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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정책, 피해자지원의 '걸림돌' 되지 않기를
가정폭력피해자쉼터 ‘오래뜰’ 고미경 관장 인터뷰(하)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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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가정폭력 등 여성폭력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쉼터를 소개하고 각 쉼터들이 직면한 고민을 활동가의 시선으로 섬세하게 조망해보는 기사를 월 1회 연재합니다. 필자 나랑님은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인 ‘열림터’의 활동가입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편집자 주]

쉼터 탐방 세 번째는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 ‘오래뜰’입니다. 고미경(단아)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가정폭력피해여성 ‘자존감 회복’이 우선이다”>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쉼터들이 정부 지원을 받고 있는데요. 정부 지원에 문제점이 있다고 하는데 어떤 것인가요?
 
▲ 3·8 세계여성의 날, 여성가족부 앞 '여성폭력피해자들의 개인정보 집적'에 반대하는 집회   © 한국성폭력상담소
여성의전화 입장이 ‘쉼터와 여성의전화가 따로 갈 수 없다’는 생각이에요. 문제가 생겼을 때 정부가 해결해 주지 않아요. 전세자금이 오르면 여성의전화가 허리띠 졸라매면서 전세자금 충당하고 내부 문제 생겼을 때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 가죠. 사무처 회의에도 함께 참가하고요.

 
정부에서 운영비 지원받고 복권기금도 받지만, 대부분의 쉼터에서는 절대적으로 부족하지요. 재정적으로도 그렇지만 저는 정책적인 측면에서 점점 어려움이 커지는 것을 느껴요.
 
일례로 올해부터 직업훈련비가 없어져서 타격이 큽니다. 재정이 없다보니까 우리가 알아서 후원이 가능한 직업훈련기관들을 연계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가 않죠. 이 부분은 적극적으로 문제제기 하고 있어요. 

올해 어렵게 컴퓨터 교실이나 베이비시터 교육에 연계했는데, 본인 정보 다 입력해야 되고 그래서 우리는 “개인정보 줄 수 없다.”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죠. 결국 별칭만 주고 생년월일도 입소일로 한다거나 해서 교육을 받았어요. 그런데 수료증은 또 본인 이름으로 나와야 하니까 맨 마지막에 실명과 주민등록번호를 가르쳐줘요. 이런 식으로 하니까 연계하는 게 더 어려울 수밖에 없죠.

 
그리고 여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예산이 여성가족부 일반예산에서 법무부 관할인 범죄피해자보호기금으로 넘어가면서 여가부는 예산 책정에 의견만 줄 뿐이지 결정단위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잖아요. 다시 돌아와야 돼요. 예산은 누가 굴리고 사업은 누가 하는 거냐는 것이죠.
 
직업훈련비도 복권기금(복권기금의 일부는 여성폭력 피해자 치유기금으로 쓰이는데, 이 기금에는 피해자들의 자립을 위한 직업훈련비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여성폭력피해자 지원 예산이 범죄피해자보호기금으로 통합되면서 직업훈련비는 고용노동부에 가서 신청하도록 되었고, 이 과정에서 피해자 개인정보의 누출이나 본인부담 비용이 발생하게 되어 대부분의 쉼터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글쓴이 주) 에서 빠지게 됐잖아요. 

직업훈련비가 고용노동부로 넘어가면서 20% 자부담해라, 등본 제출해라, 내일배움카드 만들어야 된다 이러는데 그 내일배움카드 시스템이 사회복지시설정보시스템과 다르지 않더라고요. 미용사, 조리사 자격증 많이 따시는데 그건 또 사람이 많이 몰리니까 자부담으로 40% 내라 하고요. 서울지역 쉼터 시설장 모임이 있는데 이구동성으로 어려움을 얘기하고 있어요. 정책이 이러다 보니까 직업훈련 하고 있는 쉼터가 없는 것이에요.

 
-정부와 어떤 통로를 통해 만나시나요?
 
10월 국정감사 때 국회의원들에게 질의 요청서를 보냈죠. 서울지역 쉼터 통계를 잡아서 근거를 가지고 사례 넣고 해서 여러 문제점들을 지적했어요. 여성가족부에서 답이 온 걸 봤고 2차 질의요청서도 만들어서 보냈어요.
 
전국에 있는 여성의전화가 함께 정책방향을 결정하여 한목소리를 내기도 하고요. 한국여성의전화 법인과 늘 문제들을 공유하고 있으니 법인과 같이 국회의원실에 찾아가기도 했었죠. 상임대표가 여가부 장관을 만나는 자리에서 직접 제기하기도 하고. 여러 통로를 통해 하고 있어요.
 
-어떻게 쉼터 활동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2003년 여성의전화에서 가정폭력상담원 교육을 받고 자원 활동을 했어요. 2005년 서울여성의전화 가정폭력상담소에서 실무자로 일을 시작했죠. 가정폭력 상담소에서 만 3년 넘게 일하고, 사무처 조직파트에 1년, 2009년에 쉼터에 1년 있었고, 다시 조직파트에 가서 전국 조직, 지부 사업을 하다가 올해 5월 1일부터 쉼터 시설장을 맡게 되었어요.
 
우리는 활동가들이 다 로테이션(업무전환배치)을 해요. 원래 이렇게 1년씩 하는 건 아닌데 한국여성의전화연합과 서울여성의전화가 2009년에 통합되고 나서 조직적인 필요로 로테이션을 빨리 빨리 돌린 측면이 있어요. 2009년에는 쉼터 운영실장을 하면서 내부 총괄을 했었고 전국 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 협의회 사무국장을 맡았었어요.
 
-쉼터와 상담소, 사무처 전체 차원에서 로테이션을 하는 건가요? 저희(한국성폭력상담소)는 상담소 내에서 팀을 바꾸기는 해도 쉼터, 상담소 전체 차원에서 로테이션을 하지는 않거든요.
 
저희는 전체 차원에서 해요. 3년쯤 되면 분야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문성이 약해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오히려 전문성을 갖기 위해서 다양한 파트를 경험해야 한다고 봐요. 쉼터 안에만 있는 게 아니라 조직 경험을 하면 확장된 시각으로 전체 속에서 최전방인 현장(쉼터)을 보게 되니까 오히려 소진되지 않고 오래 일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또 로테이션을 하니까 서로에 대해 이해하게 되고요.
 
▲ 입소후 제일 먼저 시작하는 의식향상 프로그램.
-쉼터가 현장 중에서도 최전방이라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에서 말씀하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24시간 긴장상태이고 주말에 달려올 때도 있어요. 이 정부가 어떤 인식과 정책을 채택하느냐에 따라 제일 많이 피해를 보거나 어려움에 처하거나 그런 게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쉼터에요. 그런데 그만큼 그걸 변화시켜낼 수 있는 근거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고. 여기에서 정책이 생산돼요. 국감에 질의할 때도 쉼터에서 제기한 내용들이 주요하게 들어가고. 이런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것이죠.
 
이번에 대형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아동이 들어왔는데 가정폭력 가해자인 아버지가 예약날짜를 확인할 수 없도록 해달라고 병원 측에 요구하는 과정이 무척이나 길고 어려웠어요. 병원에서는 가해자라도 친권자이기 때문에 가르쳐줄 수밖에 없다는 말만 계속했죠. 결국 제가 이 아이들과 여성이 어떤 피해를 겪어왔는지, 가정폭력특례법으로 어떻게 유추해석이 가능한지, 왜 병원이 이 여성과 아동에 대해서 사회적 책임을 함께 져야 하는지 깨알같이 공문을 만들어 병원에 보냈어요. 그래서 병원에서 조치를 취해주긴 했지만, 아이가 치료시기를 놓쳐 결국은 응급실에 갔어요. 다음부터는 안전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겠죠.
 
가족회의에서 이런 걸 공유하면 내담자들은 우리가 하는 걸 보고 “안되는 게 없구나, 다 되는구나” 이 과정에서 또 하나의 역량강화가 될 수 있겠죠. 저는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는 내담자에게 말해요. “0.1%도 선생님 잘못이 아니다. 폭력은 가해자의 책임이고, 사회에서 같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유치원부터 시작해서 직업훈련기관, 구청, 여성가족부 하나하나 다 설득해야 하고 그만큼 어려움이 크다는 의미에서 ‘최전방’이라고 생각합니다.
 
-가해자로부터의 안전이 피해자의 생명, 삶과 직결되는 문제라서 철저한 비밀보장이 요구될 것 같아요. 저희 열림터에도 가해자가 쳐 들어온 적이 있었고, 가해자 아버지가 상담소 앞에서 1인 시위를 한 적도 있어서 위치 노출이 안 되게 엄격하게 관리를 하거든요. 본 인터뷰 연락을 취하는 과정에서도 굉장히 철저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엄청나게 민감하게 해요. 실무자가 노출되었을 때 제일 빨리 노출되잖아요. 그래서 명함에 개인 휴대폰 번호 안 적어놓고 쉼터 가족들에게도 번호 안 가르쳐드려요. 우리를 미행하면 그대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니까요.
 
법인(한국여성의전화)으로는 많이 쳐들어와요. 제가 새벽에 만나기도 했어요. 술 먹고 찾아와서 내놓으라고 난동을 부리면 바로 112에 신고를 합니다. 쉼터는 철저하게 비밀보장이 되고 오히려 여성의전화 법인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요. (법인 건물에) CCTV, 사설보안업체를 통한 경비시스템이 설치되어 있는 이유가 이런 일을 워낙 많이 겪었기 때문이죠.
 
-활동가들의 근무형태는 어떻게 되나요?
 
저, 주간 1명, 야간 1명 이렇게 상근활동가 3명이 있고요, 주말에 오시는 선생님이 계세요. 넷이 손발이 척척 잘 맞아요. 주간활동가와 야간활동가 두 명은 2~30대 활동가에요. 활동가들이랑 저랑 얘기를 많이 하죠. 생활인들과 얘기한 것에 대해서 저랑 한 번 더 얘길 하면서 스스로 분석해보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도 해요.
 
-활동가들이 생활인보다 나이가 적은 경우에는 말이 잘 안 먹힐 것 같아요. 어떤 고충이 있을까요?
 
쉼터 가족들에게 ‘나이권력’에 대해서 얘기를 했어요. 나이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겠냐고. 가족들도 나이를 뛰어넘기 위해서 상당히 노력하고 있는 걸 느껴요.
 
전에 젊은 전화상담원에게 나이 많은 사람 바꿔달라는 내담자도 있었어요. 그러면 저는 “나이 먹은 이상으로 저도 직접적, 간접적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 저랑 얘기하셔도 됩니다.”라고 대답하라고 합니다. 활동가들 나이는 직접적으로 안 밝혀요. 60대여도 30대여도 저한테 나이 물어보면 “저는 선생님이랑 같아요.”라고 얘기해요. 자기들끼리 내 나이가 몇인지 내기를 하신 적도 있데요.(웃음)
 
저는 모든 여성들이 나이권력에서 자유로워지길 바라요. 가족 중 어떤 분이 활동가에게 “딸같다”고 하면 저는 “그러면 실무자에게 하듯이 딸에게도 더 많은 부분을 존중해주셔야 하지 않을까요?”하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후배 활동가에게 이렇게 말해요. “선생님이 단순히 직장에서 일을 배우는 차원이 아니라 여기서 배우는 게 앞으로 선생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꺼다.” 저는 여성의전화에서 상담원 활동하면서 처음에 6개월을 울고 다녔어요. 친구가 너 그렇게 힘든 데 그만해라 얘기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저는 내담자들과 같이 하면서 정말 많이 치유가 됐고 ‘아, 나도 생존자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내담자들이 겪었던 폭력은 내가 겪는 폭력이기도 하고, 누구라도 이 땅에 살면서 그 폭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요.
 
- 앞으로 전망이나 포부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제가 가진 것은 제 것이 아니라 여성의전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시설장이기 전에 여성의전화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활동가들에게도 이 안에서는 여성의전화의 정체성을 갖기 위해 노력해달라고 해요. 정체성을 잃지 않고 가져가기 위해서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해요. 그만큼 여성의전화에 대한 신뢰와 확신이 있기 때문이에요.
 
전 처음부터 운동하려고 들어온 게 아니에요. 상담하러 들어왔는데 저와 상담하는 여성들의 삶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다 보니까 그게 운동이 된 거죠. 아직은 제가 지쳐 쓰러지면 안돼요. 내년에 두 달 안식휴가 쓸 수 있는데, 제 소원은 내년 초에 한 달만 쓰면 안 될까.(웃음) 회원 조직도 전국조직도 쉼터에 올 때도 이상하게 다 위기상황일 때 오게 되는 것이에요. 요새도 주말에 집에서 일을 하고 야근도 많이 해요.
 
전에는 동료들과 술도 한잔하며 대화를 많이 해서 스트레스를 풀었는데 나이 먹으니까 그것도 힘들고. (웃음) 집에서 음악 들으면서 스트레스 풀고요, 고속도로 드라이브 좋아하는데 바빠서 아주 가끔씩 밖에 못하고 있어요.
 
지금 한국여성의전화에 부설기관이 4개(가정폭력상담소, 가정폭력쉼터, 성폭력상담소, 여성주의실천연구소) 있는데 성폭력상담소와 쉼터만 정부지원을 받아요. 정부는 3~4년쯤 전부터 사회복지시설정보시스템 사용 안하면 지원 끊겠다는 위협을 계속 하고 있어요. 우리는 노출의 위험 때문에 내담자들의 개인정보를 입력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고요. 사무처 회의에서 만약에 정부 지원이 끊긴다 해도 쉼터만큼은 우리의 현장으로, 우리가 보따리 장사를 해서라도 지켜야 한다고 얘기가 됐었어요.
 
쉼터에서 활동하려면 민감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쉼터에 사는 여성들이 겪는 문제를 어떻게 운동으로 만들어 나갈 것인지 고민하는 민감성이요. 더 소진될 것 같지만 그런 민감성을 갖고 노력하면 자기 내면에 힘이 생긴다고 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첫인상이 무척 쾌활해 보이신 단아선생님은 인터뷰를 해 보니 냉철함과 집요함이 돋보이시는 분이셨습니다. 짧은 인터뷰였지만 단아 선생님께 쉼터가 빠질 수 있는 ‘안전주의’의 함정을 의식적으로 깨나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매일 매일 피해자 지원 실무에 집중하다 보면 정부와 싸우는 일은 뒷전으로 밀리고 아,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운동’이 맞나 회의가 들 때가 많거든요. 쉼터에서 ‘운동’을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 갈증이 해소된 듯한 기분입니다. 

선생님, 지쳐 쓰러지지 마시고 건강하세요! 쉼터를 생생한 운동의 현장으로 만들어가는 길에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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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11/29 [05:28]  최종편집: ⓒ 일다
 
네네 11/12/02 [09:51] 수정 삭제  
  아... 멋져요. 분명한 시야를 갖고 성큼성큼 걷는 분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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