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 '오이도역 추락 사망사건' 이후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이하 이동권연대)의 투쟁은 지속적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어느 정도 성과도 거두었다. '이동권'이란 개념조차 생소해하던 시민들에게 이것이 장애인의 기본적인 인권문제임을 알려냈다.
그러나 이동권연대 안에서도 장애여성의 목소리는 잘 드러나지 못했다는 평이다. '이동권'을 고민하는 데 있어서 장애여성의 관점은 장애남성과 엄연히 다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장애여성공감은 8월 30일 대학로에서 '장애여성과 이동권'이란 주제의 영상토론회를 열었다. 이동권연대의 투쟁은 남성적 운동방식 영상토론회에서 상영된 <버스를 타자>는 이동권연대의 투쟁과정을 담은 영상물이다. 화면 속에서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거의 남성 활동가들이다. 이동권연대 측의 요구사항을 말하는 이도 남성들이며, 이들과 '면담을 해주는' 이들 역시 남성 공무원들이다. 이동권연대가 많이 알려질 수 있었던 데는, 쇠사슬로 휠체어를 연결하고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는 등의 '강한' 투쟁방식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투쟁은 장애여성들에게 버거운, 맞지 않는, 원하지 않는 방식일 수 있다. 작년 5월부터 이동권연대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장애여성공감 박영희 대표는 “이동권연대의 활동은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장애인의 이동이 장애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이동약자들의 문제로 확대되어지는 운동이 되었지만, 이 사회에 남성적 운동방식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또 하나의 통례를 남기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이동하기 위해 ‘폭력’ 감내해야 하나 사실상 장애여성들에게 '이동'은 '일상'이 되기가 힘들다. 많은 경우 장애여성들의 생활반경은 집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들은 이동이 일상이 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폭력을 경험하게 된다. 중증장애여성인, 한국자립생활네트워크 회원 김상희씨는 "차량봉사를 하는 남성들의 불필요한 신체접촉으로 인해 수치심을 느낀 적이 많았다. 어이없는 언어적 성폭력을 행사할 때도 기분이 상했지만 도움을 필요로 하는, 평등할 수 없는 관계로서 어떤 반박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작년 7월에 전동휠체어를 기증 받으면서 이러한 일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도 불쾌한 경험을 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문제는 김상희씨만 겪는 일이 아니다. 이동시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장애여성들은 '자원봉사자'들로부터 폭력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고 증언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기란 쉽지 않다. 유일한 외출의 통로가 차단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면 혼자 이동하는 것이 가능해지지만 불특정다수에 의한 폭력으로 확대된다. 박영희 대표는 "장애여성에겐 '안전하다'라는 말이 두 개의 의미를 가진다. 이동시설의 안전과 폭력으로부터의 안전이다"라고 말했다. 장애여성공감은 이에, “지하철역의 엘리베이터를 외진 곳에 설치해 장애여성들이 '안전하게' 이용하지 못하게 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영상토론회는 장애여성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이동하기 위해서는 시설 부분만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의 차원, 그리고 운동조직 내부의 인식 역시 함께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케 한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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