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말씀이 맞았어요!”
성원이 어머니는 오랜만에 전화를 해, 거두절미하고 이렇게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님께서 일러주신 대로 지난 2주 전부터 매주 한 번씩 성원이를 데리고 도서관에 다니고 있어요. 그리고 시키신 대로 뭘 읽든 말든, 그냥 놔두고 저는 제 할 일을 했죠. 처음에는 속이 어찌나 끓던지, 그런데 며칠이 지나니까 자기가 읽고 싶은 것을 골라 읽기 시작했고, 요즘은 단계도 스스로 높여가며 읽는 거예요!” 성원이 어머니와 아이의 독서습관에 대해 통화를 나눈 건, 성원이와 막 공부를 시작한 5개월 전의 일이다. 2학년인 지금도 어머니께서 동화책을 읽어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성원이는 엄마가 읽어주는 것에 너무 길이 들어, 동화를 읽어주면 줄거리도 곧잘 대답하는데, 혼자 읽으면 도통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단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도 스스로 읽는 것에는 흥미를 못 붙이고 있다고 했다. “언제까지 어머니께서 읽어주시겠어요? 지금은 내용이 간단한 동화들이라서 읽어줘도 잘 이해할지 몰라요. 그러나 점점 내용도 어렵고 복잡해질 텐데, 그걸 다 읽어주실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그런 책은 자기 스스로 정독해서 읽어야만 이해를 할 수 있죠” 라고 말씀 드렸다. ‘아이에게 동화책 읽어주기’는 벌써 전에 귀찮아져서, 많은 부모들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런데 2학년이 되도록 계속해왔다는 것이 어리석어 보이기보다는 대단하게 생각되었다. 그건 정말 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지나친 것은 부족함만 못하다’는 말도 잊지 않고 해드렸다. 그리고 어머니가 읽어주는 횟수를 줄이고, 아이가 스스로 읽을 수 있게 하라는 정도에서 이야기를 마치고 그날은 전화를 끊었다. 그렇지만 곧 잊었다. 아무리 중요한 문제제기라도, 그것을 고치려고 노력하는 부모를 보지 못했기에, 나는 성원이 어머니께서 얼마나 노력하실지 그다지 믿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다시 전화를 반은 건, 약 3주 전의 일이다. “어찌나 동화책을 읽어달라고 졸졸 따라 다니는지! 선생님, 젖을 떼는 것보다 더 힘이 드네요.” 젖을 떼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말에, 나도 어머니도 웃었다. 그렇지만 곧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성원이 어머니께서 그때 나눈 이야기를 잊지 않고 고치려고 애써 오고 계셨다는 걸 그제야 안 것이다. 나는 그런 어머니께 좀 더 구체적이고 하기 힘든 방법을 알려드렸다. “절대로 아이에게 책의 줄거리나 느낀 점을 묻지 마세요. 어머니는 이해를 잘 했는지 무척 궁금하시겠지만, 그냥 놔두세요. ‘엄마한테 줄거리를 어떻게 말하지?’하는 부담감 때문에 책도 재미있게 못 읽을뿐더러, 독서에 흥미도 떨어져 책을 멀리하는 아이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방법을 한 번 해보시면 어떨까요? 성원이를 데리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히세요. 어머니께서 골라주시지 말고, 그냥 성원이가 마음대로 골라 보게 하세요. 아이의 흥미에 따라 읽고 싶은 것을 스스로 고르는 능력도 생기게 될 거예요. 어머니는 어머니 읽고 싶은 책을 읽으셔도 좋고, 성원이를 위해 대출할 책들을 검토하시든지, 아무튼 아이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마세요. 처음에는 30~40분 정도 읽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점점 단계를 높이면, 90분도 거뜬히 읽게 할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준영이에게 썼던 방법을 성원이 어머니께 소개해 드렸다. 아이가 책을 읽지 않아 고민하는 여러 어머니들께 이 방법을 알려드렸지만 실천해봤다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해, 그날도 반신반의했던 게 사실이다. 그렇게 다시 몇 주가 지났다. 그리고 며칠 전 다시 성원이 어머니께 전화를 받은 것이다. 그녀를 통해 엄마가 책을 읽어주지 않으니까, 혼자서 책을 꺼내 읽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2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의미 있는 변화를 보이고 있는 성원이에게 나도 놀랐다. 아니, 그보다 더 많이는 그의 어머니께 놀랐다. 그리고 그날 다시 “선생님, 그래도 잘 이해했는지 줄거리는 좀 물어보면 안 될까요?”하며 내 의견을 묻는 어머니께, 절대 그러지 말고 기다려 달라는 말씀을 드렸다. 나는 이번에는 어머니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는 인내심 있게 기다리며, 아이를 지켜볼 거라는 것도 지금은 잘 알고 있다. 그녀의 이런 꾸준한 노력이 아이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될 거라고 믿기에, 성원이가 보다 빨리 스스로 책 읽는 습관을 갖게 될 거라고 확신한다. (※ 교육일기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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