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트홈’은 이미 깨져있었다

섬뜩한 진실을 비추는 영화 <4인용 식탁>

김윤은미 | 기사입력 2003/08/10 [22:45]

‘스위트홈’은 이미 깨져있었다

섬뜩한 진실을 비추는 영화 <4인용 식탁>

김윤은미 | 입력 : 2003/08/10 [22:45]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읽은 적 있다.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만을 말하면서 살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빌었다는 한 남자의 이야기. 그 결과 남자는 주변 사람들에게 직언만 한다는 비난을 들으며 외톨이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 남자가 ‘당신의 코가 길어요’와 같은 사소한 직언이 아니라,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당위가 강력하게 작동할 만큼 섬뜩한 진실과 마주쳤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가 진실을 말할 때 주변 사람들은 ‘당신이 오히려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몰아붙이지 않을까? 영화 속 연의 대사처럼 사람들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믿으니까.

<4인용 식탁>은 섬뜩한 진실을 담담하게 비추는 외톨이 같은 영화다. 영화가 보여주는 섬뜩한 진실은 생존을 위해 움직이는 도시와 가족, 그리고 사람들이다. 생활고에 찌든 어머니가 아이에게 수면제를 먹인 사건, 아이를 눌러버린 쓰레기차가 하수구에 아이를 집어넣은 채 다시 달리는 장면, 우물에 빠져 죽은 어머니의 젖을 먹으며 살아남은 아이의 모습은 공포영화의 익숙한 클리셰들을 대처한다.

 
인간이라면, 가족이라면 그래야 한다는 당위와 윤리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장면들, 이것이 현실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감당하지 못할 끔찍한 과거의 형상

잘 나가는 리모델링 건축가로 결혼을 앞두고 있는 정원은 지하철 역 종점에서, 잠든 채 지하철을 타고 사라지는 두 여자아이들을 발견한다. 다음날 그는 그 여자아이들의 엄마가 수면제가 든 과자를 먹여 그녀들을 죽였다는 뉴스를 듣게 된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 정원의 약혼자가 가지고 온 4인용 식탁. 그녀는 “요즘 식탁은 대화의 장소”라며 식탁 위 조명이 음식이 아닌 사람을 비추도록 설치한다. 그러나 그날 이후 식탁에는 죽은 여자아이들이 조명을 받은 채 누워있다. 그때부터 정원의 안온한 일상은 뒤틀리기 시작한다.

귀신에 이어, 악몽에 시달리는 그. 정원은 자기의 눈에만 보인다고 믿었던 여자아이 귀신이, 우연히 만난 기면발작증에 시달리는 여자 연의 눈에도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녀에게 집요하게 매달린다. 연을 통해 정원이 어린 시절 자신의 실수로 죽은 여동생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으며, 그 때문에 귀신들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트라우마적인 과거가 그 개인에게 온전하게 통합되지 못한 채 귀신과 같은 공포스런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

“사람들은 겪었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에요. 그게 뭐든지 감당할 수 있을 때만 뭔가를 믿어요”라고 말하는 여자 연. 그녀는 투신자살하는 여자와 눈이 마주치는 등 공포영화에나 나올 법한 끔찍한 상황을 몇 번이고 겪었으며, 그때마다 기면발작증세를 보인다. 연이 괴로운 이유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진실들을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연은 친했던 언니 정숙에게 정숙의 과거를 말해주었으나, 정숙은 그 과거를 감당하지 못했으며 결국 유아살해죄로 피고석에 앉게 된다. 정숙은 어머니가 우물에 떨어져서 죽은 후 그 젖을 빨아먹어 살아났다. 그 과거를 알고 난 후 정숙은 우물 같은 터널에 들어가면 발작을 일으키고, 자신의 아이가 자신을 빨아먹는 흡혈귀처럼 느껴 제대로 젖을 먹이지 못하는 등 괴로워하다가 결국 자신의 아이와 연의 아이를 베란다에서 떨어뜨리고 만다.

산산조각 난 '스위트 홈'

연은 정원의 꿈을 통해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정원도 정숙처럼 외상적인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아낸다. 달동네에서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낸 정원은 길바닥에서 놀던 아이가 쓰레기차의 커다란 바퀴에 우그러지는 장면을 목격한다. 운전수는 아이의 시체를 하수구에 집어넣고 사라진다. 정원은 그 장면을 무표정하게 바라본다. 정원은 자신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폭행하는 아버지를 견디다 못해, 방에 연탄불을 가지고 들어온다. 그는 여동생을 죽이지 않기 위해 장에 숨겼지만, 연탄불은 화재로 번졌고 정원은 새까맣게 타버린 동생의 시체를 바라보며 오열하고 만다.

영화는 아이를 내던진 정숙과 아이에게 수면제를 먹인 어머니 사건과, 아버지를 죽인 정원을 통해 행복한 가정과 자애로운 어머니상을 산산조각 낸다. 냉혹한 환경과 여린 인간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겠다는 <4인용 식탁>의 시선은, ‘한 남자의 실패한 성장담’을 그리겠다는 의도와는 상관없이 여성에 대한 탈신비화를 불러온다. 신비화된 모성적인 어머니와 자애로운 주부들은 철저히 사라지고, 그 대신 히스테리와 우울증에 시달리며 위에서 아래로 수직 낙하하는 여성들이 나타났다. 고양이를 키우면서 사람들에게 말을 걸며 외로움을 지우던 이름 모를 여자와 연을 부르며 법원 2층에서 떨어진 정숙, 그리고 자신을 배신한 정원에게 믿게 해주겠다며 몸을 던지고 만 연. 이들은 진실을 직시하고 그 진실을 견디지 못해, 외롭고 적막한 도시를 떠도는 귀신이 되어 진심으로 믿었던 사람들의 곁을 떠돈다.

진실을 직시한 여성들이 몸을 지탱하지 못할 만큼 괴로워하고 있다면, 남자들은 여자들이 들려주는 진실을 믿지 않거나, 떼어내려고 한다. 사실 그들 역시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의 죽음 위에 자라났으며 과거의 죽음은 언제나 죄책감이 되어 사람들을 뒤쫓는다. 그러나 생활고와 죽음의 공포에 시달린 과거를 가진 남성들이 말끔한 어른이 되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스위트홈’을 만들기 위해서는 과거를 떼어내야 한다.

성장해서, 단란한 가족을 가지는 것은 아들들의 의무이자 욕망이다. 그런데 그 욕망이 지금 흔들리고 있다. 아버지에게 자신이 “친아들이 맞냐”고 물어보는 정원. 아버지는 “나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말할 뿐, 결코 정원이 원하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연이 말한 과거가 진실임이 폭로된 순간, 정원은 진실을 자신의 삶에 받아들이지 못한 채 연에게 “연이씨, 그건 병이에요”라는 문장을 쥐어짜낸다.

성장, 어쩌면 예상된 실패

정원이 과거를 알게 될 수록 그의 일상은 파괴되어 간다. 약혼자는 외국여행을 떠나고, 친한 가족들은 낯선 사람처럼 보이며, 친구들에게 점점 비밀이 늘어나고, 자신과 같은 것을 보는 연만이 깊은 유대관계를 유지하는 존재가 된다. 정원은 이 현실을 감당할 수 없다.

남편이 부른 정신병원차를 피해 정원에게 도움을 청한 연. 그러나 정원은 “아버지가 자신이 친아들임을 인정했다”고 거짓말하며, 더 이상 연에게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이어 그는 귀신이 나타나는 4인용 식탁을 산산조각 내고 약혼자에게 “기다리겠다.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이는 정원이 일상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최후의 몸부림이다. 그러나 약혼자의 전화 대신, “믿도록 해주겠다”는 자살을 예고하는 연의 전화가 걸려온다. 이어서 떨어지는 연. 정원은 절규한다.

<4인용식탁>이 무섭기보다 슬픈 이유는, 아픈 상처를 지닌 이들이 상처를 직시하지 못할 경우 탈출구가 없다는 결론 때문이다. 당사자에게 극복의 모든 것이 걸려있다는 이 명제는 개인의 성장에 대해 ‘참’ 인 동시에 안타깝다. 왜냐하면 상처는 개인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개인이 감당하지 못하면 탈출구가 없다는 결론은 연과 정원의 깊지만, 짧게 끝나버린 유대관계에서 드러난다. 그들은 같은 것을 보지만 서로 도와주지 못한다. 이는, 자신의 과거를 안 채 오열하다 잠든 정원 옆에서 연이 혼자 괴로워하는 장면이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감옥에 있어야 할 정숙 언니가 그녀를 감싸 안으며 노래를 부르고 연은 그녀를 뿌리치지 못한 채 울음을 터트린다. 빙빙 도는 카메라는 결코 서로에게 힘이 되지 못하는 두 사람을 비춘다. 정원은 귀신 때문에 괴로워하며 “나를 원망하나요?”라고 끊임없이 묻는 연에게 “아니요. 하지만 아파요.”라고 대답할 뿐 그녀를 위로하지 못한다.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트라우마는 귀신으로 나타나 산 자를 괴롭히고, 그 트라우마를 직시하게 된 순간 연과 정원의 짧았던 유대관계도 끝이 나고 만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정원은 산산조각 낸 식탁을 다시 마련한다. 그러나 식탁에서 국을 떠먹는 그의 앞에는 죽은 연이 앉아 있고, 옆에는 두 여자아이가 누워 있다. 그는 연에게 국이 아직 뜨겁다고 말한다. 이는 그의 아버지가 앞에서 말한 대사, “시원한 게 얼큰한 거고 그게 아픈 거지”라는 대사와 맞물리며 정원이 아직도 아파하고 있음을, 어쩌면 평생 아파하며 살지도 모른다는 뉘앙스를 던진 채 끝난다. 과연 정원만이 성장에 실패했을까. 오히려 수많은 사람들이 실패한 채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 단청 2003/08/14 [10:24] 수정 | 삭제
  • 4인용 식탁 보고 나오는 데 전율이 느껴졌다.

    관객들 중엔 실망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영화를 이해 못 한 것 같다.

    우리 영화 수준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조폭마누라 류의 영화말고 계속 작품성있는 영화들이 나왔음 좋겠다.
  • 카프리 2003/08/13 [17:08] 수정 | 삭제
  • 섬뜩한 진실은 영화에 담으면 공포영화가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픽시 2003/08/11 [22:25] 수정 | 삭제
  • 특이한 영화가 나왔다 싶었어요.
    여성감독이라 이런 작품이 가능한 게 아닐까 싶네요.
  • 밤새 2003/08/11 [13:04] 수정 | 삭제
  • 영화를 보는 내내 저는 주변 관객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아야했습니다.
    아마도 여름을 겨냥한 일반적인 공포 스릴러(말그대로 귀신이나 괴물따위가 등장하는)라고 생각하고 오신 분들이 많았나봐요...주말 오후이기도 했구요.
    재미없다, 지루하다, 저거 공포영화 맞느냐, 전지현 보러왔다, 심하네, 돈 아깝다, 기타등등.

    암튼 사람없는 시간에 조용히 보러 가시길 권합니다.
  • 두근두근 2003/08/11 [04:38] 수정 | 삭제
  • 기사만 봐도 무섭네요.
    우아아앙.. 아침이 빨리 오길. -_-

    그런데 이 영화는 보고 싶기도 해요.
    딴 공포물이랑은 다른 것 같네요.
    전지현 연기도 보고 싶구. ^^;;

    불쑥 뭐가 튀어나오고 그런 거 정말 싫거든요.
    피나오는 영화도 질색이구요.
    심리스릴러는 괜찮은데.
    이 영화도 재밌을 거 같아요.
  • 오오 2003/08/10 [23:00] 수정 | 삭제
  • 꼭 앞에다가 써주세요 ㅠ.ㅠ
    스포일러라구요, 저는 이미 본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