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떼는 것보다 더 힘들어요”

책 읽는 습관 들이기

정인진 | 기사입력 2009/10/18 [23:59]

“젖떼는 것보다 더 힘들어요”

책 읽는 습관 들이기

정인진 | 입력 : 2009/10/18 [23:59]
“선생님 말씀이 맞았어요!”
성원이 어머니는 오랜만에 전화를 해, 거두절미하고 이렇게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님께서 일러주신 대로 지난 2주 전부터 매주 한 번씩 성원이를 데리고 도서관에 다니고 있어요. 그리고 시키신 대로 뭘 읽든 말든, 그냥 놔두고 저는 제 할 일을 했죠. 처음에는 속이 어찌나 끓던지, 그런데 며칠이 지나니까 자기가 읽고 싶은 것을 골라 읽기 시작했고, 요즘은 단계도 스스로 높여가며 읽는 거예요!”
 
성원이 어머니와 아이의 독서습관에 대해 통화를 나눈 건, 성원이와 막 공부를 시작한 5개월 전의 일이다. 2학년인 지금도 어머니께서 동화책을 읽어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성원이는 엄마가 읽어주는 것에 너무 길이 들어, 동화를 읽어주면 줄거리도 곧잘 대답하는데, 혼자 읽으면 도통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단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도 스스로 읽는 것에는 흥미를 못 붙이고 있다고 했다.
 
“언제까지 어머니께서 읽어주시겠어요? 지금은 내용이 간단한 동화들이라서 읽어줘도 잘 이해할지 몰라요. 그러나 점점 내용도 어렵고 복잡해질 텐데, 그걸 다 읽어주실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그런 책은 자기 스스로 정독해서 읽어야만 이해를 할 수 있죠” 라고 말씀 드렸다.
 
‘아이에게 동화책 읽어주기’는 벌써 전에 귀찮아져서, 많은 부모들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런데 2학년이 되도록 계속해왔다는 것이 어리석어 보이기보다는 대단하게 생각되었다. 그건 정말 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지나친 것은 부족함만 못하다’는 말도 잊지 않고 해드렸다. 그리고 어머니가 읽어주는 횟수를 줄이고, 아이가 스스로 읽을 수 있게 하라는 정도에서 이야기를 마치고 그날은 전화를 끊었다.
 
그렇지만 곧 잊었다. 아무리 중요한 문제제기라도, 그것을 고치려고 노력하는 부모를 보지 못했기에, 나는 성원이 어머니께서 얼마나 노력하실지 그다지 믿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다시 전화를 반은 건, 약 3주 전의 일이다.
“어찌나 동화책을 읽어달라고 졸졸 따라 다니는지! 선생님, 젖을 떼는 것보다 더 힘이 드네요.”

 
젖을 떼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말에, 나도 어머니도 웃었다. 그렇지만 곧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성원이 어머니께서 그때 나눈 이야기를 잊지 않고 고치려고 애써 오고 계셨다는 걸 그제야 안 것이다. 나는 그런 어머니께 좀 더 구체적이고 하기 힘든 방법을 알려드렸다.
 
“절대로 아이에게 책의 줄거리나 느낀 점을 묻지 마세요. 어머니는 이해를 잘 했는지 무척 궁금하시겠지만, 그냥 놔두세요. ‘엄마한테 줄거리를 어떻게 말하지?’하는 부담감 때문에 책도 재미있게 못 읽을뿐더러, 독서에 흥미도 떨어져 책을 멀리하는 아이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방법을 한 번 해보시면 어떨까요? 성원이를 데리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히세요. 어머니께서 골라주시지 말고, 그냥 성원이가 마음대로 골라 보게 하세요. 아이의 흥미에 따라 읽고 싶은 것을 스스로 고르는 능력도 생기게 될 거예요. 어머니는 어머니 읽고 싶은 책을 읽으셔도 좋고, 성원이를 위해 대출할 책들을 검토하시든지, 아무튼 아이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마세요. 처음에는 30~40분 정도 읽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점점 단계를 높이면, 90분도 거뜬히 읽게 할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준영이에게 썼던 방법을 성원이 어머니께 소개해 드렸다. 아이가 책을 읽지 않아 고민하는 여러 어머니들께 이 방법을 알려드렸지만 실천해봤다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해, 그날도 반신반의했던 게 사실이다.
 
그렇게 다시 몇 주가 지났다. 그리고 며칠 전 다시 성원이 어머니께 전화를 받은 것이다. 그녀를 통해 엄마가 책을 읽어주지 않으니까, 혼자서 책을 꺼내 읽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2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의미 있는 변화를 보이고 있는 성원이에게 나도 놀랐다. 아니, 그보다 더 많이는 그의 어머니께 놀랐다.
 
그리고 그날 다시 “선생님, 그래도 잘 이해했는지 줄거리는 좀 물어보면 안 될까요?”하며 내 의견을 묻는 어머니께, 절대 그러지 말고 기다려 달라는 말씀을 드렸다. 나는 이번에는 어머니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는 인내심 있게 기다리며, 아이를 지켜볼 거라는 것도 지금은 잘 알고 있다.
 
그녀의 이런 꾸준한 노력이 아이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될 거라고 믿기에, 성원이가 보다 빨리 스스로 책 읽는 습관을 갖게 될 거라고 확신한다.

 (※ 교육일기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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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빨강머리 2009/10/28 [19:54] 수정 | 삭제
  • 아이를 양육하는 데에는 너무 늦어도 안되고 빨라도 안되는 시기 알아체기가 있는 것 같아요. 옆에서 관심과 사랑으로 도와 주던 일들을 이제 스스로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시기에 얼른 아이에게 넘겨주는 센스, 이해도가 정말 부모에게는 있어야 해요. 또 아이마다, 일의 성질상 독립의 시기가 각각 다르다는 사실도 관과해서는 안되겠습니다.
  • latte 2009/10/20 [17:31] 수정 | 삭제
  • 아이에게 자꾸만 책의 줄거리나 느낌을 이야기해보라고 하는 것이, 자유로운 독서에 오히려 압박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새롭네요.
  • 정인진 2009/10/20 [11:03] 수정 | 삭제
  • 물론, 저도 부모가 책을 읽어주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책을 지속적으로, 그것도 중학생이 될 때까지 읽어주는 것이 어떤 교육효과를 낳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교육경험이 없어, 뭐라고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반면, 정독하는 습관이 아이에게 가져다 주는 긍정적인 교육효과는 여러차례 경험해서 자신있게 상담을 청하는 부모님들께 권해드리고 있습니다. 교육자로서 좀더 이론적인 탐색을 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은 berkeleymom님의 의견을 듣고 생각했습니다. 문제제기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berkeleymom 2009/10/20 [01:27] 수정 | 삭제
  •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에서 일다를 꾸준히 보면서 선생님글도 많이 참고 하고 있는 독자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의아한 점이 있어 보냅니다. 이곳에서 하루 30분 소리내서 책읽기 운동이 대대적으로 있어왔는데요. 미국에서는 아이가 아주 어릴때, 생후 몇주부터 중학교때까지 부모가 책을 읽어주는 것을 장려합니다. 읽기능력은 듣기능력이후에 발달하는 것이라는 믿음이 크기때문이지요. 아이스스로 책읽는 것은 장려할 일이지만, 어머니가 책을 소리내어 읽어주는 것을 끊는다는 것은 별로 장려할 일은 아닌것같아요. 온갖 언어능력의 시험중에 듣기평가를 생각해보시면 쉽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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