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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 활동가들의 고민, 행복 그리고 꿈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 ‘열림터’가 살아가는 이야기②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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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가정폭력 등 여성폭력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쉼터를 소개하고 각 쉼터들이 직면한 고민을 활동가의 시선으로 섬세하게 조망해보는 기사를 월 1회 연재합니다. 필자 나랑님은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인 ‘열림터’의 활동가입니다.-편집자 주]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열림터의 원장이신 송미헌 선생님과 만나 쉼터 활동가들의 고민과 행복, 그리고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지금 열림터에는 주간활동가 2명과 야간활동가 1명이 활동하고 있는데요, 활동가와 열림터 생활인들의 관계도 쉽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아이들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나 마음가짐은 어떤가요?
 
“열림터는 여성주의 쉼터를 지향하고 있다 보니까 기본적으로 생활인과 평등한 관계로 대하려고 해요. 아이들을 보호, 관리 대상으로 보는 게 아니라 치유의 과정에 함께 하는 조력자 역할을 하려고 하죠.
 
세상과 사람에 대한 불신을 회복시켜주는 과정이기 때문에 인격적인 존중, 신뢰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래서 매일 매일 활동가들과의 관계나 대화가 중요하죠. 아이들이 뭔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반대하면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충분히 설명을 하거나 다른 방법을 물어보고 가급적 의견을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하죠. 규칙 같은 경우도 일주일에 한 번씩 생활인들이 가족회의를 하는데 서로 불편한 것을 말하고 그것이 규칙에 반영되는 식이에요.”
 
-그래도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잖아요. 저도 한 친구랑 싸우고 숙직방문 잠그고 울고 그랬잖아요. 3개월 동안 한숨을 천 번은 쉰 것 같은데……. 아이들은 저마다 피해 상황 속에서 자신을 지켜온 생존전략이 있는데 그걸 나한테 써먹을 때 힘이 들더라고요. 그럴 땐 나도 나의 생존전략을 막 쓰게 되고 그러면 서로 힘들어지죠. 선생님은 언제 힘이 드세요?
 
“아이들과 관계가 힘들 때는 이 아이가 나를 믿지 못하는구나 하는 느낌 받았을 때예요. 나 스스로의 한계와 무력감을 느끼죠. 아무리 설명을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건 나에 대한 신뢰가 없는 거니까. 그리고 여기서 생활을 해야 되는 아이인데 규칙을 안 지킨다거나 적응 못해서 막무가내로 퇴소하는 경우, 당장 내보내는 게 너무 갑갑한데 내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일 때 정말 힘이 들어요. 힘듦이 오래가는 것 같아요, 저한테는. 작년에 세 명이 연달아서 강제 퇴소한 경우가 있었거든요.”
 
-강제 퇴소도 있나요?
 
“강제퇴소는 무단외박을 수차례 반복했을 때, 열림터 내에서 의도적으로 다른 생활인을 폭행하거나 계속되는 도벽이 있을 때요.”
 
-치유와 자립이 열림터 지원의 두 가지 축인데요. 치유와 자립이 상반되는 건 아니지만, 지원을 하다보면 마냥 사랑만 줄 수는 없고 이 친구가 이 세상 속에서 버티며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순간순간 갈등할 때가 많거든요.
 
“그렇죠. 평등하고 인격적인 관계가 열림터 내에서는 가능하지만 알바를 한다든지 직장생활 하게 되면 사실 고용관계에서는 그렇지 않잖아요. 일방적인 지시가 있을 수도 있고 이해할 수 없는 통제가 있을 수도 있는데 그 때 그걸 못 견뎌하고 적응을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한 직장에 오래 다니기 힘들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무시당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데요. 그럴 때 그만두라고 할 수도 없고 다니라고 할 수도 없고.
 
이게 퇴소 후에도 계속 되면 문제가 되죠. 직장을 전전하게 되는 사회 부적응자로 스스로를 규정하면서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갈까 봐. 우리는 평등하게 대하고 존중하지만, 사실 전혀 그렇지 않은 사회 속으로 나가서 살아남아야 되는데 어떤 방식이 적절할지 고민이 돼요.” 

▲ 故장자연 시민법정에 참가한 열림터 친구들     ©열림터
-열림터에 대해 친구랑 얘기하다가 그런 얘기를 했었어요. 열림터는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이고 그 울타리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다 여성주의자들이잖아요? 그래서 여성단체에서 하는 행사에도 많이 참가하고 여성주의자들에 둘러싸여서 살지만, 이 아이들이 여성주의자가 되지는 않더라고요. “살 안 빼도 돼. 지금도 예뻐” 아무리 말해줘도 언제나 최대의 관심사는 다이어트이고.

 
“꼭 여성주의자가 될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 친구들은 어떻게 보면 전혀 새로운 방식의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을 만난 거잖아요. 아, 세상에는 이런 시각도 있구나,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는 거. 무엇보다 자기에 대한 해석, 자기 피해에 대한 해석을 이렇게 해주는 사람도 있구나. 이렇게 자기 피해에 대해서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게 여성주의 쉼터가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고 봐요.”
 
-그렇죠. ‘세상에 이런 시각도 있다’는 것. 제가 브라를 안 하고 다니니까 애들이 “쌤, 어떻게 브라를 안 할 수 있어요?” 라고 해요. 애들은 “잘 때는 좀 벗고 자”라고 해도 절대 안 벗죠. 쉼터 안에서 비혼인 활동가나 결혼해도 애 안 낳고 사는 활동가들도 보는 거고 레즈비언 선생님을 만나기도 하고요.
 
현재 생활하고 있는 친구들 지원하다보면 퇴소자 지원이 뒷전으로 밀리기도 하죠. 근데 퇴소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아야 열림터에 있을 동안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답이 나오니까 퇴소자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은 너무 중요한 것 같아요. 이 부분에 대해 고민이 깊으실텐데요.
 
“그동안 보호막, 울타리가 있다가 퇴소하게 되면 세상에 혼자라는 느낌이 들 테고 그래서 열림터가 친정집의 역할, 언제라도 와서 상의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되려고 하는데 쉽지 않아요.
 
특히나 강제퇴소 같은 경우는 이후에 연락이 안 되는 경우, 가장 답답하죠.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지금 힘든 점은 뭔지 아예 알 수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더 깊은 신뢰관계를 갖고 있는 활동가가 있고 퇴소 후에도 그 활동가를 의지하고 있다가 그 활동가가 사직을 하고나면 열림터에 연락 끊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현재 퇴소자 지원이 개별 활동가와의 친밀감에 의존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열림터에서 끌어안을 수 있는 방안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활동시작한 지 3개월 됐잖아요. 근데 벌써 정이 너무 많이 들어서 이 친구들 퇴소할 생각을 하면 가슴이 짠한데요, 그동안 활동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친구가 있나요?
 
“한 친구가 있는데요, 제가 처음 원장으로 왔을 때 그 주에 자해를 했어요.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너무 힘들어했어요. 그 후로도 죽고 싶다는 얘기 많이 했고 결국 석 달 후에는 자퇴를 했어요. 매일 집(열림터)에 무기력하게 있었는데, 하고 싶어 하는 게 있었어요. 근데 계획을 같이 세워봤는데 그림이 잘 안 나오더라고요.
 
제가 처음 맡은 친구였어요. 다른 재능은 뭐가 있는지 유심히 봤더니 요리를 잘 하는 거예요. 요리를 해도 창의적으로 해요. 이 맛도 내보고 저 맛도 내보고. 그래서 일단은 경제적인 능력을 갖추고 절대 이 꿈을 놓치지 말자고 설득하기 시작했죠. 두 달 정도 설득을 했는데 받아들이는 과정이 쉽지 않았겠지만, 결국 받아들여서 조리사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어요.
 
제가 아는 복지관 조리사 강좌 하시는 분한테 과외를 했어요. 열림터에 그 분이 직접 오셔서 50개 정도의 요리를 다 실습을 한 거예요. 이 친구의 경쟁력은 이 친구의 실력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했는데 한식은 자격증 땄고 일식, 양식은 못 땄지만, 지금은 퇴소해서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일해요.”
 
▲ 지금은 퇴소한 친구가 조리사 자격증을 준비할 때 만든 요리     ©열림터
-아이들과 함께 한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은 어떤 거예요?

 
“작년 겨울에 제주도 여행 갔을 때 공항에 갔는데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공항에 가보는 게 다들 처음인거에요. 저도 충격이었어요. 김포공항 국내선에서 얼마나 사진을 찍어대는지……. 나도 해 봤다는 거, 또래에 낄 수 있는 거. 어렸을 때 못해본 결핍감이 큰 거죠. 제주도보다 공항에서 더 좋아하더라고요.”
 
-이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세요?
 
“보람을 느낄 때는 아이들이 변화하고 있다, 많이 회복이 되었구나 하고 느낄 때요. 며칠 전에 숙직 들어갔을 때 한 친구랑 상담을 하는데, 아는 사람이 자기한테 “가해자(아빠) 멀쩡해 보이더라” 그런 얘길 했데요. 그 전 같으면 너무 화가 났을 텐데 ‘아, 이 사람은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래요. 그 사건이 조금씩 아련해지는 느낌이었데요. 내가 그때 해 준 말이 “네가 거기에서 많이 자유로워진 것 같다” 이었지요.
 
작년에 그 친구가 ‘작은 말하기’(한국성폭력상담소 성폭력피해자 자조모임)에 다녀와서 실신을 했었어요. 거실에 들어오자마자 쓰러져서 자지러지며 울었었는데 그러던 친구가 조금씩 자기 상처에서 자유로워지는 걸 볼 때, 그럴 때 보람을 느껴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긍정적인 에너지를 갖고 있는 게 너무 중요하다는 생각. 내가 어떤 상태이냐가 아이들에게 바로 영향을 주니까요. 이 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동력이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내 스스로가 사람을 만나고 외부에서 에너지를 얻는 성향이어서인지 몇 시간을 애들이랑 얘기해도 지치질 않아요. 애들이랑 상담에서 내가 힘을 얻는 것 같아요. 참 힘들었을 때에도 애들이랑 상담을 하고 나면 ‘아, 내가 할 수 있는 역할 있고 내가 필요한 사람이구나’ 그런 걸 느끼면서 힘이 생겨요.”
 
-서로 치유가 되는 거네요?
 
“그렇죠. 내 상처를 다 얘기할 수는 없지만, 아이들의 상처를 같이 얘기하고 해결하고 그러면서 나도 같이 치유가 되는 거죠. 동료가 저보고 그래요. 상담을 왜 그렇게 오래 하냐고. 하다보면 한 시간, 두 시간이 훌쩍 가요. 애들이 상담 전보다는 상담 후에 조금이라도 짐을 덜은 듯한 모습을 보면 그 때 참 힘이 나요.”
 
-저도 그런 것 같아요. 애들이 나한테 짜증내고 말 안 듣고 귀찮게 하고. 그런데 또 애정표현도 많이 하고 웃겨주고. ‘아, 누가 날 이렇게 웃겨줄까’ 그런 생각해요. 같이 지지고 볶으면서 희로애락의 바다에서 춤을 추면서 같이 성장해 가는 거죠. ‘이 친구들이 나를 살아있게 하는구나’ 싶죠.
 
전에는 열림터 활동가들끼리 만날 싸웠다고 들었어요. 사실 사람의 문제다보니까 정답이 없고 활동가들끼리 지원에 있어서 시시콜콜한 것까지 의견이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뭐 예를 들면 일요일에 애들이 이불을 안개고 있는데, 이불을 개라고 할 것이냐 말 것이냐. 그때 선생님은 정리 정돈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하셨고 저는 자기 방만큼은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놔두자고 주장했었지요. 사실 딱 어느 게 맞는다고 볼 수는 없지요.
 
“의견충돌은 수시로 있죠. 근데 그걸 해결하는 방식이 열림터는 여성주의적 조직이다 보니까 수평적인 의사결정구조이고, 그래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히 토론을 하는 거죠. 원장이라고 해서 더 많은 결정권을 가진다거나 일방적으로 지시한다거나 그런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활동가들끼리 항상 논의를 해서 결정을 하죠. 그 과정에서 큰 소리가 나거나 감정 상할 때도 있지만요.”
 
-정부지원을 받고 있는데 문제점은 없나요?
 
“일단은 쉼터가 24시간 생활시설이고 24시간 근무를 해야 되는데 활동가 3명이 전담을 해야 하니까 힘들어요. 정부에서 지원하는 운영비가 3인의 인건비 다 충당이 안 되고, 소진이 큰 직업인데 급여는 또 적고 그러다보니 이직률이 높아요.
 
그리고 비현실적인 생계비 문제가 있어요. 1인당 주·부식비가 하루에 4천원, 피복비가 한 달에 만3천원이에요. 물가수준, 우리나라 경제상황 고려할 때는 턱없이 부족하죠. 학교 지원 같은 경우는 등록금 이외에는 지원이 안 돼요. 전학을 하면 교복이나 교과서도 있어야 하고, 급식비, 체육복, 수학여행비, 방과 후 교육비 등. 이런 게 다 필요한데 지원이 안 돼요.
 
우리가 계속 요구를 해서 여성부에서 2012년부터 교복지원을 하겠다고 공문이 왔는데 ‘신입생’ 만 지원하겠다는 거예요. 이게 정말 생각이 있는 건지……. 신입생이 몇 명이나 있겠어요? 생색내기용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죠.
 
퇴소자지원금도 한 푼도 안 주다가 지속적으로 요구를 해서 2012년부터 지원하겠다는데 그 대상이 ‘시설에 1년 이상 거주한 친족성폭력 피해자가 만 18세 이하일 때’ 에요. 그러면 퇴소 준비가 안 되어 있어도 지원금 받으려면 생일 맞춰서 나가야 되는 거예요. 그리고 어린 시절에 피해경험이 있어도 나중에 인지하는 성인 입소자의 경우에는 퇴소자 지원을 전혀 못 받는 거예요. 정부가 쉼터 입소자들의 현황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거죠.”
 
▲ 2011년 1월 6일, 한국여성민우회 등 80여개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기관들은 인센티브 예산이 아닌 실질적인 피해자 지원예산을 현실화할 것을 주장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올해 정부의 인센티브 문제가 있었잖아요? 설명 좀 해 주세요.

 
“인센티브는 정부 지원문제와 맞물려 있어요. 3년에 한 번씩 기관 평가가 있는데요, 2010년에 평가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올해 몇몇 시설에 인센티브를 지급한 거죠. 시설 간에 줄을 세우고 불필요한 경쟁을 유도하려는 의도였다고 봐요. 여성폭력 관련 시설에 4억 가까이 되는 돈이 배정이 되었는데, 예산이 정작 필요한 곳에서 잘 쓰이는 게 아니라 정부가 쉽게 관리하려고 그 방편으로 쓰였다는 게 문제에요. 그 때 79개의 여성폭력 시설이 인센티브를 거부했어요. 거부에 대한 불이익은 당장은 없는데 앞으로 두고 봐야겠죠.”
 
-2014년이 열림터 20주년인 걸로 알고 있어요. 3년 남았는데요, 20주년을 맞이하면서 해보고 싶은 사업이나 포부가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세요.
 
“2002년에 열림터가 시설 평가에서 전국 1위를 했는데 그 때 쉼터의 상을 마련하고 전국적으로 확대를 시켰어요. 말하자면 하나의 모델이 된 건데 지금 여성부의 쉼터 평가틀 자체도 열림터에서 하고 있는 것들이 많이 반영이 된 거죠.
 
지난 몇 년 동안 활동가가 자주 바뀌면서 안정적인 운영에 주안점을 두다보니까 쉼터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역할모델을 못 해왔다는 느낌이 있어요. 세상이 바뀌었고 생활인들의 욕구나 주변 환경도 많이 바뀌었잖아요. 열림터도 변화해야 하고 새로운 쉼터의 모델이 되는 그런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또 하나 해보고 싶은 건 친족 성폭력에 대한 연구 사업이에요. 축적된 경험과 사례가 있으니까 열림터만의 특화된 분야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전 열림터가 좀 더 개방적이 되었으면 해요. 쉼터의 특성상 폐쇄적일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겠지만, 운영철학이나 전망에 대해서 더 많은 사람들과 열어놓고 얘기하고 함께 고민하면 좋겠어요. 사실 활동하다보면 당장 실무적인 지원에 급급하게 되는데, 운영이나 지원의 철학을 정립하고 운동을 고민할 수 있게 하는 건 외부에서 주는 자극과 소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아무튼 저의 열림터 활동이 선생님과 함께여서 든든하고 또 기대가 됩니다.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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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7/21 [08:11]  최종편집: ⓒ 일다
 
백작 11/07/21 [15:37] 수정 삭제  
  힘든 일 하시네요. 결핍감을 채워 주는 일, 상처받은 아이를 돌보아 주는 일 쉽지 않을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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