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다>는 개인의 입체적인 경험을 통해 ‘여성의 삶’을 반추해보는 생활문학 칼럼을 개설했습니다. 필자 윤춘신님은 50여 년간의 생애를 돌아보며 한부모로 살아온 삶 이야기, 어머니와 할머니와 외숙모 이야기, 일터 이야기, 그리고 딸과 함께 거창으로 귀농한 현재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편집자 주
[익명의 눈물에 대하여] 여자가 말했다. “열쇠를 우편함에다 숨겨 놓고, 때리면 도망쳤다가 밤에 몰래 들어가요.” 다른 여자가 말했다. “그 인간은 때릴 때 멍도 안들 게 때려요. 이불을 뒤집어씌우고 골프채로 두들겨 팬답니다. 얼마나 아픈지 몰라요.“ 또 다른 여자가 말했다. “차라리 때렸으면 좋겠어요. 밤새도록 일어나라, 앉아라, 들어가라, 나와라 그러는데 미칠 것 같아요.” 내가 말했다. “매 맞을 짓을 안하고 싶은데, 날마다 맞을 짓을 한대요.” 내 나이 서른 초반에 알코올중독 가족치료모임에 갔다. 가족 중에 술로 인한 문제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만나는 익명이 보장된 모임이다.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서 오직 술로 인한 파괴적인 행동들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었다. 여자의 이야기에 내가 울고, 내 이야기에 여자가 울면서 서로의 눈물이 되곤 했다. 우리들은 배우자의 알코올로 인한 가정폭력에 대해 몹시 두려워했으며, 그들이 자각해주기를 기도했다. 누군가의 배우자가 단주모임에 참석하기로 했다는 말을 하면, 우리에게도 그런 날이 올 거라며 지치지 말자는 격려도 아끼지 않았다. 이곳에서 오랜 기간 훈련된 봉사자가 조언을 했다. 지구의 절반이 남자인데, 그 중에서 하필이면 이 남자를 선택한 것에 대해 되짚어보라고 한다. 해 뜨면 선택에 대한 미숙함에 대해 자책을 하고, 해지면 소리 안 나는 총을 가지고 싶은 욕구에 죄책감을 느꼈다. 오늘밤이 어제보다 덜 잔인하기를 빌었다. 남자가 귀가하기 전에 토막 잠이라도 자야 살수 있을 거라며, 아기한테 젖을 물리고 눈을 감았더랬다. 남자의 발자국 소리가 저벅저벅 현관 가까이 들려올 때면 심장이 요동을 쳤다. 네 살, 한살인 아이들이 잠든 방문을 잠그고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장난감은 깔끔하게 정돈돼있는지. 밥상은 제대로 차려져 있는지. 당신의 노고에 보답하기 위해 버스정류장에서 두 시간이나 서 있었다는 말도 꼭 해야 했다. 그 밤. 보슬비가 내렸다. ‘이빨 물어’로 사전경고 후 주먹을 날리던 남자의 손이 얌전했다. 그 대신 발가벗긴 채로 베란다에서 벌을 섰다. 오월의 새벽바람은 서늘했다. 방충망 사이로 들락날락하는 보슬비가 분무기로 칙칙 뿜어대는 물 분자와 닮았다. 맨몸이 드러난 사실에 대해 수치스러웠다. 남자에 대한 살의와 적개심으로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오소소 소름이 돋은 두 팔로 가슴을 껴안고 웅크리고 앉아서 곰곰이 생각했다. 언제 끝이 날까. 알코올중독 가족치료모임의 협심자는 그가 술로 인한 문제를 깨닫도록 오줌이거나 똥이거나 그대로 둔 채 대신 처리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하루가 얼마나 행복한지 눈을 돌려 느껴보라고도 했다. 깨진 술병과 조각난 유리컵을 조심조심 쓸어 담지 말아야 한다. 방바닥에 그대로 꺼진 담뱃재로 타 들어간 장판을 도려내어 그 구멍을 말끔하게 때우는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 해가 중턱에 걸리면 남자의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그가 아프다고 핑계를 대는 일도 하면 안 된단다. 춥고 쓸쓸했다. 남자가 질병에 대한 인식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은 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십 년 동안 가정폭력에 시달린 나는,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화풀이가 심해질 것이 더 무서웠다. 바깥양반이 술이 좀 과했으니 아주머니가 이해하라는 충고를 하는 경찰과, 오늘만이라도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달라는 나와, 여자가 오죽하면 이러겠느냐는 남자에 대해 체념을 하게 되었다.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 내 목숨 줄을 쥐고서 남자는 기세 등등해졌다. 가정폭력에 대한 남자의 면죄부는 알코올중독이었다.
이 기사 좋아요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많이 본 기사
일다의 방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