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일깨워준 라오스 소읍 싸이냐부리

라오스 산골학교 지원을 위한 답사 여행 ③

이영란 | 기사입력 2009/12/11 [15:30]

사랑을 일깨워준 라오스 소읍 싸이냐부리

라오스 산골학교 지원을 위한 답사 여행 ③

이영란 | 입력 : 2009/12/11 [15:30]
일다는 라오스의 문화, 생태, 정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여행기를 연재합니다. 필자 이영란님은 라오스를 고향처럼 생각할 정도로 특별한 인연이 있는 분으로, <싸바이디 라오스>의 저자입니다.  –편집자 주
 
라오스를 사랑하게 만든 작은 시골읍내 

▲ 모르는 게 없고 합리적인 교장선생님, 아짠 완텅(우측)은 언제 어디서나 일을 많이 맡게 된다. 사진에서 오른쪽, 서류를 들고 있다.  ©이영란
앞의 글들 중에 내가 라오스를 사랑하게 된 까닭을 밝혀 쓴 게 있다. 우리 학교 아닌 저기 바람이 찬 산골학교, 말이 통하지는 않는 파오족 소수민족, 우리 학교 학생 아닌 건너 마을 몸이 불편한 학생…….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라오스 사람들, 그들의 그런 높은 사회연대의식에 감동했노라 거창하게 고백한 바 있다.

그러나 실은 그저 싸이냐부리가 좋았던 거였다. 그랬다. 내가 라오스로 파견된 것은 싸이냐부리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노라고 생각했고, 2년 임기를 마치고 와서도 라오스와 관련된 일을 찾은 것은 싸이냐부리로 돌아가기 위한 방편에 하나였다. 없으면 일을 만들어서라도, 그도 안 되면 따로 시간과 돈을 들여서라도 나는 싸이냐부리를 찾아갔다.

라오스 산골학교 지원을 위한 답사여행, 일로 싸이냐부리를 갈 수 있는 기회다. 싸이냐부리는 산골학교 지원사업의 베이스캠프다.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할 중학교가 있는 싸멛 마을과 가장 가까운 읍내인 데다, 행정적 협조를 받아야 하는 교육청, 싸이냐부리도(道) 광산에너지국도 싸이냐부리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싸이냐부리로 간다!

그곳에 가면 사람이 있다, 싸이냐부리

싸이냐부리는 구경할 게 없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론리플래닛과 다른 스테이언아더데이(Stay Another Day, 공정여행자를 위한 소책자)에도 싸이냐부리는 전혀 나와 있지 않다. 가끔 길을 잘못 든 여행자가 아니면, 정말 그저 아무도 가지 않을 곳을 골라(?) 시외버스를 타고 오는 사람이 아니면, 싸이냐부리는 어디를 가기 위해서 거쳐 갈 수 있는 곳도 아니니 그렇다.

싸이냐부리는 도청소재지라는 명예로 그저 어울리지 않는 5층짜리 도청을 모시고 있는 궁벽한 소읍일 뿐이다. 그러나 오래 머물며 살며 가족이 될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다.

▲ 언니 같은 아짠 껠라컨과 내 조카와 꼭 닮은 아기 뱅.  
아짠 완텅, 우리 믿따팝 중학교 교장선생님이다. 실은 부대표지만, 형식적인 역할만 하는 학교대표(진짜 교장 선생님)보다 모든 학교 일을 맡고 있어 한국 단원들 사이에선 ‘교장’이 공식 명칭이 되었다.

아짠 완텅은 현명한 여성이고, 꽤 활동적이어서 처음부터 지금 산골학교 지원활동까지 내내 내게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파견된 지 1년하고도 여섯 달이 지난 날 어느 늦은 저녁, 새 교사(校舍) 건축공사 문제로 항의 또는 호소를 하려고 건축업자를 찾아갔다가 외려 봉변을 당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차마 눈물도 흘릴 수 없을 만큼 화가 나고 가슴만 터져버릴 듯 홀로 있을 때, 아짠 완텅은 내게 처음 전화를 했다. 괜찮으냐고, 너무 애쓰지 말라고, 우리는 씰리펀 마음을 잘 알고 있다고….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내렸다.

이방인에게 친구와 가족이 되어준 사람들

아짠 껠라컨은 우리학교 영어 선생님이다. 라오스에선 아직 영어가 중요과목이 아니다. 그래서 기술, 특별활동 수업까지 맡고 있다. 반면 초등학교 4학년까지 확대된 영어 수업을 위해 주변 다섯 개 초등학교 학생들도 가르친다. 우리학교 청년단 부대표로서도 일이 많다. 또 다섯 달 만에 우리에게 컴퓨터를 배워 학생들에게 가르칠 만큼 똑똑하고 또 성실하다.

결혼식등 행사에서 형 떼따가 기타, 아짠 미노가 전자건반을 연주한다
한편으로 그는 가장이기도 했다. 부모님(라오스에선 결혼 후에 여자 집으로 들어와 사는 경우가 많다)과 여동생 부부, 위양짠으로 유학 간 남편과 루앙파방 병원에서 데려와 입양한 아기 뱅이 아짠의 어깨에 얹혀있다. 그런 삶의 무게 때문인가, 스물네 살 켈리컨은 내게 언니 같았다. 그래도 늘 꿋꿋하게 웃던 그는, 지금까지 가장 가슴 아픈 일이 무엇이었냐는 물음에, 너무 어린 나이에 결혼한 것이라고 답하며 울었다.

또 한 사람 소개를 빠트릴 수 없는 아짠 미노. 나의 코워커(co-worker, 파견기관에서 지정한 조력자)이자 나의 라오스어 선생님이다.

미노는 우리학교 과학 선생님, 가끔 2학년 아닌 3학년 수학도 가르친다. 라오스에서 과학은 수학보다 중요한 과목이라 미노의 수업시간은 꽉 차있다. 게다가 아짠 껠라컨과 같이 컴퓨터 교사, 청년단 총무 역할까지 맡고 있다. 미노는 테이프만 듣고 김광석의 ‘부치지 않은 편지’, ‘이등병의 편지’를 연주할 정도로 기타를 잘 친다. 전자건반도 잘 다뤄 결혼식이 많은 건기엔 연주를 하고 받는 돈이 교사월급을 넘는다.

처음 나는 아짠 미노가 가진 천재의 괴팍함에 어린애 같은 난만함에 한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코워커라는 인연으로 억지로 붙어 다니고, 오래 라오스어를 배우고, 아짠들의 연애 문제로 티격태격하면서 많이 익숙해지고 깊이 정이 들었다.

싸이냐부리의 아름다운 밤 정경

▲ 언제나 그리운 싸이냐부리 저녁 하늘과 달
지난 10월 내가 라오스에 들어가기 바로 전에 아짠 미노가 결혼을 했다. 그는 옛날 같지 않았다. 조르지도 않았는데 나를 오토바이로 태워 다리 건너 새로 생긴 중국시장을 구경시켜줬다. 시장이 정말 크지 않냐, 여기 물건은 주로 기계류, 중국 물건이다, 이 가게 사람들이라오스말을 씰리펀보다 잘한다, 설명도 친절했다. 미노는 신랑이 되어 비로소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아짠의 오토바이 뒤에만 타면 내가 어린애처럼 신이 났는데, 이번엔 마음이 쓸쓸하다. 모를 일이다.

예전 같았으면 이럴 때 반뽕 초등학교로 갔을 것이다. 남훙(싸이냐부리 읍내를 지나는 훙 강)과 닿아있는 운동장 한편에 서있는 너른 나무 아래로 간다.

밤, 싸이냐부리 사위는 칠흑인데 영광스런 달빛에 하늘은 휘황하다. 벌레보다 작은 몸짓으로 흐르는 남훙은 푸르스름한 비늘을 드러내고, 바람도 없는데 저절로 재잘거리는 나뭇잎들은 하나뿐인 달을 수천 개의 별빛으로 나누어 반짝거린다. ‘나무님’에게 손을 대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그렇게 그것만으로 되었다.

아누싸와리(혁명영웅 기념탑, 라오스는 일정규모 행정구역마다 있다) 언덕도 좋다. 낮이면 높이 오르지 않아도 아늑하게 잡히는 싸이냐부리 읍내가 모두 보여 좋고, 밤이면 우뚝 선 탑을 돌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고백했던 숲의 서늘함이 좋다. 평온한 싸이냐부리여서 더욱 마음이 갈라지는 날은 두려움도 없이 언덕을 내달리며 목이 찢어지도록 소리를 질러도 좋다.

내친김에 페달을 굴러 다리까지 간다. 보름이라면 강 건너 산 위에 그믐 무렵이면 바늘 같은 달이 들판 위에 지붕에 올라 있을 것이다.

갈래 많은 마음을 누일 수 있는 곳

▲ 아누싸와리(혁명영웅 기념탑)에서 바라본 싸이냐부리 읍내.  
자전거가 강변에 이르면 숨이 턱에 닿는 열기를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강에 안겨 노는 아이들, 강가 자갈밭을 돌아 고삐도 없는 물소를 집으로 데려가는 소년….

그저 물끄러미 바라만 보아도 마음은 흘러간다, 토익을 공부하다가도 신선이 된다. 내려가 손이라도 잡으면 남훙의 위로가 내 것이 된다, 내가 강물이 된다.

싸이냐부리 남쪽 비행장길을 달린다. 5월이면 반딧불이 숨 막히게 피어 오른다. 그때 그 길에서 다시 자전거를 탄다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받은 반지라도 던져버리고 그 무수한 불빛들과 함께 춤을 출 것이다. 사뿐사뿐 날아오를 것이다.

아, 라오스 싸이냐부리에서 이렇게 살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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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물 2009/12/19 [15:45] 수정 | 삭제
  • 아짠 왕텅이 참 멋있는 여자교장선생님인가 봅니다. 라오스 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네요.
    라오스 이야기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그곳에 가봐야지 마음 먹고서 말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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