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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농업’ 아시아 여성농민들의 희망 일구기
[기획연재] 생산하고 판매하고, 조직하고 연대하는 힘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윤금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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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는 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사회적으로 묻혀져 있던 여성농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칼럼을 연재했습니다. 그 마지막 기사는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前회장을 역임하며 세계여성농민들과 교류해 온 윤금순님이 기고했습니다. –편집자 주]
 
‘다르면서 같은’ 아시아 각국 여성농민의 삶

 
아시아는 아주 큰 대륙이다. 세계육지면적의 30%를 차지하고, 65억 세계인구 중 40억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다양한 언어가 존재하고, 다양한 문화가 존재한다.
 
언제부턴가 이 땅에는 아시아 여러 나라의 여성들이 함께 살고 있다. 특히 젊은이와 어린아이를 찾아보기 힘들었던 우리 농촌에는, 그녀들의 고향이 매우 가깝게 다가와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아시아를 잘 알지 못한다. 아시아 각지에서 그 곳의 자연과 더불어 농사짓고 다양한 문화를 지키며 살아가는 여성농민들에 대해선 더더욱 알지 못한다.
 
2005년은 여성농민들에게 중요한 해였다. 홍콩에서 WTO 6차 각료회담을 앞두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은 동남-동아시아 여러 나라 여성농민들을 초청해 <WTO가 여성농민에게 미치는 영향>이란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그 결과 개발국이든 저개발국이든, 아시아 여성농민들은 신자유주의 흐름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고, 땅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포럼참가자들은 세계 여성농민들의 행동을 조직하고, 아시아여성들 간에 지속적인 연대모임을 만들기로 했다. 그 후 아시아 여성농민들은 매년 각국을 순회방문하며, 각 나라 여성들이 처한 환경을 이해하고, 식량주권과 인간다운 삶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서로 배우는 기회를 갖고 있다.

▲ 전국여성농민회와 전남연합이 20주년을 맞아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국제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엔 국제 소농조직 비아깜페시나(La Via Campesina) 여성회원들이 참여해 각국 사례를 공유했다. © Lim
아시아 각국들은 ‘가부장제’ 전통이 강하게 살아있으면서, 많은 나라가 식민지배를 벗어나 얼마 되지 않아서 신자유주의 사회로 급격히 편입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여성농민들은 전통적으로 쌓여온 ‘삶의 지혜’를 통해 농업을 일구고 희망을 모색하고 있다. 교류를 통해 알게 된 정보들 중에서, 몇 국가의 여성농민 활동소식을 공유하고자 한다.

 일본 여성농민들 “식량자급률 높이자”
 
일본의 농업환경은 우리와 비슷하다. 현재 일본의 식량자급률은 칼로리 기준 38%, 곡물기준 27%정도인데, 일본정부는 12%까지 낮추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농민의 수는 점점 감소해 240만 명 정도이고 고령화가 심각하다. 농촌여성들은 농사로만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대부분 파트타임 겸업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일본 여성농민들은 “생산하고 판매하고 희망을 넓히자”는 기치 아래, ‘식량자급율’을 높이기 위해 소비자 대상으로 여론을 형성해가고 있다. 생산만이 아니라 ‘지역생산 지역소비’를 원칙으로 한다. 농민들이 산지직판장을 만들어 직접 판매하거나, 소비자들이 운영하는 산지직송센터로 보낸다. 생산물은 노동조합, 학교급식 등에 납품하기도 한다.
 
일본 농가를 방문했을 때 인상적이었던 것은, 여성농민이 꼭 자신이 생산한 작물들을 소개하는 작은 전단이나 소개 문건을 준비해 가지고 다닌다는 것이다. 또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로 갖가지 음식들을 만들어 싸오거나, 직접 운영하는 도시락 제조소에서 도시락을 만들어 대접한다. 그 도시락에는 반드시 음식과 농산물에 대한 소개를 적은 쪽지가 들어있다.
 
캄보디아 여성들 ‘토종종자 지키는 텃밭농업’ 

▲ 신자유주의로 인해 공통적인 위협을 받게 된 아시아 여성농민들은 연대망을 조직해나가고 있다.
기후가 좋은 캄보디아에서, 여성들은 집 근처 조그만 텃밭에 다양한 작물을 심어 열심히 가꾼다. 저절로 나서 자란 파파야, 바나나 등의 열매를 따다 장에 내다팔기도 한다. 물과 비료가 부족해 소출을 많이 내지는 못하지만, 생계에 많은 도움이 된다. 집 근처 못이나 작은 웅덩이에는 물고기나 개구리, 오리 등을 키운다. 여유가 있으면 마당에 닭을 키우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캄보디아 정부는 급격한 개방정책을 펴고 있다. 외국자본과 수입농산물이 대량 들어와, 농민들은 지역시장을 잃어가고 있다. 농사 짓고 살아오던 사람들은 이제 도시로 가거나 멀리 외국으로 이주노동을 떠나고 있다. 가난한 집안의 여성들은 결혼이주를 하거나 도시 성 산업에 유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농업시장도 바뀌어, 기업에 의해 특허가 난 유전자조작 종자들이 보급되고 있다. 그러나 캄보디아 여성들은 토종종자를 텃밭에 심으며, 자연비료와 자연살충제를 사용하는 농법을 고수한다. 종자 값이 비싼 탓도 있지만 “종자를 잃으면 정체성을 잃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캄보디아를 비롯해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종자를 선택하고 보전하는 일은 크메르인의 전통이다.
 
캄보디아 여성농민들은 종자를 정제해 나누고 정보도 교류하며, 종자의 순수성과 먹거리 안전을 지키고 있다. 또한 마을마다 여성회를 조직하고 있으며, 상수도나 의료-위생시설이 없는 현실에서 보건요원을 두어 응급처치 등 여성농민의 건강을 돌보는 자치활동도 하고 있다.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인도여성들의 공동체
 
인도는 원래 여성이 중심이 된 사회였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오래도록 인도에서는 여성들이 상품이나 성적노리개처럼 취급 받았다. 1994년까지도 죽은 남편을 천국에 보내기 위해 아내를 산 채로 화형에 처하는 풍습이 있었다. 조혼풍습과 카스트제도, 그리고 ‘다우리’라는 지참금제도가 아직까지 존재해, 인도여성들의 삶을 구속하고 있다.
 
전통적 농업국가였던 일본은 독립 후 서구자본주의 개발모델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화학비료와 농약 사용이 장려됐으며, 외국의 종자회사들에게 종자가 모두 넘어갔다. WTO의 여파로 농산물 값이 곤두박질치자, 농민들은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농사규모를 늘렸다가 빚더미에 눌려 한 해에 공식적으로 1만 7천 명 이상 자살하는 비극이 발생하기도 했다.
 
농가부채로 은행이 농민재산에 대한 강제집행을 시행하자, 그에 저항하는 투쟁과정에서 많은 여성들이 구속됐다. 이를 계기로 카르나카타주를 시작으로 여성농민들이 단결했고 조직화됐다. 이들은 “유전자조작 없는 인도”를 위해 초국적기업과 맞서며, 토종종자를 지키는 종자은행을 만들었다.
 
인도 중부 안드라프라데시주 자히라바드 부근에선 75개 마을에서 여성상감(Sanghams, 가난한 사람들의 마을단위 결합체)들이 함께 모여, 데칸개발협회(DDS)를 통해 지역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20년이 넘은 이 자치활동이 내걸고 있는 구호는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는 것이다.
 
달리트(Dalit, 불가촉천민) 계층과 도시빈민, 여성들이 주인이 돼 공동체농업을 꾸려나가고, 소액대출은행을 만들고, 공공분배시스템을 마련하고, 식량안전을 교육해나가면서, 여성들은 공동체 안에서 지도자로서의 위치를 회복하고, 새로운 존엄성을 부여 받고 있다.
 
끝없는 토지분쟁, 땅을 지키는 방글라데시 여성들


▲ 세계 각국에서 여성농민들은 '식량주권'과 '인간다운 삶'을 지키기 위해 계속 배우고 연대해갈 것이다. ©전국여성농민회
방글라데시는 브라마푸트라강(江)과 갠지스강의 하류에 있는 나라다. 두 강이 형성한 거대한 삼각주가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대부분 강에서 농사 짓거나 고기를 잡아 살아간다. 특히 땅이 없는 사람들에게 강은 생활의 기반이자 삶의 근원이다.
 
그런데 사이클론이 상습적으로 덮쳐와, 10~20년씩 일궈 놓은 삶의 근거지를 빼앗아가기도 하고, 비옥한 새 땅을 만들어 놓기도 한다. 언제 가라앉을지 모르는 땅, 언제 갈라져 나뉘어 버릴지 모르는 땅이지만, 땅이 없는 사람들과 사이클론으로 터전을 잃은 사람들은 땅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쳐가며 투쟁하고 있다. 그 선두 주자는 방글라데시 여성들이다.
 
방글라데시에선 땅을 먼저 차지한 부자들과 정부, 땅이 없는 농민들 사이에 토지를 둘러싼 분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세계기후가 변화하면서 히말라야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해 삼각주의 농사짓는 땅들은 점점 작아지고, 그에 따라 땅을 둘러싼 갈등도 커지고 있다.
 
작은 섬들에는 상수도시설이나 학교는커녕, 병원 등 기초의료시설조차 없는 곳들도 있다. 여성들은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고, 강에 가서 빨래를 하고, 물을 긷고, 집안일을 해야 한다. 닭이나 염소 같은 가축을 돌보는 일들도 여성들 몫이다. 그러나 그녀들은 바쁜 와중에도 한데 모여 ‘땅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토론한다.
 
토지확보 집회에서 팔 걷어 부치고 앞장서다 부상을 당하는 일도 많다. 이처럼 여성들이 땅을 지키기 위해 맨몸으로 싸우고 있는데도, 의사결정권의 대부분은 남성들이 가지고 있다. 아내를 4명까지 둘 수 있다는 무슬림 법을 들먹이는 남성들도 많다. 그래서 방글라데시 여성들은 마을조직들을 만들고 ‘여성의 힘’을 키우기 위해 여성들 간 연대를 강화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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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12/07 [20:20]  최종편집: ⓒ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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