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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쫓기는 세상과 ‘느리다’는 것
장애여성 숨은 그림찾기(18) 영화 <인타임>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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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중반 이후 계속 일을 하며 “바쁘다 바빠!”를 입에 달고 휴식을 욕망하며 달려왔다. 그리고 최근 그렇게 원하던 서너 달 정도 쉴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요즘 ‘남아도는 시간’을 즐기기는커녕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이 당황스러움은 해마다 별반 달라지지 않는데, 시간에 쫓길 때는 오히려 기가 막히게 빨리 적응을 한다.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있는 세상이라면?
 
▲ 돈이 있어야 시간을 살 수 있는 사회를 그린 SF영화 <인타임>
얼마 전, 이런 시간에 대한 자유롭지 못한 태도와 맞닿아 있는 <인타임>(In Time, 2011, 앤드류 니콜 감독)이라는 영화를 봤다. 이 영화는 스물다섯 살이 되면 노화가 멈추고 1년이란 시간이 주어지는(팔에 숫자로 나타남), 그래서 열심히 일을 해서 시간을 충전해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세상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윌 사라스가 이런 시간통제 시스템의 비밀을 알게 되어 부자의 딸인 실비아를 납치하고 결국 함께 시스템에 저항해 가는 내용이다.

 
상상력 넘치는 소재이나 현실과 너무도 오버랩 되어 씁쓸하다. 다수가 죽어야 소수가 영생을 누릴 수 있는 불평등한 시스템. 물건을 사고 시간을 지불하고 시간을 벌기 위해 쉴 틈 없이 일하는 가난한 다수의 사람들이 사는 공간과 시간부자들이 모여 파티를 즐기며 사는 ‘뉴 그린위치.’ 불평등함과 공간적 분리 또한 현실과 통한다.
 
노동자들이 일을 마친 후 팔에 시간을 충전해 가고, 주인공의 엄마가 버스 요금이 올라 승차거부 당하고 집으로 온힘을 다해 달려가지만 결국 시간이 다해 아들의 눈앞에서 죽어버리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끝으로 내몰려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열악한 현실의 노동자들이 절로 연상되어진다. 아울러 소수 1%가 독식하는 현 자본주의사회에 대한 분노도 생긴다.
 
남아도는 시간 앞에 무기력해지는 이들
 
영화에서는 시간과 연결된 권력을 살펴보고 있는데, 돈의 유무와는 달리 시간을 통해 접근하면 다른 각도에서 권력의 작동을 살펴볼 수 있을 듯하다. 영화에서는 단순히 시간의 차이를 빈부의 차이로 도식화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여유로운 시간을 누리는 것과 부유함이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의 등장인물 중 에밀턴은 주인공에게 어마어마한 시간을 몰래 넘겨주고 자살을 선택한다. 상황은 좀 다르지만 넘쳐나는 시간을 의미화하지 못하고 보내야 하는 이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아마 지금의 내 상황을 떠올리며 감정이입이 되었으리라. 일정기간이라고 해도 돈을 벌지 않는 상황에서 ‘남아도는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며 즐겁게 보내기는 너무 어렵다. 돈을 벌지 않는 시간은 낭비적이라는 느낌을 떨쳐낼 수가 없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실업자들도 이런 종류의 시간을 감당하고 있으리라. 그리고 이런 실업자의 통계에서도 배제되는 많은 장애인들 또한 그러하리라. 장애인들 중 많은 이들은 시설에 수용되어 있거나 집에서 지내며 가끔 외출의 기회를 얻기도 한다.
 
물론 그 삶이 전적으로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사회참여의 필요성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이들의 시간은 아마 사회에서 통용되는 일반적인 시간관념과는 확연히 다르리라. 해야 할 일도 별로 없고, 관계도 적으니 불러내는 이도 없고,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욕망이나 주체성마저 획득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무기력해져 그럭저럭 시간을 흘려보내기 십상이다. 나또한 정도와 기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점이 있다.
 
근무시간 단축을 외치고, 하나의 일자리로도 모자라 두세 개씩 해야 하는 먹고 살기 어려운 이때에도, 이렇게 시간이 넘쳐나 이를 감당해야 하기 어려운 이들도 살아가고 있다. 다른 상황이지만 에밀턴처럼 넘쳐나는 시간들을 의미화하기 어렵다면 시간은 사람들을 피폐하게 만들 것이다.
  
자본주의적 시간에 얽매인 우리들의 몸
 
영화에서 또 하나 끌린 한 장면은, 부자들의 공간인 ‘뉴 그린위치’에 주인공이 처음 도착했을 때이다. 누구나 천천히 여유롭게 움직이는 거리에서 주인공은 혼자 달리다가 본인만 다름을 알아채고 달리기를 멈춘다. 시간에 맞춰 쫓기듯 살아온 주인공의 몸에 밴 빠른 걸음걸이처럼,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일상적으로 자본주의에 적합한 몸으로 변화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시간에 얽매어 움직이고 있는지는 잘 모르고 있는 듯하다.
 
장애가 있는 내 몸은 느리기 때문에 사람들의 속도에 상대적으로 민감하다. 다수가 비장애인 세상에서 적응하기 위해서 그 속도에 최대한 맞추려 노력해야 하고, 내가 따라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 판단해야 하고, 방법을 찾거나 포기할 시점도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 속도로 시간에 맞출 수 있는지, 상대방의 시간을 축내도 좋은지 말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지 못하게 만드는 장벽은 물리적인 환경이나 내 몸의 가능한 능력에 따른 것만은 아니다. 함께함으로써 시간이 더 걸리는 것에 대한 합의, 인내심이 관건이기도 하다. 어려서부터 하굣길을 같이 다니던 어떤 친구는 시험 전날이라 혼자 먼저 가버렸다. 입사초기, 지점이나 부서를 변경하거나 하면 점심시간에 종종 낙오되어 앞서 가던 동료들이 뒤돌아보지 않으면 혼자 식사하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문제는 소외되지 않으려는 나의 부단한 전략개발과 상대방들의 이해로 대부분 시간이 흐르면 해결되곤 했다. 학교생활을 몇 년 같이 한 친구는 졸업 후 취업을 하고 나서 사람들의 걸음이 너무 빨라 오히려 좇아가기 힘들더라는 이야기를 웃으며 했었다.

 
그러나 성격이 급해 모든 행동이 빠른 사람들과는 상당히 어울리기 힘들다. 휠체어를 타는 지인은 저상버스에 타려면 “아 바쁜데 왜 아침에 쏘다니냐?”는 비난을 감수해야만 한다. 이처럼 장애인입장에서 비장애인이 시간에 민감해질수록 더 함께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시간에 대한 태도들은 비장애인뿐만 아니라 장애인들 또한 다르지 않다. 자신보다 느린 몸짓을 견디기 힘들어 하고 느리게 뱉어내는 말에 귀 기울이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걸음이 느리던 장애인들 중 전동휠체어 등을 타게 되면 자신보다 훨씬 느린 장애인의 걸음에 맞춰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시간 보내기에 대한 상상
 
장애인 입장에서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속도를 내야하고 시간에 얽매이는 몸으로 변해가는 것이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아마 무언가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있는 것이 많으리라.
 
이 영화를 보며 시간을 통해 현 사회의 모순을 볼 수 있었지만, 그래서 우리가 자본주의적이지 않은 시간을, 장애인 차별적이지 않은 시간을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을지 등 더욱 많은 상상력과 실천력이 필요할 때이다. 단순한 삶을 지향하면서도 그 시간이 못 견디겠고, 경쟁사회를 비판하면서도 내기를 해야 재미있고, 소비를 줄여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쇼핑의 시간을 즐기고,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고자 하나 그와 보조를 맞추기 힘들다.
 
자신을 변하게 하려면, 몸을 변화시키려면 단순히 금지하기보다 상상력을 좀 더 발휘해 지향하는 방식을 체화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예를 들어 슬로우 푸드를 해먹어 본다거나 천천히 산책을 해 본다거나. 그나저나 그새 이 글이 빨리 써지지 않는다고 자학하고 있는 나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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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2/07 [13:39]  최종편집: ⓒ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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