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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 자매의 ‘불완전한’ 여정
장애여성 숨은그림찾기(19) 책「조금 달라도 괜찮아」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백발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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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 숨은 그림 찾기” 연재는 다섯 명의 장애여성들이 다양한 ‘매체 읽기’를 통해 비장애인, 남성 중심의 주류 시각으로는 놓칠 수 있는 시선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괜찮지 않은 ‘괜찮아’라는 말
 
평생 동안 가장 많이 쓴 말을 꼽으라면 단연 “괜찮아”를 들 것이다. 길을 걷다 넘어졌을 때 누군가 달려와 많이 다쳤느냐며 부축을 할라치면 내 입에선 가장 먼저 괜찮다는 말이 나왔다. 사실 많이 아파도 나보다 더 많이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 앞에서 괜찮다는 말밖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모두가 즐기는 자리에서 나만 제외될 때 사람들은 참 안됐다며 나를 동정하고 위로했다. 그러나 달리 어찌할 방도를 찾아주지도 않으면서 하는 사람들의 위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 앞에서도 나는 계속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괜찮지 않은 걸 뻔히 아는데 왜 괜찮다고 하느냐고 반문하는 이도 가끔 있었다. ‘괜찮지 않다고 하면 뭐가 달라지는데?’ 내 대답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괜찮지 않을 때 나는 괜찮지 않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다른 방도를 찾아달라고 요구한다. 괜찮다는 말을 말 그래도 괜찮다는 의미 그 자체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괜찮지 않은 걸 괜찮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장애인이 아직 많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어쩌면 나는 나쁜 장애인, 튀는 장애인일지도 모른다.
 
장애인이 괜찮지 않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이제까지 아무 문제없이 유지되어왔던 질서가 깨지고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진다. 착한 장애인들은 그들에게 아주 경미하고 잠깐에 불과한 불편을 끼치지 않기 위해 평생을 참고 산다. 전혀 괜찮지 않은 것을 알기에 나는 그들의 괜찮다는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괜찮지 않다고 말하라고 종용하지도 않는다. 그들 스스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순간이 올 때까지 지켜보면서 기다린다.
 
보통과 다른 아이가 ‘괜찮은’ 엄마들
 
▲ <조금 달라도 괜찮아>(지나 갤러거, 퍼트리샤 컨조이언 저 | 전미영 역 | 부키 | 2012) 
나쁜 장애인, 튀는 장애인일지는 몰라도 덕분에 시야는 좀 넓어졌다. 그리고 그런 시선으로 보니 정말 괜찮아서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도 눈에 띠어 반갑다. 그 정말 괜찮은 사람 중 하나가 미국에 사는 불완전 자매 지나와 패티이다.

 
물론 직접 만나 본 것은 아니고, 그녀들의 책, <조금 달라도 괜찮아>(지나 갤러거, 퍼트리샤 컨조이언 저|전미영 역|부키|2012)를 통한 접촉이었다. <조금 달라도 괜찮아>는 아스퍼거 증후군과 양극성장애를 가진 딸을 키우는 자매 지나와 패티의 이야기로서 보통사람들의 삶과는 '조금'이 아니라 '많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보통 사람들과 많이 다르면서 괜찮을 수 있다니 처음엔 여지없이 삐딱하게 생각했지만 책을 읽어내려 가다 보니 사실이었다.
 
‘아스퍼거증후군’은 자폐장애의 일종으로서 지능이 정상 범위에 들어가고 특정영역에서는 오히려 뛰어난 능력을 보이기도 하는 장애이다. 양극성장애(조울증)은 들뜬 기분(조증)과 침울한 기분(우울증)이 반복되는 정신질환으로서 과대망상, 빠르고 비약적인 사고 흐름, 자살 충동, 성욕 과잉 등의 증상이 있다. 그러니 집안에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장애아를 둔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찌 평범할 수 있으랴. 그런데도 불완전 자매 지나와 패티는 시종일관 유쾌하다.
 
신체 어딘가의 기능상의 문제를 가진 경한 장애도 아니고 아스퍼거증후군과 조울증으로 인한 장애를 갖고 있는 딸을 키우면서 그들에게도 충격의 순간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딸들의 장애를 엄마 자신의 불행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오직 딸들에게 장애를 갖고도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주기 위해서만 순수하게 ― 딸들을 장애 없는 사람처럼 성공시켜 보란 듯이 세상 사람들을 놀래게 해주겠다거나 하는 엄마들의 사심은 빠져 있다 ― 노력했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주변 사람들에게 주눅 들지 않고 “완벽한 당신 애 얘기는 그만 닥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장애자녀를 둔 엄마라면 잘나가는 남의 집 아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자신의 불행을 곱씹으며 살고 있을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 보통일 텐데, 참으로 통쾌한 반전이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다’
 
▲ <조금 달라도 괜찮아>의 두 주인공.  왼쪽이 언니 지나, 오른쪽이 동생 패티.    
그렇다고 지나와 패티가 우리네 보통사람들과는 뭔가 달라도 한참 다른 특별한 엄마들 ― 가령, 남들보다 많이 배운 엘리트이거나 용감하고 씩씩하다거나 신앙심이 깊다거나 ― 일거라고 상상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지극히 평범한 여자들이다.

 
동생 지나는 갓 태어난 딸 케이티를 보고 모델 크리스티 브링클리의 딸과 바뀐 줄 알았으며 자라면서 끊임없이 점프하고 손을 날개처럼 흔들어대는 것도 그저 귀엽게만 여겼을 만큼 장애에 대해 무지했었다. 언니 패티도 곱슬머리가 싫어 꿈에 그리던 직모(直毛)를 가진 제니퍼를 낳고 아이가 짜증이 늘고 감정기복이 두드러져도 예민한 성격 탓으로만 여겼다. 자매의 공통점은 뚱뚱하고 술을 좋아한다는 것.
 
장애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조금 달랐다. 동생 지나가 딸의 장애를 공개하고 자신의 상태에 대해 계속 주변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성격이었다면 언니 패티는 안으로만 삭이는 성격이어서 내면적인 갈등이 있었던 것. 그러나 자매는 결국 장애를 공개하고 장애에 대해 무지한 세상 사람들을 향해 유쾌한 어퍼컷을 날리며 우리 모두가 얼마나 불완전한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불완전운동에 함께 나서게 된다.
 
장애에 대해 무지했던 지극히 평범한 자매가 변화할 수 있었던 열쇠는 단 한 가지, 완벽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모두 불완전하며,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정상과 비정상, 평균 이상과 이하를 가르며 정상과 평균에서 벗어난 삶을 용납하지 못하는 완벽주의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나 역시 아직도 완벽주의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힘들기에 지나와 패티 자매가 자신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완벽주의에서 벗어났는지 솔직하게, 그리고 유쾌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이 더욱 와 닿았다. 덤으로 장애자녀를 둔 부모와 형제, 그리고 주변사람들이 아이를 위해 어떻게 대처하면 좋은지에 대한 유용한 정보까지 있으니.
 
‘장애가 있어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불완전 자매들의 이러한 긍정이 억지 긍정으로 느껴지지 않고 정말 괜찮다는 소리로 들리며, 그들의 괜찮은 삶의 이야기가 완벽하지 않은 우리 모두가 괜찮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있는 그대로의 메시지로 전해지는 걸 보면,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 그것은 나도 그들처럼 괜찮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불완전한 여정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느끼는 자매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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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3/26 [03:58]  최종편집: ⓒ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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