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라오스에 꽂힌 걸까

라오스 사람들의 특별한 사회연대의식

이영란 | 기사입력 2009/09/30 [11:46]

나는 왜 라오스에 꽂힌 걸까

라오스 사람들의 특별한 사회연대의식

이영란 | 입력 : 2009/09/30 [11:46]
일다는 라오스의 문화, 생태, 정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여행기를 연재합니다. 필자 이영란님은 라오스를 고향처럼 생각할 정도로 특별한 인연이 있는 분으로, <싸바이디 라오스>의 저자입니다.  –편집자 주
 
▲ 반싸멛. 해가 지기 전에 산 아래로 내려가 몸을 씻고, 먹을 물을 길어오는 학생들  © 이영란
나는 왜 라오스에 꽂힌 걸까? 자연이 아름다워서, 문화유산이 풍부해서? 맞다. 그러나 라오스를 여행한 사람이라면 마치 입을 맞춘 듯이 하는 말, 사람들이 좋아서, 소박하고 착한 사람들이 많아서라는 답에 나 역시 고개를 더 끄덕인다. 천진한 어린이들의 모습, 욕심 없는 어른들의 미소, 잠시라도 라오스 사람들을 보기라도 한다면 모두 이에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모두의 공감에 대해 좀 선명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을까? 직접 보지 못한,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런 말은 전혀 감이 안 잡히는, 외려 라오스를 진부하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좋다, 소박하다, 착하다… 쉬운 말이 가장 어렵다.
 
나는 라오스에서 진짜 그 의미를 배운 말들이 많다. 앞에서 이야기한 ‘가족’, ‘공동체’가 그 중에 하나. 이제 사람이 좋다, 착하다는 것에 대해, 내가 라오스에서 배운 것을 이야기할까 한다.
 
“우리학교에 가난한 학생은 없어”
 
2008년 4월, 나는 라오스에서 한국해외봉사단원연합회의 장학생 지원 사업에 응모했다. 연합회는 한국국제협력단과 별개의 그야말로 단원들의 모임으로서 해외에 있는 회원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을 중요하게 진행하고 있다. 각국에 파견된 단원들로부터 추천을 받아 일정 수의 현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이 그 중 하나였다.
 
▲ 반싸맫 산꼭대기에 있는 학교의 판잣집 같은 기숙사  © 이영란
2007년에도 사업이 있었지만 현장에 파견된 지 불과 석 달도 채 지나지 않은 단원들에게는 추천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 당연히 추천할 수도 없었을 게다. 그때는 뭘 파악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나 먹고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현지 언어도 습득이 안돼 모든 게 어렵기만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후에라도 꼬박 1년이 지났어도 라오스를, 최소한 내가 사는 동네라도 제대로 파악했다고는 볼 수 없었다. (사실 라오스에 대해 이것저것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당연히 우리학교 아짠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해외봉사단원연합회의 장학생 선발 기준은 성적과 집안 형편. 우리나라에서와 똑 같다. 그러나 이 기준은 라오스에는 맞지 않는다. 모르긴 몰라도 다른 저개발국가들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라오스와 같은 저개발국가에서 학령기에 학교에, 그것도 고등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더군다나 여자가!) 이미 절대적으로 찢어지게 가난하지는 않다는 소리다. 오히려 웬만큼 산다고 해야 할까. 게다가 (이것은 요즘 우리나라 상황과도 마찬가지로) 그 중에서도 성적이 좋으려면 집에서 공부하거나 학원(라오스에도 학원이 있고 과외가 있다)에 갈 시간을 집안일을 돕는데 소비하지 않아도 되는 보다 여유 있는 집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성적을 제쳤다. 여기서는 성적이야 어떻든 일단 학교를 다니는, 학업에 열의가 있는 학생 중에 어려운 친구에게 주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나름대로 기준을 바꾸어 우리학교 교장 아짠 완텅에게 학생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당연히 우리학교 학생으로.
 
아짠 완텅과 함께 이런 사업을 왜 하는지, 누가 하는지 등등을 듣고 있던 교감, 아짠 텅한이 불쑥 말했다.
 
“씰리펀, 우리학교에 가난한 학생은 없어. 우리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대부분 부자인 거 몰라?”
 
그랬다. 수도 위양짠에 비하면 시골이지만 내가 사는 동네는 싸이냐부리 도청소재지인 읍내다. 거의 우리 학교를 둘러싸고 도청이 있고, 제일 큰 절이 있고, 시장이 있고, 유일한 우체국과 두 개뿐인 은행, 군교육청과 도교육청 등등. 싸이냐부리에 있는 모든 것이 우리학교 바로 주변에 있다. 나는 우리학교가 ‘강남 8학군’에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다만 나는 너무나 ‘당연히’ 추천할 학생은 우리학교 학생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짠 완텅과 텅한은 잠시 말을 나누더니 나에게 분나리를 이야기해주었다. 분나리는 읍내 밖, 외양간 같은 교사(校舍)에서 공부하는 중등학교 5학년 학생. 그렇지만 역시 학교에 다닐 수 있는 만큼 찢어지게 가난하지는 않다. 그래도 아짠들이 그 학생을 추천한 것은 분나리가 손발이 없었기 때문.
 
아짠 완텅, 아짠 텅한은 우리학교 학생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고집할 생각이 아예 없었다. 그리고 읍내 밖에 다른 학교 학생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거기가 더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고 추천했다. 그들에겐 그렇게 하는 것이 아주 ‘당연한’ 것이었다.
 
“저기 산골학교 학생들에게 보내 주세요.”
 
▲ 군청의 지원을 받아, 이불과 학용품을 실어 반싸멛으로 옮겼다.
2008년 12월, 이번에도 해외봉사단원엽합회의 지원사업을 따냈다. 싸이냐부리 민족 중등학교에 30만원을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라오스는 각 도(道)마다 (소수)민족학교가 있다. 예전에는 주로 고아를 위한 기숙학교였던 것이 점차 소수민족 학생들의 수요가 늘면서 아예 이름도 민족학교로 바뀌었다.

 
싸이냐부리 민족 중등학교는 전체 학생수는 400여 명, 그 중 고아가 122명, 소수민족 학생이 196명으로 이들은 모두 기숙사에 산다. 나머지는 80여 명은 학교 주변에 사는 학생들로 민족학교에 다니지만 고아도 소수민족도 아닌 보통의 학생들이다.
 
민족학교 기숙사에 사는 학생들에게는 정부로부터 한 달에 9만 낍(우리 돈 9천 원 정도) 보조금이 나온다. 이것은 한 달 밥값도 안 된다. 당연히 다른 지원이 없으면 학생들은 공부는커녕 살 수도 없게 된다. 따라서 민족학교는 나라, 마을 안팎에서 후원을 (다른 데에 비해서) 많이 받는다.
 
교무실 입구엔 매년 갈아 붙이는 후원자 명단이 있다. 유럽적십자, 덴마크, 멕시코 어느 단체, 룸투리드(Room to Read, 저개발국가 학생들에게 도서와 독서공간을 지원하는 단체), 도지사, 무슨 위원회 위원장부터 그저 달랑 이름만 있는 사람까지. 어림잡아 보아도 20여명이 넘는다. 재밌는 건, 외국 단체는 주로 건축이나 물품을, 지역 단체나 개인은 먹을거리나 현금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얼핏 지원이 넉넉한 것 같아 보이나 절대 그렇지 않다. 그나마 지원규모가 큰 외국에서 관심을 갖는 것은 눈에 보이는, 교육하고만 직결된 것으로 교실, 도서실, 책, 너무 크고 좋아서 라오스 교실엔 20개나 들어갈 수 있을까 싶은 1인용 책걸상 같은 것이나, 상하수도가 들어오지 않는 학교에 교실보다 더 좋은 수세식 화장실 지어주는 것 등이 대부분이다. 당장 급한, 먹을 것, 자질구레해 생색은 안 나지만 학생들이 사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은 그나마 사정을 아는 라오스 사람들이 챙겨 돕고 있었다.
 
분나리 경우에서 배운 게 있어 이때는 나도 우리 학교가 아니라 민족학교를 지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연합회 지원금 30만원은 얼마 되지도 않아(게다가 달러가 급등했을 때여서 환산하면 230달러밖에 되지 않았다), 기숙사생 300명에게라도 1달러씩도 돌아가지 못하는 꼴이다. 그 돈으로 뭘 할까? 역시 한국 사람의 감보다는 여기 사람들의 생각이 더 적확하겠다. 민족학교로 갔다. 교장 선생님께 이런저런 설명을 드리고 어떻게 썼으면 좋을지를 물었다.
 
“우리학교 보다, 반싸멛(싸멛 마을, 싸이냐부리 서쪽 고산지대)에 있는 중학교 사정이 더 어려워요. 거기 학생들을 도와주세요.”
 
눈물이 났다. 허름한 막사보다 못한 기숙사에, 매일 같이 돼지기름에 볶은 야채 반찬이 고작인 밥에, 달거리 하는 여학생들도 오로지 씻을 곳이라곤 학교 옆을 흐르는 강이 다인 여기보다 더 열악한 곳이 있을까! 이런 와중에도 자기보다 더 힘든 데를 도와주라고 말하는 이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타인을 행복하게 만드는 힘
 
▲  반싸멛으로 보낼 떡과 음식을 준비하는 우리학교 선생님들
이젠 반싸멛에 가야 했다. 그곳에선 실제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알아야 하니까. 하지만 이번엔 그럴 수 없었다. 싸이냐부리 읍내에서 차를 타고 가는 데만 4시간이 넘게 걸린다. 길은 완전 어드벤처 오프로드. 대중교통은 당연히 없고 웬만한 군용차가 아니면 움직일 엄두도 낼 수 없다. 현지조사는 고사하고, 300달러 가지고는 거기 갈 수 있는 차 한대 빌리는 값도 안 될 판이었다.

 
나의 든든한 아짠 완텅이 나섰다. 씰리펀이 이런 일을 하려는데 방법이 없겠느냐, 우선 도교육청에 상의를 했다. 도교육청은 마침 그곳 반싸멛 학생들에게 옷을 가져다 줄 일이 있어 군청에 수송 협조를 요청했단다. 거기에 우리가 합류하면 될 거란다. 가장 어려운 문제를 풀었다. 반싸멛 학교도 교육청 관할이니 거기 사정을 잘 아는 선생님들이 많았다. 고산지대여서 무엇보다 추운 게 문제이니 40명 기숙사생들이 쓸 이불을 사가는 게 좋겠다는 조언까지 해주었다. 교장 아짠 완텅은 군청으로, 행정담당 아짠 너이는 시장으로 나를 데리고 다니며 승인을 얻고 이불을 싸게 사주었다.
 
일은 계속 커졌다. 물품 수송 날짜를 앞두고 학생들이 쌀을 모았다. 학교 여자 선생님들은 반싸멛 학생들에게 나누어 줄 떡과 1박 2일로 지원물품을 수송해야 할 사람들의 먹을거리를 만들어 싸주었다.
 
우리들도 가만있을 수 없었다. 마침 한국에서 여행 온 친구까지 뜻을 모아 이불 사는 데 모자라는 돈을 보태고, 기숙사생 아닌 학생들에게 나누어줄 볼펜, 공책을 더 샀다. 돈으로 들어간 것만 따져도 애초 230달러로 시작한 일은 두 배가 넘는 540달러로 불어났다.
 
물은 물론 전기 한 줄도 들어오지 않는 반싸멛, 고산지대 칼바람이 그대로 스미는 마을회관에서 담요를 몇 겹으로 덥고 누웠다. 코끝이 시렸다. 세상 어디서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사람이 좋다, 착하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이렇게 다른 사람까지 행복하게 감염시키는 힘. 한국에서 감염 정도가 떨어진다고 느낄 때마다 나는 라오스에서의 이 선명한 접종 기억을 되새긴다. 사람들을 위해 아니, 나를 위해 나는 늘 라오스를 향할 것이다. 다시 어금니를 꽉 문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 소여니 2009/11/09 [14:50] 수정 | 삭제
  • 이글 읽고 라오스 사람들의 착한 마음에 감동 받고 눈물이 났습니다.
  • 토머스 2009/10/07 [06:38] 수정 | 삭제
  • 맞습니다. 사람이 좋고 착하다는 것은 정의롭고 연대할 줄 알며,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염두에 둘 줄 아는 것이지요. 저도 어금니를 꽉 물어봅니다.
  • 머핀 2009/10/02 [22:07] 수정 | 삭제
  • 우리가 배울 점이 많네요..
    라오스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요.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