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의 보석 ‘루앙파방’ 온전히 누리기

산골학교 지원을 위한 답사여행②

이영란 | 기사입력 2009/11/30 [19:40]

라오스의 보석 ‘루앙파방’ 온전히 누리기

산골학교 지원을 위한 답사여행②

이영란 | 입력 : 2009/11/30 [19:40]
일다는 라오스의 문화, 생태, 정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여행기를 연재합니다. 필자 이영란님은 라오스를 고향처럼 생각할 정도로 특별한 인연이 있는 분으로, <싸바이디 라오스>의 저자입니다.  –편집자 주
 
▲ 위양짠에서 루앙파방 가는 외국인 여행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버스
라오스 산골학교에 에너지를 지원하기 위한 현지조사를 굳이 ‘답사여행’이라고 한데는 이유가 있다. <일다> 독자들께 조사활동에 대한 보고를 할 것도 아닌데다, 실제 이번 여행은 내년 초 예정하고 있는 ‘공정여행을 위한 답사’였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여름 단체공정여행 프로그램을 한번 진행하면서 실무자로서 된맛을 톡톡히 봤던 나로서는, 또 한번 단체여행을 맡아보겠다고 마음먹기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사랑에 빠지기 위해서는 백 번 글을 읽는 것보다 한번 라오스를 가보는 것이 낫다는 걸 아는데 어쩌리. 그래, 사랑에 빠지기에 모자람이 없는 루앙파방으로 간다!
 
세계문화유산의 도시 루앙파방 가는 길
 
아침 일찍 위양짠에서 북부행 버스터미널로 갔다. 뚝뚝을 타면서 ‘루앙파방 가는 터미널’로 가자고 확인해 말했다. (그냥 북부터미널이라고만 하면 안 된다. 터미널 위치상으로는 빡쎄(Pakse)나 싸완나켇(Savannakhet) 등으로 가는 남부행 터미널이 북쪽에 있기 때문이다.)
 
아침 서너 시간 동안, 한 시간마다 브이아이피(VIP) 버스가 있다고 알고 있었다. 같은 시간에 브이아이피보다 15천 낍(2달러) 싼 에어컨버스도 있지만, 외국인여행자들은 8시간(실은 거의 10시간) 걸리는, 중간에 버스표를 내고 점심도 먹을 수 있고 멋진 풍광을 볼 수 있는 곳에선 가끔 멈춰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해주는 브이아이피 버스를 주로 탄다.
 
▲  높고 깊은 산중, 버스 타고 루앙파방으로 가는 길 풍경  © 이영란

그런데 7시가 조금 넘었는데 8시 버스가 이미 가버렸다! 라오스에서 도시간 이동을 위한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터미널에 1시간 정도 미리 와서 표를 끊고 기다려야 한다. 원래 예정한 출발시간이 한참 남았어도 좌석이 다 차면 가버리기 때문이다. 느긋한 라오스에서 빨리빨리 움직여야 할 거의 유일한 일이 아닐까 싶다.
 
9시 버스라도 타야지 했는데 없단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져 에어컨버스라도 타야지 하고 있는데, 창구직원들이 9시 버스를 증설하네 마네 한다. 음, 이번 경우는 이들에게도 예상 밖으로 손님이 몰린 특별한 것이었구나. 빙긋,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급조된 9시 브이아이피 버스는 외국인보다 라오스사람들이 많았다. 중간중간 손님이 타고 내리고, 또 전달을 부탁한 짐들을 싣고 내렸다. 해는 굽이굽이 구름 위 경치를 즐기기도 전에 저물었다. 9시 여행자를 위한 브이아이피 버스가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지평선이 보이는 평원의 위양짠에서 높고 깊은 산중의 루앙파방으로 가는 길, 차창 밖으로 점차로 변모해 가는 자연과 삶의 모습을 제대로 완상하기 위해서는, 해가 지기 전에 최소한 5시 무렵엔 루앙파방에 닿아야 하는 것이었다.
 
매컹의 심장, 루앙파방을 온전히 누리는 방법
 
루앙파방 (남부행) 터미널에 내렸다. 여관사진을 든 호객꾼이 많다. 라오스 호객꾼들은 극성스럽지 않다. 자기들 나름 약속이 있는지, 각 일행마다 사진을 내미는 호객꾼도 한 명이다. 또 어찌 보면 무성의해 보이는 라오스 관광업계에서 호객꾼을 쓴다는 것은 무언가 적극적이라는 것, 또는 론리플래닛(Lonely Planet) 덕을 보는 여관이 아니라는 것이니 꺼릴 일이 아니다.
 
▲ 테라스서 본 스님들의 ' 딱받' 풍경. ' 딱받'은 라오스 사람들의 일상적인 종교의식으로, 여행자라도 함부로 사진 찍는 건 삼가야 한다.

우리 호객꾼이 애초 제시한 여관은 ‘푸씨’(색깔 있는 산, 루앙파방의 남산)를 지나 ‘남칸’(루앙파방 시내 동쪽에서 매컹과 합류하는 강) 강변에 있었다. 장사가 잘 되는지 여관은 빈 방이 없었다. 다른 여관을 찾아 ‘남칸’을 오른쪽으로 두고 왼쪽으로 돌아 중심가로 들어왔다.
 
‘흐안팍 쏙디’(행운여관)는 루앙파방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왇 씨양텅(황금도시의 절) 가까이 있었다. 여기도 싼 방은 다 차서, 35달러 비싼 방밖에 없었다. 밤 8시 이미 늦은 시간 이제 다른 데를 찾을 여력도 없어 깎아달라고 애걸복걸, 주인은 라오스어를 하는 외국인이 기특했는지 25달러에 방을 내주었다. (싸이냐부리에 갔다 와서도 쏙디에서 묵었는데, 이때는 11달러짜리 싼 방을 얻을 수 있었다)
 
비싼 방은 정말 좋았다. 더 좋았던 것은 다음 날 아침, 루앙파방의 푸른 새벽보다 더 청신한, 주홍색 가사를 걸친 스님들이 딱받(탁발)하는 풍경을 테라스에서 볼 수 있었던 거였다. 행운여관이 맞다.
 
루앙파방은 위양짠에서 긴장했던 마음을 편히 놓을 수 있게 해주었다. 시간을 맞추어 움직여야 하는 정한 일정 없이, 하루를 온전히 들여 루앙파방을 누렸다. 딱받을 보고 나서도 여유 있는 아침시간, 맛있는 식당을 찾는 듯이 자체로 아름다운 거리를 구경하는 듯이 천천히 걸어 다녔다.
 
루앙파방은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의 도시다. 지정된 구역으론 큰 버스가 들어올 수 없다. 자전거를 빌릴 수도 있지만 루앙파방에서는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게 가장 적당한 속도가 될 것이다.
 
슬픈 영광의 도시, 루앙파방
 
▲  황금빛 부조가 아름다운 절 왇 마이(새 절)

오전은 란쌍왕국(백만 코끼리의 나라)의 영광을 기억하고 있는 왕궁박물관을 돌아보았다. 오른쪽으로 몇 송인 연꽃을 담은 못을, 그 옆 저녁 6시면 라오스 전통 춤극을 공연하는 국립극장을, 정면 야자수가 높게 도열할 넓은 정원 남쪽으로 푸씨를, 북쪽으로 지금은 매컹을 오르내리는 여객화물선들의 선착장이 된 옛날 왕실전용 주선장 계단 바로 아래 매컹을 두고 있다. 우리의 배산임수(背山臨水)와 반대지만, 작열하는 태양의 나라에서 이보다 좋은 풍수는 없으리라.
 
박물관을 나와 왕궁 왼쪽담장을 바라보고 있는 노천카페에 앉았다. 유기농에 공정무역 인증까지 받은 라오마운튼(Lao Mountain) 커피, 천 원짜리 냉커피 한 잔으로 이미 머리를 달구는 햇볕을 향기롭게 피할 수 있었다.
 
시원한 나무 그늘아래서 그보다 더 시원한 매컹을 바라보며 점심을 즐길 수 있는 강변 길을 걸어 ‘빅브라더마우스’(Big Brother Mouse: 책이 귀한 라오스 학생들을 지원하는 출판사)를 찾아갔다. 라오스 이야기임이 틀림없는 예쁜 그림이 그려진 동화책들을 골랐다. 사무실에 작업하고 있는 작가와도 만나고, 마침 내가 고른 책의 그림을 그린 화가에게는 친필 서명도 받았다.
 
두리번두리번 숨은 듯 박혀있는 가게들에 맘이 끌려 결코 서두를 수 없는 걸음을 재촉했는데도, 1시를 훌쩍 넘겨서야 왇 씨양텅에 닿았다. 루앙파방에 있는 수많은 절들은 그 수만큼 제각각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지붕의 선이나 건축학적 조형미가 돋보이는 것도 물론이지만, 절집의 벽화들이 가장 맘에 들었다. 온통 벽을 황금색 부조로 두른 것부터 색유리로 만든 것까지, 부처님부터 바나나에 이르기까지 라오스의 모든 옛날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벽화를 찬찬히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왕궁에서처럼 왇 씨양텅에도 매컹으로 내겨 가는 계단이 있다. 손님을 기다리는 뚝뚝 기사들과 뱃사공들이 계단을 호위한 나무 그늘서 쉰다. 일행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섰는데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뱃사공이 다가왔다. 배로 매컹을 건너보지 않겠느냐고. 루앙파방에 처음 왔을 때 새벽 강 안개 건너편으로 보이던 절이 있었다. 그곳으로 갔다.
 
친구는 뱃전에 손을 내려 탁한 듯 맑은 매컹을 어루만졌다. 그 절은 셈은 할 수 있지만 책은 읽을 줄 모르는 아이들의 일터이자 놀이터로, 돌보는 사람 없이 폐허 그대로였다. 그렇지만 그 절은 처음처럼 내게 또다른 인상을 새겨 넣었다. 그곳에서 바라본 루앙파방의 전경. 매컹이 두 손으로 감싸 올린 루앙파방은 아스라이 섬처럼 현실로부터 떨어져 있는 듯했다.
▲ 푸씨(루이파방의 남산)에서 내려다본 왕궁 북쪽을 흐르는 매컹   © 이영란의 라오스 여행

새삼 매컹이 루앙파방을 제 심장으로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 동남아시아의 어머니 강 매컹은 설원 어딘가에서 발원해 바다에 이르기까지 내처 남쪽으로 흐른다. 그런데 돌연 수직에 가깝게 방향을 꺾는다. 동쪽으로 깊은 산을 헤치고 가 루앙파방을 품기 위해서다.
 
그 절이 준 인상 때문이었을까? 다시 배를 타고 강을 건너오는 길 매컹으로 꼬리를 감추며 지던 석양이, 까만 어둠 속에서 보석같이 반짝이는 수공예품 야시장의 불빛보다 화려하고 또 여느 때와 달리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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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란 2010/06/23 [19:24] 수정 | 삭제
  • 저도 여전히 그러네요. ^^
  • 깨오 2010/06/22 [14:55] 수정 | 삭제
  • 잠시 잊혀져 지냈나보네요. "루앙파방" 이름만 들어도 설래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