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간 차별의 벽이 과거와 달라지는 가운데, 만화계도 성별유통구조 즉, 남성작가-여성작가, 남성독자-여성독자이라는 이분법이 허물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만화작품 속 여성주의적 시각은 어느 정도 진일보했을까. 어느 정도 균질화됐을까.
2009년 지난 한 해 만화관련 기관과 단체에서 우수작품을 선정했다. ‘오늘의 우리만화상’, ‘부선만화대상’, ‘독자만화대상’ 등의 수상작들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검증 받은 작품이다. 이들 작품을 대상으로 여성주의적 읽기를 시도해 본다. 스포일러 유의. -편집자 주> ◇<당신이 나를 사랑해야 한다면> 글 양우석, 그림 풍경 (문학세계, 2009) -‘2009 오늘의 우리만화상’, ‘2009 부선만화대상’ 웹툰상 수상작-
그런데도 인간은, 남편은, 남성은 ‘약속’ 하나를 ‘끝까지’ 지키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과 영원히 신뢰 쌓기를 시도한 구미호의 작업은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그녀의 욕망은 애초부터 실패가능성을 99.9% 안고 있다. 이 욕망은 자신의 의지와 행위에 의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타율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포털 사이트 다음(Daum)에 연재되었던 웹툰 <당신이 나를 사랑해야 한다면>(문학세계애니북, 2009)은 <로봇트 태권V>의 스토리 작가 양우석이 글을 쓰고 풍경이 그림을 그렸다. 서사는 사랑이야기에 구미호 설화를 차용한다. 사랑, 구미호 둘 다 익숙한 소재지만 이 만화는 사뭇 낯설게 읽힌다. 그것은 바로 구미호의 신뢰를 깨트린 남성의 시각에서 이야기가 풀어지기 때문이다. 사랑에 홀리고, 찾아 헤매고, 상대에 호소하고, 실수에 변명하는 남성의 입장이 집중 조명된다. 남주인공 양창호는 미호가 꿈꿨던 영원한 사랑을 실행하고자 노력한다. 영원히 미호를 사랑하겠다는 자신의 맹세를 믿어달라고 ‘먼저’ 호소한다. 결혼 후 다른 여성과 모텔에 간 행위를 들키고는 자신의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고 변명한다. 그리고 사라진 아내 미호를 찾기 위해서 모든 것을 팽개치고 세상 곳곳을 떠돈다. 미호는 섹시녀이자 돌봄의 성녀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은 여배우들이 구미호를 연기했다. 요염한 자태와 각종 도구로 꾸민 여배우의 얼굴이 감상포인트가 됐다. 착하고 요염한 얼굴로 상대 남성을 깊게 홀릴수록, 예쁜 얼굴이 무섭게 망가질수록 관객의 호응은 높았다. 덕분에 “구미호는 섹시 스타의 등용문”이라는 풍문이 나왔다. “구미호는 여배우들의 로망”이라고 토로한 여배우도 생겼다.
그런데 이 만화는 여주인공 미호뿐만 아니라 남주인공 양창호도 시각적 탐미의 대상으로 삼는다. 양창호는 얼굴도 잘생기고 몸매도 잘빠진 정신과 의사다. 사랑을 호르몬의 분비과정쯤으로 치부하는 소위 ‘선수’다. 게다가 성격도 꽤 괜찮다. 같이 사귄 여성의 트라우마를 끄집어내 멋지게 치유해준다. 뒤끝 없이 정리도 잘한다. 이렇게 완벽한 그에게 갑자기 뇌종양 말기라는 시한부 판정이 내려진다. 그리고 생을 마무리하려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봉사자인 미호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왜 하필 미호였을까. 그 많던 여성들은 뒤로하고. 만화는 연애담보다 어린 창호가 길렀던 병아리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병들어 죽을뻔한 병아리를 창호는 극진한 보살핌으로 살려낸다. 다시 살아난 병아리에게 영원히 살라는 피닉스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병아리 피닉스는 창호를 엄마처럼 여긴다. 창호도 귀여운 병아리에게 온갖 사랑을 쏟는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닭이 되자 창호나 가족에게 골칫덩어리가 된다. 결국 어느 날 창호의 엄마는 피닉스를 냄비에 끓인다. 창호는 냄비째 닭의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 슬픔보다는 황당함으로. 이 사건을 겪으면서 창호는 사랑은 변하는 거라는 지론을 갖게 된다. 창호와 미호의 만남은 극적이다. 창호는 의과 4학년 시절 호스피스 병동에서 수련을 했다.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미호를 보게 됐는데 미모, 스타일, 말투, 행동거지 등 모든 게 AAA+급 섹시녀였다. 당연히 그녀에게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간암환자를 돌보고 죽음까지 지켜보는 그녀의 헌신에는 감동을 받았다. 죽은 환자를 돌보는 미호의 모습은 죽어가는 예수를 감싸 쥐고 안은 성모마리아의 피에타 상과 겹쳐 흐른다. 호르몬 운운하며 이성적으로 환자를 돌보는 의사(남성) 자신과 달리, 정서적으로 온 마음을 다해 환자를 돌보는 봉사자(여성)에게 양창호는 성녀의 모습을 본다. 세월이 흘러 이번에 양창호는 죽음을 앞둔 환자다. 삶을 정리하려 들어간 호스피스 병동에서 추억으로만 남을 줄 알았던 성녀 미호를 다시 만난다. 양창호는 그 옛날 죽어가는 병아리가 되고 미호는 그런 생명을 돌보는 어린 창호가 되는 셈이다. 창호는 그녀의 지극한 돌봄에 삶의 의지를 찾는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난다. 암이 새로운 의료 기기에 의해 치료된 것이다. 더구나 자신을 치료한 의료기 회사에 주식을 투자한 덕분에 벼락부자가 된다. 생명도 자본도 다시 충만해진 창호는 미호에게 청혼하려 하지만 미호는 다시 사라진다. 미호가 자꾸 사라지는 이유는 ‘영원한 사랑’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미호의 돌봄 행위는 호스피스 병동의 환자뿐만 아니라 거리의 부랑자, 고아원의 아이들까지로 확장한다. 그녀가 꺼져가는 생명을 돌보는 이유는 상대방이 미호 자신에게 전력질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그들을 돌보면 상대방은 그 순간에 온 힘을 바쳐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그녀의 꿈은 자꾸 미끄러진다. 구미호가 사람이 되기 위한 조건은 미호 자신도 상대와 사랑에 빠져야 했던 것이다. 불행히도 죽어가는 환자나 부랑자에게는 그런 사랑의 감정이 일어나지 못했다. 미호는 삶의 조건이 완벽해진 양창호의 구애에 힘입어 결혼을 허락한다. 다시 한번 인간을 믿어보기로 한 것이다. 일, 가사, 섹스, 육아도 모두 완벽하게
그러나 인아가 사회체제 안의 존재라면, 미호는 인간이 아닌 이물(異物)로서 체제 밖의 존재다. 만화는 보다 노골적으로 가부장제에 길들여진 남성들의 욕망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것은 판타지라고 인정한다. 먹고 튀는 것처럼. 그래서 페미니스트인 내가 읽기에 더 얄밉다. 결혼생활 동안 미호는 오롯이 남성 양창호만을 돌본다. 결혼식을 하고 혼인신고를 하고 호들갑을 떠는 양창호 앞에서 그녀는 꿀과 인삼을 넣어 갈아 만든 신비의 음료를 내놓고, 저녁에는 섹스 후 전신마사지를 해주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특별 보양식을 해준다.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한 남자 양창호만을 지켜봐 준다. 남성보다 먼저 잠든 적도 늦게 일어난 적도 없다. 그녀는 생기발랄하면서도 지극히 겸손하며 온유하다. 그러나 결혼 2년 반 만에 양창호는 한눈을 판다. 미호는 그 현장을 핸드폰 동영상으로 목격하게 된다. 양창호는 실수이고 섹스를 하지는 않았다고 변명하지만, 다음날 미호는 사라진다. 미호는 사라지기 전 식탁에 마주앉아 자신은 사실 인간이 아닌 구미호라고 고백한다. 이 고백을 들은 양창호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고 정신의학적으로 해리장애 판정을 내린다. 그리고 ‘고쳐’줘야겠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그 동안 자신이 미호를 위해서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음을, 자신의 행복은 미호의 불행 위에 있었음을 깨닫는다. 미호의 정신적 트라우마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음을 인식한다. 그리고 미호를 찾아 나서면서 비로소 그녀의 가족과 성장과정, 과거를 궁금해한다. 그러나 미호의 인간적 탐색은 그녀가 역시 인간이 아닌 구미호였다는 믿음을 내보임으로써 욕망하는 인간, 살아있는 여성의 모습을 말끔히 걷어버린다. 몇 년이 흘렀어도 그녀는 젊고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고아원 원장이 되어 50여명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늘 하나 없다. 10년 전 곱디고운 처녀의 손 그대로인 그녀를 보고 양창호는 그녀가 구미호임을 인정한다. 이제 양창호는 췌장암 환자가 되어 미호 앞에 눕는다. 타인에 의해 완성되는 사랑, 조건 없는 사랑은 자신의 마음에 있다는 것을 미호도 깨달은 터다. 둘 사이의 영원한 사랑은 비로소 완성된다. 창호는 죽음을 맞이하고 미호는 인간이 된다. 작가는 “당신이 나를 사랑을 해야 한다면/ 오직 사랑만을 위해 사랑해 주세요” 브라우닝의 시 구절을 읊조리며, 양창호가 미호를 사랑했던 건 그녀가 섹시해서가 아니고 돌봄의 성녀여서도 아니고 그냥 사랑만을 위해서 사랑한 것이라고 교조주의적으로 속삭이는 듯하다. <행복한 페미니즘>의 저자 벨 훅스는 생명을 위협받는 중병을 선고 받은 후 자신의 삶과 우리 문화에서 ‘사랑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문제에 매달렸다고 한다. 그 후 그녀는 <사랑의 모든 것>이라는 책을 썼다. 여기에서 그녀는 대중문화에서 사랑은 늘 환상적인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 원인으로, 사랑에 관한 이론을 세우는 게 대부분 남성인 탓일 게라고 추정한다. 한편 남성이 연애소설을 전유하면 그들의 작품은 여성의 작품보다 훨씬 많은 보상을 받는다고 언급한다. 그러면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예로 든다. 이 만화는 분명 나름대로 흥미진진한 구석이 있다. 독자에게 보는 재미를 준다. 서사의 흡인력도 높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사랑을 해 보인 주체는, 돌봄을 실천한 주체는 미호다. 미호-여성의 사랑만 잔뜩 봤다가 양창호-남성이 “사랑은 하는 것”이라고 깨닫는 순간 이야기는 끝나버린다. 양창호가(남성) 미호를 위해 실천해야 하는 사랑은 여전히 빈 여백인 것이다. 사랑을 찾아 헤맨 남성의 방황만 있다. 여성-미호를 위한 남주인공의 돌봄 행위는 좀체 볼 수 없다. 그래서 이 작품은 여성인 나에게 공허하다. 견고한 성별 역할이 조금씩 깨지고 있는 2010년. 더이상 여성들은 사랑만을 꿈꾸지 않는다. 영리해졌다. 돌봄도 노동이라고 말한다. 재화 가치를 따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물신주의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덧씌워진 성차별의 억압을 돌봄의 함의를 확인하고 넘어가자는 것이다. 남성들은 조금씩 위기를 느끼는 듯하다. 돈만 밝힌다고도 하고, 사랑을 갈구하는 주체가 여성에서 남성으로 전복됐다고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벨 훅스가 말한 것처럼 “남자들은 사랑에 대한 이론을 세우지만, 여자들은 대개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타인의 육체(생명)를 향한 돌봄의 주체는, 사랑의 실천은, 여전히 여성 몫으로 견고히 남아있다. ※ '김은혜의 만화읽기' 필자 소개: <여성 다시 읽기>와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 회원이자 방송작가. 네 살 난 아이와 함께 애니메이션 보는 것을 즐기는 유쾌한 워킹맘. 순정만화를 탐구하고 홍보하는 페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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