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다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공동기획으로, ‘녹색일자리’에 관한 기사를 연재한다. 기후변화와 에너지위기 시대를 맞아 녹색경제와 녹색일자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국내에선 이명박 정부의 녹색뉴딜계획 등 녹색일자리 담론이 정부중심의 극히 제한된 논의에 갇혀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녹색일자리를 둘러싼 국내외 다양한 이론과 실천을 소개하고, 우리 현실에 맞는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필자 이진우님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enerpol.net) 상임연구원이다. -편집자 주] 건물에서 낭비되고 있는 에너지 줄이기
장기적으로는 에너지를 태양광, 풍력, 바이오에너지 등 온실가스 배출이 거의 없는 에너지로 전환해야 하겠지만, 중단기적으로는 현재 쓰고 있는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만드는 것, 그 중에서도 ‘건물에서 낭비되고 있는 에너지를 줄이는 것’이 기후변화대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패널)는 2007년 4차 보고서를 통해, 건물에너지 효율화가 202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량의 29%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IEA(국제에너지기구)는 2050년까지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이, 재생가능에너지를 확대하는 것이나 자동차 연료를 전환하는 것보다 온실가스 감축량이 훨씬 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건물에너지 효율화’ 꾀하는 세계각국 세계각국은 건물에너지 효율화 정책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 다양한 정책들을 수립, 진행하고 있다. 기후변화대응의 선두주자그룹 중 하나인 독일은 신축주택 및 기존주택의 에너지효율을 30% 개선하도록 에너지 절약지침을 개정했다. 에너지사용량이 거의 없는 ‘패시브 하우스’(passive house) 보급을 확대하고, 2001년부터는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도록 건물을 개보수할 경우, 은행에서 매우 낮은 금리로 융자를 해주거나 정부에서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영국과 캐나다에서는 친환경 건축물 인증제도를 도입해, 건물을 신축할 경우 에너지를 적게 쓰는 건물이 될 수 있도록 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미국은 획기적으로 에너지사용량을 줄일 수 있는 ‘그린 홈’을 100만 가구 수준으로 보급하고, 기존 에너지 다소비형 빌딩들을 위한 효율화 프로그램 및 신규빌딩 효율성 규제정책을 도입할 계획이다. 또한, 저소득층의 에너지 복지를 꾀하면서 온실가스도 감축할 수 있는 프로그램인 ‘저소득층 가구 에너지 효율화 프로그램’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각국이 지구온난화와의 전쟁을 대비해 이미 건물에너지와 전초전을 치르고 있다. 가장 많고 다양한 일자리 창출될 수 있는 분야
건물에너지 효율화는 대표적인 노동집약적 특성을 가진 분야로, 기계화된 건축기술이 담당할 수 있는 부분이 제한적이라 안정적인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또 건축설계, 감리와 같은 전문직종부터 고도의 기술 없이도 직접 건축물 시공에 참여하는 일자리까지 다양하다. 예를 들어 건물 개조 부분에는 건축설계사, 전기기사, 난방/냉방기 설치사, 목수, 건설장비운전사, 지붕 관리사, 단열기사, 건물 점검인 등 다분화된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다. 미국 태양에너지협회가 추산한 바에 의하면, 미국에서 에너지효율화 산업에서 창출된 일자리만해도 2006년 한 해에만 8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난다. 건축에너지 효율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각 나라의 경우도, 각종 건물에너지 효율화 정책이 안착하면 적게는 수천 명에서 많게는 수백만 명의 고용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의 한 보고서는 정부의 건물표준을 바꾸는 등 에너지 효율화 빌딩에 8억99백만 불을 투자할 경우, 약 83만 명의 고용창출이 이뤄지고 유지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는 더 나아가 세탁기, 온수기, 형광램프에 대한 표준을 개정하기만 해도 이를 추진하기 위해 15만 명의 인력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유럽연합의회에서도 건축부문의 에너지 효율화를 통해 20%의 에너지 소비가 감소될 전망이고, 이 과정에서 1백37만~2백56만 개의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4대강 살리기’ vs. ‘건물에너지 효율화’ 일자리의 질 비교 건축에너지 효율화를 위해 창출되는 녹색일자리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안정적이라는 데에 있다. 전통적인 건축산업의 경우,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또 다른 개발사업들을 끊임없이 재생산해야 했다. 때문에 개발사업이 위축되지 않는 한 일자리가 일정부분 유지되는 효과는 있었지만, 개발사업을 확대하면서 환경파괴, 불필요한 자원낭비 등과 같은 부작용을 유발했다.
현 정부가 역점을 두어 추진하고 있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이러한 악순환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사실상 운하사업과 다름없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정부가 기후변화 적응정책의 하나로 소개하면서, 4년간 20조 원이 넘는 막대한 국가예산이 소요될 전망이다. 하지만 환경파괴 성격은 일단 뒤로 한다 해도, 4대강 정비를 위해 투입되는 수많은 인력들은 4년 후면 일자리가 유지될 수 있을지 매우 불투명하다. 수십에서 수백만 명에 이르는 건설인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또다시 4대강 사업에 맞먹는 개발사업이 생겨나야 한다. 지구온난화가 시대의 화두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2012년 이후에도, 그러한 무의미한 개발사업이 또다시 등장하기란 사실상 어렵다. 그렇다면 회색산업의 단절적 중단으로 인한 대형 고용위기가 등장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국가예산의 일부만 건물에너지 효율화에 투자하고, 관련 법규만 정비해도 건물 부문에서는 안정적인 녹색일자리가 수십만 개에서 수백만 개가 창출될 수 있다. 건물에너지가 전세계 에너지소비량의 25% 정도를 차지하고 있고, 주택이나 대형빌딩을 바꾼다는 것은 주거문화를 전환한다는 걸 뜻하기 때문에 매우 장기적인 일이다. 게다가 효율화 설비를 유지하기 위한 인력뿐 아니라 방계산업의 발달로 인해, 건물효율화를 위한 일자리는 한번 창출되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일자리 군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후변화 대응체제, ‘우선순위’ 어디에 둘 건가 흔히, 건축은 빌딩과 도시를 만들고 이것이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에너지 다소비형인 전통적 건축산업을 떠올리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제 건축은 에너지 소비량을 줄여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하는 분야로 주목해보아야 한다. 건축에너지 효율화는 기후변화 대응체제로 ‘정의로운 전환’을 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이다. 또한 건축 부문 에너지 효율화는 단기적으로 지구온난화를 제어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에, 우선순위의 문제기도 하다. 정부도 에너지효율화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나섰지만, 발표된 계획은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한 수준이다. 정말로 기후변화대응이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면, 건물 부문에 대한 정책과 재정지원이 시급하게 처리되어야 할 것이다. 사회체제가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이 아니고, 일자리 또한 장기간에 걸쳐 전환된다는 점을 생각할 때, 건물 부문 녹색일자리 창출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건 촌각을 다투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여전히 수십만 명에게 삽을 나눠주고 강을 파라고 하는 건 시대에 뒤떨어진 정치적 목적에 불과하다. 녹색일자리에 대한 사회적 공유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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