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와 효율 중시하다, 위험해진 식탁

인공육종 대신해 생명을 이어주는 ‘씨앗’ 키운다

오오츠카 아이코 | 기사입력 2009/12/15 [22:56]

속도와 효율 중시하다, 위험해진 식탁

인공육종 대신해 생명을 이어주는 ‘씨앗’ 키운다

오오츠카 아이코 | 입력 : 2009/12/15 [22:56]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농가에선 더이상 자가채종(씨앗을 받는 일)을 하지 않고, 매년 종묘회사에서 종자를 사서 심고 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일본소비자연맹과 평화.인권.환경포럼이 주최한 연속세미나 “생명을 이어주는 먹거리와 농업”에서 이 문제가 중요하게 논의됐다.
 
시장 독점한 F1종, 가게에서 사라진 지역채소
 
▲ 우리 식탁에 오르는 다양한 채소들 가운데, 토종씨앗을 심어 재배한 것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 이영란
10월에 열린 첫 세미나에서, 종묘상을 경영하는 야구치 가오루씨는 우리가 먹고 있는 채소의 종자가 인공적으로 바뀌고 있는 현실을 호소했다.

 
“옛날부터 농민들은 다음 해를 위해 제일 잘 자란 채소의 씨를 보관했습니다. 이런 방식이 반복되면서 부모와 거의 같은 유전자를 가진 채소가 만들어졌습니다. 1960년 무렵까지 청과상에서 파는 채소나 과일은 ‘고정종’(여러 세대를 거쳐 진화하고 도태됨으로써 유전적으로 안정된 품종)이었습니다. 에도 시대에는 전국적으로 무의 종류가150~200가지나 되었지만, 지금은 ‘F1종’(종자회사에서 보급하는 잡종으로, 수확량이 많고 대량생산이 가능하다)의 파란목무 한가지밖에 없습니다.”
 
야구치종묘연구소 대표인 야구치 가오루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사이타마현 한노시에서 가정용 채소밭에 심을 ‘고정종’ 종자를 온-오프라인에서 판매하고 있다.
 
‘F1종’(First Filial Generation, 1대 잡종)이란 멘델의 법칙 등을 활용해, 맛은 좋지만 약해서 오래 보관할 수 없는 품종과 튼튼한 품종을 인위적으로 섞어 개발한 종이다. 1대째에만 모양과 색이 좋고 균일한 열매를 맺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매년 종자회사에서 씨앗을 사야 하며, 특정 병해엔 내성을 갖지만 그 외 병해엔 약해 농약을 사용해야 한다.
 
야구치씨는 “군마현 츠마고이마을은 양배추, 이바라키현은 배추 등 채소 지정산지제도가 66년 간 이어져오면서, F1은 순식간에 퍼졌습니다” 라고 말하며, 농가에서 자가채종을 하지 않고 매년 종묘회사로부터 씨를 구입하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이어 “한 종류의 채소만 대량으로 생산해 전국에 유통시키는 데는 F1이 유리하지만, 채소는 점점 맛이 없어졌습니다” 라고 말했다.
 
방사선 조사 등 불안한 ‘인공 육종과정’
 
F1은 자금의 여유가 있는 대규모 종묘회사들이 시간과 품을 들여 개발했다. ‘제웅’이란, 인공적인 방법으로 식물의 수술을 전부 뽑아내 만드는 것인데, ‘웅성불념’(수술이 퇴화하여 화분이 나오지 않는 것)이라는 자연계에서 극히 드물게 나타나는 종을 일부러 키움으로써, ‘제웅’에 소요되는 수고를 생략했다.
 
우엉 싹에 방사선을 조사(육종 과정의 방사선 조사는 허가되어 있다)하여 짧게 만드는 등의 설명을 듣고 있으면, 우리의 식탁이 불안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야구치씨는 “최근 양파, 당근, 무, 양배추 등 친숙한 채소 대부분이 자손을 남기지 않는 ‘웅성불념’의 F1으로 재배되기 시작했습니다” 라고 이야기하며, 종묘업계의 현황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그는 “씨가 가진 본래의 생명력을 되찾아야 합니다” 라며 ‘고정종’이 부활해야 하는 이유와 보급의 필요성에 대해 주장했다. 그 일환으로, “각자 집의 채소밭에서 작물(고정종)을 키움으로써, 본래의 맛을 알게 됐으면 합니다” 라고 덧붙였다.
 
無비료로 땅을 건강하게
 
▲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자가채종을 해서 채소를 재배하는 아카시 세이치씨의 밭을 견학한 참가자들이 고구마를 캐고 있다.   © 페민
11월에는 포럼 참가자들이 예전의 방식으로 채종해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재배를 하는 아카시 세이치씨의 밭을 견학했다. 사이타마현 미요시에 사는 세이치씨는 ‘고정종’으로 연간 60가지 이상의 채소를 재배하여, 택배나 자연식품점에 납품하고 있다.

 
아카시씨는 유기재배를 해오다가, 자가채종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2년 전부터 종자를 획득하기 비교적 쉬운 ‘무비료 자연재배’로 방식을 전환했다. 감자 이외의 채소를 비료를 쓰지 않고 자연 재배하여, 30가지 이상의 채소에서 종자를 받는다. 유기재배 농가에서도 고정종이 아닌 ‘F1종’으로 키우고 있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무비료 재배란 화학비료와 농약은 물론, 유박 등의 유기비료도 일절 사용하지 않고 토양과 작물 자체가 가진 본래의 힘을 발휘하게 하는 농법을 말한다. 참가자들은 직접 고구마를 캐며, 비료를 쓰지 않고도 비옥하고 풍부한 수확이 가능하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땅 밖으로 나온 채소의 발육을 관찰하여 땅속 뿌리모양을 상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제로 보시겠습니까?”하며 아카시씨는 1미터 정도 장방형으로 땅을 팠다. “표면 흙 아래에 딱딱한 지층부분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전에 사용했던 린 같은 비료가 분해되지 않고 굳어서 생긴 것입니다.” 두 개의 온도계로 측정해보니, 굳은 땅 부분은 그 아래보다 1도 정도 온도가 낮았다.
 
“뿌리가 자라다가 이 딱딱하고 저온인 층에 부딪혀 성장을 방해 받고 생명력이 떨어지면, 잎에 진드기가 생기기도 합니다. 보리 등 벼과의 씨를 심어 그 뿌리의 힘으로 딱딱한 땅을 부수도록 시험해보고 있습니다. 땅에서 비료가 사라지면, 식물은 스스로 영양을 취하고자 뿌리로부터 모세근이 자라는데, 뿌리가 땅을 일구어주는 셈입니다.”
 
이날 하루는 아카시 세이치씨의 밭을 견학한 참가자들에게, 늦가을 하늘 아래에서 흙과 씨의 절묘한 조화를 깨닫게 해준 날이었다.


*고정종과 F1종 비교
 
[고정종]
- 몇 세대를 거쳐 진화, 도태됨으로써 유전적으로 안정된 품종
- 특정 지역의 기후와 풍토에 적응한 전통적 채소, 지역 채소(재래종)를 고정화한 것
- 생육기간이나 모양, 크기가 균일하지 않기도 함
- 가정 채소밭에 적당
- 독특한 풍미가 있음
- 병해충에 쉽게 당하지 않음
- 자가채종 가능
 
[F1종]
- 상이한 성질의 종을 접붙여 만든 잡종
- 잡종 1대(1대만이 부모보다 생육이 빠르고 열매가 많은 ‘잡종강세’의 원리를 이용한 것)
- 수확량이 많고 크기와 맛이 균일, 대량생산 가능
- 특정 병해에 내병성을 갖도록 하기 쉽지만, 그 외의 병해엔 약해 농약을 사용함
- 가정 채소밭에 적당하지 않음
- 매년 종자를 구입해야 하므로 종묘업계에 생산과 가격을 위임하게 됨

 
※<일다>와 제휴를 맺고 있는 일본언론 <페민>의 12월 15일자 기사입니다. 고주영님이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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