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에서 마음과 따로 놀다

<세 딸과 느릿느릿 아시아여행> 네팔③ 히말라야 트레킹

진형민 | 기사입력 2010/07/19 [15:01]

히말라야에서 마음과 따로 놀다

<세 딸과 느릿느릿 아시아여행> 네팔③ 히말라야 트레킹

진형민 | 입력 : 2010/07/19 [15:01]
*풍경보다는 사람을, 사진 찍기보다는 이야기하기를, 많이 돌아다니기보다는 한 곳에 오래 머물기를 선택한 어느 엄마와 세 딸의 아시아 여행기입니다. 11개월 간 이어진 여행, 그 길목 길목에서 만났던 평범하고도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네팔③ 히말라야 트레킹
 
▲ 여자들끼리 걷는 길은 좀 남다르다. 배낭에 꽃 꽂고 가는 다누(앞)와 락슈미(뒤).  
트레킹(trekking)은 본디 걷는 여행을 이르는 말이다. 목표 뚜렷하게 정상 바라보며 산을 오르는 것이 등반이라면, 트레킹은 속도를 줄여 주변에 마음 써가며 걷는 것이다. 그런데 하염없이 걷는 행위로부터 얻는 자기위안이 꽤 있는 듯하다. 산길에서 만난 트레커들의 얼굴에선 비슷한 표정들이 읽히곤 한다. 뭐랄까, 좀 홀가분해 하는 것 같다.

 
첫날 밤 롯지(lodge)에서 혼자 끙끙 앓았다. 롯지는 트레킹 길목에 있는 찻집 겸 밥집 겸 숙소인데, 다리 아플 때쯤이면 용케 롯지 몇 개가 나타나 쉬어갈 수 있었다. 저녁 먹자마자 곯아떨어진 아이들 옆에서 나는 일시에 반란을 도모한 내 근육들과 대치중이었다. 쿡쿡, 욱신욱신, 부들부들, 저항의 방식도 가지가지였으나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다. 이쯤도 감당 못하다니 그동안 너무 놀고먹은 거 아니냐고, 짐짓 꾸짖고 타이르다 어느 틈에 잠이 들었다.
 
다시 해가 뜨고 지고, 걷는 일이 몸에 익고 나니, 저만치 따로 노는 마음이 느껴졌다. 모아지고 흩어지는 생각이 수십 가지, 되새김질되는 삶의 잔상들이 수백 장이었다. 살면서 제때 해결 못보고 꽁하니 숨겨둔 것들이 참 많기도 했다. 시간 없다 핑계 댈 수도 없고 달리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마음이 하는 짓을 한동안 두고 보았다.
 
서로 닮은 구석 별로 없는 딸아이들은 걷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큰 아이 써니는 늘 바지런 바지런 걷는다. 앞장선 다누 언니 곁을 놓칠세라 서둘러 바삐 걷다가, 뒤처진 사람들 올 때까지 쉼돌에서 느긋하게 기다리는 걸 좋아했다. 둘째 빈이는 앞서 걷는 것도, 뒤처져 남들에게 폐가 되는 것도 내켜하지 않는다. 산 입구에서 주운 나무 지팡이 짚어가며 사부작사부작 걷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신뢰할 만한 걸음걸이를 가졌구나 싶다. 막내 짜이는 걷다가 멈추기를 수도 없이 반복한다. 특이한 나뭇잎, 신기한 돌멩이, 이상한 새 울음소리들이 모두 아이의 걸음을 붙잡았다. 그러다 다리 아프면 금세 얼굴 찌푸려 쉬자하고, 달콤한 차 한 잔에 후다닥 기운차려 또 가자고 일어선다.
 
▲ 간드룩 마을 구룽족 옷 박물관에서 부부의 옷을 차려입다. 오른쪽이 우샤.
여자들끼리 걷는 길은 좀 남다르다. 길에 떨어진 꽃송이 주워 서로 머리에 꽂아주며 예쁘다 우습다 수다를 떨고, 맛있는 차를 마시면 무슨 차냐 어떻게 만드냐 얘기가 이어지고, 때때로 내 남편 네 남편 끌어다 남자들은 대체 왜 그런다니 흉을 보기도 하였다. 게다가 우리들 길잡이 우샤(Usha)는 가는 곳마다 마을 사정 환하고 아는 언니들 많아 끌어안고 안부 주고받기에 바빴고, 덕분에 우리도 친구 대접 받아가며 인사하느라 한 번씩 시끌벅적하였다.

 
돌담이 아름다운 마을 간드룩(Ghandruk)에서 우샤가 옷 박물관에 가보겠느냐 물었다. 이런 데 박물관이 있다니 좀 놀라워 대번에 가자고 나섰다. 그런데 허름한 흙집 앞에 멈춰 서서 콩 고르던 아주머니에게 옷 보러 왔다고 한다. 그제야 담벼락에 걸린 박물관 표시가 눈에 들어왔다. 아주머니는 우리를 반겨 맞으며 안으로 들어가자 하였다. 주섬주섬 들어가 보니 어두컴컴한 흙벽에 네팔 구룽족(Gurung)의 전통 옷들과 장신구들이 걸려있다.
 
네팔은 다수를 차지하는 인도 아리안계와 소수의 티베트, 몽골계 사람들로 이루어져있다. 이목구비 뚜렷하고 쌍꺼풀 깊은 우샤(Usha)와 락슈미(Lakshmi)는 아리안계이고, 눈매 가늘고 둥그스름한 얼굴을 한 다누(Dhanu)는 몽골계 구룽족이었다. 역시 구룽족인 박물관 주인아주머니는 주위 친척들이 입던 전통 복식들을 차곡차곡 모아 보관 중이었다. 소박하지만 뜻있는 박물관이다.
 
옷을 직접 입어볼 수 있다는 말에 아이들이 신이 났다. 우샤와 나는 구룽족 부부처럼 옷을 갖춰 입었고, 다누랑 락슈미도 고운 아가씨 옷을 차려 입었다. 띠까도 붙이고 목걸이도 하고 기념사진도 찍으며 호들갑스럽게 놀고 나니 해가 저물었다.
 
좁고 가파른 산길이 매일의 삶터인 사람들
 
▲ 롯지 손님들을 위해 날마다 물건을 등에 지어 나르는 아저씨  
우리는 안나푸르나(Annapurna)의 발목 어귀쯤을 걷고 있다. 히말라야 산맥에는 이마에 하얀 눈 얹은 8천 미터 고봉들이 여러 개인데 에베레스트, K2, 칸첸중가, 안나푸르나가 모두 히말라야의 빼어난 자식들이다. 우샤가 길 잡아 올라가는 푼힐(Poon Hill)은 그 중 안나푸르나에 속한 야트막한 봉우리이니, 우리는 기껏해야 히말라야 할머니의 어린 손녀딸과 조우하러 가는 셈이다.

 
좁고 가파른 이 산길이 매일의 삶터인 사람들도 있다. 감색 교복 차려입은 산간마을 아이들은 맞은 편 산등성이에 있는 학교를 향해 나는 듯이 산길을 오르내린다. 여자 아이들은 머리 쫑쫑 땋아 끄트머리에 빨간 리본을 매어 두었다. 롯지 손님들 위해 온갖 물건 등에 지어 나르는 아저씨들과도 날마다 마주치는데, 닭이며 음료수며 채소들이 층층이 쌓여 머리 위로 한 짐씩이었다.
 
공사에 쓰일 벽돌과 시멘트들을 옆구리에 매달고 오르는 노새들과 나뭇짐 잔뜩 담긴 바작을 이마에 끈 걸어 지고 가는 아주머니들도 자주 보게 된다. 산에 오르면 오를수록 물값, 밥값, 잠자리값이 껑충껑충 뜀을 뛰는데 이 모든 걸 손수 나르는 모습을 본 뒤로는 비싸다 소리를 차마 못하였다.
 
트레커들 대부분이 외국인이다 보니 그들에게 손 내밀어 구걸하는 아이들도 종종 있다. 도시 아이들처럼 셈속이 빠르지는 않고 그저 사탕이나 볼펜을 달라는 정도지만, 그게 돈이든 물건이든 아이 손에 덥석 뭔가를 쥐어주는 일에 대해 경계하는 목소리도 높다. 아이들이 구걸에 익숙해지게 해서는 안 되며, 빈곤을 구조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도 의미 있는 일을 하는 단체에 일정액 기부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조막손 내밀며 눈을 맞추는 아이와 마주서면 사탕 몇 개 얼른 쥐어주고픈 마음이 들기도 한다. 

▲ 아침마다 산길 오르내려 학교에 가는 아이들 
여섯 살 남짓한 여자아이가 길에서 튀어나와 내 앞을 막아섰다. 사탕을 달라나 보다 싶어 우물쭈물하는데, 아이가 손에 쥔 작은 꽃묶음을 내민다. 산길에 핀 자잘한 꽃들을 따서 풀로 묶은 것이다. 뜻밖의 호의에 기뻐하며 고맙다고 받아 쥐자 아이가 그제야 “캔디?” 한다. 그러니까 아이는 사탕 값으로 먼저 꽃묶음을 건넨 것이었다.
 
나는 주머니에 있던 사탕을 모두 털어 아이 손에 쥐어주고 꽃을 모자에 꽂았다. 아이는 구걸이 아니라 거래를 원하였고 나는 거기에 응한 셈이다. 아이의 수완이 그럴 듯하여 웃음이 났다.
 

고레빠니(Ghorepani)는 푼힐 바로 아래쪽 마을이다. 내일 새벽 푼힐 꼭대기에 올라 일출을 보기로 하고 롯지에 들었다. 3천 미터가 가까워오면서 기온이 부쩍 내려가 밤이면 제법 냉기가 흘렀다. 저녁을 먹고 롯지 식당에 앉아 차를 마시는데 마을 언니들이 하나둘 우샤를 보러 왔다. 의사 없는 보건소를 혼자 지킨다는 간호사와 이웃 롯지의 주방 일을 도와주는 앳된 언니들이었다.
 
무쇠 난로에 나무를 넣어 불을 피우고 되는 대로 둘러앉았다. 이런저런 이야기 오가던 중에 우샤가 구석에 있던 북을 집어다 두드리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러자 다누와 락슈미와 고레빠니 언니들이 북을 돌려가며 노래를 이어간다. 레썸 삐리리 레썸 삐리리, 하는 오래된 네팔 노래가 난로 주위를 빙빙 떠돌았다. 난로 안에선 불이 탁탁 튀어 오르고, 네팔과 한국의 젊고 어리고 늙은 여자들이 노래하고 춤추고 킬킬대며 밤을 엿가락처럼 늘이고 있다.
 
푼힐 꼭대기에 서서 히말라야를 바라보며
 
▲해발 3210미터 푼힐, 여기까지 오기 잘했다.
새벽 네 시, 아직 사방 컴컴한데 랜턴 하나씩을 들고 길을 나섰다. 어느 새 사람들이 개미처럼 줄지어 산을 오르고 있다. 푼힐의 일출을 보려고 고레빠니 롯지 사람들이 모두 모였나 보다. 새벽어둠에 가려 사람은 잘 안 보이고 불빛들만 애벌레처럼 구불구불 기어가고 있다.

 
삼심 분 쯤 올라갔을까. 짜이가 머리 아프다며 주저앉는다. 3천 미터부터는 언제 고산증이 찾아올지 모른다고 사람들이 걱정하는 소리를 들었더랬다. 아이는 멀미하는 것처럼 속까지 울렁거린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짜이는 유난히 고도에 민감하여 비행기 탈 때마다 영 고역스러워 했었다. 아직 한 시간이나 더 올라가야 한다는데, 아이를 데려가야 할지 내려 보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고도에 적응을 하면 괜찮을까 하여 초코바 하나씩 꺼내 먹으며 시간을 벌기로 한다. 평소 단 것에 굶주린 아이의 눈이 반짝거린다.
 
막내를 데리고 천천히 올라오느라 일출 시간을 놓쳤다. 먼저 도착한 일행들도 구름에 가려 일출을 제대로 못 봤다고 아쉬워한다. 상관없다. 흐린 날도, 비에 젖는 날도 같은 무게의 하루이다.
 
나는 푼힐 꼭대기에 서서 오래도록 히말라야를 바라보았다. 오르던 길에 자꾸 밟히던 묵은 속내들도 다 꺼내어 히말라야의 찬바람을 쐬어주었다. 한 번씩 거풍을 하고 나면 생각도 차츰 가벼워지지 않겠냐고 혼자 위안 삼는다. 춥다며 품을 파고드는 아이들을 꼭 끌어안아준다. 여기까지 오기를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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