없을 때, 잔치 같이 많은 양이 필요할 때는 시장에서 사야 하겠지만, 고기를 일상적으로 먹기 위해 돈 들일 일이 없다. 논밭 사이 키 작고 암팡진 그루엔 아무렇지 않게 파인애플이 달린다. 집집의 울타리 안팎엔 바나나, 라임, 망고, 또 영어로도 이름이 없는 수많은 과일이 열린다. 코코넛은 예전 우리 남산에 소나무가 많았다는 만큼이나 시선이 닿는 곳마다 솟아 여기가 라오스임을 말해주고. 내게 있는 과일이라도 이웃이 주면 받고, 이웃에 없는 과일이 나면 나는 당연히 나누어 준다. 역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부식도 아닌 과일에 돈 쓸 일도 없다. 그렇다면 가장 많이 먹는 부식인 야채는 어떨까? 야채를 가장 마지막에 말하는 이유가 이거다. 정말 돈을 거의 들이지 않기 때문. 먹을거리 중에 가장 돈이 안 드는 품목이다. 야채는 종류에 따라 작은 텃밭, 화단, 습지, 들판, 숲 심지어 길거리 주변에서 나는 것으로 충분하다. 시장에서 사야 하는 것이라도 1킬로그램이나 되는 것을 우리 돈 몇 백 원으로 살 수 있으니 말이다. 사회주의여서 옷도 배급한다?
아짠 웡펟은 야간 대학에서 교수를 겸업하는 우리 학교 영어 선생님으로, 나와 함께 그 바로 직전에 싸이냐부리 읍내 최고급 양복점에서 20만낍에 셔츠와 바지를 맞췄다. 아짠도 강의하는 대학에서 맞춰준 옷도 있고 해서 이번 우리 학교 것은 돈으로 받을 생각이란다. 라오스에서 군인이나 경찰이 제복을 지급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제복을 입지 않는 교사나 다른 공무원들도 우리 학교의 경우처럼 최소한 1년에 한 번 이상 의복(비)을 정기로 지급받는다. 게다가 통상 1년에 몇 번씩은 당 조직 또는 정부 각종 행사에 동원되어 행사에 필요한 의복을 지급받는다. 또 이런 행사에는 대부분 학생들이 포함된다. 이렇게 라오스에서 옷을 지급하는 것은 기관은 당과 정부 조직만은 아니다. 국제기구나 외국 원조단체도 예외가 아니다. 캠페인을 홍보하고 참여를 독려하는 수단으로 옷을 쓰지 않는 경우가 없을 정도다. 동네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옷을 보면 그동안 여기 싸이냐부리에서 어느 단체가 무슨 캠페인을 해왔는지 한 눈에 꿸 수 있을 정도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주인아저씨가 즐겨 입던 분홍색의 에이즈예방 콘돔사용 홍보 티셔츠. 라오스에서는 국제기구나 원조단체의 프로그램도 결국 정부정책으로 수용되어 집행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의복도 배급하는 사회주의 정책에 따라 정부관련 조직에서만 수행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아짠 웡펟의 경우를 보면 이도 아닌 것 같다. 아짠이 영어 교수를 하고 있는 대학은 사립이다. 또 민간 회사 심지어는 웬만한 규모의 가게나 음식점에서도 의복(비)이 지급되고 있는 걸 보았으니 말이다. 생각은 라오스 스님들이 시주 받는 주황색 가사 천에까지 확장된다. 매일 새벽 탁발로는 주로 음식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생필품을, 1년에 두 번 정도는 옷감을 공양 받는다. (스님은 라오스에서 상당히 중요한 계층이다) 이런 전통적 분위기 때문은 아닐까? 어찌되었든 이렇게 되면, 최소한 공적 활동에 필요한 의복을 사는 데는 특별히 돈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가 된다. 하룻밤 사이에 옮길 수 있는 집
불과 그제까지 오른쪽에 있던 집이 오늘은 왼쪽에 있다. “어제 저녁에 옮겼어요.” 내가 타고 온 자전거를 들여 세워주며 쏨분이 대답했다. 쏨분은 우리 믿따팝 중학교 3학년 4반 학생대표다. 그림도 잘 그리고 나이도 또래보다 세 살이 많아서인지 생각이 깊다. 역시나 무척 놀라워하는 나의 표정을 알아채곤 덧붙인다. “저까지 모두 32명이 함께 들어서 옮겼지요.” 쏨분네 6명 가족이 사는 집은 세 채, 어제 옮긴 가로세로 2미터 정도의 오두막이 그 중 가장 큰 방으로 쓰이는 것이다. 램프의 요정이나 할 수 있을 것 같은 이런 마술(?)은, 또 하나 방으로 쓰던 오두막을 해체하고 그 자리에 시멘트 집을 짓기로 했다가 좀 넓은 곳으로 자리를 잡기 위해 벌어진 일이었다. 나머지 한 채는 부엌으로 쓰이는 곳으로 허물고 말고 할 것도 없어 보이는 것. 집이 세 채라고 하지만 하나를 없애지 않았더라도 이미 가족들이 잘 곳만도 절대 넉넉지 않았다. 게다가 쏨분 집은 읍내에 있으면서 시장과 가장 가까워 산골에 사는 친척들이 매일 와 머물다시피 했다. 그러니 더욱 이젠 어쩌나? 그러나 이런 한국 사람의 걱정은 또 다른 라오스의 마술로 기우가 된다. 쏨분네가 그랬듯이 라오스의 친척들은 우리의 가족이상으로 유대가 깊다. 그 친척들이 다시 쏨분네 식구를 재워주고 집을 내주면 되는 것이다. 시장과 아주 가깝지는 않지만 읍내에 쏨분의 이모댁이 있다. 번듯한 시멘트 집에 크기로만도 몇 배가 되니 충분하다. 집을 옮겼다는 32명도 따로 수고비를 챙기지 않아도 되는 이웃이거나 친척이다. 나무로 집을 짓겠다면 돈이 별로 들지 않는다. 쏨분네 나무집 규모라면 서른 두 명이 달라붙어서 옮길 때처럼 하룻밤 만에 지을 수도 있을 거다. 물론 라오스 사람들은 절대 이렇게 하지 않는다. 가족들이 할 수 있는 만큼, 쉬엄쉬엄 기둥 할 나무를 구하고 지붕을 올리고 벽을 만든다. 일단 비만 그을 수 있게 되면 만들고 있는 집에 들어가 서두르지 않고 만들면서 산다. 라오스도 점차 시멘트로 많이 짓는다. 우리 주인집아저씨는 2000년도 초반에 세내기 위한 집을 완성했다. 집 짓는 데(여기엔 집세처럼 침대, 냉장고, 텔레비전 등 가재도구 일체가 포함되었다) 들어간 돈은 1만5000달러. 쏨분네는 대략 1만 달러 정도 들 거란다. 2층이긴 하지만 규모가 훨씬 작고 내장재도 거의 쓰지 않을 것이니까. 또 쏨분 아버님이 말한 돈에는 냉장고, 텔레비전 등도 들어있지 않다.
덜 먹고, 덜 쓰고, 덜 누린다 2년 동안 라오스에 살면서 석유 값이 오른다는 불평을 들은 적이 없다. 환율도 거스를 수 있으니 기름 값 정도야 별 문제가 아닐 것이다. 하루에 두어 번은 마주치는 조그만 읍내에 서 아주 급한 일이 아니면 전화할 일도 없다. 학생들은, 또 연인들은 우리처럼 주로 문자를 한다. 학생들이 가끔 학교에 쌀을 가지고 올 때가 있다. 캠프나 행사 비용으로 돈 대신 치르기 위해서다. 나름 기준이 있겠으나 한 됫박도 되고 두 됫박도 되고, 겨가 많은 것부터 뽀얀 것까지 그 질도 가지가지다. 공동의 비용을 분담하는데 획일적으로 정해진 금액을 화폐 내는 게 아니라 형편에 따라 낼 수 있는 쌀을 쓴다. 아짠 쌩마리네는 경찰관인 남편과 세 살 난 애기, 세 명이다. 거의 같이 산다고 볼 수 있는, 옆 집 사는 시어머니와 시누이를 생각하면, 아짠이 ‘우리’라고 아우른 게 모두 몇 명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리고 이제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나는 이렇게 아짠 가족의 한 달 생활비가 100달러일 수 있는 이유를 찾았다. 라오스는 자연이, 가족이, 사회가, 문화가 적은 돈으로도 풍요롭게 살 수 있도록 사람들을 돕는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여건 보다 더 중요한 것, 라오스 사람들은 스스로 덜 먹고, 덜 쓰고, 덜 누리고, 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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