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냐 차냐 그것이 문제로다

공숙영의 Out of Costa Rica (5)

공숙영 | 기사입력 2010/03/09 [10:44]

커피냐 차냐 그것이 문제로다

공숙영의 Out of Costa Rica (5)

공숙영 | 입력 : 2010/03/09 [10:44]
* 코스타리카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필자 공숙영은 현지에서 마주친 다양한 인상과 풍경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삼월이 되었지만 여전히 쌀쌀하고 때때로 흐린 날이 이어집니다. 그래서일까요, 따뜻한 음료를 자꾸 찾게 되는데, 커피를 마실 때면 코스타리카가 떠오릅니다.
 
코스타리카, 커피의 일상과 추억
 
▲ 코스타리카의 커피농장 풍경  © 이미지 출처-www.costarica.com
“사람은 죽어서 천국에 가길 원하지만,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코스타리카로 가길 원한다.” 커피예찬을 담은 어느 책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코스타리카 커피의 어떤 특별한 매력이 이런 거창한 찬사를 낳게 했는지, 단지 커피를 좀 좋아하는 사람일 뿐인 저는 잘은 모르겠습니다. 다만 코스타리카는 저에게 커피의 일상을 가져다 주었고 커피의 추억을 남겨 주었습니다.

 
이를테면 거의 매일 아침 학교 식당에서 아침밥처럼 찾은 카페 콘 레체(우유를 넣은 커피), 가끔 친구들과 단 것을 먹으며 수다를 떨 때 필요하던 진한 커피, 더위를 이기기 위해 얼음을 잔뜩 넣어 만들던 냉커피 같은 소소한 것들 말입니다.
 
우연히 -아마도 소나기를 피하려고 어쩌면 그냥 심심해서- 동네 버스정류장 앞 작은 가게에 들어가 낡은 나무의자에 걸터앉아 마신 뜨거운 커피의 온기와 냄새, 집 근처 커피 밭을 걸으며 유심히 때로는 무심히 바라본 키 작은 커피나무에 다닥다닥 잔뜩 핀 꽃, 지금은 이국적 풍경으로 추억할 수밖에 없는 그런 것들.
 
커피는 혼자일 때나 여럿일 때나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방에서 숙제하고 공부하고 인터넷으로 한국의 소식을 읽는 때에도 홀로 낯선 거리를 떠다니듯 돌아다닐 때에도 타인들과 대화하며 어울릴 때에도.
 
커피파티 대 티파티
 
커피 말이 났으니 말인데, 마침 최근 미국에서 번지고 있다는 ‘커피파티운동’에 대한 소식이 흥미롭습니다. 이 운동은 시민들의 능동적인 정치참여를 끌어내려는 풀뿌리 운동으로서, 작은 정부와 자유시장경제를 표방하며 민주당 오바마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나선 보수 성향의 ‘티파티운동’ 진영에 대한 반발로 시작되었습니다.
 
▲ 미국 티파티운동 지지자들의 시위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미국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사건인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으로부터 역사적 맥락을 끌어온 한편, "이미 충분히 세금을 냈다"(Taxed Enough Already)는 말의 약자로서 tea를 사용하기도 한다는 티파티운동 진영. 이들은 재미있게도 현 정부의 조세정책에 반대하면서 백악관과 국회에 항의표시로 티백 보내기 운동을 벌였고, 단어 ‘티백’(teabag)을 동사로 사용하여 ‘티백하다’라는 말로 불신과 탄핵을 표현하고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티백해 버립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티파티운동은 중립적인 시민운동을 표방한다는 점에서 공화당을 대놓고 지지하거나 관계를 맺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주장하는 내용의 유사성을 봐도 그렇고, 지난 대선 때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나섰던 세라 페일린이 티파티 집회에 초청되어 오바마 정부를 비판하는 연설을 하는 등 현실적으로는 공화당 지지로 수렴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이는 정치운동입니다.
 
반대로, 커피파티운동 또한 티파티운동과의 대립 속에서 오바마 정부에 힘을 실어주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커피파티를 시작하게 되었나”
 
커피파티운동의 거점인 인터넷 홈페이지(coffeepartyusa.com)를 방문해 보니 “깨어나서 일어나라”(Wake up and Stand up)는 모토와 함께 “우리는 100% 풀뿌리들”(We are 100% grassroots)로서 “인종적으로 지역적으로 정치적으로, 나이나 경험에 있어서도, 다양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는 어떻게 정치문화를 바꿀 수 있는가”라는 주제가 포럼에서 토론되고 있습니다.
 
현재 빠른 속도로 미국 전역에 지역 모임을 구축하고 있는 모양인데, 회원 120명이 넘는 펜실바니아와 뉴욕, 시카고에서부터 10명이 안 되는 조지타운과 앵커리지에 이르기까지 규모도 다양합니다.
 
홈페이지 중앙에는 “우리는 어떻게 커피파티를 시작하게 되었나”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보입니다. 이 동영상은 눈을 맞으며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열심히 호소하듯 말하는 검은 머리의 동양인 여성을 보여 줍니다. 이 여성이 바로 이 커피운동의 주창자로서 한국인 이민자인데요, 국내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07년 미국 하원의 일본군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오바마 캠프의 동영상 제작을 담당했다는 이력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코스타리카에서 본 오바마의 당선
 
▲ 코스타리카의 커피농장  ©이미지 출처-www.costarica.com
그러고 보니 코스타리카에서 보낸 2008년 11월,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던 때가 떠오릅니다. 제가 살던 집 주인은 코스타리카 여성과 결혼하여 코스타리카에 정착한 미국인 은퇴자로서 오바마 당선에 회의적인 모양이었고, 미국 뉴욕에서 온 제 하우스메이트 중 한 친구는 민주당과 오바마를 지지했는데, 이 두 사람이 선거 결과를 놓고 돈 내기를 하였습니다. 결과가 나온 후 내기에 지게 된 주인 아저씨는 “오바마가 되면 세상이 확 바뀔 것처럼 생각하다니 어리석기 짝이 없다”며 입을 삐죽이 내밀었습니다.

 
어쨌거나, 아저씨가 냉소하거나 말거나 국적에 관계없이 미국 대통령 선거에 관심을 갖고 특히 오바마의 당선을 바라던 친구들은 일제히 학교 근처 바에 모여 떠들썩하게 축하모임을 가졌습니다. 자연히 아프리카 지역 출신 친구들의 감회가 남다른 모양이었습니다. 오바마의 아버지가 태어난 나라 케냐에서 온 한 친구는 말없이 밝은 얼굴로 미소를 가득 지었습니다.
 
방문교수로 코스타리카에 와 있었던, 민주당을 오래 지지해왔다는 미국인 교수는 “이런 일을 보게 되다니”라며 감격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원래 여성후보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었다는 미국인 여성 친구는 “여성이 미국 대통령이 될 날도 멀지 않았다”고, 유럽에서 온 친구들은 “유색인종이 유럽에서 대통령이 되는 날은 아직 멀었다”고 의견을 덧붙였습니다. ‘먼 나라 이웃나라’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 왜 이렇게 열광하느냐고 비판적인 시선을 던지거나, 오바마가 짊어진 난제와 한계를 냉정히 지적하는 학생들도 물론 많았습니다.
 
이런저런 기대와 희망, 회의와 냉소 속에서 그 다음 해 1월 오바마가 취임하던 날에 많은 교직원들과 학생들은 학교 중앙 홀에 모여 대형 텔레비전 화면으로 취임식 광경을 지켜보았습니다. 다양한 국적과 인종, 민족을 제각각 지니고 그 자리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세계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지금 바로 그 장면을 목격하고 있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로부터 일 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 오바마 정부의 그간의 공과와 나아갈 방향을 놓고 국내의 지지자와 반대자가 다시 격돌하게 된 모양입니다. 티파티운동과 커피파티운동의 대립이 과연 어떻게 현실 정치와 관계를 맺으며 미국 사회를 변화시킬지 조금은 궁금해집니다.
 
커피냐 차냐
 
▲ 코스타리카의 커피농장  © 이미지 출처-www.costarica.com
앞서 미국의 보스턴 차 사건을 잠깐 언급하였듯이, 티파티운동 진영이 차를 자신들의 아이콘으로 호출한 데에는 미국의 정치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한편 커피파티운동 진영은 차라는 구체적 기호품에 커피를 대립시키면서, 커피야말로 미국의 서민들이 평소에 친근하게 접하는 진정한 대중음료라는 의미부여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의 취향 문제이지만, 최소한 저에게 커피가 더 좋아 차가 더 좋아 라는 질문은 대답하기 곤란할뿐더러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커피도 차도 다 좋고 다 즐기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은 이미 보편적 기호품이 된 커피와 차를 다 마시고 있습니다. 가령  “커피냐 차냐” -이것은 “개냐 고양이냐”와 같은 질문에 불과할 것입니다.
 
코스타리카에 갈 때 전라남도 보성에서 생산된 우리 국내산 녹차를 티백으로 잔뜩 가져갔습니다. 제가 마시기도 했지만 그곳에서 선물로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방에 놀러 온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온 친구에게 우리 녹차를 맛보게 했더니, 원래 녹차를 좋아하는데 최근 들어 마신 것 중에서 제일 맛있다고 감탄하기에 선물로 주게 되었습니다. 녹차선물을 받자 그 친구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특산물로서 지금은 세계 각국에서 애용되는 루이보스 차를 답례로 선물하여 한동안 잘 마셨습니다.
 
취향을 알기도 전에 집 주인 부부에게 녹차를 선물한 건 좀 아깝습니다. 콜라와 맥주를 자주 마시던 그들이 과연 녹차를 즐겼을지 의심스럽습니다. 웃으며 받기는 했지만 맛이 좋다거나 잘 마시고 있다는 인사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녹차를 좋아하거나 최소한 마셔볼 용의가 있는 다른 이웃이나 친구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라도 건네졌기를 바랍니다. 그곳을 떠나온 지금에도 뜯지도 않은 채 그 집 부엌 한 구석에서 썩고 있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코스타리카를 떠나오기 얼마 전에는 일본인 친구로부터 보리차를 받아 한참 더울 때는 냉커피와 더불어 자주 얼음을 넣어 냉보리차를 만들어 마셨습니다. 어렸을 때 숭늉처럼 어머니가 끓여주신 보리차나 옥수수차를 자주 마시긴 했어도 언젠가부터 잘 안 마셨는데, 코스타리카까지 와서 그것도 일본인 친구가 갖고 왔다는 보리차를 마시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알고 보니 일본에서도 보리차를 많이 마신다고 합니다. 어느 날에는 방에 놀러 온 스페인 친구에게 보리차를 진하게 끓여 내놓으니 커피랑 비슷한 맛이 난다고 하였습니다.
 
커피 또는 차와 더불어 꿈꾸기
 
그러고 보면 커피의 나라 코스타리카에서 커피의 시간만 누린 것이 아닙니다. 위와 같이 외국인 친구들로부터 선물을 받아 차를 즐길 수 있었거니와, 커피국가인 코스타리카의 수퍼마켓에 커피 말고 다종다양한 차들 또한 많아서 차를 구입하는 데에도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코스타리카에서 커피의 추억만 안고 돌아올 수도 있었겠지만, 커피와 함께 다양한 차들을 마실 수 있어서 더욱 즐거웠습니다.
 
커피, 홍차, 녹차, 보리차, 어떤 음료건 상관없이 원할 때마다 앞에 두고 밀실의 시간과 광장의 시간 양자 모두를 온전히 향유하기, 생각하고 상상하기, 일하고 땀 흘리기,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평화롭게 살아가기, 자유롭게 견해를 형성하고 자신이 믿는 가치를 전파하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기- 코스타리카에서의 커피의 추억을 떠올리다가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커피와 차의 ‘대결’ 소식을 듣고 나서, 지금 여기에서 꿈꾸게 되는 일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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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녹차의맛 2010/03/11 [01:37] 수정 | 삭제
  • 콜라와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도 녹차를 좋아할 수 있죠 그분들이 말씀은 안 하셨어도 녹차를 잘 드셨을지도 모르니 너무 아까워하지 마시길...ㅎ
  • ogong326 2010/03/10 [17:09] 수정 | 삭제
  • 다음 글 고대하고 있을게요. 여기서 뵐 줄 알았어요.^^
  • 난나 2010/03/10 [08:36] 수정 | 삭제
  • '혹시', '역시'... 잘 봤습니다. '코스타리카'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에서 듣게 되는군요. 앞으로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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