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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슈퍼우먼’ 농촌여성들
[기획연재] 여성농민의 지위가 곧 평등사회의 잣대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김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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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는 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사회적으로 묻혀져 있던 여성농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필자 김형주님은 경기도 여주에서 논농사 짓는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여주군 여성농민회 사무국장과 경기여주여성농업인센터 방과후공부방 별님반 교사로 일해왔으며, 현재는 건강이 좋지 않아 활동을 쉬고 있습니다.
 
몸이 아프면서 ‘더 이상 내일을 꿈꾸지 못하고 사회 속에서 할 일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 제일 슬펐다는 김형주씨는, 그러나 “혼자만 꾸는 꿈이 아니라면 계속 꿈꾸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며, 가부장적 농촌사회 속 여성의 삶에 대한 글을 기고해주셨습니다. - 편집자 주>
 
환갑 여성농민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가출’
 
▲ 여성농민들은 가부장적 농촌사회에서 고된 농사 일에, 가사노동, 돌봄노동까지 맡으며 '이름 없는 슈퍼우먼'으로 살아가고 있다. 여성농민회 회원들이 고구마 공동농사를 짓는 모습  ©김형주
순자 언니가 자궁을 드러냈습니다. 허리가 아파 고생고생 했더랬습니다. 농사일에 집안일에 그리고 마을 구판장 일까지 손 걷어 부치고 해내고, 남편과 두 아이 뒷바라지까지 깔끔하게 거두던 언니. 이제 좀 살만하니 여기저기 몸이 고장 나기 시작하고, 결국은 자궁을 드러냈습니다. 해서 무거운 짐은 못 든다면서도 올 가을도 남편 컴바인 일 조수로 나섰습니다.

 
정원 언니는 허리 디스크라 병원을 제 집 드나들 듯 하고, 허리에 복대를 하고서도 가지 하우스, 호박 하우스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땅을 설설 깁니다. 그만 좀 쉬시라는 동네사람들 말에, 일을 안 하면 더 아프답니다.
 
환갑이 다 되어가는 이기순 회장님. 당신도 며느리 사위 다 보고서도, 팔순이 넘는 시어머니 시집살이 고되어 지난 여름 가출을 했습니다. 허나 가출을 해봐야 환갑 다된 할머니, 친정도 없고 어디 혼자 들어가 볼 만한 곳도 없어서 괜히 버스만 타고 왔다 갔다 하고서는 그 누구도 몰라주는 가출마저 포기하고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선 다시 아무일 없다는 듯이 배 과수원 배 봉지를 싸고 시어머니 밥을 차립니다. 기껏해야 동네아줌마 만나 시어머니와 남편 흉 보는 게 다였는데, 남편이 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면서부턴 그것도 수월치 않습니다.
 
젖소를 키우는 영미씨는 하루도 빼지 않고 젖을 짜고 소 사료 푸대 나릅니다. 그런데 하필 남편 집에 없을 때 우리를 뚫고 나온 소 두 마리, 그 놈들 잡으러 마을을 동동거리며 쫓아다니다 논두렁에 앉아 펑펑 울었습니다. 성질 나쁜 소들이 깔아뭉갠 남의 집 논과 밭도 걱정이지만, 에이쉬 이 놈의 소들도 여자라고 깔보는가 싶어 속에선 천불이 일었답니다.
 
오이 상추 하우스 일에 뼈가 다 녹는다는 윤경씨는 올 여름 몸 건강도 안 좋아졌지만 우울증까지 생겼었답니다. 농사일을 줄이고 싶어도 아이들은 커가는데 농산물 값은 떨어지니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하우스를 줄일 수 없답니다.
 
미숙 언니는 이혼하고 도시로 나갔습니다. 열아홉 꽃다운 나이에 아무 것도 모르는 새색시로 들어온 농촌. 아이 셋 낳고 키우는 동안 남들은 모두 호인이라는 남편의 손찌검에, 남편이 술만 먹는 기색이 보이면 남편을 피해 도망가는 버릇이 생겼고, 결국 그 아저씨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내던 밤 야반도주를 해버렸습니다.
 
농사도 가사일도 봉사활동도…슈퍼우먼 여성농민 몫
 
▲경북 봉강 꾸러미(생산자 조직)를 방문, 견학한 안동-의성 여성농민회 분들 ©<행복을 담는 장바구니> 까페 제공
이 땅에 여성농민이 삽니다. 농사를 짓는 여성, 여성농민이 삽니다. 남녀평등의 사회, 여성들도 장관을 하고 대통령도 될 수 있다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아니라 ‘너희 나라’ 같습니다. 논일은 남자와 여자가 같이 하고, 밭일은 여자가 합니다. 농사일은 남자와 여자가 같이 하고, 집안일은 여자가 합니다. 사회적 관계는 남자가 맺고, 여자는 그 빈 자리를 메꿉니다.

 
예전에는 큰 기계 일은 남자가 하고 소소한(?!) 일상의 노동은 모두 여성농민들의 노동으로 메꾸어 왔습니다. 남편이 경운기로 밭을 갈고 고랑을 타주면, 고추 모종을 심고 고추순 따고 말뚝 박고 줄 메고 고추 따고 말리며 중간중간 잡초를 메는 매일의 계속되는 노동을 담당하는 몫이 여자들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이제는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농사규모가 커지면서 여자들도 이젠 1톤 트럭과 트렉터 운전 정도는 필수가 되어 버렸습니다. 남편이 이앙기로 모를 심고 아내가 트렉터로 논을 갑니다. 남편이 컴바인으로 벼를 베고, 아내는 1톤 트럭으로 벼를 실어 나릅니다. 남편과 같이 비료살포기를 메고 이삭거름을 주고 농약 줄을 잡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일을 같이 하면서 ‘노동의 장’과 ‘생활의 장’이 분리되지 못하여, 출근도 퇴근도 없는 여성농민. 밖에서 똑같이 흙투성이 일을 하다가 집에 들어오면, 남편은 리모콘을 쥐고 아내는 부엌칼을 쥡니다. 사회적 활동은 남편의 몫이고, 그렇게 비워진 자리는 이제 스스로 농기계도 운전하는 수퍼우먼 여성농민이 메꿉니다.
 
남편이 면사무소로 영농교육을 받으러 간 사이 혼자서 감자를 심습니다. 남편이 지역발전협의회 회의 나가 낮술에 얼큰히 취해 돌아올 때, 혼자서 고추 말뚝을 박고 오이줄을 올립니다. 남편이 친구 부모님상에 조문 간 사이, 들깨를 심고 참깨밭을 맵니다. 남편이 마을회관에 대동회의를 가면, 회의장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서 음식 준비 하다가 회의 끝나면 밥 차리고 설거지를 합니다.
 
어느 지역에서는 마을 이장도 여자가 한다지만, 아직도 대동회의장에 여자가 들어가지도 못하는 마을도 많습니다. 아이들 챙겨 학교 보내고 시부모 뒷바라지야 물론이고, 농한기 동네 어른들 마을회관에 돌아가며 반찬 해 나르는 일에, 부녀회장이라도 맡을라치면 면사무소에 모여 독거노인 김장에 빨래봉사까지, 농업노동에 가사노동 그리고 돌봄 노동까지 모두 여성농민의 몫입니다.
 
이렇게 하루를 정신 없이 수퍼우먼으로 돌아 치는 여성농민들, 그녀들이 이 땅에 삽니다.
 
13년 전, 내가 여성농민이 되던 때
 
▲ 여성농민회의 진행하고 있는 <천연 치약, 천연 샴푸 만들기> 강좌. 화장품과 세제, 비누 만들기에 이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처음으로 제가 여성농민이 되던 때가 생각납니다. 13년 전 도시 생활을 접고 농촌으로 내려올 때는 날 선 사명감 내지는 결기 그런 것들로 똘똘 뭉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농민단체를 찾아가 8년이 넘게 실무자 일을 보면서, 언젠가는 이 생활을 접고 농민이 되리라고 되뇌던 일을 실행에 옮기던 때이니, 설렌다기보다 사실은 걱정이 더 많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요즘은 ‘귀농’이라는 말만 하면 왜 도시생활을 접고 시골로 내려왔는지에 대해 주절주절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어 참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군 전체에서 귀농한 사람이 손에 꼽을 지경이었고, 지역사람들 중에는 ‘타지 것들’이 도대체 왜 여기까지 내려왔는지에 대해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내 이름 석자보다 누구 마누라, 누구 엄마로 통하는 것이 낯설기도 하고 거부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여성과 아이가 행복해야 행복한 사회이며, 농촌이 평등해야 정말 평등한 사회’라는, 나와 같은 뜻을 가진 여성농민들을 만났습니다.
 
‘여성농민회’는 여성농민 스스로 현실을 조금이나마 극복하고 좀더 행복한 여성농민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입니다. 땅콩도 심고 고구마도 심고 콩도 심어 마련한 돈으로, 스스로 교육사업도 만들고, 농사일에 엄마를 빼앗기고 방치된 아이들을 위해 농번기 탁아사업도 해왔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한 활동이 2002년 농림부 시범사업으로 여성농업인센터 사업에 선정되자, 어린이집과 초등학생 방과후 공부방도 운영하고, 스스로 벌여오던 교육사업도 더 체계 있게 진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벌여낸 사업으로 더 많은 여성농민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농업문제와 세상읽기라는 주제로부터 시작해서, 미래와 깨끗한 환경을 위한 작은 실천의 하나인 ‘천연세제 만들기’ 같은 교육도 마을로 들어가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면에 하나밖에 없는 복지회관 목욕탕에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들을 모시고 가는 일도 합니다. 그런 일들을 하면서 정작 센터에서 일하는 회원들은 마음고생도 많고 몸 고생도 많습니다만, 이 사람들이 아니면 그 일들을 누가 할까 합니다.
 
조금 더 나은 세상, 평등한 삶 위해 함께 꾸는 꿈
 
▲ 여성농업인센터 부설 알곡 어린이집 아이들이 토종수수 씨앗으로 모종을 키워, 작은 꽃밭에 심고 거두어 직접 수확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학부모 모임에서도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학교담장을 둘러싸고 육상골재채취 사업이 신청되어 학교 바로 옆에서 모래산이 쌓이고 물웅덩이가 파이는 상황이 예상되자, 순하고 세상 모르는 것 같던 엄마들이 변했습니다. 아니, 원래 그런 모습이었을 겁니다. 아이들 건강과 교육문제 앞에서는 어떤 회유와 협박에도 넘어가지 않는 강건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남성들보다 지역의 혈연과 지연과 학연에서 자유로운 여성들은 옳은 것은 옳다고,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눈치 보지 않고 말했습니다.
 
사실 전 제가 엄마라는 사실이, 모성애라는 이름으로 엄마에게 요구되는 많은 신화들이 부담스럽습니다. 그런데 이런 여성농민들을 만나고 소통하고 함께 살면서, 조금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꿈을 꾸는 자만이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얼마 전 10명이 넘는 여성농민들이 서울 여의도에서 삭발을 했습니다. 그 중에는 바로 다음 달 딸을 시집 보내야 하는 친정엄마도 있었답니다. 삶의 무게보다 더 치열하게 싸우는 여성농민들이 있습니다. ‘밥 한 공기 값이 적어도 커피 한 잔 값은 되는 세상’을 꿈꾸는 여성농민들이 있습니다.
 
노동의 강도가 세지고 여성들이 차지한 영역이 넓어지는 만큼, 육아와 가사를 남녀가 분담하고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는 꿈을 꾸는 여성농민들이 있습니다. 함께 꾸는 꿈은 더 이상 꿈이 아닌 현실이 될 것임을 믿는 여성농민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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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11/23 [05:04]  최종편집: ⓒ 일다
 
잠신 09/11/23 [13:11] 수정 삭제  
  좋은 기사 감사드립니다. 저는 시골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살지도 않았지만 공감이 됩니다.그리고 농촌 여성들의 삶과 대비되는 농촌 남성에게 분노(?)를 느낍니다. 농촌에서 자란 남성이 자신들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가슴 아파하고 눈물 흘리는것 이해가 되네요. 그런데 그런 남성이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눈물은 흘리지만, 자신의 아내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아버지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율배반적인, 모순적 태도에 분노를 느낀답니다. 농촌 여성들 힘내시기 바랍니다. 당당하게 목소리 높이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족으로, 당신의 아들이 당신의 남편 처럼 여성을 착취하는 태도에 분노하시길 기대하겠습니다.
그레이 09/11/23 [14:25] 수정 삭제  
  멋진 기사 잘봤습니다..
한편으로 마음 한켠이 뭉클하면서, 슬퍼지기도 했습니다.
여성농민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게 정말 중요하고, 그 이야기가 널리 퍼졌으면 좋겠단 생각도 했습니다.
여성농민회 분들이 키워낸 미래세대들의 세상은 아마 조금은 더 아름답고 평등하겠지요? 그러려면 신자유주의가 농촌을 더 소외시키지 않아야 할텐데.....
'밥 한 공기'값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구요..
소비자들이나 도시사람들의 인식도 변해가야 할 것 같습니다.

s 09/11/26 [17:52] 수정 삭제  
  "남녀평등의 사회, 여성들도 장관을 하고 대통령도 될 수 있다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아니라 ‘너희 나라’ 같습니다. 논일은 남자와 여자가 같이 하고, 밭일은 여자가 합니다. 농사일은 남자와 여자가 같이 하고, 집안일은 여자가 합니다. 사회적 관계는 남자가 맺고, 여자는 그 빈 자리를 메꿉니다."

.....ㅠ_ㅠ
숲이아 09/12/04 [11:47] 수정 삭제  
  '여성농민의 지위가 곧 평등사회의 잣대'- 정말 동감합니다. 좋은 기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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