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나?

동물의 생존권에 대해 생각하기

정인진 | 기사입력 2009/11/09 [00:04]

동물원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나?

동물의 생존권에 대해 생각하기

정인진 | 입력 : 2009/11/09 [00:04]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들 가운데 ‘동물의 생존권’에 대한 테마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 동물을 놀이감으로 다루고 있는 동물쇼, 인간의 장식품을 위해 마구 희생되는 야생동물, 해부실험이나 실험용으로 이용되는 동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자기 관점을 갖도록 가르치고 있다. 

© 앤서니 브라운 글,그림 <동물원> (논장)
그 중에는 동물원에 대한 공부도 있다. 5학년인 한나, 형진이, 예빈이와 지난주에는 앤서니 브라운의 <동물원>이라는 동화책을 가지고 이 문제를 생각해보았다. 형진이와 예빈이는 나와 공부한지 겨우 한 달이 되는 아이들이다. 그래서 여전히 서툴고 생각의 깊이도 부족하지만, 마음의 방향은 모두 좋아 기대를 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첫 번째 문제로 <구석에 웅크린 채 꼼짝도 하지 않는 오랑우탄을 본다면, 여러분은 어떤 마음이 들었겠냐>고 물었다.
 
물론, 이 질문에 ‘재미있겠다’고 대답하는 어린이는 없다. 오늘 공부한 아이들도 모두 ‘안됐다’고 대답했다. 형진이는 ‘원래 정글에서 나무를 타고 있어야 하는데,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너무 불쌍하다’고 했다. 예빈이도 ‘사람들이 시끄럽게 하고 유리를 두드려도, 동물이라 말도 못하고 누가 말려주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안쓰럽다’고 대답했다.
 
이어서 <우리 주변에서 동물원처럼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동물들에게 고통을 주는 행동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찾아보라>고 했다.
 
형진이는 내가 지금까지 공부한 어떤 아이들보다 동물의 생존권에 대한 의식이 높은 학생이다. 이 질문과 관련해서도 그는 많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음은 형진이가 발표한 것이다.
 
1)투우: 소가 죽도록 계속해서 괴롭힌다.
2)양계장: 닭의 생활공간이 높이 30cm, 너비 30cm에서 닭 2~3마리씩 살아서 위생이 부족하다.
3)새끼돼지가 태어나자마자, 어미와 떨어뜨리고 어금니와 꼬리도 자른다.
4)장수풍뎅이를 이용해 돈을 걸기도 한다.
5)닭을 이용해 싸움을 시킨다.

 
이번에는 <만약, 여러분이 동물원에 갇혀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된다면, 기분이 어떻겠느냐?>물었다. 아이들은 모두 ‘속상하고 짜증날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밤에는 소리를 꽥꽥 지를 거라는 아이에서부터,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다는 아이까지, 모두들 분노심을 표현했다.


▲ 한국의 한 동물원에서 관람객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백곰의 모습   ©촬영 -일다 조이여울

함께 3년을 공부했던 나래는 이 질문을 받자마자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선생님, 창살만 없을 뿐이지, 저희도 동물원에 갇혀 사는 동물들과 똑같은 신세예요.” 나래의 이 말은 요즘 아이들의 실존적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어, 나도 더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고개만 끄덕였던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늘 이 질문 앞에서 나래가 생각난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그때보다 더 학교와 학원공부에 쫓기고 있을 나래를 잠시 떠올렸다.
 
한편, 이 책에서 어머니는 “동물원은 동물을 위한 곳이 아닌 것 같아. 사람들을 위한 곳이지.” 라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물었다.
 
이에 대한 대답은 한나의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동물들에게 잘해주지만,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동물을 사람들에게 보여 준다. 또 동물이 행복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들을 보면서 신기하고 재미있어 해, 엄마는 이런 말씀을 하신 것 같다. 나도 이 엄마와 같은 생각이다. 잘못도 없는 동물들이 철창에 갇혀, 항상 시름 시름한 날을 보내므로 불쌍하고 사람들은 너무 자기 생각만 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공부하고 느낀 점>을 쓰게 했다. 느낀 점은 예빈이가 가장 잘 썼다. 예빈이가 쓴 것은 다음과 같다. ‘동물원에 놀러 갔을 때는 아무 죄책감 없이, 소리 지르고 유리도 두드려 보고 했지만, 지금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잘못된 행동들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또 만약, 내가 갇혀 있었더라면 기분이 상당히 나쁠 것 같다. 똑같은 생명체인데 입장을 바꿔 생각하지도 않고, 돈을 버는 데만 열중하는 사람들이 너무 나쁘다. (……) 이제부터 동물을 괴롭히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처음, 생각을 조리있게 표현하는 게 영 서툴렀던 예빈이는, 아직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 한 달 새 성큼성큼 발전하고 있어 기대를 하고 있다. 또 형진이의 경우 아이디어는 반짝이지만, 자기 입장에 이유를 쓰는 실력은 저학년 수준이다. 그런 아이가 조금씩 자세하게 이유를 써 나가는 모습에 격려를 보내고 있다.

 
그들이 이 공부를 통해 의견을 똑똑하게 표현하는 것 못지않게, 생각의 깊이를 쌓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삶의 지향점을 잡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 교육일기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 sia 2009/11/13 [22:45] 수정 | 삭제
  • 아이들의 생각이 깊네요.
    동물의 "고통"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건, 따뜻한 마음과 배려에 대해서 배우는 길인 것 같습니다.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