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팬질' 자극하는 완벽한 R&B 앨범

차우진의 노래 이야기 (6) 자넬 모네의 [The ArchAndroid]

차우진 | 기사입력 2010/12/29 [01:18]

'즐거운 팬질' 자극하는 완벽한 R&B 앨범

차우진의 노래 이야기 (6) 자넬 모네의 [The ArchAndroid]

차우진 | 입력 : 2010/12/29 [01:18]
연말이면 으레 한 해를 결산하게 되는데 올해 가장 좋았던 앨범을 꼽는 것도 그일 중 하나다. 짐작컨대 국내에서든 해외에서든 아케이드 파이어의 [The Suburbs]나 카니예 웨스트의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가 경합을 벌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올해의 앨범에 자넬 모네의 [The ArchAndroid (Suites II and III of IV)]를 꼽고 싶다.
 
5월 발매 당시 거의 모든 매체로부터 만점을 받은 이 앨범은 자넬 모네를 21세기를 이끌어갈 여성 예술가로 인정하게 만들었다. 이 앨범에 대한 여러 매체의 평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장르와 시대를 넘나드는 수작이자 거의 완벽한 알앤비 앨범’이다.
 
영화 <메트로폴리스>에 대한 음악적 오마주
 
▲자넬 모네의 앨범 [The ArchAndroid (Suites II and III of IV)]
이 앨범은 자넬 모네가 2008년에 발표한 EP [Metropolis Suite I of IV: The Chase]의 연작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프리츠 랑의 1927년 영화 <메트로폴리스>에 대한 음악적 오마주인데, 원작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계급적 갈등과 모순의 문제보다는 ‘안드로이드’라는 SF소재의 낭만성에 주목하는 게 차이라면 차이다.

 
그런데 ‘안드로이드’와 ‘여성’이라는 맥락에서 떠오르는 이름이 하나 있다. 바로 ‘다나 해러웨이’다. 1985년 발표한 <사이보그 선언문>으로 여성주의적 상상력을 신선하게 제시한 그녀는 ‘사이보그’라는 메타포를 통해 레이건의 신보수주의 정책과 젠더, 계급문제를 돌파했다.

 
자넬 모네의 음악적 정체성이 새삼 신선하게 받아들여지는 건 사이보그라는 메타포를 통해 흑인과 여성이라는 이중적 모순구조를 돌파하기 때문이다.
 
음악적으로 자넬 모네의 [The ArchAndroid (Suites II and III of IV)]는 소울과 일렉트로니카, 힙합과 오케스트레이션을 조합하면서도 예술적 치기에 빠지지 않는다. 이런 방식은 카니예 웨스트의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가 자의식 과잉으로 여겨지는 것과도 다르고, 아케이드 파이어가 이제까지 아프리카 리듬을 록과 결합시키는 방식으로 작업한 것과도 다르다. 자넬 모네가 현재 대중음악계에서 중요한 이유는 흑인,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안드로이드라는 소재로 객관화시킴과 동시에 탈관습적인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20세기 문화적 생산물을 총망라하는 수작앨범
 
[자넬 모네(Janelle Monáe) “Tightrope (feat.Big Boi)” 뮤직비디오 보기]

이 비디오는 춤이 금지된 가상 시대의 한 정신병원(The Palace Of The Dogs)을 배경으로 한다. 고전영화의 오프닝처럼 빈티지한 질감으로 촬영된 영상은 초기 고딕 호러영화의 감수성을 21세기로 끌어온다.
 
춤과 마법이 금지된 곳에서 까만 정장(백인 지배계급의 소속감을 반영하는 이 복식은 흑인여성에 의해서 사회적 의미가 전복되는데, 특히 흑인음악에서 옷이나 악세서리를 통해 계급 정체성이 뒤바뀌는 건 역사적으로 흥미로운 소재였다)을 입고 수용자들을 이끄는 자넬 모네는 억압적인 체제를 전복하도록 선동하는 마녀이자 혁명가다.
 
특히 이 비디오에서 눈길을 끄는 건 안무다. 그녀의 일당이 구사하는 안무는 전통적인 스텝을 기반으로 하지만 관습적으로 보이지 않고, 브레이크 댄스와 로봇 춤을 융합하는 동작을 선보인다. 아름답기보다는 기괴하고, 이상하기보다는 압도적이다.
 
여기서 대안적인 현대 무용의 획기적인 전략도 읽을 수 있다. 요컨대 20세기 후반의 춤은, 잘 사용하지 않는 근육을 활용하는 동작과 몸짓으로 전통적인 관습에 억압당한 몸을 해방시키고 신체의 가능성을 구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넬 모네의 음악은 SF적 상상력을 통해 음악장르와 현대무용, 상징과 은유, 정체성과 전복, 그리고 사회적 억압과 좌절된 혁명을 제멋대로 횡단한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건 당연히, ‘제멋대로’다.
 
마지막으로, 이 앨범은 지난 세기의 온갖 문화적 생산물의 총체적인 결과기도 하다. 자넬 모네는 여러 인터뷰와 기고를 통해 자신이 스티비 원더, 제임스 브라운과 같은 소울 시대의 대표자들을 비롯해 마이클 잭슨과 펠라 쿠티와 밥 말리, 라흐마니노프에 이르는 온갖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받았음을 얘기했을 뿐 아니라 옥타비아 버틀러와 같은 아프로퓨처리즘의 작가들로부터 영감을 얻었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녀가 연상시키는 것은 프리츠 랑과 팀 버튼을 비롯해 [메트로폴리스], [록키 호러 픽쳐 쇼], [1984], [스타워즈], [프랑켄슈타인] 등의 컬트, SF 작품들과 고대 신화와 여성주의 이론서들을 망라한다. 지적 호기심과 상상력 뿐 아니라 ‘즐거운 팬질’마저 자극하는 리스트인데 그녀의 이 앨범 콘셉트는 후에 영화와 소설, 그래픽노블로도 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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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il 2011/01/29 [18:35] 수정 | 삭제
  • 좋은 음반 소개받네요.
  • __ 2011/01/04 [21:06] 수정 | 삭제
  • 우와! 정말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