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와 더불어 사는 어려움

이경신의 도서관 나들이(11) 도대체 왜, 먼지가 위협적이 되었나?

이경신 | 기사입력 2010/05/17 [03:34]

먼지와 더불어 사는 어려움

이경신의 도서관 나들이(11) 도대체 왜, 먼지가 위협적이 되었나?

이경신 | 입력 : 2010/05/17 [03:34]
“피부의 각질에서부터 돌 부스러기, 나무껍질, 자전거에서 벗겨진 페인트, 전등갓에서 풀린 실, 개미 다리, 스웨터의 털실 조각, 벽돌 조각, 타이어 고무, 햄버거에 묻은 검댕, 박테리아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은 끊임없이 분해되고 있다.” -한나 홈스 <먼지> (지호,2007) ‘머리말’
 
▲ 한나 홈스 <먼지> (지호,2007)
벌써 일주일째 비염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고 보면 병원치료와 약을 동원해서 비염을 떨쳐낸 지 겨우 한 달밖에 안 되었다.

 
도대체 무엇이 원인이었을까? 누르스름하고 뿌연 황사 속을 걸어 도서관을 다녀온 것이 문제였을까? 책장을 옮기고 책을 뽑고 꽂느라 오래된 먼지를 너무 많이 마셔서 일까? 화분 분갈이 하느라 흙먼지를 뒤집어써서 일까? 오리털 파카로 베개를 만든다며, 친구가 집안 곳곳을 솜털 천지로 만들어버려서 일까? 베란다 화분에 옮겨 심은 일년생 야생초의 가벼운 풀씨가 집안 여기저기를 날아다녀서 일까?
 
아니면, 눈발 날리듯 봄날 대기 속을 부유하는 새하얀 꽃가루를 헤치며 산책하고 다닌 탓일까? 여기서 아이슬란드 화산재까지 혐의를 두는 것은 지나칠 듯하다. 또 평소 창을 통해 쉴 새 없이 우리 집을 드나드는 자동차 대기오염물질을 거론하는 것도, 이번 경우에 큰 의미는 없을 것 같다.
 
어쨌거나 내 비염의 원인을 정확히 꼬집어내기 힘들겠지만, 생각해 보면 그 원인일 수 있는 다양한 먼지에 노출되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대기를 채우고 있는 무언가 작은 것들이랑 내가 친하게 지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황사는 성가시고 해로운 존재인가?
 
언제부터인가 난 먼지 알레르기의 포로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자각하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자각에 앞서, 난 그 어떤 먼지보다 황사가 불편했다. 그래서 창 밖 풍경이 누런 빛을 띤다 싶으면 외출을 포기하고 나 스스로를 실내에 가둬버린다. 마치 먼지의 공격을 피하기라도 하듯 창문을 빈틈없이 닫고 집안에 꽉 틀어박힌 채, 박탈당한 자유로 괴로워하는 것이다.
 
일본인 황사 전문가 이와사카 야스노부는 말한다. 한국인은 황사를 건강에 위협적인 오염물질을 가진 ‘더러운 것’이라 여긴다고. 나 역시 다르지 않다. 황사가 알레르기성 비염을 일으켜 내 건강에 나쁜 영향을 끼치고 생활의 불편을 야기한다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황사는 인위적인 오염과 무관한 사막에서 태어난다. 우리나라를 거쳐가는 황사의 고향을 살펴보면, 타림분지의 타클라마칸 사막, 내륙황토고원, 몽골고원의 고비사막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황사발원지는 계절과 상관없이 어마어마한 양의 먼지를 토해낸다. 사하라 사막이나 고비사막에서는 매년 6억 톤의 먼지를 날아올린다고 한다. 사시사철 먼지를 뿜어내고 있는데도 유독 봄에 황사가 많고 심한 까닭은, 모래땅이 겨울동안 수분을 잃어 따뜻한 봄이 오면 더욱 건조해져서 모래가 날아오르기 쉽기 때문이란다.
 
중국대륙에서 날아오른 황사는 편서풍을 타고 여행 길에 오른다. 일단 무겁고 큰 입자부터 떨어져 나간다. 남은 미세한 먼지는 수일에서 일주일에 걸쳐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장거리 여행을 하기도 한다. 태평양 한복판을 지나 북아메리카 대륙(미국 서해안, 알래스카)까지 간다고 하니, 먼지에게 국경은 없다. 물론 황사의 규모와 발생빈도는 해마다 차이가 난다. 올 봄엔 다행히도 옅은 황사가 몇 번 이 땅을 훑고 갔을 뿐이다. 그래서 수인처럼 지내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이와사카 야스노부 <황사 그 수수께끼를 풀다>
<황사 그 수수께끼를 풀다>(푸른 길, 2008)에서 황사먼지가 ‘하늘을 나는 화학공장’이라는 오명을 얻게 된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황사가 산업활동이 왕성한 중국을 지나면서 황산화물, 질소산화물을 흡수하고 온갖 발암물질, 독성강한 물질이 들러붙어 오염된다고 한다. 황사가 있을 때는 대기가 불안정하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 대도시의 오염물질까지도 함께 날려 뒤섞인다. 황사는 거쳐 가는 지역의 다른 먼지들, 공장 매연, 콘크리트 파편, 바다 물보라, 도시의 오염가스, 동식물 유해조각 등을 여행의 추억으로 꼭 끌어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튼 오염물질을 품게 된 황사는 건강의 적이 되었다. 하지만 건강에만 해로운 것은 아니다. 심한 경우 외출금지령이 내려져 우리 발목을 잡는다. 모래먼지는 빛을 반사해서 교통에도 위험하고 건축물에도 피해를 준다. 게다가 1년에 30회 정도의 먼지폭풍(엄지손가락 크기의 돌 조각까지 포함하고 있는 모래폭풍)을 일으킨다는 타클라마칸 사막처럼, 인위적 오염원이 없는 황사 발원지에서도 가축과 인명 피해를 야기한다고 한다. 즉, 호흡기 질환으로 가축이 질식하거나 축사가 무너져 가축이 깔려죽고 행방불명이 된다. 뿐만 아니라 사람도 먼지폐렴과 같은 병을 앓아 죽음에 이른다.
 
사실, 지금껏 인간은 먼지와 더불어 생존해 왔다. 건조와 싸워온 황사발원지의 유목민들은 나름의 모래먼지 대처법을 터득해왔고, 중국의 농부는 농작물 성장을 위한 자양분으로 사막먼지를 이용하기도 했다. 오히려 사막에 농경과 목축을 도입하고, 도시생활양식을 들여온 것이 황사에 취약하게 만들었다는 황사 전문가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또 우리가 황사로 인해 건강이 위협 받을까 우려하게 된 것도 산업 발달로 인한 오염물질을 과도하게 양산해서가 아닌가!
 
또 태평양 한복판의 플랑크톤은 대기에서 해면으로 떨어지는 황사로부터 영양염류와 미네랄을 공급 받아 살아가기에, 사막먼지는 플랑크톤의 생존에 꼭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오염된 대기를 통과하는 황사는 산성비를 중화시켜 주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이 문명이란 이름으로 개입하기 전까지 황사가 지금처럼 광범위하게 위험하거나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었다.
 
집안의 먼지도 위협적이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황사와 같은 집 밖의 먼지만이 아니다. 집 안의 먼지도 집 밖의 먼지만큼이나 위협적이다. 때로는 실외 공기보다 실내 공기가 더 오염되어 있을 수 있다. 문제는 그 사실을 종종 잊는다는 것이다. 창문을 닫고 여러 날, 여러 시간 실내에서 꼼짝 않고 웅크리고 지낼 수 있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포름알데히드는 새로 구입한 소파의 합판에 숨어 들어온다. 사염화에틸렌은 드라이클리닝을 한 옷에 묻어 들어온다. 납은 집 안에 설치된 낡은 플라스틱 블라인드에서 은밀히 빠져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라디클로로벤젠은 좀약의 성분으로 변장한다. 벼룩, 바퀴벌레, 흰개미 약으로 가장한 살충제도 빼놓을 수 없는 유독성 물질이다.
 
이런 화학물질이 집 안으로 들어오면 집은 오염물질 저장소로 변해버린다. 다른 성분 안에 들어 있는 오염물질도 분해되어 나올 수 있다. 수많은 화학물질의 입장에서 볼 때, 집은 자연의 온갖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안전한 피난처이다.“ (한나 홈스, 같은 책 ‘10. 작은 악마-여러분의 집은 안전한가?’)
 
요리, 청소와 같은 일상생활이 만들어내는 먼지, 집 진드기, 곰팡이 등이 발생시키는 먼지만이 아니라, 평소에 사용하는 가구나 물건, 살충제 등이 내뿜는 유독한 화학물질을 끌어안은 집 먼지는 생각 이상으로 위험하다. 흡연자의 집이라면 담배연기까지 가세해서 당연히 그 위험수위를 더 높일 것이다. 담배연기가 제공하는 4천 가지의 화학물질 중에 50여 가지가 발암 물질이란다.
 
또 집먼지가 집안에서만 생성되는 것은 아니다. 창을 통해 실내로 파고드는 외부먼지(황사, 산업먼지, 자동차 오염물질, 가로수나 도시공원 잔디밭에 뿌린 살충제, 곰팡이 포자나 꽃가루와 같은 미세먼지 등)가 거기에 더해진다. 만약 우리 집처럼 도로에 면해 있는 집이라면, 연료에서 발생한 먼지, 고무타이어가 마모된 먼지, 도로 먼지 등과 같은 자동차 오염먼지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의 문명화 된 생활이 집먼지를 나날이 위험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우리 별의 기원이자, 지구 생명체의 기원인 먼지, 지구의 과도한 가열을 막아주는 먼지, 인류는 탄생 이래 먼지와 더불어 살아왔다. 그런 만큼 입자가 큰 꽃가루와 같은 자연 먼지는 나름대로 막아낼 수 있도록 진화해 왔다고 한다. 하지만 10마이크론(우리 머리카락 한 올의 10분의 1 크기)보다 작은 먼지, 미세먼지는 우리 폐 속으로 그대로 침투해서 건강에 위험하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주장이다. 박테리아와 곰팡이 포자와 같은 자연적인 미세먼지도 존재하긴 하지만, 그 양에 있어서 산업먼지에 견줄 수는 없다.
 
인간은 불을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 비자연적인 먼지를 끊임없이 생산해 왔다. 인간이 지금껏 만들어낸 오염된 먼지는 사라지지 않고, 지구 곳곳을 떠다니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집 실내로 파고들어 우리 폐를 위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산업먼지에 맞서기에 우리 힘이 부친다. 심지어 자연 먼지인 꽃가루에도 잘 대처하지 못해 알레르기로 고통 받는 사람이 날로 늘고 있는 형편이다. 움직임이 줄어든 문명생활이 ‘게으른 폐’를 만들어 먼지 알레르기를 부추기고 있다는 이론에 귀가 솔깃하다.
 
햇살 좋은 일요일 오후, 훨훨 날고 있는 하얀 꽃가루 사이를 걸어 도서관에 다녀왔다. 먼지와 더불어 잘 살아가기가 해를 거듭할수록 힘겹기만 하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