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의 온 인류가 최근 손을 깨끗이 하기 위해 사용한 물은 얼마나 될까? 경쟁하듯 넘쳐 나는 신종플루에 대한 기사를 대할 때마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가 커져만 가는데, 그 두려움을 맞설 유일한 방도가 틈만 나면 손을 씻는 것이라니…. 내게 손 씻는 강박적 습관을 안겨 준 그 존재가 어느날 문득 궁금해지기 시작했다면, 놀라운 일일까?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인 바이러스 가을을 맞는 요즘, 설상가상으로 신종플루에 계절독감과 감기까지 유행한다 하니, 바이러스에 대한 불편함과 두려움이 날로 더하다. 도대체 바이러스는 무엇일까? 식물, 동물, 그리고 곰팡이는 눈에 보이는 존재들이라 이 지구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그에 반해 바이러스는 눈에 보이지 않아, 공포스러운 전염병으로 자기 존재를 드러내기 전까지는 존재감이 희박하다. 사실, 보이지 않아 다행이랄 정도로 도처에 들끓고 있는 미생물, 그 미생물의 일부가 바이러스이다. 얼마나 작은지 현미경으로도 볼 수 없고, 전자현미경이 출현한 20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그 모습을 엿볼 수 있게 되었다. 만분의 1mm 크기를 한번 상상해 보라. 이 극도로 작은 생명체는 인간뿐만 아니라, 세균, 식물, 동물과 같은 생명체의 세포 속에 둥지를 틀고 자신을 닮은 바이러스를 생산하게 만든다. 먹고 자라는 과정이 없어 생명체라고 하기에는 좀 모자라고, 그렇다고 증식하는 존재를 생명체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이라고 하나 보다. 아무튼 바이러스는,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핵산과 단백질로 이루어진 가장 간단한 생명체로 인정 받고 있다. 생명체로서 바이러스는 자신의 유전정보를 후대에 전하기 위해 애쓰고 있을 뿐 다른 의도가 없다지만, 그것이 이용하는 생명체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에 빠진다. 실제로 과학자들이 바이러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인간, 그리고 가축과 농작물에 질병을 야기시켜 피해를 주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박테리아(세균)와 같은 미생물이 야기하는 질병에는 항생물질과 같은 치료제로 대처해왔지만, 바이러스로 인한 질병은 치료제가 제대로 없어, 바이러스를 더욱 공포스러운 존재로 여기게 된 것이다. 생리적 대사작용이 없는 까닭에, 그것을 억제하거나 방해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항원-항체의 면역반응을 이용한 백신을 만들어 바이러스성 질병에 맞설 수 있다는 것인데, 그것조차도 빠른 변이를 보이는 바이러스에 맞서기에는 불완전한 방어책일 뿐이라고 하니, 난감하다. 그래서 결국 우리 몸 속에 바이러스가 침입하기 전에 없애는 방법, 즉 손씻기를 권하고 있는 것이다. 접촉을 통해 전달되는 바이러스라면, 비누와 같은 세제가 바이러스의 구성물질인 단백질을 제거해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바이러스는 그냥 생존할 뿐
과학적 연구에 의하면 원시생명체와 가장 가까운 것으로 바이러스를 꼽고 있으며, 그것이 생명 기원의 열쇠가 될 수 있으리라 내다보고 있다. 장구한 세월을 다른 생명체와 함께, 그 속에서, 아니 그보다 앞서 생존해 온 존재라면, 바이러스가 지구상에서 반드시 퇴치되어야 하는 사악한 적만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곰팡이나 식물의 세포 속에서 증식하는 바이러스의 경우, 숙주에게 꼭 피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며 그냥 함께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는 연구결과를 보더라도 그렇다. 아직까지는 바이러스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바가 그리 많지 않은 만큼, 바이러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잠시 접어두는 것이 현명한 태도가 아닐까. 최근의 미생물학 연구는, 그동안 기술적 한계로 인해 병원균으로만 오인되어 온 세균들이 사실은 다른 생명체와의 공생관계에 있는, 생태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임을 속속 밝혀내고 있다. 주목할 대목이다. 오히려 바이러스가 왜 그토록 무서운 질병의 원인이 되는지를 고심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갑작스레 신종 바이러스가 생겨나고, 기존에 존재했던 바이러스가 변종으로 탈바꿈하는 이유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선포하기에 앞서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로 생각된다. 바이러스도 생명체인 한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 적응하고 살아 남기 위해 노력한다. 인간이 지속적으로 생태환경을 간섭하며 변화시켜왔기에, 바이러스도 그에 발맞춰, 인간보다 세대가 짧다 보니 아주 빠른 속도로 진화해 나가는 것이다. 게다가,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점령하면서 바이러스와 세균을 데리고 이동하여 저항력 없는 원주민에게 무서운 질병을 가져다 주었던 것처럼, 오늘날 세계화는 바이러스의 원거리 이동을 용이하게 만들어 그것이 급속도로 번져나갈 수 있는 조건이 되고 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승산이 없다 결국 심각하고 다양해지는 바이러스성 질병도, 인간이 자연환경에 행사한 영향의 부메랑 효과의 하나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적절할 듯 싶다. 비록 그 질병이 우리 인간의 상당수를 죽음에 몰아넣는다고 해도, 분명한 한계는 있으며, 그것으로 생태계 전체가 위협 받는 것도 아니다. 흑사병이 유행하는 동안 인간의 피해는 심각했지만, 동식물에게는 오히려 인간으로 인한 피해를 회복해 나가는 소중한 시기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인류가 계속 바이러스와 전쟁을 벌여나간다면, 승산이 없을 것이다. 그 수나 증식속도, 변이속도로 보아 인류보다 더 탁월한 존재임이 분명하며, 인류보다 더 일찍 삶을 시작해 생존전략을 쌓아온 것처럼, 더 오래 살아 남는 법도 더 잘 찾아낼 듯 하다. 차라리 공생할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다. 박테리오파지(세균 바이러스)를 세균박멸에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인간이 양산한 내성박테리아의 뒷처리에 바이러스를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성박테리아나 변이· 신종 바이러스가 창궐해 인류를 위협하게 된 근본 원인일 수 있는 생태계 교란을 멈추고, 자기면역을 높이는 노력을 통해 공생의 길을 마련해야 하는 것은 아닐는지? 세균과의 공생이 그러하듯 말이다. 아무튼 지금도 나는 열심히 비누로 손을 닦고 있다. 세제가 생태계에 미치는 악영향을 알고 있지만, 당장 바이러스에게 내 몸을 제물로 내어줄 생각이 없으니 이 새로운 습관을 고집하게 될 것 같다. 그만큼 바이러스는 여전히 알지 못해 두렵고, 신비로운 존재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멸해야 할 절대적 적으로 생각지는 않는다. 이 지구에서 공존해야 할 이웃으로 이해하려 애써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함께 읽자. 톰 웨이크퍼드 <공생, 그 아름다운 공존>(해나무, 2004)
이 기사 좋아요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이경신의 철학하는 일상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녹색정치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