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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속에서 삶의 지혜를 찾는다는 것
장애여성, 숨은 그림 찾기(7) : 이건범의 <내 청춘의 감옥>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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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 숨은 그림 찾기” 연재는 다섯 명의 장애여성들이 다양한 ‘매체 읽기’를 통해 비장애인, 남성 중심의 주류 시각으로는 놓칠 수 있는 시선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색다른 장애인을 만나다
 
작년 어느 날, 한 친구를 음식점으로 유인해냈다. 몇 명과 작당하여 미리 준비해둔 케이크에 초를 켰다. 조금 어색해하며 불을 끈 그녀에게, 우리들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진정한 장애인이 되었음을 축하하는 멘트를 사정없이(?) 날려주었다. 그 촛불을 끈 주인공은 십여 년 전 ‘그 날’ 교통사고를 겪었다. 그 날을 기준으로 하면 비장애인으로 산 세월과 장애인으로 산 세월이 같다.
 
이런 퍼포먼스는 초경파티나 돌싱(돌아온 싱글)파티 느낌이 난다. 많은 사람들이 눈살 찌푸리며 보는 것에 오히려 박수를 치며 스스로 자존감을 찾기도 하고, 장애인이란 것에 낙인 찍는 이들에게 ‘썩소’를 날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덮어씌워진 장애에 대한 전형화된 이미지를 벗기기도, 스스로 벗어버리기도 쉽지 않다.
 
이처럼 장애에 관해 부정적인 이미지가 판치는 세상에서 간만에 색다른 인물을 한 잡지에 실린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건범. 그는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았음에도, “그나마 눈이 보일 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개척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라며 출판기획 일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눈이 안보이게 되면 난리 날 것처럼 떠들어대는 분위기와 달리, 어떤 ‘급좌절 모드’의 낌새도 없이 덤덤하게, 볼 수 있을 때까지 그저 하고 싶어서 눈을 많이 쓰는 일을 찾아서 하겠단다. 그래서 이 무모해 보이는 사람이 쓴 책이 읽고 싶어졌다. ‘내 청춘의 감옥’
 
공간의 제약으로 인해 생긴 시간의 자유
 
▲ 이건범의 <내 청춘의 감옥> (상상너머)
저자는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두 번 감옥에 가게 되었는데, 이때의 감옥생활이 책의 주된 스토리다. 그가 감옥생활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 곳곳에 담겨 여러 생각할 거리와 감동을 준다. 그 중에 특히 장애인으로서 공감이 가고 중요한 화두를 던지는 지점이 있었다.

 
우선 절절히 공감이 갔던 것은 “공간의 자유는 극도로 제약되어 있지만 시간의 자유는 충분히 허락된 곳이 바로 징역이다”라는 부분이다. 저자는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음을, 고통에서의 질적인 새로운 얻음이 있음을 전한다. 시간이 걸릴 일을 돈으로 해결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상식에서 벗어나, 며칠의 시간을 들여 심지어 가구까지 만들어낸다. 그런 경험 자체는 생소하지만 왠지 그 시간을 보내는 느낌이 낯설지가 않다.
 
물론 나는 감옥도, 장애인수용시설의 경험도 없으므로 그처럼 철저한 공간의 제약을 받아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맛보기 정도는 했다고 할까. 목발을 얻기 전인 일곱 살 때까지 낮 동안 혼자 방을 지켰고, 이후 목발이 생겼어도 물리적 접근이 가능한 공간은 많지 않아 집안에서 혹은 집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일례로 마루인형놀이로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놀이 그 자체의 즐거움을 느끼기보다는 온 집안의 물건을 꺼내어 차린 후 다시 제자리로 정리하는데 치중했다. 시간을 보내야 했었기에.
 
그래도 성인이 되어서는 그나마 갈만한 곳만이라도 찾아 다니면서 상황을 좀 변화시켰다. 최근 이런 시공간 확장의 사건이 중증장애인에게도 일어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자립생활운동의 영향이나, 휠체어 건강보험지원제도, 활동보조제도 등으로 집이나 시설에서 살며 외출경험이 거의 없던 장애인들을 만나게 된다(나는 장애여성들을 주로 만난다). 만남 초기에는 안타까움으로 ‘그녀들은 그 긴 시간을 무얼 하며 보냈을까?’ 궁금했었다.
 
장애인의 경험을 재현하는 방식
 
시설수용 등의 사회로부터의 극단적인 분리된 문제들이 드러나면서 그녀들의 과거의 시간은(어떤 이들의 현재이기도 한 시간은) 나 또한 초기에 그렇게 생각했듯이 마치 감옥생활처럼 비참하게 이미지화된다. 밖으로 나와야 하는 당위성에 힘을 싣다 보니, 집과 시설 내 생활은 전적으로 고통스럽게 묘사된다. 물론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꼭 불행한지만은 않은 경험도 존재함을 차츰 알게 되었다. 저자가 감옥생활에서 놀이까지 하듯, 공간의 제약에서의 고통스러움 한 켠에 상대적으로 얻어진 시간의 자유처럼 뭔가 얻어지는 것도 있듯이 말이다.
 
어떤 이들은 오랜 시간 책을 읽어 지식을 쌓고, 어떤 이들은 살림을 도맡아 하고, 어떤 이들은 별로 할 일이 없다가도 가끔 누가 와서 바깥바람을 쐬거나, 행사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삶 속에서도 나름의 축적된 지식, 노하우, 깨달음 등이 있다. 그런데 이런 경험은 감히 언급되기 어렵다. 자칫 재가(在家), 시설의 생활을 옹호하는, 즉 자립생활을 반대하는 것처럼 오해될까 봐 특히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의 특정 경험만 부각한다면, 나머지 경험들은 암암리에 말하기 어렵게 만들어버리는 결과로 이어지기 쉽다. 아울러 특정한 장애인집단을 피해자화하고, 무능력하고 수동적인 이미지로 만들며, 더욱 그 집단과의 거리감을 느끼게 하기 쉽다. 이런 점에서 장애인의 삶에서의 고통을 드러내는 일에 앞서 여러 고민이 이어진다.
 
삶 속의 고통과 유머
 
이런 고민 끝에 장애인의 삶 속의 고통과 더불어 즐거운 측면(유머스러움) 등을 함께 보여주는 방식을 택하고, 어떤 때는 오히려 즐겁고 발랄한 모습을 전략적으로 부각하기도 하는 방식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 책은 언뜻 우리가(일부 장애인단체) 추구하는 대항적인 방식과 유사해 보인다.
 
저자는 지독한 감옥의 생활에서도 사람이 생활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게다가 즐겁기도 하다. 일례로 그는 양심수이면서 여성잡지를 보며 사동의 물을 흐리기도 하고, 도구를 자체 제작해서 화투까지 즐기기도 한다. 장애인들 또한 지독한 외로움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나름대로 즐거움을 찾기도 하고, 행복한 기억도 이야기한다.
 
저자는 물론 이런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다루면서도,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은 ‘징역체질’이 아님을 얘기하며, 감옥에서의 비인권적인 측면도 충분히 드러낸다. 게다가 이전에 더 혹독한 시간을 보냈어야 하는 선배들의 노력과 시대적 흐름도 잊지 않고 짚어낸다.
 
단순히 감옥생활의 어두운 측면뿐만 아니라 밝은 측면도 다루는 서술방식 때문에 기존의 감옥 관련 책과 달리 신선하게 느껴지고, 거부감이 덜하며, 감동이 불러일으켜진 것은 아니리라.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뭔가 이보다 더 심오한 점이 있다고 느껴졌다.
 
나락에 떨어진 사람들이 발견하는 지혜
 
그 심오함은 ‘유머’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가 말했듯 ‘가벼움에서 나오는 긍정의 무게’의 힘이리라.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인용하며,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견뎌낼 수 있다” 라고, 그들이 나치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견한 무기는 다름 아닌 ‘유머’였음을 전한다.
 
저자도 웃음을 ‘고통의 나락에 떨어진 사람들이 섬광처럼 발견하는 삶의 지혜’라고 판단하며, 웃음을 찾는 일에 힘썼다고 말한다. 앞서 말했듯이 장애인의 문제를 드러내는 동시에 고통의 화신처럼 재현되는 방식에 대한 일종의 대항의 방식으로 즐거운(유머스러운) 면이 사용되는 것 너머, 장애인의 삶 속에 유머를 밝히는 작업은 이런 측면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다.
 
즉, 단순히 “당신들이 보는 것보다 장애인은 불쌍한 존재만이 아니고, 가끔 혹은 자주 행복하다”는 메시지만을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들이 크고 작은 삶의 고통 속에서도 유머를 찾으며, 얼마나 많은 성찰의 시간들이 있었는지, 자신의 장애와 세상을 보는 눈을 갖게 된 것인지, 웬만한 일에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내공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려내는 중요한 작업인 것이다. 이를 흔히 사용하는 ‘장애수용’이나 ‘장애극복’이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으리라.
 
저자는 ‘매혹된 영혼’이라는 책을 읽으며 자신의 고통을 부정하지 않는 태도를 배웠다고 한다. 맨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할 때 고통이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깨달음을 얻는다면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이 왔나? 내가 뭘 잘못했나? 이제 모든 것은 끝났다’는 등의 (장애를 포함한 어떤) 고통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사람들의 경험 혹은 재현들은 줄어들지 않을까.
 
그는 자신이 ‘감옥, 파산, 장애’의 세 가지 자산이 있다고 말하고, 두 번째 파산을 주제로 글을 쓸 예정이라고 밝힌다. 부디 장애와 관련된 책도 쓰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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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8/26 [01:48]  최종편집: ⓒ 일다
 
정졍 11/09/18 [22:43] 수정 삭제  
  ㅋㅋ 글쳐, 은둔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는 것은 오해받기 쉽죠. 어려움속에서도 희망잃지 않아, 시련과 고통을 삶의 깨달음으로 승화해, 요런 멘트 돌아오기 쉽상. 그럼에도 그 시절의 나의 경험, 생각, 사회적 환경과 억압 등등 모든 것을 살아온 내 인생의 흔적을 미화하거나 왜곡하고 싶진 않음. 왜 그래야하는지? 내가 생각한바로는 이 것또한 사회적인식의 틀에 나의 사고를 맞추지 않으면 사람들이 불편해하기 때문이지 않나. 어제 TV에서 생활의 달인에 나왔던 분을 7년이 지나고 다시찾아가니 요양원에 계시다는 내용이 있었어요(재방송임). '얼른 완쾌하셔서 예전처럼 달인의 모습 다시 보여주길바래요~' 무슨 사유로 요양원에 계신지는 짐작이 되는데,,, 희망적 바람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지만,, 당사자는 더 당황할 수 있지 않나. 지금의 너는 나쁘다는 메시지, 내마음이 불편하니 다시 예전처럼 돌아오라는 메시지 그런것이 우리의 바람, 행복이라는 메세지, 좋지않아요. 있는 그대로인정해주기, 그리고 그 사람이 처한 억압의 현재를 함께 깨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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