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양이를 부탁해>가 개봉했던 때의 일이다. 오랜만에 극장에 가서, 정말 오랜만에 맘에 드는 영화를 만난 나는, 당시 자주 가던 모 인터넷 동호회 게시판에 들뜬 마음을 글로 옮겼다. 그 글을 보고 다음 날 기대에 부풀어 영화관을 찾았던 모 ‘남성’ 회원은 다음 날 이런 글을 게시판에 남겼다.
“머리털 나고, 그렇게 무슨 소린지 모르는 영화는 처음이다.” 아마도 그의 손에 한혜연의 작품을 들려준다면 똑같은 소리를 읊어댈지도 모르겠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가 그랬던 것처럼, 한혜연의 작품들 또한 특정한 누군가의 경험을, 특정한 누군가의 시선을 통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특정한 누군가는 두말 할 필요도 없이 ‘그 남성’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아니 이해할 필요가 없었던 ‘여성들’이다. 20대 여성들의 일상 다뤄 1993년 <마네킨>으로 데뷔한 한혜연의 초기 작들의 핵심은 ‘공포’와 ‘미스터리’였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마인], [나인] 등 성인취향 순정지의 창간과 더불어 한혜연은 조금씩, 그리고 본격적으로 ‘여성들의 일상’을 포착한 작품들을 세상에 내놓는다. 순정 성인지의 등장과 한혜연의 작품세계 확장은 밀접한 관련을 갖는데, 그것은 한혜연의 작품이 10대 취향의 그것과는 확연하게 다른 색깔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한혜연은 잘 정돈된 이미지를 보여주는 작가는 아니다. 표정없는 얼굴, 단조로운 펜선, 원근에 맞지 않는 배경, 간혹 원고를 장식하는 당황스러운 배경 이미지톤. 만화가가 창조하는 시각적 이미지를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점들은 ‘미숙함’ 내지는 ‘결점’으로 받아들여질 요소가 충분하다. 그러나 한혜연은 잘 짜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작가는 아니지만,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는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한혜연이 주목받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푸르츠 칵테일>의 다양한 인간군상 한혜연의 작품 속에는 현재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20대 여성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들어 있다. 작품 속 인물들은 딱히 유형화 하기 힘들만큼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준다. 단편집 <푸르츠 칵테일>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첫 번째 에피소드 ‘레몬과 솔로몬’에서는 레몬을 매개로 세 사람의 각기 다른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상대방의 시각에서 이해하기를 거부하다가 결국 애인을 떠나 보낸 뒤에 후회하는 남자, 헤어진 연인을 레몬맛을 통해 추억하는 여자, 사랑했던 형이 찾아올 때를 위해 레몬차를 준비하는 또 다른 남자의 이야기다. 두 번째 에피소드 ‘복숭아 샤베트’의 주인공은 현실에 타협한 결혼을 앞두고 갈등한다. 스스로의 발로 걷는 삶을 택할 것인가, 누군가의 벤츠에 실려갈 것인가. 그녀는 하얀 웨딩드레스를 벗고 두 발로 걷는 삶을 선택한다. ‘코팅오렌지’에서는 같은 실연의 상처를 입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는 두 여성이 등장하고, ‘수박을 만드는 세가지 방법’에서는 외모 콤플렉스에 빠져 쌍커플 수술을 받게 되는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 집… 딸기빙수’에서는 액세서리 점의 도난방지 감시원이면서 백화점의 스카프에 손을 대게 되는 여성이 등장한다. 감시하는 것이 일인 주영은 일상에서도 타인을 감시하는 것이 생활화된 자신에게 염증을 느낀다. 그런 그녀가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치다가 때마침 등장한 미라라는 여성에 의해서 위기를 모면하는데 알고 보니 그녀는 주영의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다 주영에게 용서 받은 적이 있던 여자였다. 그리고 미라 또한 주영처럼 한 서점에서 ‘감시인’으로 일하고 있다. ‘감시자’에서 ‘훔치는 사람’으로의 전이. 같은 경험을 공유한 그들은, 역시 그들 기억 속에 공유되어 있는 장소인 ‘딸기빙수’ 집으로 향한다. 마지막 에피소드 ‘100% real tomato juice’는 생물학적 남성에서 여성의 삶을 택한 트랜스젠더와 그녀의 언니의 갈등과 화해를 다룬 이야기이다. ‘섬세한 눈’은 그녀만의 스타일 이런 단편들을 바탕으로 한혜연은 나인에 <금지된 사랑>(서울문화사, 전 2권)을 선보이며 20대 여성독자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강하게 각인 시켰다. <금지된 사랑>은 ‘그치는 것을 금한’ 사랑이라는 의미로 주인공 윤지이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의 다양한 삶과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상을 포착하는 그만의 섬세함은 그림에서도 마찬가지다. 한혜연은 그림에서 스타일을 추구하진 않는다. 대신 특유의 섬세한 관찰력으로 인물을 묘사한다. 이를테면 밥을 먹을 때마다 쓸려 내려와 괴롭히는 어중간한 단발머리의 불편함이나, 두꺼운 니트를 벗다 말고 그대로 이마 부근에 걸친 채로 친구의 전화를 받는 모습이라거나, 뒤꿈치에 일회용 밴드를 붙이고 있는 여주인공의 구두 신은 발이라거나, 초조함 때문에 깨문 손등에 남은 이빨자국이라거나… 사소해 보일지도 모르는 이런 모습들에 개인적으로 매우 감동하곤 하는데, 왜냐하면 이는 그가 얼마나 섬세한 관찰력을 지니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야말로 다른 작가들에게선 볼 수 없는 그녀만의 스타일인 것이다. 이후 연재작인 <아. 마. 존>에서 스토리를 다루는 농익은 솜씨와 본격적인 페미니즘 성향의 작품을 선보이지만, 안타깝게도 이 책은 1권 이후로 연재 중지 상태다. (아마도 나인의 폐간과 더불어 한동안 이런 작품을 연재해 줄 공간이 없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담담하게 바라보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한혜연의 작품이 가진 또 다른 미덕은 ‘다름’을 인정하는 그녀만의 방식과 균형감각이다. 그녀의 작품 속에는 사회적으로 ‘일탈’이라 표현되는 인물들이 종종 등장한다. 이를테면, ‘불륜’을 하고 있거나, ‘동성애자’거나, 혹은 '트랜스젠더'이거나. 중요한 것은 한혜연이 이러한 인물들을 다루는 방식이다. 그는 ‘소재’ 자체에 집착하지 않는다. 특히 동성애를 다루는 방식을 보면 다른 작가들과 확연하게 차이를 보인다. 동성애(동성애자)를 다룬 많은 작품들이 그것을(그들을) ‘주제’로서 다룬다. 동성애자 자체가 특이한 존재들이고, 일상적이지 않은 탓에 ‘동성애’라는 것 자체가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뭔가 다른 독특한 행동을 해주거나 아니면 휴머니즘적인 감동을 이끌어 내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성애’가 곧 내용이 되는 것이 아니고 이성애의 수많은 국면들이 중요한 것처럼, 한혜연은 동성애를 이미 존재하고 있는 사랑의 다양한 스펙트럼 중 한 단면으로서 제시한다. 세상에 수만 가지의 사랑이 있는 것처럼 그의 작품 속에도 사랑은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등장하며, 애초에 불륜이나 동성애라는 단어는 무의미한 것이라 말하고 있다. 무시해서도 안되지만, 강조할 필요도 없다. 이상한 것도 특이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특별히 강하거나, 특별히 나약지도 않다. 길을 가다 마주칠 것만 같은 사람들, 혹은 어쩌면 나의 모습일 수도 있는 그런 평범한 감수성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살아가면서 나중에 추억이라고 부르게 될 아픈 일들을 하나씩, 둘씩 쌓아간다. 한혜연의 표현에 따르면 ‘슬픈 공통분모’를 늘려 가는 것이다. 이들이 겪는 갈등은 담담한 톤의 나레이션을 통해 전달되고 우리는 그들의 삶을 조용히 바라본다. 옳음/그름의 잣대나 섣부른 가치판단을 배제하고 한혜연은 그들의 삶을 담담히 펼쳐놓는다. 그리고 그로부터 성찰을 이끌어낸다. 억지스런 화해에 집착하지 않고, 담담하게 바라보기.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그것이 한혜연식 화해를 이끌어내는 힘이다. 오랜만의 신작 'Dog Day Afternoon' 격주간지 [오후] 2호에 실린 단편 'Dog Day Afternoon'도 그녀만의 장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단편이다. 늘어지게 더운 여름날(Dog Day), 지열이 훅훅 올라 모든 것을 녹여버릴 듯한 날. 차가운 소나기 한줄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6년간 동성친구 K를 짝사랑해 온 윤숙. 6년 전 그 때 윤숙의 고백으로 둘은 친구도 완전한 타인도 아닌, 어정쩡한 관계가 되어버렸지만, 윤숙은 여전히 K에 대한 작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다. 어느 날 문득, K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먼저 전화를 거는 법이 없던 그녀로부터의 전화는 윤숙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녀가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는 신호일까. 그러나 거리를 하얗게 물들이는 태양에 아스팔트가 녹아 내리는 것처럼 그녀의 작은 기대도 뜨거운 열기 속으로 녹아버린다. K가 가져온 소식은 ‘이민’. 그나마 곁에 있고 싶다는 소망마저도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다. 이 작품에는 윤숙의 소망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윤숙이 K를 사랑하게 되던 해, 윤숙의 아버지는 복권에 마음을 뺏겼다. 윤숙이 가슴을 설레며 K를 만나러 가던 날, 길에서 껌을 파는 걸인 삼돌이는 피자집에서 나누어 준 콜라 쿠폰에 마음이 들뜬다. 똑같은 6년 간의 기다림. 윤숙이 K를 만나러 나가고 시작된 복권추첨방송. 아버지의 복권은 당첨을 향해 달려간다. 어쩌면 윤숙의 기다림도 대답을 얻을지 모른다고 여겨진 순간, 기대는 어이없이 무너진다. 그리고 그 순간, 뜨거운 여름 날을 적셔 줄 차가운 콜라 한 잔을 기대했던 삼돌이의 기대도 부서진다. 녹아버린 두 개의 기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눈을 감싼 두 사람. 중첩되는 두 사람의 감정으로 슬픔은 배가 되지만, 동시에 화면은 인물을 클로즈업 하지 않고 한 걸음 물러나 뜨거운 거리를 비춘다. 이를 통해 독자는 전 페이지에서 윤숙에 감정에 몰입하다가 마지막 페이지에서 ‘바라보기’로 유도된다. ‘몰입’이 가져오는 것은 일시적인 카타르시스지만, 담담한 바라보기가 가져오는 것은 ‘성찰’이다. 특히 마지막 컷은 화면 왼쪽에 뙤약볕 아래 조그맣게 몸을 말고 있는 삼돌이를 위치시키고, 오른쪽에는 그늘 아래로 양산을 쓰고 가는 여성과 바닥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을 핥아먹는 개를 대비시킨다. 컷 위 아래로는 여백을 많이 두어서 뜨거운 오후의 느낌을 색채(흰색)로서 전달한다. 이는 독자에게 뜨거운 여름의 이미지를 환기시키고 적극적으로 사유하게 만든다. 윤숙의 기대는 무너졌다. 그러나 윤숙은 절망하지 않을 것이다. 왠지 한혜연의 작품 속 캐릭터들은 극단적인 절망으로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은 믿음을 준다. 그것은 그의 인물들이 인생의 슬픔을 받아 들이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통도 슬픔도 언젠가는 추억이 된다는 것. 타인의 모습을 눈 여겨 볼 줄 알고, 다른 삶을 인정할 줄 아는 그들이기에 어쩌면 이는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오후] 2호에 실린 한혜연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번 호 'Dog Day Afternoon'에 이어 옴니버스 형식으로 계절별 오후 이야기를 연재할 계획이라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개인적으로 <아. 마. 존>의 연재가 재개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테지만) 오랜만에 시작된 한혜연의 정기적인 연재가 [오후]의 창간과 함께라는 점도 독자들이 의미 깊게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다. 혹시 남은 여름을 무엇을 하면서 보내야 될지 고민하는 중이라면 한혜연의 작품과 함께 해보는 것은 어떨지. 늘어지게 더운 여름 날, 한줄기 소나기를 만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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