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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없는 세상? 미완의 꿈 아니다”
소수자들의 실질적 권리구제 위한 차별금지법 조속히 제정되어야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김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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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일란님은 성적소수문화환경을위한모임 연분홍치마 활동가로,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2011년 1월 5일. 새해가 밝자마자 국회 앞에서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발족 기자회견이 있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2007년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차별금지법안에서 성적지향 등 7개의 차별사유가 일부 여론에 밀려 삭제되고, 그로인해서 차별을 금지하고자 제정되어야 할 법이 오히려 차별을 조장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직면하면서 만들어졌다. 반(反)차별적 감수성에 기반을 둔 올바른 차별금지법의 시급함을 절감하고, 이를 제정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활동해왔던 다양한 단체들이 모인 연대체이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를 시작하며
 
▲ 2011년 1월 5일 여의도 진행된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출범 기자회견.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2007년 누더기 차별금지법 제정 사태. ‘헌법상 평등의 원칙을 실현하는 최초의 기본법’으로 제정 이유를 밝히며 입법 예고된 차별금지법은 어이없게도 차별사유 가운데 가족형태 및 가족구성, 출신국가, 학력(學歷), 병력(病歷), 출신국가, 범죄 및 보호처분 경력, 언어, 성적지향이라는 7개의 영역이 삭제되었다. 이것은 기존의 제도에서 보호받지 못했던 사회적 소수자들, 특히 7개 삭제영역에 해당하는 이주노동자, 성적 소수자, 비혼모를 비롯한 한부모 가정, HIV/AIDS 감염인 등이 겪는 심각한 차별을 구제하고 그러한 차별로부터 보호할 의무가 있는 국가가 오히려 차별의 근거를 만든 셈이었다.

 
당시 많은 시민사회단체의 반대에 부딪쳤던 ‘누더기’ 차별금지법은 결국 당시 17대 국회의 회기만료로 자동 폐기되었다. 그 후로 3년여의 기간 동안, 많은 단체들이 각자의 고민과 쟁점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반차별 운동을 전개하면서 올바른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의 기반을 만들었고 드디어 2011년 1월 5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발족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날의 기자회견은 바로 이렇게 준비된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새로운 법제정운동을 전개하겠다는 의지를 선언하는 자리였기에, 그 자리가 꽤나 역사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이 역사적인 자리에 한달음에 도착하고 싶은 마음만큼 속도를 붙여 걸었다. 잰 걸음 탓인지, 설레는 마음 탓인지 제법 쌀쌀한 날씨였지만 나의 얼굴은 상기되었다. 기자회견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기자회견을 준비했다. 그 때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동안 잘 지냈어요?” 목소리를 따라 뒤를 돌아보니, 그가 서있었다. 그의 이름은 K. K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발족 기자회견에서 만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K와 처음 만난 것은 2003년으로, 한국전쟁 이후에 형성된 미군주둔 기지촌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미군 남성과 성매매 여성에서 사이에서 태어난 ‘기지촌 혼혈인’의 인권실태조사단 활동을 할 때였다. K 역시 기지촌 혼혈인으로서, 어릴 적에 어머니를 따라 미국에 가서 그곳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다양한 고민을 하다가 그것을 해결하고 싶어서 한국에 막 왔었을 때였다.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동안, 우리가 별 어려움이 없이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에 살짝 놀랐다. 하긴 7년 정도 세월이 지났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도 7년 전에 한국어와 영어 그리고 손짓을 섞어가면서 겨우 소통을 했던 K의 모습만 기억하고 있었다니. 변화를 고려하지 못하는 나의 무심함을 들킬까봐 서둘러 최근의 근황을 물었다. 현재 그는 인종차별을 젠더적 측면에서 복합적으로 고민하는 단체에서 활동한다고 했다. 그동안 K가 어떤 고민과 활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는지 알 것 같았다.
 
차별은 ‘사소’할수록 치명적이다

 
▲ 기지촌 혼혈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있다 there is> (감독 박경태, 제작 두레방) 
앞질러 이야기하자면, 그 당시 K와
함께 했던 기지촌 혼혈인의 인권실태조사단 활동의 경험은 반차별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이자 지금까지 여전한 고민으로 남아 있다. 기지촌 혼혈인들의 삶은 나의 상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운 맥락을 지니고 있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로 남아있는 것은 바로 차별은 아주 사소할수록 치명적이라는 점이다.
 
차별은 평범하고 일상적이며 즉흥적인 순간에 발생하고, 차별의 피해는 사소할수록 치명적일 수 있으며, 차별은 편견에 기대어 지속된다. 그래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차별이 발생되는 맥락, 차별 가해자의 편견이 지속되는 연유를 살펴야 하며, 그것이 해결되는 과정에는 차별피해자의 감정적이고 정서적인 측면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와 같은 반차별 운동의 전제 같은 것을 갖게 되었다.
 
기지촌 혼혈인들은 한국전쟁 전후로 등장하기 시작하여, 1970년대 중후반의 출생이 가장 많았다. 그들은 주로 미국으로 입양되거나 혹은 한국에서 거주했다. 기지촌 혼혈인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이었는데, 한국에서 그들이 자라면서 가장 상처받았던 에피소드로 들려주었던 경험은 ‘호로자식’이라는 욕설에 관한 것이었다.
 
요즈음은 ‘후레자식’으로 음운이 변화된 이 ‘호로자식’이라는 말의 유래는 병자호란이라는 설이 있다. 전쟁 중에 많은 여성들이 청으로 끌려갔다가 돌아오게 되는데, 그 여성들 가운데 임신을 한 경우가 많았고 그 여성들이 낳은 아이를 호로(胡虜), 즉 오랑케 자식이라 하여 사회에서 냉대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은 요즈음 ‘아버지 없이 자라서 근본도 없고, 버릇없이 못된 남자’라는 의미를 지닌 욕설이 되었다. 또한 이 말의 저변에는 남자와의 관계가 복잡한 여성의 자식이라는 말도 내포되어 있다.
 
부계혈통의 순수성이 강조되는 가부장제사회에서 기지촌 혼혈인들에게 ‘호로자식’과 같은 욕설은 자신의 존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말이었다. 이런 상황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한국전쟁 직후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들의 아버지의 나라로 돌려보내야한다’라는 기조 속에서 기지촌 혼혈인에 대한 정책을 세운 적도 있다.
 
기지촌 혼혈인들은 폭력적 상황에 노출되기 쉽고 취직이 어렵기 때문에 생계유지가 곤란한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보다 더 가슴 깊은 곳의 상처로 기억되는 것은 바로 ‘호로자식’과 같은 말이나 혹은 그런 말의 의미를 포함한 대우이었다. 기지촌 혼혈인들을 둘러싼 차별의 지점들은 ‘정상적인’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피부색, 학력, 고용형태 등 매우 다양했지만 그에 앞서 그들이 겪고 있는 이 일상적인 차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차별로 드러내어 해결해야할지 막막했다.
 
중층적 차별이 만들어내는 복합적 긴장
 
당시에 인권실태조사단은 기지촌 혼혈인들과 감정적이며 치명적인 차별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런 인터뷰 자리에 종종 K가 동행하기도 했었는데, K는 오히려 그들과 우리 사이에 해결하기 어려운 긴장감을 만들기도 했다. 그것은 바로 K가 ‘영어’를 할 수 있는, 게다가 미국에서 대학을 나온 혼혈인이기 때문이었다. 기지촌 혼혈인으로서 ‘영어’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무시, 냉대, 비하의 또 다른 이유가 되었다.
 
“영어 한 번 해보라면서 아이들이 놀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어린 시절 또래친구들에게 당했던 괴롭힘을 기억을 갖고 있는 기지촌 혼혈인들이 많았다. 특히 서구적인 외모와 달리, 영어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괴롭힘의 연유가 되었다. 게다가 한국에서 ‘영어’ 사용능력은 다른 외국어에 비해 특권적 지위를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기지촌 혼혈인들은 영어를 사용하는 K가 자신들과 달리, 차별로부터 벗어나 있는 혜택을 받은 존재라 여기면서 자신들과 K를 구별 지었던 것 같다.
 
다른 측면에서, 미국사회에서 유색인종 혼혈인이기에 차별받았던 경험이 있는 K는 자신에게 거리두기를 하는 기지촌 혼혈인들이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K와 다른 기지촌 혼혈인들 사이에는 커다란 긴장감이 있었다. 지금처럼 K가 한국어 사용이 좀 더 편안했다면 아마도 긴장감을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긴장을 함께 경험하면서 나는 피부색, 외모, 언어 사용이 차별에 있어 서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인식했다.
 
그러던 어느 날 K와 약속을 했는데, 그가 화가 나서 온 적이 있다. K가 택시를 타고 목적지를 이야기하자, 택시기사가 대뜸 반말로 “한국에서 살기 힘들지?”라며 말을 걸었다는 거다. K가 이 질문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아저씨의 질문이 이어졌다고 한다.
 
“한국 어디서 일해? 월급은 잘 받아?”
 
그제야 K는 자신의 피부색과 서툰 한국어 때문에 택시기사가 자신을 소위 ‘동남아시아’ 출신국가의 노동자로 인식했고, 그래서 던진 질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자신의 출신국가를 ‘동남아시아’로 오해한 것과 대뜸 반말을 하는 택시 기사에게 너무 화가 났다고 했다.
 
나는 K가 왜 화가 났는지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기지촌 혼혈인들의 삶을 충분히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없었다면, 나는 이 긴장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지촌 혼혈인들의 생애과정에서 그들이 경험하게 되는 감정적, 경제적, 제도적 차별들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들이 있었고, 동일한 정체성을 가진 집단이라 할지라도 개인들의 삶의 조건에 따라서 차별이 발생하거나 차별을 인식하는 방식도 매우 다르게 발생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나아가 그들의 삶이 나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고민할 수 있는 계기들이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K의 감정이 금방 이해가 되었고, 우리는 같이 화를 냈던 기억이 난다.
  
반(反)차별운동으로서의 차별금지법제정

 
▲ 국가인권위 앞에서 동성애 혐오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 중인 현병철위원장 지지자들.     ©일다
기지촌 혼혈인의 인권실태조사는 나에게 소중한 경험이 되었는데, 그것은 특정한 사회적 소수자들의 삶의 과정과 그 속에서 개인들이 느끼게 되는 감정들을 쉽게 상상할 수 있도록 그 계기들을 확장하는 것이 바로 반차별 운동의 시작이라는 것이었다.

 
어떤 특정한 사회적 소수자들의 삶은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직접적으로 연상되는 차별지점이 있다. 그것은 특정한 사회한 소수자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권감수성이 충분한가라는 판단과 무관하게, 그 존재들에 대해서 최소한의 사회적 인정이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자면, 누군가의 인권은 특정한 세력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과 관련하여 어느 정도 고려해야할 영역으로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 ‘사회적 합의’라는 말은 결국 정책입안, 예산책정, 제도적개선, 법의 개정 등에서 누군가의 삶의 조건이 고려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언제나 이것은 ‘최소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조차 쉽게 이루지지 않은 차별사유들이 있는데, 예를 들어 2007년도 차별금지법 입법예고안에 삭제되었던 가족형태 및 가족구성, 출신국가, 학력(學歷), 병력(病歷), 출신국가, 범죄 및 보호처분 경력, 언어, 성적지향이라는 7개의 영역이 그렇다. 예를 들어 ‘학력’, ‘가족형태 및 가족구성’처럼, 매우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상황에서 발생하는 차별의 경우에는 한국 사회의 문화적인 특수성으로 이해되거나 혹은 ‘성적지향’처럼, 개인적인 선택에 따른 불이익으로 차별을 이해할 경우에는 비규범적인 삶에 대한 대가로서 이해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 사회에서 인식조차 되지 않았던 다양한 차별현실을 드러내고, 차별을 경험한 사람들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구제함으로써 평등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차별금지법제정운동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누구도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기본적인 가치들을 선언하는 것을 넘어서, 매우 실질적인 반차별 운동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지난 2010년 12월 한 종교계 언론에서 이번 정권에서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기사가 보고되었다. 이에 관해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법무부에 공식확인한 결과, 법무부는 차별금지법제정 중단을 사실상 인정했다. 그 이유는 '사회경제적 부담에 대한 우려'와 '사회적 합의' 부재라고 했다. 이것은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약자들의 인권을 옹호해야할 법무부가 그 약자들의 인권을 저버리는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라 할 수 있으며, 오히려 국가가 나서서 차별을 조장하는 것이다.
 
차별 없는 세상? 이것은 언제나 미완의 꿈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의 삶을 살면서 언제든 상처받을 수 있고, 차별적인 상황에 놓일 수 있으며, 누구든 차별받을 수도 차별할 수도 있다. 따라서 ‘차별 없는 세상’은 미래를 향한 공허한 외침이 아니라 오늘의 보다 나은 삶을 향한 의지이다. 2007년 누더기 차별금지법 사태에도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한 사람들의 열망이 사그라지지 않았던 것처럼, 2011년 법무부의 차별금지법 제정 중단으로 또 다시 벽에 부딪혔지만 더 많은 사람들의 의지가 함께 할 것이라 기대된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매달 차별금지법제정을 위한 입법청원 서명 캠페인을 진행할 계획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지지해줄 한 사람, 한 사람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한 때이다. 인권과 평등의 가치를 지향하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운동에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블로그: www.ad-ac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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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2/22 [07:28]  최종편집: ⓒ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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